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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가 그냥 홈런을 잘 침-46화 (46/305)

46화. 걔는 빼고(4)

나는 사실 좋은 피칭이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모른다. 아, 24년 동안 야구를 하면서 피칭에 관한 이야기는 참으로 많이 들었고, 그에 관련된 격언 같은 말도 참으로 많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모두 간접경험에 불과했다. 나는 제대로 된 피칭을 ‘직접’ 경험해보지 못했다.

물론 열 살에 처음 야구를 시작해서 열일곱 살까지 햇수로 팔 년 동안 피칭은 나의 모든 것이긴 했었다. 하지만 그건 기껏해야 학생 레벨에 불과했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가 얼마나 넓고 깊은지, 그리고 또 그 프로 안에서도 최상위권, 나아가 메이저리거의 수준 차이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직접 뛰어봤으니 모를 수가 없다.

무엇보다 내가 직접 피칭을 안 했던 기간이 팔 년에 십 년을 보태 십팔 년이다. 알고 있던 것도 새까맣게 잃어버리기에 충분한 세월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이래 봬도 나는 방망이로 세계에서 가장 공을 엿 같게 던지는 놈들을 9년이나 두들겨 팬 경험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방망이가 빗나간 경험 역시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렇기에 어떤 피칭들이 엿 같은지를 잘 알고 있다.

속구라고 확신했는데 갑자기 들어오는 체인지업.

손을 떠날 때 역 회전성 무브먼트도 안 보여준 주제에 갑자기 뚝 떨어지는 너클 커브.

이미 방망이 출발했는데 휘어지기 시작하는 더러운 슬라이더.

포심 패스트볼이랑 구분 하나도 안가는 97마일짜리 싱커.

일본에서 온 변태들이 던져대는 포크볼.

그리고 던진 놈도 어디로 갈지 모르던 미친 너클볼.

투구자세만 여섯 개쯤 되는 주제에 그 모든 폼으로 다 제구가 가능했던 돌아이.

참으로 많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지금 현재 투수로써 나는 그 가운데 단 하나도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여기가 메이저리그는 아니었고 사실 메이저리그에서도 저것들만큼이나 빡치는 게 하나는 더 있었으며 난 이미 그걸 가지고 있었으니까.

로케이션은 엉망인데 그래도 그럭저럭 컨트롤은 되는 107마일짜리 포심 패스트볼.

당연히 지금 내 구속이 107마일이라는 건 아니다. 그러니까 내가 뛰던 당시에 메이저 평균 구속이 대충 95마일쯤 됐으니까 체감으로 따지자면 여기선 한 97마일 정도면 얼추 비슷한 느낌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1회 초 나의 가르침 덕분일까?

정병철의 몸이 타석 안쪽으로 바짝 붙어 있었다. 뭐, 의식적으로라도 그러겠다는 뜻이겠지. 하지만 몸이 딱딱했다. 솔직히 이해됐다. 나도 자존심 싸움 들어가면 억지로 서 있기는 했는데 저거 진짜 무섭다. 투수가 의도한 것이건 아니건 100마일짜리 공이 머리에 제대로 꽂히면 헬멧을 썼다고 해도 최소 뇌진탕이다. 심지어 헬멧이 아니라 안면에 꽂힌다면? 진짜로 요단강을 건너는 수도 있다.

‘야, 진짜 괜찮겠어?’

조유진의 간절한 눈빛에 내가 시원하게 고개를 저었다. 사내끼리의 자존심 싸움이다. 여기서 바깥으로 도망가는 것은 쫄보나 하는 짓. 이대로 몸쪽 높은 코스로 간다.

크게 와인드업했다. 몸이 기억하는 그대로 팔을 휘둘렀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그 모든 에너지를 손끝에 싣는다는 느낌으로 강하게 공을 잡아챘다.

속구.

포심 패스트볼.

가장 빠르고 가장 많이 회전하는 공이 나의 손을 떠났다.

코스는 살짝 애매했다. 몸쪽이기는 한데 낮은 코스도 높은 코스도 아닌 딱 적절한 높이다. 정병철의 눈동자가 빛났다. 그 거대한 몸집에 어울리지 않는 간결한 동작. 배트가 움직이는 속도가 범상치 않았다.

-딱!!

타구가 높게 솟구쳤다.

***

방망이를 집어 던진 정병철이 1루를 향해 빠르게 달렸다.

‘젠장······. 생각보다 훨씬 높았어.’

투수의 손을 떠난 공이 포수의 미트에 박히는 데 걸리는 시간은 144km/h를 기준으로 0.4초 남짓. 최수원의 공처럼 156km/h에 가까운 공이라면 0.36초로 충분하다. 그런 공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치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다.

공의 시작점에서 궤적을 읽고 경험을 통하여 그것을 예측하고 방망이를 휘두른다. 여기서 그 ‘경험’이라는 것이 바로 공의 회전수가 중요한 이유다. 결국 타자가 예측하는 것은 평균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극단적으로 높은 회전수나 낮은 회전수는 그 ‘경험’에 의한 평균을 벗어난다.

지금 최수원의 공 역시 마찬가지였다. 정병철이 경험해본 속구와는 사뭇 다른 궤적. 적어도 공 1/4개는 더 높은 곳을 통과했다. 공 하나의 7.23cm. 기껏해야 2cm 정도 덜떨어진 것이 뭐가 그리 대수냐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무 배트의 두께는 최대 7cm에 불과하다. 조금만 더 낮았더라면 담장을 넘어갈 공도 2cm의 차이로 어설프기 짝이 없는 외야 뜬공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외야 뜬공 아웃.

중앙고의 우익수가 어렵지 않게 그 타구를 잡아냈다.

고교야구의 수비라는 것이 항상 성공적일 수 없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달리던 정병철이 발걸음을 멈췄다.

터덜터덜 걸어가던 그가 대기타석에서 타석으로 들어오는 후속 타자에게 말했다.

“공이 1/4개 정도 높게 들어오는 느낌이야.”

“구위가 꽤 괜찮은가 보네?”

“아, 미안. 미안. 이 말을 안 붙였네. ‘내 생각보다’ 공이 1/4개 높게 들어온다. 그냥 괜찮은 수준이 아니야. 구속도 미쳤는데 구위는 더 미쳤어. 그러니까 천남고 백하민보다 속구는 더 위력적이라고 생각하고 준비해라.”

“그 정도라고?”

정병철이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 덕아웃으로 내려갔다.

후속 타자에게 정보는 전해줬다.

하지만 그 한 마디로 극적으로 뭔가가 바뀔 거라는 기대는 없었다. 애초에 그런 말을 들었다고 미세하게 배트를 컨트롤 할 수 있는 타자는 흔치 않았으니까.

그리고 역시나 정병철의 생각처럼 경하고의 타자들은 최수원을 쉽게 공략할 수 없었다.

초구 내야 땅볼 아웃.

그리고 삼구삼진.

최수원이 고교 최강 경하고의 타자들을 상대로 투수로써 자신의 가치를 여실하게 증명했다.

***

‘후······.’

솔직히 타구가 뜨는 순간 심장이 덜컥했다.

공이 조금 몰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괜찮은 공이었는데 그걸 설마 넘긴다고? 싶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리 멀리 뻗지 못했다. 아무래도 정병철의 몸이 약간 굳어 있었다는 점, 그리고 내 공이 생각보다 더 좋았다는 점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 같다.

정병철 이후로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러니까 스트라이크 아니면 볼이었던 나의 커맨드가 오늘따라 부쩍 상승한 느낌이다. 굳이 일본 만화 식으로 말하자면 스트라이크 or 볼의 2분할 컨트롤이 이제는 4분할 정도로 늘어났달까?

존을 네 부분으로 나눠서 각각의 면을 노리고 공을 던져도 어지간하면 스트라이크 존 안쪽으로 공이 들어간다. 물론 원하던 면에 항상 공이 들어가는 것까지는 아니었다. 확률적으로 가장 높은 것은 네 개의 탄착군이 교집합 된 존의 한복판이었고 가끔 존을 벗어나는 공도 나왔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나도 존의 안과 밖, 위아래를 구분하는 4분할 투수라고 불려도 괜찮지 않을까?

덕아웃의 저편, 조유진과 잠시 잡담을 나누는 품바의 얼굴이 보였다.

“아니, 진짜 택도 없어. 지민이한테도 해줄 말이 없더라. 무슨 공이 외곽으로 쏙쏙 들어오는데, 실투 하나는 나오겠지 하면서 버텨도 어림없다. 그러다가 그냥 갑자기 떨어지는 공이 훅!! 구속도 구속인데 진짜 제구가 미쳤어. 게다가 좌완이라 그런가? 난 솔직히 천남고 백하민 선배보다 더 어렵더라. ”

“그 정도야?”

품바 녀석이 갑자기 조유진에게 접근하더니 목소리를 낮췄다.

뭐, 그래봐야 워낙에 목청이 큰 탓에 다 들렸지만.

“어. 솔직히 최수원 저 새끼는 저런 공을 상대로 어떻게 홈런을 쳤는지 모르겠다니까. 괴물 같은 새끼.”

“그러면 딱 기다려봐. 내가 다녀와서 어떻게 치는지 알려줄 테니까.”

“그래, 최수원 저 괴물 딱지는 치는 법 알려줘봤자 그냥 공이 오는 거 잘 보고 방망이 잘 휘두르라는 말이겠지만, 조유진 네가 만약 공을 친다면 뭔가 진짜 방법이 있어서 친 걸 테니까.”

“스읍······, 뭐지? 뭔가 기분이 좀 나쁜데?”

조유진이 투덜거리면서 방망이를 들고 대기 타석으로 향했다.

-부웅!!

대기 타석에서 돌리는 스윙은 참으로 시원했다. 상하체가 유기적으로 연동되는 실로 아름다운 스윙이다.

그리고 그사이 티몬이 깔끔한 내야 땅볼로 물러났다. 녀석도 1루를 향해 최선을 다해 달려봤지만 어림없는 타구였다.

3회 초.

원아웃 주자 없는 상황.

조유진이 타석에 섰다.

초구.

몸쪽 꽉 찬 속구.

고등학생이라고 믿기 힘든 로케이션이었다. 모든 공을 저렇게만 던질 수 있다면 아마 메이저도 노려볼만하지 않을까? 노렸다기보다는 그냥 잘 들어간 공이라는 의미다.

하나 정도는 그냥 지켜봐도 괜찮을 법하건만. 하지만 그게 됐다면 조유진이 아니다.

힘차게 방망이가 움직였다.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방망이가 다 돌아가기도 전에 시야가 1루를 향한다. 쯧. 상하체가 저렇게 따로 노니 방망이에 힘이 실릴 리 만무하다. 그래도 꾸역꾸역 방망이에 공을 가져다 대는 것도 재주는 재주다.

힘없는 타구.

조유진이 전력으로 1루를 향해 달렸다. 아마 오늘 유격수가 평균적인 고등학생 수준이었다면 어쩌면 안타가 됐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 유격수를 보는 박진경은 어깨가 소녀 어깨인 거 빼고 약점이 없는 내야수였다. 심지어 그 어깨도 프로 레벨에서야 유격수 불가 판정으로 2루에 간 거지, 고교 레벨에서는 평균은 충분히 된다.

박진경이 빠르게 공을 주워 군더더기 없는 자세로 그대로 1루에 공을 뿌렸다.

-뻐엉!!

“아웃!!”

깔끔한 초구 땅볼아웃.

“아······. 까비. 조금만 더 빠졌어도.”

전혀 아깝지 않은 타구가 아깝다고 중얼거리며 들어오는 조유진을 보고 있자니 이상하게 속에서 천불이 올라오는 느낌이다.

그래, 회귀 전에는 2학년까지는 투수한다고, 그리고 3학년 때는 재활 하면서 타자한다고 남의 타격에 신경을 아예 못 썼었다. 덕분에 녀석이 어떻게 타격했었는지도 딱히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저 타격을 보고 있자니 뭐랄까? 대체 저런 타격으로 프로에서 10년은 어떻게 버틴 거지?

진지하게 졸업 전까지 녀석의 타격폼을 우수한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람 같은 모습으로는 바꿔주고 싶다는 욕망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물론 괜히 내가 상관해서 나름대로 프로에서 10년이나 버텨낸 녀석의 미래를 망쳐버릴지도 모르겠다는 걱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타격폼은 저기서 뭘 건드려도 저것보다 나빠질 것 같지 않다는 확신이 든다.

그리고 내가 그 잠깐 딴생각을 하는 사이

-붕!!

“스트라잌!! 아웃!!!”

깔끔한 헛스윙 삼진.

몇 분 쉬지도 못했는데 다시 내가 공을 던질 차례가 돌아왔다.

그래, 오히려 좋다. 괜히 어깨가 식는 것보다 감도 슬슬 잡혀가고 이렇게 힘이 있을 때는 연달아 던지는 것이 차라리 낫다.

그리고 그런 긍정적인 생각을 한 덕분일까?

아니면 단순히 전국 최강 경하고라고 해도 하위 타선에서는 ‘오늘의 나’를 막아낼 만한 힘은 없었던 것일까?

삼진 두 개를 포함한 깔끔한 삼자범퇴.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총 열네 개의 공을 던지는 과정에서 볼은 세 개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오늘 역시 ‘그것’인가?

4회 초 우리의 공격.

원 아웃 상황에서 나의 타석이 돌아왔다.

***

“안녕하세요. 테드 박이라고 합니다.”

“교육 방송의 최경아 PD입니다. 한국말 잘하시네요?”

“네, 코리아타운에서 자랐거든요.”

“그러시구나. 사실 박이라는 성만 아니었으면 재미교포인지도 몰라볼 뻔했어요.”

최경아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한국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남미 쪽 메스티소에 가까운 외모였다.

“뭐, 종종 듣는 이야기입니다. 쿼터라서요. 친할아버지만 한국분이거든요. 아무튼 간 최수원 선수에 대해서 인터뷰를 하고 싶으셨다고요?”

“네, 테드 박 씨가 미국 쪽 에이전시에 일하신다고 들었어요. 그것도 아주 커다란 회사에서요.”

“하하, 그냥 테드라고 부르셔도 괜찮습니다. 제임스 코퍼레이션이 아직 그렇게까지 커다란 회사는 아닙니다. 다만 지금 최고의 유망주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에이전시인 것은 확실하지요. 조쉬 쿠퍼도 저희 선수거든요.”

“조쉬 쿠퍼요?”

“네. 작년 아메리칸 리그의 신인왕 그 조쉬 쿠퍼 맞습니다.”

작년 아메리칸 리그의 신인왕을 고객으로 데리고 있는 에이전시.

그런 에이전시의 직원이 단언했다.

“저희는 최수원 선수가 그 조쉬 쿠퍼 선수에 못지않은 타격 재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에 어울리는 대우를 받게 해줄 자신이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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