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수가 그냥 홈런을 잘 침-64화 (64/305)

64화. 결점(1)

-최수원 ‘메이저? 잘 모르겠다. 일단은 눈앞의 대회에 집중하고 싶은 생각뿐.’-

─8888577: 역시!! 수원아 너에게는 부산의 피가 흐른다.

─886899: 우리 수원이 혹시 빵 좋아하니? 성심당 놀러 올래?

─자강두병: 니네 아이디 710789910, 9101010109으로 바꿔야 한다니까?

─영웅의혼: 그래. 수원아. KBO는 너를 담기에 너무 좁다. 메이저에서 뛰는 너를 응원한다.

─금고안로렉스: 수원군 혹시 롤렉스 시계에는 관심 없나?

─거포이주혁: 이주혁 오늘 4타석 4타수 4홈런 장전 중

─집판검으로: 선배 따라 강남 간다는 말도 있는데 창원은 어떠신지······.

─마린스영결최수원: 이 양심 없는 놈들. 이번 시즌 꼴등 할 가능성도 없는 것들이 설레발은.

─나는행복합니다?: 그래, 솔직히 우리 팀 위로는 수원이 넘볼 생각 꿈도 꾸지 말아야지.

─잠실푸드파이터: 이렇게 된 이상 대승적 차원에서 최수원은 메이저에 보내는 걸로 하자.

─안경에이스: 누구 마음대로?

─논리왕김정은: 동무들, 이리 된 거 민주주의의 꽃 다수결로 갑세다.

일본전과 미국전에서의 대활약.

아무리 U-18 대회가 성인 대회에 비해 관심이 덜하다고는 하지만 이쯤 되면 화제가 안 되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다.

스마트폰 속의 쪼유가 상기된 표정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야, 진짜 난리 났어. 네 사진이 포털 스포츠 메인에 피닉스, 마린스 쌍끌이 16연패랑 같이 메인이야 지금.”

“잠깐만······. 내가 지금 뭔가 이상한 말을 들은 것 같은데?”

쌍끌이 16연패? 지금 대체 내가 무슨 이야기를 들은 거지? 내 사진이 포털 스포츠 메인에 걸리는 건 사실 새삼스럽지도 않다. 회귀 이전 그건 일상이었으니까. 피닉스와 마린스가 연패하는 것도 사실 새삼스럽지 않다. 그것 역시 회귀 이전에 일상이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쌍끌이 16연패?

“와, 갑자기 나 자신과 U-18 대회에 자부심이 확 생기는데? 고작 이런 소소한 활약으로 그런 어메이징한 기사와 함께 메인에 나란히 올라갔단 말이야?”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나란히까지는 아니고. 네 기사가 조금 더 작긴 하지.”

“어지간한 기사에 지고 있는 거면 좀 짜증날 것 같았는데. 그 정도면 스포츠 메인이 아니라 거의 사회 문화 1면 감 기사라서 짜증도 안 나네. 아니 근데 10개 팀이서 그렇게 붙어대는데 두 팀 다 16연패가 가능 한 거야? 애당초 16연패면 거의 KBO 신기록 아니야?”

“어, 안 그래도 지금 스포츠면뿐만 아니라 아예 메인에도 제일 크게 나기는 했어. 그리고 2패만 더하면 역대 최고 기록이랑 타이라고 하더라. 1985년 슈퍼 스타즈랑 2020년 피닉스라던가?”

물론 내가 회귀하기 이전에도 이맘때의 피닉스와 마린스는 답이 없기는 했다. 하지만 쌍끌이 16연패까지는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야구는 같은 수준의 리그에서 뛰는 팀이라면 아무리 못해도 3할 3푼의 승률은 나와야 하는 종목이다. 3번 싸우면 1번은 이겨야 한다는 뜻이다.

“사실 이것 때문에 니 기사에도 댓글로 지금 난리 났어.”

“이것 때문에?”

“어, 지금 피닉스랑 마린스가 내년 드래프트에 너 데리고 오려고 서로 꼴찌 싸움 하는 거라고.”

나를 데리고 가려고 꼴찌 싸움을 한다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큭크큭그긐킄큭

아니. 나뿐만이 아니라 자기 입으로 그런 말을 했던 쪼유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야, 그거 피닉스 팬이랑 마린스 팬들 정신 승리 아니냐? 내가 볼 때는 그거 실력인데.”

“어, 사실은 나도 그렇게 생각함.”

둘이 함께 한참을 정신없이 웃었다.

“그건 그렇고 대회는 어떻게 됐냐? 아직 홈페이지에 업데이트가 안 됐던데?”

“어······, 그거?”

쪼유가 말끝을 흐리는 것이 안 봐도 뻔했다.

“어제 2차전에서 아쉽게 떨어졌어.”

“역시······.”

“야!! 역시라니!!”

나의 반응에 쪼유 녀석이 괜히 발끈했다.

“아니, 우리 지금 투수가 좀 없긴 하잖아. 솔직히 병영 선배나 진우 선배도 전국에서 통할 레벨은 아니었지만, 그만큼 던지는 투수도 없으니까.”

“그건 그렇지······. 아, 맞다!! 병영 선배. 대학 간다고 그러더라.”

“그래? 신고선수로라도 계속 도전해볼 줄 알았는데 의외네? 그래도 뭐, 우리 이번에 전국 대회도 나갔고 실적은 거의 다 채웠을 테니 다행이네.”

“야, 너 너무 관심 없는 거 아니냐? 요즘 고졸은 신고 선수로 바로 안 받아 주잖아. 내가 볼 땐 아마 2학년 끝내고 얼리 드래프트 노리는 거 아닌가 싶어. 그래서 그런가 대학도 좀 빡센 곳으로 고른 것 같더라고.”

“빡센 곳?”

“어, 동호대. 거긴 실적이 60%에 기준도 좀 세세하고. 적성 실기 30%에 학생부 교과도 좀 꼼꼼하게 보잖아.”

솔직히 대학 야구는 잘 모르는 부분이었다. 내가 관심을 가질 필요도 없는 부분이기도 했고.

“그래, 그랬구나. 아무튼 난 여기 일 마무리 하고 한 10월쯤에 귀국할 것 같으니까 수업 필기 좀 꼼꼼하게 부탁한다.”

“야, 야. 잠깐만. 10월? 대회가 이제 일주일 후에 끝나는데 왜 10월이야? 그러면 대통령배도 나가리라는 소리잖아.”

“어, 그럴만한 사정이 좀 있어서. 야, 나 이거 오늘치 로밍 데이터 거의 끝나가네. 그러면 이만 끊는다.”

“야!! 최수원!! 최수원!!!”

***

예선 라운드 마지막 경기.

쿠바와의 5차전은 그리 어렵지 않게 끝났다.

중국전 끝나고 엉망이 된 빠따들은 박진경과 정병철 정도를 제외하고는 여전히 엉망이었지만 다행히 쿠바의 투수들이 그 빠따들보다 더 엉망이었던 덕분이다.

11:7 승리.

그 덕분이었을까?

규혁 선배도 모처럼 멀티 안타를 기록하며 요 며칠 계속 죽을 것 같던 얼굴이 조금은 살아났다.

지금도 신나서 스윙 연습하는 꼴이 참으로······.

-부웅!!

가관이었다.

아니, 아니다. 한국에서야 내가 좀 알려주긴 했지만, 이제 규혁 선배도 곧 프로고 굳이 내가 오지랖을 부릴 이유는 없었다. 어차피 야구에 정답은 없다. 그래, 정답은 없다. 분명 정답은 없는데······.

-부웅!!

와, 그래도 이건 도저히 못 참겠다. 내가 거의 오 개월을 들여서 조금 사람을 만들어놨는데 고작 몇 경기 만에 이 모양이 된다고?

“선배. 잠깐 저 좀 보시죠.”

“어? 갑자기 왜?”

선배가 도무지 이유를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선배, 또 이럴 거예요?”

“뭐가.”

“아니, 공 못 쳐서 답답하신 건 알겠는데, 이전에도 우리 한 번 이야기 했잖아요. 그거 아무 의미 없다고. 선배가 1루에 4초 만에 갈 거 아닌 이상 안타는 얼마나 많은 공을 굴리냐가 아니라 얼마나 자주 강한 타구를 때려내느냐에 달려있다니까요.”

“······.”

“아, 물론 지금 제가 오지랖 부리는 거 저도 알아요. 근데 그냥 아까워서 그럽니다. 아까워서. 저랑 다섯 달이나 했잖아요. 쟤들이 뒷담 까는 거? 솔직히 선배 쟤들 중에서 선배랑 같은 팀 몇이나 되겠어요. 야구 여기서만 할 것도 아니고. 안 그래요?”

올스타급 선수들이 홈런 더비 나가면 타격 밸런스 흐트러진다고 싫어하는 거? 그거 괜한 게 아니다. 큰 대회, 강렬한 경험일수록 몸에 새겨지는 기억은 선명하다. 고작 두 경기. 규혁 선배는 나와 함께 다섯 달 동안 쌓아 올린 스윙을 버리고 어느새 공을 맞추기에 급급하던 자신의 본래 스윙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자······, 잠깐만. 그러니까 내 스윙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 있었다고? 더 나아지는 게 아니라?”

“네.”

“그런······. 난 분명 공을 더 잘 치고 있는 느낌이었는데······.”

규혁 선배의 얼굴이 혼란으로 가득했다. 흔한 일이었다. 본인은 발전하고 있다고 느끼지만, 사실은 퇴보하는 것. 게임이라면 경험치를 쌓는 것으로 강해지기만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경험치를 쌓는 것으로 오히려 더 약해지기도 한다. 그것이 타격과 같은 ‘정교한 기술’의 영역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물론 믿고 안 믿고는 선배의 몫이에요. 제가 야구의 신도 아니고. 제 말이 무조건 옳으리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그래요.”

야구의 신은 아니지만 그래도 타격에서는 적어도 그 비슷한 뭔가 정도는 된다는 말은 굳이 덧붙이지 않았다.

과장이 아니다. 많은 미국 언론에서 나를 ‘저기 최수원이 지나간다. 테드 윌리엄스 이후 가장 위대한 타자다.’라고 이야기 했었다. 테드 윌리엄스 그 양반이 그래도 타격의 신 소리 듣던 사람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나도 얼추 타격의 신 이후 가장 위대한 타자 정도는 되는 셈이다.

“당연히 믿어야지. 내가 수원이 너를 안 믿으면 누구를 믿겠냐. 그나저나 너 쟤들이 내 뒷담 하는 거 알고 있었냐?”

“그걸 어떻게 모릅니까? 그렇게 티 나게 하는데. 솔직히 대표팀 사람들 전부 알고 있을 걸요? 선배도 병영 선배가 내 뒷담 까는 거 알고 있었잖아요. 근데 그냥 내가 가만히 있으니까 팀 케미 생각해서 내버려 둔 거고요. 지금 다른 사람들도 아마 비슷할걸요?”

갑자기 규혁 선배의 얼굴에 미안함이 가득 깃들었다.

“아, 괜찮아요. 그런 표정으로 안 보셔도 됩니다.”

17년 전의 나에게는 아마 저런 얼굴도 얼마간의 도움이 됐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고작 멍게가 뒷담 깐 걸 트라우마라고 하기에 17년은 충분히 긴 시간이었고 난 너무 크게 성공했다. 오히려 내가 마음에 담아뒀던 것은 그런 인간이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고 ‘존경’했던 나의 부끄러운 과거 쪽이었다.

-부웅!!

규혁 선배가 나에게서 살짝 멀어져 다시 방망이를 휘둘렀다.

뭐 썩 마음에 드는 스윙은 아니었다. 하지만 저건 그래도 이번 대회가 있기 전, 내가 말해줬던 것들을 의식하고 휘두르던 바로 그 스윙이었다.

***

슈퍼 라운드 경기가 이어졌다.

A조에서 통과한 팀은 한국과 미국 그리고 쿠바.

B조를 통과한 팀은 대만과 니카라과, 네덜란드였다.

WBSC에서 주관하는 대회들의 슈퍼라운드는 일반적인 토너먼트와는 조금 다른 특이한 룰을 취한다. 예선 라운드의 결과가 슈퍼라운드에도 적용되는 룰이 바로 그것이었다.

쉽게 말해 한국의 경우 현재 미국과 쿠바를 상대로 예선 라운드에서 승리했기에 이미 라운드 전적이 2승 무패였고 미국의 경우 1승 1패. 쿠바는 2패였다. 그리고 B조인 대만과 니카라과 네덜란드의 경우는 모두 물리고 물린 상태로 1승 1패씩을 기록 중이었다.

[한국과 쿠바를 상대로 승리. 미국에게 패배할 경우 3승 2패로 결승 진출 가능. 혹은 미국에게 승리할 경우······(중략)······로 결승 진출 가능.]

지난 대회 디펜딩 챔피언 대만 언론들이 자기네 본토와 마찬가지로 복잡한 경우의 수를 헤아렸다. 그리고 그들 역시 일단 최초의 계획을 무사히 수행했다.

미국전 14:2

7회 콜드 게임 패배.

그리고 계획의 두 번째 스텝.

한국과의 경기.

경기가 시작되고 정확히 1시간 42분이 지난 시점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보도를 조금 수정해야만 했다.

[한국이 네덜란드를 상대로 승리, 미국이 니카라과를 상대로 승리하고 우리가 쿠바를 상대로 승리할 경우 자력으로 ‘3, 4위전’ 진출 가능!!]

슈퍼라운드 2차전.

아직 한 경기를 남겨 둔 상황에서 한국과 미국의 결승전 재대결이 결정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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