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괴물 신인(2)
세계에서 고교야구를 가장 잘 상업화한 나라는 어디인가에 대한 답은 쉽다.
일본이다.
전국 49개 고교가 참가하는 여름 고시엔에 총관객 수는 80만 이상. 경기당 평균 관중 수만 하더라도 만칠천 명에 육박한다. 티켓 가격 역시 상당하여 프로야구의 티켓 가격 이상이며 암표로 가면 그 10배에 구매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그래서 일본이 U-18 대회에 강자인가를 묻는다면 그건 또 그렇지 않다. 단순히 중국의 슈퍼 리그처럼 규모만 크고 좋은 선수는 적기 때문일까?
그럴 리가.
당장 일본의 프로리그인 NPB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강력한 리그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건 말이 안 되는 소리다. 그것은 그저 미국이 프리미어12에서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유였다. 미국은 프리미어12에 메이저리그 40인 이내 선수를 내보내지 않는다.
그리고 WBSC U-18 Baseball World Cup을 보면 일본 역시 마찬가지다. 일본은 U-18 월드컵에 여름 고시엔에 출전하는 49개 팀의 선수를 차출하지 않는다. 즉 U-18 대회에 출전하는 일본 대표팀은 전국대회 지역 예선에 떨어진 선수에 한정된다.
“한국의 야구가 많이 올라왔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수준의 차이라는 건 존재하죠. 이번에 그 수준의 차이라는 것을 제대로 보여 줄 생각입니다.”
그렇기에 보통이라면 일본 대표팀이 인터뷰에서 이렇게 건방진 말을 내뱉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번에 일본 U-18 대표팀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고시엔은 그 특성상 이변이 자주 발생하는데, 이번 여름 고시엔의 경우 8강은 기본이고, 우승을 다툴만하다고 평가받던 학교 가운데 무려 두 곳이 고시엔에 탈락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 학교에 다니던 학생들에게는 실로 재앙과 같은 소식이었다.
물론 저 인터뷰를 진행했던 사토 히로시와 같은 이들의 사정은 조금 달랐다. 비록 이번에 고시엔의 진출이 좌절됐지만, 그는 이미 봄 고시엔에서 자신의 기량을 증명했고, 적어도 한두 팀 정도는 그를 1라운드로 뽑을 것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친구들은 달랐다.
전국 16만 명에 달하는 고교야구 선수 가운데 한 줌.
NPB에 도전할 수 있는 진짜 엘리트들인 그들이었지만 그와 비슷한 수준의 선수들은 많았다. 그리고 일본 프로야구의 오랜 전통을 생각할 때 고시엔에 진출하지 못한 학교의 학생들을 상위라운드로 뽑아갈 확률은 매우 적었다.
“다들 너무 걱정하지 마. 이번 WBSC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구단에서도 조금은 다시 생각할 거야.”
“그럴까?”
물론 그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은 사토 히로시 본인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전 일본의 시선은 고시엔에 집중되어 있었다. 심지어 프로야구의 시청률조차도 고시엔을 따라갈 수 없었으니까. 그렇기에 이러한 퍼포먼스가 필요했다. 조금이라도 자극적인 말로 언론을 불러와야 했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아주 좋은 재료였다. 한국은 일본과의 과거사 때문에. 그리고 일본은 한국이라는 후발주자에게 따라 잡혀버린 현실 때문에 서로에게 감정이 좋을 수가 없었다.
A조 2차전.
한국 대 일본의 경기가 다가왔다.
***
“어, 그러니까. 네 말처럼 진짜 괜찮더라. 실력도 실력인데 캐릭터가 확실해. 다이어트라니. 하여간 요즘 애들은 패기가 좋다니까. 그래, 나도 잘 알아. 그래서 그 인터뷰는 기사로 안 내보냈잖아. 근데 이건 내보내도 괜찮을 것 같은데? 아니, 그렇지. 물론 그런데 어차피 이 친구 일본 갈 일은 없을 거 아니야. 게다가 맥도웰 거랑 다르게 이건 상대방이 명백히 우리를 콕 집어서 시비를 건 거니까.”
-최수원 ‘걔들 또 1군은 안 내보내고 입만 터는 거예요? 에휴, 진짜 일론 머스크 아저씨 일 더 열심히 해야겠네요. 외행성 항해 기술이라도 빨리 발달해야 안드로메다에서 훈련 중인 일본 1군을 데리고 올 테니까요.’-
한일전에서 패배할 때마다 일본이 ‘xx가 빠졌으니 1군이 아니었다.’ 같은 말을 하는 것은 매우 오래된 전통이었다. 물론 U-18 대표팀은 정말로 일본의 베스트 멤버가 아니었지만, 최수원이야 그건 알 바가 아니었고, 그저 저렇게 입을 털어놓고는 또 패배하면 1군이 아니었다 같은 말을 할 것이 너무 뻔하여 살짝 짜증이 난 탓에 내뱉은 발언이었다.
기본적으로 U-18 대회에 관한 관심이 평소보다는 조금 올라간 상황이었다. 게다가 최근 중국의 부상으로 조금 덜한 경향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한국인들에게 한일전이란 언제나 가슴 속 깊숙한 무언가를 자극하는 울림이 있었다.
기자들은 언제나 사람들의 관심을 먹고 살아간다.
그런 의미에서 최수원의 자극적인 발언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애초에 인터뷰를 진행했던 고려일보는 물론이거니와 각종 인터넷 언론에서 베껴 쓰기가 범람했다.
“야!! 너 뭐한 거야. 회사가 돈이 남아돌아서 너를 미국에 보내놓은 줄 알아? 이런 거 인터뷰 따오라고 보내놓은 거잖아. 아니, 감독이랑 인터뷰해서 뭐 할 건데? 지금 필리스 경기가 중요해? 어차피 일 년에 162번이나 있는 경기 중 하나잖아. 당장 튀어가. 그리고 경기 끝나고 승리 인터뷰 꼭 따와. 뭐? 승리 못 하면 어떻게 하냐고? 야!!! 지금 네가 그런 거 하나하나 케어받을 짬밥이야?”
그리하여 본래라면 아무리 한일전이라고 해도 이렇게까지 많은 언론의 관심을 받기는 어려웠을 WBSC U-18 경기.
검은 머리의 기자들이 경기장에 잔뜩 모여들었다.
***
경기 시작 전.
사토 히로시가 나에게 와서 꾸벅 고개를 한 번 숙이고는 뭐라 뭐라 떠들고 사라졌다. 얼추 절반 정도 알아들을 수 있었는데 당연히 내가 일본어를 할 줄 알아서는 아니었다.
“와······, 그게 영어였다니.”
초반에는 진짜 일본어인 줄 알았다.
중반에는 영어 단어가 좀 들리길래 영어와 일본어를 섞어 쓴다고 생각했었고. 막판에서야 아, 지금까지 얘가 영어로 말했구나. 하고 눈치챌 수 있었으니 내가 미국에 갔던 초창기에 나는 분명 영어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영어로 이야기하라고 꼽 줬던 게 인종차별이 아니었음을 다시금 깨달았다.
아무튼 간 녀석의 말을 굳이 해석할 필요는 없었다.
그냥 인터뷰는 자기 진심이 아니었고 한국 야구를 충분히 존중한다. 언론의 집중이 필요하여 불필요한 트래시 토크를 한 것을 사과하겠다. 내가 좋은 반응을 해준 덕분에 언론의 반응이 더 커졌다. 뭐 그런 내용이었다.
다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본래의 역사에서도 사토 히로시는 국민 비호감이었다. 메이저에 뛰던 당시 한 일 년 정도 같이 뛰었는데, 그때도 이런 상황을 나에게 시시콜콜하게 털어놨었다. 물론 그때도 나는 얘도 참 인생 피곤하게 사는구나. 참 별 걸 다 마음에 담아둔다. 뭐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스포츠는 내셔널리즘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아니, 프로레슬링의 악역 레슬러들이 진짜로 나쁜 놈이라서 악역인가? 심지어 사토 히로시는 한국인에게는 비호감이지만 일본인에게서는 사랑을 받는 야구선수였다. 내가 생각할 때는 그거면 충분하다. 악역이 굳이 사람들에게 ‘이건 다 기믹입니다. 저를 사랑해주세요.’라고 떠들고 다닐 필요는 없다.
아, 나는 어땠냐고?
물론 나도 한일전 할 때 조금 자극적인 멘트들을 던지기는 했다. 하지만 나야 뭐 아시아를 대표하는 선수였으니까. 여기서 얻을 수 있는 인생의 교훈은 결국 야구선수는 일단 야구를 잘하고 봐야 한다는 점이다.
아무튼 감사를 표하는 사토 히로시에게 대충 고개를 끄덕여줬다.
자기가 알아서 처맞는 모습을 더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하는데, 나야 사양할 이유는 없었으니까.
1회 초.
마운드에 사토 히로시가 올라왔다.
나쁜 실력은 아니었다. 일본에서 8년 동안 던지면서 사와무라상도 두 번이나 탔었고 메이저에 와서는 신인왕 2위에 올스타도 한 번 했다.
오늘 우리 팀의 1번 타자는 경하고의 유격수인 박진경.
지난 경기에서 4타수 3안타를 기록했다.
KBO에서 뛰던 시절에는 나의 마이너 버전이라는 이야기도 들었을 만큼 다재다능한 타자다. 나도 준결승에서 상대할 때 초구를 몸통에 박아넣지 않았더라면 제법 애를 먹었을 수도 있다. 나중에 말하기를 그때 병살당한 것도 빈볼 맞은 곳이 쑤셔서 그랬다고 했는데 솔직히 그거 아니라도 병살 타이밍이었지만 그냥 알겠다고 고개 끄덕여줬다.
-딱!!
박진경이 초구를 건드렸다.
우측 파울 라인을 완벽하게 벗어나는 타구.
그가 잠시 타석에서 벗어나 자신의 장갑을 동여맸다.
솔직히 한국과 일본의 가장 큰 차이는 투수다.
그 부분을 설명하자면 21세기 현대 야구의 흐름을 설명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니까 내가 그것을 어떻게 이렇게 잘 알게 됐느냐 하면, 2039시즌을 끝내고 11월 첫눈이 내리던 날의 뉴욕의······(중략)······해서 결론적으로 21세기 초만 하더라도 모두 142, 140, 139였던 3개 리그의 평속이 2025년 현재에서는 152, 148, 144로 제법 크게 차이가 나는 상황이다.
아무튼 현재 한국 고교리그에서 가장 빠른 공을 던지는 건 나였다. 그리고 그다음이 백하민이고 그다음이 한민준. 좌완은 조규찬이 유일했다.
150이 넘는 공을 던지는 투수가 고작 네 명에 불과한 한국 고교야구와 달리 일본의 경우 150 이상을 던지는 투수가 열댓 명 가량 됐다. 그리고 사토 히로시는 그 가운데 하나로 최고 154km/h를 던지는 좌완투수다. 그러니까 그 지옥에서도 데려온다는 좌완 파이어 볼러인 셈이다.
하지만 그런 투수를 상대로도 두 번째와 세 번째. 박진경이 공을 잘 골라냈다. 그리고 네 번째에 또 파울. 확실히 타격 센스가 있다.
그리고 다섯 번째.
-부웅!!
“스트라잌!! 아웃!!”
하지만 아무리 센스가 있다고 해도 당해내기 힘든 공이 있다. 사토 히로시가 던지는 포크볼이 바로 그런 공 중 하나였다.
사실 KBO도 그렇고 메이저에서도 포크볼은 잘 던지지 않는 공이다. 슬라이더의 부상 위험이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포크볼은 논쟁의 여지 없이 부상 위험이 가득한 공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스플리터로 비슷한 효과도 낼 수 있으니 굳이 던질 이유가 없다.
다만 그런 만큼 효과는 확실했다.
실제로 사토 히로시는 저 공 하나로 메이저리그 신인왕 2위까지 차지했었다. NPB나 KBO에서 건너온 중고 신인에게 신인왕을 잘 안 주려는 메이저의 경향을 감안 하면 사실상 그해에 가장 뛰어났던 신인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이어지는 2번 타자가 내야 땅볼로 물러났다.
코스는 제법 괜찮았는데 152km/h의 속구에 배트 스피드가 따라가지 못했다. 사토 히로시도 1회부터 거의 최고 구속으로 공을 던지는 꼴을 보니 이번 경기에 어지간히 힘을 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의 차례가 돌아왔다.
경기장의 카메라가 일제히 나를 바라봤다.
당연한 일이다.
지난 호주전에서 나는 4타석 3타수 3안타(2홈런) 1볼넷을 기록했다. 이 정도면 솔직히 고의사구가 나와도 이상하지는 않을 성적이었다.
하지만 일본의 외야수들이 뒤로 주르륵 물러났다. 승부를 할 생각이다. 토너먼트도 아니었고 가뜩이나 한일전이다. 경기 내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은 고의사구겠지만 경기 외적인 부분까지 고려했을 때 고를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
마운드의 사토 히로시가 나를 바라봤다.
경기 전 나에게 다가와 꾸벅 인사하던 때와는 완벽하게 다른 눈빛이었다.
초구.
바깥쪽으로 높은 코스 살짝 빠지는 공.
-뻐엉!!
“스트라잌!!!”
굳이 구심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저 오늘은 여기까지도 스트라이크를 줄 생각인가보다 하고 다음 공을 기다렸다.
두 번째.
바깥쪽 낮은 코스.
-딱!!
포심인 줄 알았는데 투심이었다. 타구가 파울 라인을 크게 벗어났다.
그리고 세 번째.
솔직히 예상됐다.
그는 자신의 포크볼에 자부심이 있는 사내였다. 0-2의 카운트. 여기서는 당연히 헛스윙 삼진을 노림이 마땅했다.
그의 손에서 야구공이 날아올랐다.
보였다. 그 벌어진 손가락이. 그리고 그 손가락 사이로 날아오르는 그 포크볼이.
합리적인 선택은 공 하나 보내주고 1-2에서 다음 공을 노리는 일이었다.
하지만 합리성을 넘어 가장 효율적일 선택은 투수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공을 정면에서 때려 부수는 일이다.
-따악!!
야구공이 쪼개질 것 같은 시원한 소리가 경기장을 울렸다.
볼 것도 없었다. 가볍게 방망이를 내던지고 일루를 향해 조깅하듯 달렸다.
좌측 담장을 크게 넘어가는 거대한 홈런.
마운드의 사토 히로시는 여전히 우뚝 서 있었다. 아무래도 안드로메다에 있을 일본 1군을 불러오기에는 아직 비거리가 살짝 부족한 듯싶었다.
경기가 계속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