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괴물 신인(4)
[모든 미국 사람들이 경악한 이유]
[한국 선수가 xx한다고 하자 벌어진 기적 같은 사건]
[일본이 땅을 치고 후회하는 이유]
[일본 드디어 끝? 이제 100년이 지나도 따라올 수 없을 것]
바야흐로 대국뽕의 시대였다. 별것 아닌 사소한 일에도 호들갑을 떠는 너튜브들이 널린 이 시대에 일본을 상대로 무려 7회 12:2 콜드 게임을 기록했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야구가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인 것은 마찬가지다. 비록 고교야구가 한국에서 비인기라고 해도 그것이 국제대회, 심지어 한일전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무엇보다 한국인들도 그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대부분 일본 야구의 수준이 한국보다 조금 높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두윤호: 크, 국뽕이 차오른다. 주모 여기 최수원 한 사발 더 주시게.
─친일파아님: 근데 솔직히 좀 에바 아님? 일본은 1군으로 나온 것도 아닌데.
─푸들푸들: 그래서 안드로메다에서 출발한 1군은 지금 어디까지 옴?
─떨공삼: 근데 U-18은 진짜 1군 아닌 건 맞음. 갑자원 출전한 팀들은 하나도 차출이 안됨.
─샷건뒷치기: 응, 그래서 선발 투수가 봄 갑자원 최우수 투수죠?
─친일파아님: 일본 애들은 지금 고시엔에 집중한다고 기사 한 줄 안 나는데 솔직히 이런 호들갑 쪽팔리지 않냐?
─쪽바리out: 응, 아니야. 안 쪽팔려.
─푸들푸들: 쪽바리 애들이 원래 지들 불리한 건 절대 기사로 안 냄. 이번에 1군 드립도 못 나오는 거 보면 진짜 영혼까지 털리긴 털린 듯.
─떨공삼: 근데 최수원 얜 진짜 물건은 물건이네. 한국 투수건, 일본 투수건 상관없이 죄다 패고 다니네. 솔직히 일본 애들도 얘 고의사구만 했으면 이렇게까진 안 터졌을 듯.
그런 일본을 상대로 4타수 3홈런 5타점에 1.2이닝 무실점 2삼진까지. 안 그래도 가뜩이나 한국에서 압도적인 성적과 제법 높은 시청률의 다큐멘터리. 그리고 유일한 2학년 대표에 화끈한 인터뷰로 이목을 집중시키던 최수원이었다. 한일전에서의 터무니없는 활약은 거기에 한 번 더 크게 불을 붙였다.
“이거 반응이 꽤 괜찮은데요? 게스트로 한 번 불러볼까요?”
“글쎄, 지금이야 그렇기는 한데 이제 겨우 예선 2차전 끝난 거라며. 고작 유소년 야구인데 그래도 우승 정도는 해야지 모양새가 좀 나오지 않겠어?”
“스읍······. 그게 우승은 좀 어려울걸요. 이번에 미국 대표팀이 장난이 아니라서요. 근데 굳이 우승까지 아니더라도 얘가 말빨도 괜찮고 마스크도 상당히 괜찮아요.”
“아, 박 작가 왜 그래? 방송 원투데이 하는 것도 아니고. 인터뷰랑 생방이랑 어디 같아? 운동 선수들 데려다 놨다가 꿔다 놓은 보릿자루 되는 게 어디 하루 이틀인가. 게다가 카메라에 익숙한 프로도 아니고 고삐리를? 어휴, 아서라. 아서.”
“그렇기는 한데 지금 여초 반응이 나쁘지가 않아요. 이제 열일곱 살인데 묘하게 눈빛 같은 게 좀 어른스럽고 또 운동선수인데 생긴 것도 좀 모델 느낌이 나잖아요.”
“그래?”
“게다가 저기 이PD님도 게스트로 데리고 올까 생각중이라는 것 같던데요.”
“뭐? 종필이가? 걔가 왜? 걔네 프로그램은 운동선수 데리고 오기엔 컨셉이 영 안 맞잖아.”
“글쎄요. 그냥 아까 점심에 거기 강 작가랑 밥 먹다가 나온 이야기라서 자세한 건 저도 잘 몰라요.”
김PD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갑자기 왜 일어나세요?”
“데리고 오자며.”
“별로라면서요.”
“야 너 종필이 촉 모르냐? 걔가 물었으면 그건 거의 무조건이잖아. 그걸 먼저 이야기 했어야지.”
***
최경식이 계약서에 멋들어지게 사인을 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일단 바로 본국 쪽 담당 직원 붙이도록 하겠습니다. 안 그래도 거기도 요즘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서요.”
“아, 그런가요?”
“네, 본래라면 U-18 대회 정도로는 그리 화젯거리가 되기 힘들겠지만 아무래도 알렉산더 맥도웰이면 여러모로 역대급 선수라서 말이죠. 아, 물론 저희는 최수원 선수 역시 알렉산더 맥도웰 선수 못지않은 타격 재능을 지니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하하, 과찬이십니다.”
“아뇨, 진담입니다. 사토 히로시 같은 경우는 저희가 아주 오랫동안 눈여겨봤던 선수인데 드래프트 1라운드, 혹은 샌드위치 픽 정도의 가치가 있다고 평가하던 선수였거든요. 아마 이번 활약으로 본국에서도 최수원 선수에게 주목하는 사람들이 제법 늘어났을 겁니다.”
제임스 코퍼레이션과 처음 접촉하고 약 한 달 반.
경식은 자신의 아들을 대신하여 그를 대리해주겠다는 에이전시들과 대화를 이어왔다. 야구에 있어서 그는 전문가까지는 아니었다. 한국의 프로라면 또 몰라도 미국 야구는 더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그는 자수성가한 사업가였으며 현재 상황에서 그의 아들은 ‘갑’이었다. 계약을 원하는 수많은 에이전시들의 조건들을 비교했다.
물론 그들이 제시하는 숫자만을 보고 선택하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다. 제임스 코퍼레이션은 그들의 제안서를 총 다섯 번 수정했다. 물론 단순히 조건을 많이 수정했다고 해서 제임스 코퍼레이션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NBM센터.
그의 아들이 콕 찝어 지정했던 뉴욕의 바로 그 센터였다. 다른 에이전시들의 경우 자신들과 연계된 다른 센터를 강조하거나, 혹은 NBM센터와 이야기를 진행해보겠다 등의 두루뭉술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제임스 코퍼레이션은 대뜸 NBM 센터에 상당한 금액을 투자함으로써 그들의 지분 자체를 사들였다.
기본적으로 한국 선수의 미국 에이전시 계약이란 선수가 KBO에 가는 순간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는 계약이다. KBO에 에이전트 제도가 생기기는 했지만, 여러 가지 측면에서 볼 때 KBO는 아직 에이전시가 활동하기에 매우 힘든 땅이기 때문이다.
즉 제임스 코퍼레이션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에 NBM 센터의 지분까지 사들일 만큼 자신들의 의지를 보여준 셈이었다. 좋은 말을 하는 사람은 많았다. 하지만 말이란 얼마나 공허한가. 결국 그 사람을 알려주는 것은 그 사람의 지나온 행적. 그리고 태도다. 그런 의미에서 최경식은 그들의 그런 자세가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물론 조건도 제일 좋긴 했지만······.’
미국 대표팀과의 경기까지 이제 이틀.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
월드컵 시즌이 되면 한국 언론에서 자주 사용하는 단어가 있다.
‘경우의 수’
사실 한국 언론만 사용하는 단어는 아니다. 객관적으로 전력이 약세일수록 ‘경우의 수’라는 말은 사용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경우 명백히 자신보다 강력한 팀이더라도 그나마 해볼만한 팀을 꺾는다는 가정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데 사실 그 가정이라는 것이 상대팀 입장에서는 그저 실소밖에 나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이번 야구 월드컵의 경우 중국이 그러했다.
미국, 쿠바, 일본, 한국, 호주, 중국.
이번 야구 월드컵에서 A조는 명백히 죽음의 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당장 역대 우승 횟수 1위인 쿠바와 2위인 미국. 3위인 대한민국이 같은 조였고 일본 역시 역대 최강의 전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로스터를 들고 나왔다. 심지어 호주 역시 최근 리그의 발전과 함께 무시할수 없는 전력을 갖췄으니 중국은 누가봐도 5패나 면하는 것을 목표로 함이 타당했다.
[호주를 무조건 잡고, 일본이나 한국 가운데 한 팀 이상을 상대로 승리. 미국이 전승, 쿠바가 4승 1패를 한다는 가정하에 호주가 일본이나 한국을 상대로 승리를 해준다면 2승 3패에 다득점으로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실로 복잡하기 짝이 없는 경우의 수.
하지만 그럼에도 2차전까지 그들의 계획은 제법 잘 맞아떨어졌다. 미국과 쿠바를 상대로 패배하는 것은 이미 상정된 계획이었으니까.
그리고 3차전.
중국팀은 지난 1, 2차전에서 무릎 꿇은 것은 모두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는 것처럼 자신들이 내밀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카드들을 연이어 내밀었다.
14억 명을 상회하는 인구.
그 가운데서 만 17세, 18세의 숫자는 무려 3,200만. 거의 대한민국 전 인구에 필적하는 자원 가운데 고르고 고른 스무 명의 정예들이 그들의 저 정교한 ‘경우의 수’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딱!!
넘어갔다.
-딱!!!
또 넘어갔다.
-딱!!
또, 또 넘어갔다.
-딱!!
아쉬운 2루타.
-딱!!
그 아쉬움을 달래는 투런 홈런.
그야말로 미친 듯한 타격의 연속이었다.
다만 중국 입장에서는 조금 아쉬웠던 점은 지금 방망이를 휘두르는 쪽이 오성홍기 대신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고 있다는 점 정도였다.
1회에만 무려 13점.
조규혁이 날려 보낸 타구를 중국의 우익수가 간신히 잡아냈다.
“자자, 오늘은 좀 일찍 끝내고 가서 쉬어보자. 내일 중요한 경기도 있는데.”
평범한 고등학교 야구부 수준?
아니, 아니다. 그래도 그것보다는 조금 낫다. 적당히 명문고 야구부 수준 정도는 됐다. 하지만 지금 여기 모인 대한민국 대표팀은 그런 명문고에서도 고르고 고른 에이스들로만 구성된 인재들이었다. 게다가 지난 두 경기를 통해 타격감 역시 올라올대로 올라온 상황이다.
공식적으로 이번 대회를 중계하는 유튜브 채널에는 초반만 하더라도 매우 많은 숫자의 중국어 채팅이 올라왔었다. 물론 중국의 황금방패는 공식적으로 너튜브 중계를 막았지만, 한국의 https차단이 그 나름의 방법으로 우회가 가능한 것처럼, 중국의 황금방패 역시 그 나름의 수단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딱 3회.
-뻐엉!!
“스트라잌!! 아웃!!”
장호연이 일곱 번째 삼진을 잡아내며 이닝을 마무리하던 그 시점에서 유튜브의 공식 중계 채널에 더 이상의 중국어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5회.
21:0 콜드게임.
[호주를 큰 점수 차로 잡고 일본을 상대로 승리. 미국이 전승. 쿠바가 한국과 일본 호주에게 패배할 경우 일본과 2승 3패 동률로 다득점으로 진출 가능.]
중국의 경우의 수가 조금 수정되는 순간이었다.
***
“흐음······.”
알렉산더 맥도웰이 작게 신음했다.
그는 타고난 스타였다. 유소년 레벨에서 이미 카운티를 넘어 스테이트 단위에 이름을 떨쳤고 7학년 이후로는 전국 단위에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 전미가 그를 주목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사실 그가 9학년을 끝낸 시점에서 자퇴를 선택했던 것도 이미 10학년을 끝내고 자퇴했던 선례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는 이번 U-18대회가 참으로 기꺼웠었다.
사실 지난 대회에서 우승을 했더라면 아마 이번 대회에 참가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대회에서 미국 대표팀은 역대 최초로 조별 리그를 탈락했다. 그러니 얼마나 달콤한가. 직전 대회에서 조별 예선에 탈락했던 조국의 명예를 우승으로 되돌려 놓다니.
하지만 아쉽게도 그 기꺼움은 현재 진행형이 아닌 과거형이었으니 본래라면 오롯하게 자신에게 쏠려야 했을 관심을 반분하고 있는 한 타자 때문이었다.
“스완이라······.”
12타수 9홈런.
실로 터무니없는 숫자였다.
“후후, 그래. 어디 나의 라이벌이 될 만한 자격이 있는지 내 눈으로 똑똑히 지켜봐주지.”
알렉산더 맥도웰.
17세.
아직 중2병을 극복하기에는 조금 어린 나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