소설리스트

투수가 그냥 홈런을 잘 침-68화 (68/305)

68화. 결점(5)

운동 능력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과정에서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사실 나도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다.

물론 내 본래 타격 스킬은 명예의 전당 급, 아니 과장 조금 보태서 GOAT에 도전할만한 수준이 맞았다. 하지만 17년 전으로 돌아와 줄어든 근력을 생각하면 최근 나의 타격 성적은 조금 과한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결국 홈런은 정확한 타격과 힘의 조합물이다. 타격 스킬이 조금 부정확해도 힘이 압도적이면 공은 담장을 넘어간다. 지금 시점으로 돌아오기 전의 내가 종종 그랬었다.

헌데 체중이 40킬로 가깝게 부족한 상황에서 나의 홈런 페이스는 전성기의 그것을 살짝 밑도는 수준이었다. 그것은 현재 내 몸이 어딘가 아프지 않고 쌩쌩한 몸이라는 것, 그리고 타격폼을 파워위주로 변경했음을 생각해도 조금 과한 면이 있었다.

“순발력과 협응력, 동체시력 부분이 그러니까······.”

잭 워싱턴이 장황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어찌나 흥분했는지 그 가운데 절반 정도는 분명 영어는 영어인데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의 연속이었다. 다만 확실한 것은 나의 순발력과 협응력, 동체시력이 그가 상상한 것 이상이라는 점이었다.

사실 나이를 먹으면 노화에 관해서 신경을 안 쓸 수가 없다. 나만 하더라도 서른 넘어가는 시점에서 슬슬 관련된 부분들을 열심히 찾고 조사를 했었으니까.

사람의 노화에 따른 운동 능력 감소는 생각보다 이르게 시작된다. 다만 여러 가지 운동 능력 가운데 조금 더 빠르게 진행되는 것과 천천히 진행되는 것이 있는데, 근력이나 지구력 쪽은 조금 더 완만하게 감소가 진행되는 반면에 순발력이나 동체시력, 사고능력 등은 그 감소의 시점이 상당히 이르게 찾아온다.

그 증거로 바둑이나 체스 같은 머리를 쓰는 스포츠의 정점이 보통 만 20세라는 점, 그리고 순발력과 신경반응속도에 크게 영향을 받는 E-sports등의 에이징 커브가 매우 빠르게 시작된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내가 빅리그에서 타격폼을 바꿨던 것은 결국 충분한 힘이 있는데, 굳이 콘택트에 불리한 타격폼을 유지할 이유가 없어서였다. 하지만 지금 그 콘택트에 불리한 타격폼을 갖고도 터무니없는 콘택트율을 보여줬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지금 열일곱의 이 쌩쌩한 몸은 나이를 먹어 쌓아 올린 근력에 필적하는 무기를 이미 지닌 상태인지도 몰랐다.

나와 함께 운동 능력을 측정한 백하민이 혀를 내둘렀다.

백하민도 사실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동체시력만 하더라도 내가 여덟자리까지 확인할 때 다섯자리 정도는 확인을 했으니까.

“와, 최수원. 근데 너 대체 왜 투타겸업을 하려는 거냐? 그냥 타자하면 될 것 같은데.”

“글쎄요······. 대우주의 의지?”

“뭐라는 거야.”

내 정확한 사정을 모르는 백하민이 내 말을 그냥 헛소리로 알아들었다.

하지만 난 결코 헛소리도 농담도 아니었다.

내가 이런 젊은 몸으로 돌아온 지도 벌써 5개월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야구 하느라 바쁘기는 했지만, 그래도 항상 머릿속으로 생각을 해왔다.

대체 누가 나를 열일곱 살로 돌려보낸 것일까?

그것은 신일까? 아니면 악마? 외계인? 그것도 아니면 23세기의 로봇 고양이?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게 누가 됐건 나로서는 감히 인지하기 힘든 존재라는 점이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내가 집중하게 되는 것은 그것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 아닌 그 누가 대체 나를 ‘왜’ 이 시대로 돌려보냈는가 하는 부분이었다.

대체 그 알 수 없는 신적 존재는 나를 왜 열일곱 살로 돌려보냈을까? 물론 내가 이렇게 돌아온 것이 그저 우연이라면 그것대로 상관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 정말 누군가가 의도를 갖고 나를 이 시대로 돌려보낸 것이라면?

그렇다면 그 신적 존재는 분명 나에게 무언가 원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것도 내가 이 시대로 왔을 때만 가능한 무언가가.

주머니의 행크 애런 사인 카드를 한차례 만지작거렸다.

사실 내 입으로 말하기에는 조금 부끄럽지만, 나는 그대로 타자 쭉 하다가 은퇴를 했어도 명예의 전당은 너끈한 타자였다.

행크 애런 사인 카드와 나의 야구 실력.

그 두 가지를 조합했을 때 나온 것은 결국 야구뿐이었다. 그것도 명예의 전당이 너끈한 타자가 다시 열일곱으로 돌아와야지만 이룩할 수 있는 무언가다.

그렇기에 그것은 자연스럽게 본래의 내가 이룩할 수 있었을 단순한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는 수준이 아닌, 그것을 아득히 넘어서는 위대한 업적이라고 추측됐다.

메이저리그 MVP? 글쎄, 그거라면 2043시즌 서른다섯의 나도 충분히 도전 가능했을 일이다.

누군지 모를 초월자가 바라는 것은 그 이상. 그러니까 예컨대 긴 기간 리그를 지배하는 진짜배기 GOAT라든지, 약쟁이들에게 오염된 메이저리그 최고의 기록을 경신하는 일이라든지, 피닉스나 마린스를 우승시키는 일 같은 현대 야구에서는 도저히 상상하기 힘든 위대한 업적을 이룩하는 것이리라.

-똑똑똑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결과 나왔습니다.”

윌리엄 워싱턴이 또 다시 아무 의미 없는 노크와 함께 벌컥 문을 열고 등장했다.

한참 뭐라뭐라 장황하게 떠들던 잭 워싱턴이 냉큼 입을 닫았다. 하긴, 피칭랩을 운영하는 주제에 타자 전업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게 어떻냐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으니, 동업자가 있는 곳에서는 도저히 꺼낼 수 없는 말이었겠지.

“대략적인 훈련의 방향은 정했습니다. 아, 그런데 한 가지. 백하민 선수?”

백하민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윌리엄을 바라봤다.

윌리엄이 그를 향해 방긋 웃으며 말했다.

“백하민 선수는 당분간은 공 던지는 건 금지하도록 하겠습니다.”

상대방이 방긋 웃으니까 뭔가 좋은 말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백하민이 윌리엄을 따라 방긋 웃었다. 그것은 참으로 쓸데없이 상쾌한 미소였다.

***

최수원에 대한 열기는 식지 않았다.

프로야구의 꼴찌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최수원의 이름은 더욱 자주 언론에 오르락 내리락 거렸다. 만약 그가 지금 한국에서 학교를 잘 다니고 있었더라면 아마 중앙고에는 연일 기자들이 들락날락했을지도 몰랐다.

[대표팀 익명의 모 제보자 최수원과 백하민의 미국 잠적에 대하여 입을 열다!!]

[U-18 대표팀 내부. 투타 간의 알력 다툼이?]

[투수와 타자의 경계. 대표팀의 막내는 괴롭다.]

사람의 상상력이란 실로 놀랍다.

보지 않을 것을 추측하고, 그것을 그럴싸하게 살을 붙인다. 물론 보통의 경우 그렇게 붙여나간 이야기는 터무니없는 이야기가 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번의 경우는 그 터무니없는 추측이 아주 조금 사실을 침범했다.

물론 투타 간의 알력은 아니었고, 딱히 최수원에게 무언가 문제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대표팀의 몇몇 선수들이 조규혁을 따돌렸던 것은 사실이었고, 이번 특타와 관련된 이야기를 먼저 흘린 것 역시 그들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특타에 관련해서 언론이 구시대적인 훈련법이라며 감독을 까는 것이 참으로 보기 좋았다. 하지만 최근 팀 내부의 알력이라는 종류의 기사들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물론 그 내용을 찾아보면 참으로 형편없는 추측이었고, 그 포커스 역시 최수원에게 맞혀져 있었다. 게다가 기사의 숫자 역시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도둑은 본래 제 발이 저린 법이고, 불특정 다수의 비난은 사람을 위축시키는 법이다.

그리하여 서울의 작은 카폐.

아직 앳된 기색이 다 가시지 않은 아이 둘이 커피 두 잔을 앞에 두고 초조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야, 김태윤!! 별거 아닐 거라며. 어쩔 거야. 이거 시발 잠잠해질 생각을 안 하잖아.”

“새끼야!! 조용히 좀 해. 사람들이 쳐다보잖아.”

김태윤이 주변을 한 번 힐끔 했다.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왠지 주변 사람들이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는 묘한 감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어차피 지금 우리 이야기도 아니야. 그냥 흔한 추측 기사잖아. 뭐 성적 좀 별로면 내부에 파벌이 있다느니, 투수조 야수조끼리 사이가 안 좋다느니. 그거 연장선이야.”

“그거야 그런데 이러다가 괜히 누군가 인터뷰라도 하면 어쩔 건데.”

“인터뷰를 해? 누가? 야, 뭐가 어찌 됐건 내부 총질하면 찍히는 거 애들 다 알아. 게다가 걔들이라고 조규혁 무시 안 했냐? 우리가 좀 더 나섰을 뿐이지 결국 다 우리 편이야.”

“최수원은? 걔는 조규혁 후배잖아.”

“최수원? 걔 어차피 미국에 있잖아. 걔 한 달인가 일정이라고 했으니까 돌아오려면 아직 삼 주도 넘게 남았어. 게다가 걔도 앞으로 계속 야구 할 건데, 상식이 있으면 조규혁 편을 들겠냐? 괜히 내부 총질 해봤자 찍히기밖에 더 해?”

“그럴까?”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빛.

어쩌면 그것은 양힘찬이 아닌 김태윤 스스로에게 하는 말일지도 몰랐다.

“그렇다니까.”

***

“아, 알력이요? 음, 알력까진 아니고 그냥 애들끼리 자기들 딴에는 그게 의리인 줄 아는 멍청한 짓이 좀 있었죠.”

“그러니까 지금 최수원 선수 말은 결승전의 패배가 그 알력 때문이다?”

“에이,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씀입니까. 그냥 애들끼리 으레 있음직한 텃세 정도였어요. 고작 그런 거로 경기 질 거면 애초에 결승도 못 갔죠. 미국 애들 대표팀 면면 좀 보세요. 제일 이름값 떨어지는 애가 드래프트 3라운드잖아요. 쟤들 빠른 애들은 1, 2년 있으면 메이저리그에 이름 왔다 갔다 할 거고, 느린 애들도 3, 4년이면 메이저 올라올 겁니다. 그냥 실력이에요 실력.”

고려일보의 미국 동부지역 특파원인 이영주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물론 예전에 인터뷰 했을 때도 최수원이 보통 캐릭터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긴 했었다. 하지만 이건 거침이 없어도 너무 거침이 없다.

자기보다 한 살 많은 선수들 사이에 있었던 일을 선수단의 알력같은 거창한 이야기에서 그냥 애들끼리 으레 있음직한 멍청한 짓 정도로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해버린다.

“하지만 분명 저희가 예선에서는······.”

“야구는 원래 같은 리그 뛸만한 실력이면 3할은 하는 게 정상입니다. 예선 전에서는 우리가 그 3할이었던 거고, 결승전은 7할이었던 거죠.”

“그렇군요······. 그러면 특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봐도 괜찮을까요?”

“특타라면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해요. 사실 이번 대회가 팀 간에 실력 차가 워낙 컸었잖아요. 근데 타자의 타격이라는 건 고장 나기 쉬운 정밀 기계 같은 거거든요. 130킬로 던지는 투수들 상대로 뻥뻥 두들기다 보면 어느새 영점이 거기에 맞춰집니다. 그걸 다시 160킬로 던지는 투수에 맞추려면 결국 영점 조절이 필요한 거죠. 체력적으로 조금 힘들기는 했지만, 그 시점에서 감독님의 특타는 그런 영점 조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결승전 결과가 별로였으니 그건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차라리 체력을 보존하는 편이 더 나았을 거라는 거죠.”

“그거야 결과론적인 이야기고요. 게다가 솔직히 체력을 보존했어도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실력 차가 워낙에 났어요. 다들 그거 인정할 겁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그 특타 어쩌고 했던 선배들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배해서 죄송합니다.’ 뭐 그런 내용으로 인스타 올렸었을걸요?”

약 30분간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오늘 인터뷰 정말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그러면 기사 잘 좀 부탁드릴게요.”

녹음된 파일과 영상. 그리고 수첩에 정리된 기록.

그것은 이영주 기자가 매우 큰 고민에 빠지기 충분한 자료들이었다.

‘선배, 제가 진짜 어렵게 어렵게 허락받은 거예요. 그러니까 알아서 잘 좀 부탁해요. 솔직히 얘 진짜 대박인 거 선배도 느낌 오잖아요. 괜히 작은 거 보지 마시고 우리 대국적으로 좀 봅시다.’

현재 많은 사람이 궁금해하는 최수원의 현재 위치를 넘어서 아예 본인에게 인터뷰 허락까지 받아온 후배 이지연의 말이 아니더라도 그는 이미 최수원이라는 아이에 대하여 인간적으로 매우 크게 매료된 상태였다.

“하, 이걸 기사로 써먹으려면 대체 어떻게 분칠해야 하는 거냐······.”

[최수원 단독 인터뷰!! ‘야구는 본래 한번 이기고 한번 지고 나머지 한번에서 승부가 나는 게임. 이번 U-18 결승전은 단지 그 연장이었을 뿐이다.’]

─잘살아보장: 애가 확실히 멘탈이 좋네. 솔직히 다른 놈들이 야구 못해서 졌다고 해도 다들 공감할 텐데.

─금고안로렉스: 충격 속보!! 최수원 마린스, 피닉스가 하는 게임은 야구가 아니다!!

─8888577: 그래, 수원아!! 우리도 야구가 하고 싶다!!

─886899: 우리 그래도 통산 승률은 4할······.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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