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결점(2)
“흐음······.”
권규종 감독이 까끌하게 나기 시작한 자신의 턱수염을 긁적였다.
대회가 시작한 지도 이제 아흐레. 그 사이 한국팀은 총 여덟 번의 경기를 치렀다. 사실 프로선수 수준의 일정이었다. 물론 그 기간이 짧긴 했지만, 그 대신 이번 대표팀의 경우 선수단 숫자는 고작 스무 명에 불과했다.
8월의 더운 날씨.
한 번의 패배가 곧 탈락으로 이어질지 모르는 국제전의 부담감.
슈퍼라운드 두 번째 경기인 대만전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다. 긴장감은 사람을 팽팽하게 만드는 법이니까.
하지만 슈퍼라운드 두 번째 경기인 대만전에서의 승리로 결승전 진출이 확정되는 순간, 선수들의 팽팽하던 긴장감은 –툭 하고 끊어져 버렸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슈퍼라운드 마지막 경기인 네덜란드전에서 패배하는 일 같은 건 없었다. 그러기에 한국과 네덜란드의 수준 차는 상당했다. 게다가 상대적으로 퍼진 야수들에 비해 투수의 경우 상당히 쌩쌩했다. 많은 콜드 게임과 선발로 나선 투수들이 이닝을 많이 먹어준 덕분이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결승전.
그들의 상대는 미국이다.
물론 예선 라운드에서 8:7로 역전승을 거두기는 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미국의 전력이 우세라는 것은 부정하기 힘든 사실이었다. 당장 그 경기에서 최수원을 제외한 나머지 한국의 타자들 가운데 95마일 이상의 공을 제대로 공략한 타자는 없었다. 나머지 안타는 모두 브레이킹 볼이나 93~95마일 사이의 조금 밋밋했던 속구들 뿐이다.
어려웠다.
“그래도······.”
권 감독이 자신도 모르게 나오려던 말을 삼켰다.
명예로운 패배. 솔직히 92년 바르셀로나에서 드림팀에게 패배했다고 해서 그걸 부끄럽게 생각하는 팀이 누가 있겠는가. 당시 앙골라는 경기 막판에 타임아웃 걸고 기념 사진찍고 트리플 스코어로 패배했지만 아무도 그것을 욕하지 않았다. 물론 지금 미국팀 U-18 대표팀이 그만큼 대단하냐를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유망주 레벨에 베스트팀일 뿐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지금 미국 대표팀과 한국 대표팀의 전력 차이는 명백했다.
-똑똑
“성종입니다.”
“어, 최 코치. 들어와. 애들은?”
“지금 특타 시키고 들여보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오늘 네덜란드 전에서 좀 별로였다고 해도 당장 모레가 결승전인데 이거 괜찮을까요?”
“어쩔 수 없지. 뭐가 됐건 그대로 두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최 코치가 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직장인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시간.
월요일 아침이었다.
오규환 씨의 일과는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회사 화장실 제일 오른쪽 칸. 변좌가 가장 따뜻한 변기에 앉아 스마트폰을 켰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뉴스는 당연히 현재 프로야구에서 가장 핫한 현황이었다.
[피닉스 - 마린스 단두대 매치!!]
스포츠면으로 갈 필요도 없이 포털 메인 가장 첫 화면 최상단에 떡 하니 박혀 있는 기사였다.
‘쯧, 얘들은 진짜 야구 왜 하는 거지? 해체 안 하나?’
쌍끌이 17연패.
더욱 화제가 되는 것은 양 팀 중 한 팀은 확실히 역대 타이 기록인 18연패를 기록한다는 점이었다.
바로 내일 화요일. 두 팀의 시리즈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르자면 신기록 수립은 어려울 수 있다고 했다. 워낙에 용호쌍박인 두 팀에 선발 대진도 절묘해서 각자 외국인 2선발과 5선발. 그리고 다른 팀의 5선발만도 못한 3선발과 외국인 에이스 간의 맞대결이 예고됐기 때문이다.
짜증나는 기사를 옆으로 휙휙 넘겼다.
-LIVE-
오규환씨의 작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U-18경기의 결승이 있는 날이다. 뉴욕과 한국의 시차는 13시간. 지금이 아침 9시 1분이니 뉴욕의 시간은 저녁 8시 1분. 경기가 시작한 지 딱 1시간이 지났을 시점이었다.
오규환 씨가 빠르게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에 꼽고 LIVE 영상을 눌렀다.
“아······. 미국. 정말 집요할 정도로 승부를 피하고 있습니다.”
“이걸 참 뭐라고 해야 할까요. 사실 합리적 선택이긴 합니다. 하지만 아직 고등학생들의 경기거든요. 이걸 이렇게 어른의 잣대로 승부에만 매몰된다는 게 참 씁쓸하군요.”
-뻐엉!!
최수원이 방망이를 내던지고 1루로 걸어나갔다.
불퉁한 얼굴. 베이징 때 야구에 입문하여 벌써 18년 차. 오규환씨는 지금까지 많은 선수를 봤지만 단언컨대 이렇게 솔직하고 매력적인 선수는 처음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보통은 경기를 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점수를 보는 것이 조금 늦었다.
‘어? 8:0??’
물론 어려운 경기라는 건 알고 있었다. 미국과 한국의 수준 차이는 분명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일말의 기대감이 있었던 것은 바로 며칠 전, 한국 대표팀이 미국 대표팀을 상대로 8:7로 승리했기 때문이었다.
“이번 경기 최수원 선수의 세 번째 출루. 모두 고의 사구입니다.”
“이게 참······. 아쉽습니다. 우리 시청자분들이나 미국의 시청자들이 아마추어들에게 바란 경기는 조금 더 가슴뛰고 낭만이 있는 그런 경기였을텐데 말이죠. 보십쇼. 미국의 팬들도 모두 야유를 보내고 있지 않습니까?”
─맛좀봐유: 박캐 내로남불 진짜 오지네. 아까 1회 초에 우리가 알렉산더 맥도웰 경원 할 때는 야구는 원래 그런 스포츠라고 딱 잘라 말하더니ㅋㅋㅋㅋㅋ
─자강두병: 원래 국가대표전은 그런 맛으로 보는 거지. 아마 코쟁이 놈들도 비슷한 이야기 하고 있을 거임.
─거포이주혁: 이주혁 오늘 5타석 5타수 5홈런 장전 중
─영웅의혼: 최수원 하는 거 보니까 마린스랑 피닉스 저 지x난 거 이해 됨. 이건 무적권 지는 놈이 이기는 싸움이 되겠네.
─금고안로렉스: 상식적으로 저렇게까지 하는데 KBO 남겠냐? 쟨 무조건 MLB직행임. 알렉산더 맥도웰이 1,000만달러 넘게 받고 역대급 유망주 소리 듣는데 내가 보기엔 최수원도 거기에 뒤지지 않는다.
─8888577: 이런 매국노 놈들같으니. 최수원을 외국에 수출해서 마이너에 굴리는 건 국부 유출이다. 일단 한국에서 애지중지 잘 연마해서 메이저로 직행시켜야지.
─영웅의혼: 응, 마린스에서 뛰게 하는 게 더 매국임.
채팅창은 그야말로 혼란의 도가니탕.
사실상 오늘 경기에서 역전이 나오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경기를 지켜보는 팬들이라면 누구나 이해하고 있었다.
“참 아쉽습니다. 한국팀 타자들의 타격이 오늘 너무 죽었어요. 최수원 선수를 받쳐줄 수 있는 최소치는 돼야 할 텐데요.”
“지난 경기를 통해 미국팀도 한국팀을 좀 파악을 한 거거든요. 선수들이 153km/h 이상 속구에 특히 약하다는 걸요. 오늘 미국팀의 선발 투수인 에릭 덴 선수. 오늘 경기 평균 구속이 97마일. 그러니까 156을 상회합니다. 5.1이닝 동안 허용한 안타가 비껴 맞은 안타 세 개뿐이에요.”
“아무래도 한국에서는 거의 경험해보지 못한 공이죠. 현재 고교선수 가운데 가장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가 그러니까······.”
“지금 1루에 서 있는 최수원 선수로 공식 최고 기록은 156.3km/h 비공식으로는 157km/h를 찍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걸 제외하면 백하민 선수의 153km/h가 가장 빠른 공이에요.”
이제 6회 말인데 점수는 8:0. 원아웃에 주자 1루.
정병철이 방망이를 –부웅 헛돌렸다.
“스트라잌!! 아웃!!”
오규환씨가 스마트폰을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평소보다 5분가량 빠른 업무의 시작이었다.
***
“야, 인터넷 반응 봤어? 포털 메인 기사에 베스트 댓글 엄청 짜증나던데.”
“최수원 빼고 전부 배 타고 돌아오라던 그거?”
“아니, 솔직히 준우승이면 잘한 거 아니냐? 미국팀 진짜 역대급이었잖아. 게다가 우리 일본도 콜드게임으로 이겼고.”
“그래서 배라도 타고 돌아오라는 거라던데? 그거 아니었으면 수영해서 태평양 건넜어야 했다고.”
언론의 관심이 컸던 만큼 마지막 경기 무기력한 패배에 대한 반응 역시 거셌다.
거기서 유일하게 면죄부를 받았던 것은 최수원뿐이었다. 뭐 그도 그럴만한 것이 최수원은 5타석 2타수 2안타 3볼넷을 기록했다. 승부가 결정난 7회 이후 두 번의 타석에서 모두 안타를 기록한 셈이다. 특히 마지막 그 이루타는 조금만 각도가 높았더라면 무조건 담장을 넘어갈만큼 빠르고 강한 타구였다.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마. 프로야구 안 열려서 사람들 관심이 좀 몰린 거잖아. 어차피 우리 귀국할 때 즈음에는 피닉스랑 마린스 경기 한참 할 때라서 야구 좀 보는 사람들은 죄다 그것만 볼걸?”
“하긴, 역대 최고 기록 세우냐 마냐 하고 있으니까. 진짜 마린스랑 피닉스 간 애들 불쌍해서 어쩌냐? 내가 보기엔 걔들은 몇 년 이내로는 도저히 답이 나올 팀들이 아닌데.”
“야야, 너무 그러지 마라. 규찬이랑 백하민이 들으면 어쩌려고 그러냐.”
사실 웃기지도 않는 일이었다.
백하민과 조규찬은 전체 1번과 전체 2번.
팀이 꼴찌를 하건 뭐건 간에 지금 여기서 입방아를 찧는 그들이 평생 야구로 벌어들일 수 있는 연봉에 가까운 금액을 드래프트 계약금만으로 벌어들인 선수들이다.
“야, 난 근데 다른 건 그렇다 치고 그건 좀 짜증나더라.”
“뭐?”
“조규혁.”
“아, 하긴. 걔는 무슨 대회 내내 존나게 못 하다가 마지막 미국전에서 안타 하나 쳤다고 사람들이 노 젓기는 면제해줘야 한다는데 내가 대댓글 달까 말까 하다 참았다.”
“아니, 그것도 그렇고. 솔직히 우리 마지막에 타격감 날아간 거 우리 탓도 아니잖아. 아니, 이렇게 빡세게 대회 치르는데 무슨 쌍팔년도도 아니고 특타가 말이 되냐?”
“아······, 하긴. 감독이 좀 그렇긴 했지. 선수 뽑는 것도 무슨 인맥으로 뽑아와서 조규혁 같은 애나 데리고 오고. 솔직히 최코치 님이 감독 했으면 훨씬 나았지.”
“내 말이.”
사람이 여럿 모여서 의견을 나눌 때는 본래 반대 의견을 말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만약 그런 사람이 없다면 그들의 의견은 조금씩 극단으로 치닫기 마련이고 그것은 의견의 내용이 멍청하면 멍청할수록, 그리고 그 의견을 나누는 이들이 멍청하면 멍청할수록 더 빠른 법이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오늘 뒷담을 나누던 경하고의 김태윤과 대일고의 양힘찬은 그 의견이 극단으로 치닫는 속도가 그 누구보다 빨랐고, 그 결론 역시 그 누구보다 멍청했다.
“힘찬이 너 인스타 팔로워 몇이지?”
“나? 나 이번에 8천 찍었지. 대회 전에는 5천 정도였는데 대회 치르면서 쭉 올라가더라. 특히 백하민이랑 최수원 태그 걸면 진짜 장난 아니게 올라간다?”
“우리 그러면 감독 새끼 저격 한번 해볼래?”
“저격? 감독을? 야 그건 좀 그렇지. 무슨 매장 당할 일 있냐?”
“아니, 병신아. 뭐 대놓고 하자는 게 아니라. 그냥 특타까지 했는데 좋은 결과 못 보여드려서 죄송하다고 올리면 사람들이 알아서 생각하겠지.”
“오, 대박. 김태윤 역시 잔대가리는 존나 잘 굴러가네. 근데 그걸 왜 내 인스타에 올리냐? 네꺼에 올리면 되지?”
“난 아직 팔로워 2천따리 잖아.”
“그래서 넌 쏙 빠지려고?”
“아니, 나도 좋아요 제일 먼저 찍고 일빠로 댓글 달면 되잖아.”
“스읍······. 좀 불안한데.”
“아, 쫄리면 관두고.”
“누가 쫄린데? 그냥 좀 불안하다는 거지. 야, 너 좋아요 바로 누르고 댓글 1빠로 박아라.”
누군가가 그런 말을 했다. 몸이 나쁘면 머리가 고생하는 법이라고.
U-18 대표팀의 귀국까지 하루.
피닉스와 마린스가 벌이는 세기의 매치까지 일곱 시간.
지금까지 몸이 너무 좋아서 딱히 머리가 고생할 일이 없었던 두 소년이 머리를 쓴 결과가 인터넷을 휩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