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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가 그냥 홈런을 잘 침-41화 (41/305)

41화. 팀 보다 위대한 개인은 없다(4)

“야, 이건 그냥 혹시나 해서 묻는 말인데 진짜 솔직하게 대답해줘야 한다. 뭐, 나 상처받을까 걱정하고 그러지 말고. 알겠지?”

“뭔데 그렇게 거창해. 그리고 난 애초에 너 상처 받을까 봐 걱정한 적이 없어. 네 유일한 장점이 사실적시를 아무리 해줘도 상처 따윈 전혀 받지 않는 단단한 멘탈인데 상처는 무슨. 아, 미리 이야기해 주는데. 너 얼굴 빻았냐고 묻는 거면 빻은 거 맞아. 그거 절대 헤어스타일 때문 아니다.”

“아, 쫌!!”

“알았어. 알았어. 뭔데. 내가 아주 팩트로 조져줄게. 물어봐봐.”

안병영이 잠시 머뭇거렸다.

진우는 그 모습이 참으로 녀석답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 혹시 이기적이냐?”

“뭐야? 그게 질문이야? 난 또 뭐 대단한 거 물어본다고 그렇게 거창하게 구는 줄 알았네. 너야 당연히 이기적이지.”

“어?”

“뭐냐? 그 몰랐다는 반응은? 너 존나 이기적이지. 야 좀 생각을 해봐라. 너 지금 여기가 어디냐?”

“네 방?”

“내 방이 아니라 나랑 애들이 같이 쓰는 방이지. 맨날 네 놈 올 때마다 애들이 비켜주는 거고.”

“아니 그건 애들도 자기들끼리 모여서 TV 보는 게 편하다고 그러고······.”

“인마, 그것도 한두 번이지. 매번 자기 방에서 쫓겨나는데 그게 편하겠냐?”

“······.”

“근데 갑자기 네가 이기적인지는 왜 묻고 그러냐? 너답지 않게?”

“그냥 문득 내가 너무 내 생각만 하고 남들 생각은 안 했구나. 뭐 그런 생각이 들어서.”

이진우가 새삼스럽다는 눈으로 안병영을 바라봤다.

평소였다면 이기적이라는 말보다 훨씬 심한 말을 해도 별로 상관하지 않았을 강철같은 멘탈의 소유자가 어쩐 일인지 상당히 의기소침한 기색이었다.

“무슨 일인데? 왜? 누가 너 이기적이라 싫대?”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뭐 약간의 자기혐오 그런 거?”

“우와, 거의 자기애의 끝판왕인 안병영 입에서 자기혐오라는 말이 나올 줄이야.”

“야, 내가 자기애의 끝판왕은 아니지. 난 그래도 나를 제법 객관적으로 보지 않냐?”

“객관 같은 소리 하네. 내가 너랑 친구라서 그냥 봐주는 거지. 너 인마 정신의 성숙도가 딱 유치원 다니는 내 사촌 동생급이야.”

“유치원? 와, 진짜 어이없네. 그러면 그런 나랑 어울리는 너는 뭔데?”

“글쎄? 그런 모자란 놈도 아껴주는 좋은 친구?”

“아, 존나 짜증 나네! 이진우. 됐다. 너한테 진지하게 고민 상담을 한 내가 미친놈이지.”

“아무렴, 너 미친놈 맞지. 상식적으로 지금 타이밍이 네가 나한테 고민 상담을 할 타이밍이 맞다고 생각 하냐? 인마, 당장 내일이 토너먼트 3차전이야. 그리고 지금 네가 붙잡고 지랄하는 내가 선발이라고.”

***

박 감독은 이번 토너먼트는 여러모로 운이 따른다고 생각했다. 기본적으로 대진표부터가 그러했다. 가장 껄끄러운 상대인 경하고는 준결승에서나 만날 예정이고, 그다음으로 어려운 상대인 천남고는 결승까지 올라가야 만날 수 있다.

게다가 승부 역시 너무 순조롭게 풀렸다. 일단 1차전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2차전은 절대 쉽지 않은 상대였는데 3회에 대량득점을 해준 덕분에 5회 콜드게임으로 너무 쉽게 넘어왔다.

덕분에 선수들의 체력은 물론이거니와 투수들의 투구 수가 너무 잘 관리됐다. 물론 팀의 에이스인 최수원은 두 경기 연속 60개를 던졌다. 안병영 역시도 첫 경기에서 27개. 그리고 두 번째 경기에서 19개를 던졌다. 하지만 다른 팀에 비하자면 이 정도는 양반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3라운드 상대였다.

전반기 왕중왕전 4강에 올랐으며 이번 하반기 왕중왕전 역시 시드를 받았던 서울 B 권역 최강자 천마고등학교가 탈락하고 백원고등학교가 3라운드에 올라왔다.

경기·강원 권역에서 지구 2위를 했던 백원고등학교는 에이스 한 명에 기대는 전형적인 중소야구팀이었다. 그들은 2차전에서 놀랍게도 에이스 한민준이 147구 노히트노런을 기록하며 천마고를 3:0으로 눌렀다.

명백한 이변이었다.

2차전에서 147구를 던진 한민준은 이제 3차전에서는 피칭이 불가능했다. 게다가 5회까지만 두 경기를 치른 중앙고와 달리 앞선 두 번의 경기를 모두 9회까지 치렀으니 선수들의 피로 역시 상당할 것이다.

한 경기.

적어도 한 경기는 최수원에게 휴식을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왔다.

수원이의 어깨도 어깨였고 아무리 규정 내에서 관행적으로 이뤄지는 일이라고 해도 토너먼트 전 경기 출장 같은 것은 보통 사람들 눈에는 혹사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박 감독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이번 경기는 이진우 선발로 간다.”

“네? 차라리 병영이가 낫지 않을까요?”

“어차피 한민준 하나밖에 위협적인 선수가 없는 팀이야. 다음 경기, 그다음 경기까지 생각하면 어지간하면 병영이도 내보내지 않는 방향으로 하고, 설사 내보낸다고 해도 60개를 넘기는 건 곤란해.”

또한, 최근 중앙고의 타격감을 생각해보면 한민준을 제외한 다른 투수들을 상대로 대량득점을 못 하는 그림은 도저히 그려지지 않았다.

‘후우.’

1회 초.

이진우가 마운드에 섰다.

아주 어릴 적에 리틀 야구에서 전국대회를 뛰어본 이후 가장 큰 무대였다. 평소에도 자주 뛰는 목동이지만 이상하게 오늘따라 경기장은 특별했다.

수많은 카메라가 관중석에 가득했다.

물론 그 카메라가 원하는 것이 이진우 자신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그도 잘 알고 있었다. 리틀 야구를 졸업하고 중학 야구로 갈 때 즈음이었을까? 아니다. 그래도 중학교에 입학했을 당시에만 하더라도 할만했던 것 같다. 그래도 리틀 야구에서 중학 야구로 갔던 것은 스카웃을 받아서 갔던 것이니까.

중학교 1학년까지만 해도 지역단위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래도 학교 최고의 유망주였는데,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팀의 에이스는커녕 두 번째 투수로 밀려 있었다. 남들은 10cm씩 크는 시기에 3, 4cm씩 컸다. 대한민국 평균 키가 172라고 했던가? 분명 그것보다는 조금 큰 키였지만 174는 엘리트 체육을 하기에는 너무 작은 키였다.

어릴 때는 부모님을 닮아서 자신이 그렇게 자라지 않은 것이라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또한 더 유명한 선수에게 레슨을 해주지 못하는 부모님을 원망한 적도 있었다. 실로 멍청한 생각들이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그런 진우를 보면서 멍청하다 꾸짖는 대신, 자신들을 닮아 그렇다며, 자신들이 뒷바라지를 더 해주지 못해서라며 미안하다고 말씀하셨다.

아니었다. 미안해야 할 것은 진우 자신이었다. 그 유명하지 않은 프로 출신 코치에게 개인 레슨을 받는다며, 혹은 야구부에 돈을 내야 한다며 집에서 끌어다 쓴 돈이 대체 얼마인가. 그것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당신들의 삶을 희생하여 만들어 낸 피땀의 결정체였다.

그래, 정신이 제대로 박힌 놈이라면 진즉에 야구를 포기함이 옳았다.

애당초 재능도 부족하고, 프로도 갈 수 없는 이깟 공놀이에 무슨 미련이 그리 많아 아직 공을 던진단 말인가.

그러니 딱 여기까지다.

리틀 야구로 시작해서 11년 동안 공을 던졌다.

주말리그라도 우승할 수 있었던 것이 커리어의 정점이라고 생각했거늘, 전국대회의 3라운드에서 선발이라니 그야말로 남은 모든 미련을 털어낼 수 있는 경기 아니겠는가.

타석에 타자가 들어왔다.

조유진이 그에게 몸쪽 깊숙한 코스 전력을 다한 속구를 요구했다. 물론 타자를 압박하는 강속구는 없었다.

최선을 다해서 공을 뿌렸다.

최고 131km/h.

구속만 따지자면 안병영과 크게 차이는 없다.

하지만 그에게는 안병영과 같은 훌륭한 컨트롤이 없었다. 노리던 곳은 몸 쪽 깊숙한 코스였지만 향한 곳은 존의 한복판이었다.

-딱!!

타자의 방망이가 공을 두들겼다.

높게 뜬 타구.

그의 손가락이 언제나처럼 타구를 향해 움직였다.

외야 뜬공 아웃.

“나이스!!! 경석이 나이스 캐치!!”

선택받지 못한 사람의 마지막 피칭은 그렇게 시작됐다.

***

“혹시 최수원 선수라고 알고 계신가요?”

“중앙고 최수원이요? 요즘 우리 쪽 사람치고 걔 모르면 간첩이죠. 아니 우리 쪽 정도가 아니죠. 일반인 중에서 그 이름 들어본 사람도 꽤 있을걸요? 그러면 이미 게임 끝난 거예요. 사실 뭐, 일반인들이 고등학생 선수 이름 들어본다고 해봤자 드래프트 1라운드가 돼서 얼마 받은 고등학생 선수가 있다더라. 그런 거지. 일반인들 사이에서 고등학교 리그에서 활약해서 이름이 알려진다? 장담하는데요. 어지간해서는 불가능합니다. 당장 PD님도 최근 10년 사이 고교야구선수 이름 기억 나는 애 있으세요?”

“글쎄요······. 확실히 말씀 듣고 보니까 선수들이 드래프트 뭐 어쩐다. 그런 걸로 주로 이름 들어봤지, 최수원 선수처럼 뉴스나 신문 자주 타는 선수는 못 본 것 같네요.”

“거봐요. 그게 고교야구 현실이라니까요. 근데 최수원은 그 어지간한 걸 넘어섰다니까요? 들리는 이야기에는······. 아, 이건 말하면 안 되는데.”

“나오면 안 되는 이야기면 알아서 편집 잘해드릴게요.”

“그러지 말고 여기서 카메라 끄죠.”

“아, 스카우트님.”

“어차피 진짜 못 내보내요. 이거 내보내면 프로야구 규약에 걸려서 저 큰일이 납니다. 인터뷰어 하나 보내는 거예요.”

“아, 대체 뭐길래······. 아, 알겠어요. 알겠어. 감독님 그냥 카메라 꺼주세요. 진짜요.”

“그게 그러니까······.”

***

“경아PD, 그거 정말 날릴 거야? 어차피 녹음기 따로 틀어 놨던 걸로 음성은 땄잖아.”

“김 감독님. 이 바닥 일 원데이 투데이 할 것도 아니고. 다큐 하나 찍고 모가지 날아갈 일 있어요? 이거 내보내면 진짜 템퍼링 조항 어긴 걸로 그 스카우트님 위험하잖아요.”

“아니, 그거야 음성변조 넣으면······.”

“어휴, 안 돼요. 안돼. 어차피 빤한데. 그리고 그거 없어도 충분히 최수원 선수 부각 될 겁니다.”

“그래도 20억인데······.”

20억.

프로야구를 조금 아는 사람이라면, 아니 설사 모른다고 해도 상식을 초월한 거액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 수 있다.

당장 종전 최고 기록이 작년에 세워진 최민혁의 10억 5천이며 그것도 17년만의 기록 갱신이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존재했다. 바로 메이저리그의 관심이다. 작년에는 밀워키에서 그리고 17년 전에는 양키스에서 관심을 보였다.

작년에 밀워키가 최민혁에게 얼마를 비딩했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17년 전 기록의 경우 양키스에서 무려 250만 달러까지 제안이 왔었기에 10억이라는 거금이 가능했었다.

헌데 거기서 몇 천, 몇 억 추가도 아니고 대뜸 그냥 다이렉트로 두 배에 가까운 금액이라니. 그렇다면 대체 메이저에서 평가는 최수원의 가치는 얼마라는 것일까?

“그래서 더 좀 그래요. 우리 주제가 뭡니까? 청소년 아마추어 야구의 땀과 눈물이잖아요. 여기에 20억이 들어가면 느낌이 좀 그렇죠. 아무리 최수원이 얼마나 대단한 선수인지 부각하는 게 목적이라고 해도요.”

“하긴······. 그나저나 진짜 최수원이가 진짜 대단하긴 대단하다. 아니, 20억? 무슨 메이저리그도 아니고. 신인 계약금으로 20억을 태운다니 말이야.”

“일단은 그냥 소문이라잖아요. 게다가 그것도 팀이 꼴찌를 해야 가능한 이야기고요.”

“그렇기는한데 요즘 그 팀 기세를 보면 진짜 꼴찌 할 것 같더란 말이지. 설마 최수원 데리고 가려고 일부러 그러는 건가?”

“에이, 그럴 리가요. 그건 그냥 실력이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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