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결점(3)
-8:0 충격 패배!! 청소년 대표팀 결승전 직전 특타의 여파로 밝혀져!!-
-선수는 강철이 아니다. 야구계에 만연한 혹사 문제!!-
-전직 프로 선수 B씨 ‘경기 뛰고 특타요? 어휴, 그거 훈련 아닙니다. 벌이에요. 벌.’-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김태윤과 양힘찬이 고개를 푹 숙였다.
권규종 감독이 그 뒷통수를 날카롭게 바라봤다. 그리고 최코치가 아이들을 변호했다.
“감독님, 애들이 아직 어려서 뭘 몰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아마 경기 지고 비난 여론이 속상하니까 자기들도 특타까지 했는데 이런 결과가 나왔다. 최선을 다했다. 뭐 그런 이야기가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
“하여간에 이 꼴통 새끼들. 내가 그렇게 SNS하지 말라고 노래를 불렀는데. 이 사단을 만들어? 야, 이것들아. 이거 어떻게 할 거야. 어? 안 그래도 가뜩이나 결승전 패배해서 여론 별로인데 말이야.”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대체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권규종 감독이 뭐라 말을 하는 대신 그냥 고개를 저었다.
“알겠다. 너희는 일단 방으로 돌아가봐. 최 코치는 잠깐 좀 남고.”
“네!!”
두 녀석이 조심스럽게 일어나 방문을 닫고 나갔다.
‘거 봐, 내가 뭐라고 그랬어. 그냥 죄송하다고 고개 푹 숙이면 끝난다니까?’
‘그러게. 인터넷에는 완전 난리 났던데.’
‘우리가 뭐 욕을 썼냐? 뒷담을 깠냐? 그냥 특타까지 쳤는데 좋은 모습 못 보여 드려서 죄송합니다. 이게 다잖아.’
‘하긴.’
아이들이 사라진 방 안.
최 코치가 감독에게 말했다.
“그래도 감독님, 너무 걱정하지 마십쇼. 일단 제가 아는 기자들 동원해서 최대한 반대 기사들 올려 보겠습니다. 혹사니 벌이니. 솔직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립니까? 뭐 특타 천 번 이렇게 시킨 것도 아니고, 코치들도 피곤한데 타격폼 흐트러진 거 교정해준 거 아닙니까. 아, 그런데 그 백하민이랑 최수원이. 귀국을 따로 한다고 하는데. 그것도 막아야겠죠? 솔직히 지금 분위기에 그런 단독행동은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괜히 기자들 구설수에만 오르락 내리락 할 거고요. 하여간에 요즘 애들은 단체 생활이라는 걸 몰라서. 게다가 막내놈이 야구 좀 한다고 빠져서는. 아무튼간······.”
장황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최코치의 말을 권규종이 끊어냈다.
“하지 마.”
“네? 뭐를 하지말라는 건지?”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그렇지만!!”
“최 코치는 그런 거 신경 쓸 시간에 애들이나 잘 다독여. ‘승리하면 작은 것을 배울 수 있다. 하지만 패배하면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다.’ 나는 이번 결승전 패배가 아이들에게 정말 많은 것을 가르쳐줬을 거라고 믿고 싶어. 하지만 이래선 뭐를 배우기는커녕 안 좋은 버릇만 생길 판국이잖아.”
“하지만 감독님 그래도 이대로 두면 여론은 점점 더 크게 들끓을 겁니다. 아, 혹시 기자들한테 약 치는 게 싫어서 그러시는 거면 그냥 저에게 딱 맡겨두시면······.”
권규종 감독이 오른손을 들어 그의 말을 막았다.
“최 코치.”
“네?”
“어차피 시간 좀 지나면 다 들어갈 이야기야. 굳이 불쏘시개 계속 넣으려고 하지 말고 그냥 가만히 있어. 당장 타이밍이 좋아서 화제가 되긴 했지만, 오늘 저녁에 당장 피닉스랑 마린스 맞대결이야. 그리고 내일은 두 팀 중 한 팀이 역대 최다 연패에 도전하는 날이고. 한국시리즈까지는 이제 한 달 남았고, 역대 최고 승률 우승팀. 심지어 역대 최초 2할대 승률 팀이 2팀이 나오느니 마느니 화젯거리가 만발이잖아.”
“하지만 감독님의 명예가!!”
“명예는 무슨. 최 코치 마음은 잘 알겠는데 결국 다치는 건 아이들이야. 특히 힘찬이랑 태윤이. 지금은 자기들이 무슨 짓 했는지 모르겠지. 하지만 자네도 알고 나도 아는 건데 프로팀 감독들이라고 모를까. 그러니까 가서 애들이나 잘 다독여줘.”
묘했다.
분명 말만 들어보자면 그냥 가서 아이들을 단속하라는 말 같았다. 하지만 말 중간 중간에 섞인 눈빛. 그리고 특히 자네도 알거라는 부분에서의 묘한 어투까지.
그 모든 것들이 섞여 들어간 순간, 감독의 말은 아이들의 경솔함을 다른 이들도 알 것이라는 뜻이 아닌, 최 코치 자신이 은근슬쩍 수작 부렸던 것을 다른 이들도 다 알게 될 것이라는 협박으로 다가왔다.
“가······, 감독님.”
“뭐해? 안 나가고?”
***
“아, 저 멍청한 놈들. 아니, 생각이라는 걸 할 줄 모르는 건가? 안그래도 경기 져서 여론도 안 좋은데 SNS질은 왜 하는 거야 대체. 퍼거슨 경한테 1승을 그렇게 추가해주고 싶은 건가?”
룸메이트인 백하민이 침대에 몸을 기댄 채 연신 투덜거렸다.
“수원아, 이제 어쩌냐? 아무래도 지금 이 분위기에 단독행동하겠다고 나서는 건 진짜 에바일 것 같은데. 일단 귀국했다가 다시 출국해야겠지?”
“글쎄요. 신경 안 써도 될 것 같은데.”
“신경 안 써도 되기는. 인터넷이 지금 온통 우리 이야기로 난리도 아니야.”
“평일 낮에 막 생긴 이슈잖아요. 프로야구도 쉬겠다. 기삿거리 없는데 잘 문 거죠. 어차피 오늘 저녁 경기하면 싹 사라질 겁니다.”
프로야구 사상 전무후무한 쌍끌이 17연패 팀끼리의 맞대결.
두 팀 중 하나는 확실히 역대 타이 기록인 18연패에 도달할 수 있는 지금 상황에서 고작 고등학생들이 SNS에 글 좀 긁적인 게 뭐 얼마나 대수일까.
“그럴까?”
“네, 그러니까 아무런 걱정하지 마세요.”
단순히 백하민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뱉은 말이 아니었다.
애초에 한국 야구의 인기는 KBO를 기반으로 한다. 국제대회 원툴인 축구와는 그 결이 다르다. 당장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만 보더라도 대회 그 자체에 승패보다 우리팀 소속 선수가 얼마나 많이 병역면제를 받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니 기껏해야 병역 면제 같은 것도 걸려있지 않은 U-18 대회 따위. 그저 잠깐 반짝하고 말 뿐이다.
그리고 그런 나의 예상은 정말 무참하게 빗나갔다.
그러니까 바로 어제 저녁. 미국 시간을 기준으로 하자면 오늘 새벽에 피닉스와 마린스의 영혼을 건 맞대결이 끝났다.
정말이지 가슴이 웅장해지는 한 판 승부였다.
당연히 잡아야 할 공을 놓쳤다.
멍청한 주루 플레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점수는 얻지 않았다.
대타는 나오는 족족 내야땅볼이나 삼진을 당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승리를 양보하겠다는 양 팀의 이타심이 돋보였던 치열한 대접전으로 클래식한 칰꼴라시코 그 자체였다. 그 결과 패배한 팀은 패배한 대로, 승리한 팀은 승리한 대로. 양 팀 모두 상처밖에 남지 않았다.
당연히 인터넷 여론들은 대폭발했다. 그리고 거기까지는 딱 내 예상 대로였다. 다만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점은 ‘나’라는 존재가 현재 꼴, 아니 마린스와 피닉스에게 대체 어떤 존재였는지였다.
─8888577: 아, 미친. 경기 결과 졸라 킹받네.
─사직핵빠따: ?? 뭐야? 우리 이긴 거 아니야? 설마 내가 맥주 마시다가 잠깐 꿈 꾼 건가?
─최동수원: 유감스럽게도 우리 이긴 거 맞음.
─사직핵빠따: ?? 이겼는데 왜 유감이라는 거야? 연패 드디어 끊었는데.
─8888577: 아니, 어차피 포시도 못 나갈 거 꼴찌 면해서 뭐 하려고. 확실하게 꼴찌해서 최수원이라도 받아와야지!!
─886899: 얘들아 박빙의 승부였지만 그래도 승리 당해줘서 고맙다.
그것이 진짜 실력이었는지, 아니면 나를 뽑아가기 위한 발악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뭐가 어찌 됐건 지금 피닉스와 마린스는 역대 최악의 승률을 기록하고 있었다.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2할대 승률 팀이 1년에 2팀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었다.
덕분에 최수원 리그라는 밈은 생각보다 야구팬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고, 일부 팬들은 정말로 양 팀이 나를 뽑아가기 위해 서로 승리를 양보한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솔직히 이번 칰꼴라시코 하이라이트를 보니까 나라도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긴 했다.
아무튼 간 이번의 그 압도적인 졸전으로 인하여 나의 이름이 또 한 번 언론에 오르락내리락했고, 그 덕분에 잠잠하게 지나갈 줄 알았던 U-18 대회의 혹사에 관한 문제가 다시금 수면에 떠 올랐다.
하지만 다행인 점은 그러한 문제들이 수면에 떠올랐을 때 청소년 대표팀은 모두 한국행 비행기에 이미 타고 있었다는 점이었고, 가장 뜨거운 이슈 거리인 나는 비행기 대신 뉴욕의 한 달 6,000달러짜리 아파트에 짐을 풀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뭐, 한국에 간 사람들이야 자기 나름대로 여러 가지로 고생들 하겠지만 그것도 한 달 정도 뉴욕에 짱 박혀 있으면 알아서 다 해결될 것이다. 내가 좀 살아보니까 결국 시간이 지나면 어지간한 일들은 자연스럽게 해결이 되더라.
“야, 여기 너무 비싼 거 아니야?”
“형, 뉴욕은 원래 비싸요.”
“아니, 저기 저쪽 보면 가격이 좀 싼 곳도 있던데······.”
“한국은 집세 싼 동네에 가면 그냥 교통 좀 불편한 정도잖아요?”
“그렇지?”
“미국은 집세 싼 동네에 가면 목숨이 좀 불편해져요. 그러니까 이게 다 목숨값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잊지 마세요. 여기는 공공장소에 권총 가지고 다니는 거 금지하는 주법이 위헌이라고 판결 때리는 국가에요.”
백하민이 웃었다.
“야, 아무리 그래도 과장이 좀 심한 거 아니야? 목숨이라니. 여기 뉴욕이잖아. 뉴욕.”
“그러니까요. 권총 소지 금지가 위헌 판결 난 동네가 여기 뉴욕이거든요. 11시 넘어서는 밖에 돌아다니지 마시고, 특히 해 떨어지면 맨해튼 밖으로는 절대 나가지 마세요.”
뭐, 솔직히 말하자면 좀 과장이긴 했다.
어디 남부에 이상한 동네들이라면 또 모를까. 뉴욕 정도 되면 사실 밤에 다녀도 총에 맞을 위험은 그리 크지 않다. 그냥 두들겨 맞고 지갑 좀 털리는 선에서 끝나지 않을까?
하지만 우리는 몸이 재산인데 괜히 잘못 맞아서 어디 부러지면 큰일이기도 하고, 여기 체류 기간이 한 달 밖에 안 되는데 그 기간동안 알차게 배워야지 괜히 어디 다쳐서 골골되면 곤란하니 차라리 이렇게 겁을 주는 편이 나았다.
“알겠어. 근데 수원이 너는 묘하게 미국에 대해서 잘 아는 것 같다?”
“그거야 여기에 있을 거니까 미리 공부 좀 했죠. 아무튼 회사에서 사람 붙여준다고 했으니까 당장 내일부터 센터 나가면 될 겁니다.”
“오케이.”
참으로 한국적인 발음의 오케이였다.
***
“그때 봤던 투수 둘 다 온다 이거지?”
윌리엄 워싱턴이 계측을 위한 기계들을 또 한 번 점검했다.
대체 얼마만의 손님인가. 그것도 수준 낮은 대학리그의 선수가 아닌 나름대로 95마일 이상의 공을 던지는 재능 넘치는 아이들이다.
“기분 좋아 보이네? 당장이라도 센터 팔아치우고 월마트나 가자고 그러더니.”
“그거야 돈 벌 생각하니까 기분이 좋은거지.”
형인 윌리엄 워싱턴의 말에 잭 워싱턴이 피식 웃었다. 두 형제는 모두 야구를 사랑했다. 그건 확실했다. 보장된 길 대신 불확실한 길에 뛰어든 것은 거대한 성공에 대한 갈망과 자신들의 이론에 대한 확신도 있었지만, 그 모든 근간에는 야구에 대한 사랑이 있었다.
“근데 오늘 오기로 한 거 맞지? 왜 아직 안 오는 거야?”
“형, 오늘 3시까지 오기로 했잖아. 아직 2시밖에 안됐다고.”
“아, 그래?”
전혀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과 잘못된 형태로 가공되고 있던 보석.
두 형제가 기꺼운 마음으로 한국에서 온 투수들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