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수가 그냥 홈런을 잘 침-57화 (57/305)

57화. 괴물 신인(3)

최수원의 솔로 홈런에 사토 히로시는 흔들렸다.

그건 분명했다.

집요할 정도로 바깥을 공략하던 그의 공이 복판으로 들어왔다. 다만 문제는 그가 최고 154km/h를 던지는 좌완 투수였다는 점이었다. 전광판에 찍힌 숫자는 153km/h.

-딱!!

팀의 4번 타자인 정병철이 휘두른 방망이는 타이밍을 맞추지 못했고 그 결과 아주 높게 떠오른 타구가 유격수의 글러브를 벗어나지 못했다.

아웃.

그리고 마운드에 조규찬이 올라갔다.

한국 고교야구 최고의 좌완 투수.

비록 오늘 최고 154km/h까지 던지는 좌완이 상대편 선발이라 조금 부족한 감이 있었지만 그가 좋은 투수라는 것은 부정하기 힘든 사실이었다.

-딱!!

일본 야구계는 2010년대 중반부터 메이저리그의 패스트볼 혁명을 받아들였다. 2010년대에 141km/h 남짓이던 리그 평속이 2025년 현재 148km/h까지 늘어난 것이 그것을 증명했다.

그렇다면 타자들은? 물론 현재에 와서는 타격 이론 역시 메이저리그의 그것을 받아들이기는 했다. 하지만 의외로 그것은 한국보다 더 늦었다.

신인왕과 MVP를 동시에 석권한 역대 두 번째 선수 스즈키 이치로때문이었다.

그는 희대의 천재였지만 동시에 현대 야구 이론과는 정 반대에 선 사내이기도 했다.

21세기 초반. 미국의 야구가 발전을 하고, 한국의 타자들이 그것을 따라가는 사이 일본의 타격은 스즈키 이치로의 그것을 추종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물론 일본 역시 현대에 와서는 시프트를 깨트리는 것은 정교한 배트 컨트롤이 아닌 더 빠르고 강한 타구라는 이론을 받아들였지만 본디 기술이라는 것이 하나의 집단에 받아들여져 숙성되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한국이 뒤늦게 패스트볼 혁명을 받아들이고 이제는 제법 시간이 흘렀음에도 아직 미국이나 일본만큼 구속이 올라오지 못한 것처럼 일본의 타자들 역시 제법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스즈키 이치로가 남긴 유산의 잔재를 완벽히 해소하지 못한 상태였다.

타석에 선 타자의 컨택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힘이 부족했다. 야구는 방망이로 공을 맞혔다고 끝나는 종목이 아니다. 방망이에 맞은 공이 안타가 될 확률은 평균적으로 3할 남짓. 타구질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땅볼의 경우 방망이로 공을 맞혀봤자 안타가 될 확률은 2할 초반에 불과하다.

타자들이 만들어낸 타구들이 내야를 뚫지 못했다.

“히로시만큼은 아니지만, 꽤 까다로운 투수야. 볼 끝이 지저분해.”

내야 안타, 병살, 내야 땅볼의 삼자범퇴.

그리고 2회 초 한국 팀의 선두타자는 5번 타자인 조규혁이었다.

그는 바로 직전 경기인 호주전에서 4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그 경기에서 한국팀이 7이닝동안 13점을 냈던 것을 생각해보면 중심 타순을 하기에 부족한 타격 성적이었다.

안 그래도 팀원들 사이에서 수군수군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꼴랑 대회 하나 반짝해놓고 뽑힌 이유가 최수원이랑 친해서라느니, 그나마 그 대회 반짝한 것도 최수원빨이라느니. 뭐 그런 이야기들?

그건 듣고 싶지 않아도 들릴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심지어 같은 방을 쓰는 박진경은 그와 제대로 말도 섞지 않았다.

그렇기에 조규혁은 그저 방망이를 움켜쥐었다.

마운드의 사토 히로시가 공을 던졌다.

-뻐엉!!

“스트라잌!!”

최수원의 홈런에 흔들리던 멘탈을 다잡았는지 153km/h의 바깥쪽 아슬아슬한 코스.

조규혁의 눈이 희둥그래졌다. 도저히 고등학생이라고 믿기 힘든 공이다.

두 번째.

거의 비슷한 코스.

조규혁의 방망이가 이번에는 날아오는 공을 따라갔다.

-딱!!

얼얼한 통증이 장갑을 뚫고 손바닥에 전해졌다. 최선을 다해 일루를 향해 달렸다. 하지만 늦었다. 삼루수가 정면으로 날아온 공을 가볍게 잡아 일루에 뿌렸다.

“아웃!!”

투심이었다.

멍청하기는. 수원이가 투심을 조심하라고 그렇게 이야기했는데. 조규혁이 인상을 찌푸린 채 덕아웃으로 돌아왔다.

삼삼오오 모여있던 녀석들이 그를 힐끔 바라봤다. 뭐라 특별히 말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눈빛이 그를 질책했다.

경기가 계속됐다.

***

조규찬은 좋은 투수였다.

회귀 전의 일들을 생각해봤을 때 실링이 메이저급이라고 보기는 힘들었지만, 만약 미국에서 야구를 했더라도 분명 메이저를 밟아는 볼 수 있는 실력자였다.

하지만 일본 대표팀 역시 나름대로 자기들끼리 고르고 골라서 나온 녀석들이다.

고시엔에 출전한다고 U-18 대회에 제대로 된 애들을 차출 안 시키는 녀석들 특유의 전통을 생각해보면 봄 고시엔 우승팀과 4강 팀의 주전이 고스란히 뽑혀나온 이번 일본 대표팀은 충분히 역대급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한 번의 타순을 무사히 돌리고 두 번째.

조규찬의 공이 슬슬 안타로 연결되는 빈도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6회.

-따악!!

타구가 중견수의 키를 넘어 담장 앞 워닝 트랙까지 날아갔다. 빠르게 달려간 김태윤이 공을 주워 던졌지만, 그 사이 이미 2루 주자와 3루 주자는 홈까지 무사히 들어갔다.

“수원아.”

“네.”

불펜에서 15개.

아직 조금 부족한 느낌이었지만 마운드로 걸어 올라갔다.

관중석에 수군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저기 저 녀석 조금 전에 홈런 쳤던 지명 타자 녀석 아니야?”

“에이, 그럴 리가. 아시아인이라서 다 비슷하게 생겨서 헷갈린 거겠지.”

“아니, 몸이 다르잖아. 저 팀에서 저렇게 길쭉한 녀석은 저 녀석 하나뿐이라고.”

“아니라니까 그러네.”

뭐 한국에서야 내가 투타겸업을 하고 있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겠지만, 경기를 보러 온 이 동네 사람들에게는 뜻밖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국제 대회라는 걸까?

장내 아나운서가 나에 대해서 간략하게 소개를 했다. 앞선 타석에서 2개의 홈런을 친 타자라는 말이 나왔을 때 관중석의 수군거림은 한층 더 커졌다. 타석에서 2홈런을 친 지명 타자가 구원 투수로 마운드에 오르는 모습은 어디가서도 보기 힘든 광경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한국만큼 무덥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8월이었다. 기온은 이미 32도를 넘어가고 있었다. 몸은 충분히 풀렸다. 타석에 일본팀의 타자가 올라왔다. 쌔까만 얼굴에 빡빡머리. 그냥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다.

원아웃 주자는 1, 3루.

내가 크게 와인드업 했다.

그리고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은 1루 주자가 2루를 향해 빠르게 달렸다.

당황하지 않았다. 어차피 주자를 두고 와인드업을 할 때 그 정도는 각오를 한 부분이었으니까.

손끝에서 공이 날아올랐다. 전력을 다한 빠른 공.

타석의 타자가 방망이를 휘둘렀다.

-부웅!!

-뻐엉!!!

정병철의 오른손이 빠르게 공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털썩 오른 무릎으로 바닥을 찍으며 빠르게 2루를 향해 송구했다. 준결승전에서 조유진을 잡아냈던 바로 그 무릎쏴였다.

-뻐엉!!!

“아웃!!!”

원 아웃 주자 1, 3루 상황에서 순식간에 투 아웃 주자 3루.

솔직히 포구나 블러킹만 생각하면 조유진이 더 편하기는 했는데, 이걸 보니 역시 정병철이 No.1 포수는 No.1 포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병철을 향해 엄지를 치켜들어 줬다. 그가 머쓱하게 웃었다.

두 번째 빠른 공.

노히트를 했던 날에 그 감각을 다시 살려보려고 부단히 노력을 했지만 쉽지 않았다. 하지만 괜찮다. 빠른 공은 그 자체로 강력한 무기다.

국제 대회라고 해봤자 고작 고교 레벨. 156을 던지는 투수는 그냥 스트라이크 존에 공을 넣을 수만 있어도 충분하다.

-딱!!

밀린 타구가 힘없이 이루수 정면으로 향했다.

깔끔한 1루 포스 아웃.

덕아웃으로 돌아가는 길.

정병철이 손에 쥔 미트로 나의 엉덩이를 툭 두들겼다.

“나이스 볼.”

“나이스 도루저지.”

나의 대답에 기분이 좋아진 것일까. 정병철이 씨익 웃었다. 뭐, 대표팀에서 뛰던 시절에도 그렇고 프로에서 뛰던 때에도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자기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경계가 좀 뚜렷하긴 했지만 적어도 같은 팀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부류였다. 솔직히 이 정도면 프로선수 인성으로는 매우 훌륭한 편이다.

“그냥 공이 좋았지. 규찬이 공도 항상 빠르다고 생각했는데 확실히 느낌이 다르네.”

“에이, 기껏해야 4, 5키로 차이인데요 뭐.”

“아냐, 전광판에 숫자는 그 정도인데 체감은 훨씬 빠르더라. 이게 타석에서만 그런 건가 생각했는데 오늘 공 받아보니까 확실해. 방금도 규찬이 공이었으면 솔직히 도루 저지 힘들었을걸?”

“그런가요?”

“그렇다니까. 아, 맞다. 근데 방금 이 이야기는 다른 사람한테는 비밀이다. 규찬이가 또 은근히 마음이 작은 부분이 있어서 괜히 이런 이야기 들으면 의기소침해진다고. 안 그래도 점수 내주고 마운드에서 내려와서 울적할 텐데.”

메이저에서 타자로 뛸 당시에는 우리 선발이 5.1이닝 2실점 하고 기분 나빠하면 솔직히 이해가 안 됐다. 물론 팀이 지고 있는 상황이라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타자들이 더 큰 점수를 냈는데 지가 실점 조금 했다고 왜 기분이 안 좋은 걸까? 나는 고등학교 때 투수로 뛰던 시절에 안 그랬던 것 같은데.

잘못된 생각, 기억의 오류였다. 투수로 다시 뛰어보니 알겠다. 팀의 승리와 무관하게 내가 점수를 내준다는 것, 아니 안타만 허용해도 기분이 매우 나빠진다.

타자는 10번의 기회 가운데 3번을 잡으면 성공이다. 그렇기에 타자는 패배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투수는 달랐다. 마운드에 오르면서 10번 던져서 3번 이하로 두들겨 맞는 정도면 나쁘지 않아. 라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힘들다. 항상 올라갈 때마다 오늘은 퍼펙트? 그거 깨지면 노히트? 그거 깨지면 완봉? 에이, 그래도 퀄리티 스타트 플러스 정도는 해야지? 라는 식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비록 전광판의 점수가 7:2였지만 조규찬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해줄 수 있었다.

“쉬지도 못하고 준비해야 하네. 괜찮겠어?”

“네, 뭐 아직 몇 개 던지지도 않았는데요.”

대기 타석에 서서 마운드의 투수를 바라봤다.

물론 지금 마운드에 선 투수는 사토 히로시가 아니었다. 녀석은 나한테 1회 솔로 홈런을 한 방 허용했음에도 매우 침착하게 경기를 끌어나갔다. 하지만 3회에 투런을 한 방 더 허용한 다음에도 그 침착함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따악!!

2번 타자인 강창욱이 일본팀의 두 번째 투수인 기무라 렌을 상대로 장타를 때려냈다. 무난한 이루타.

일본의 덕아웃이 움직였다.

그리고 나카무라 사부로라는 이름의 투수가 마운드에 올라왔다. 그래, 역시 나카무라다. 일본을 대표하는 팀에 나카무라가 없으면 뭔가 섭섭하다.

최고 158km/h를 던지는 좌투수.

일본 만화에 흔히 나오는 약소 팀을 이끌고 고시엔에 나가는 일종의 주인공 같은 녀석이었다. 지금 여기 있는 걸 보면 알 수 있듯 매년 나갔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2학년이던 작년에는 고시엔에 나갔지만, 올해에는 실패했다고 들었다.

본래라면 내일이나 모레 선발로 나가야 할 투수일 텐데 일본도 급하기는 급한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7회 초에 7:2. 노아웃에 주자 2루다. 5점만 더 내주면 그대로 콜드게임인데 한일전에서 콜드게임을 당한다는 것은 그들 입장에서도 가장 피하고 싶은 시나리오일 것이다.

마운드의 투수가 움직였다.

세트 포지션.

빠른 공이 날아왔다.

세트 포지션으로 던졌음에도 사토 히로시보다 빠른 공이었다. 아마도 154 정도? 그리고 코스는 몸 쪽 낮은 코스. 좋은 공이었다. 어쩌면 프로 레벨에서도 통할만한 공이었으니 아마 고등학교 레벨에서는 거의 무적에 가까운 공이었다.

-딱!!

다만 문제는 내가 몸 쪽 낮은 공을 아주 좋아한다는 점이었다.

올버니 스타디움의 외야 상단을 직격하는 깔끔한 투런 홈런.

아쉽게도 안드로메다까지 날아가기에는 여전히 비거리가 부족했다. 하지만 괜찮았다. 나의 타구는 비록 안드로메다까지 가지 못했지만, 그 대신 내 홈런이 박살낸 일본 대표팀의 멘탈이 안드로메다를 방문했을 테니까.

9:2

그리고 8회는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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