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수가 그냥 홈런을 잘 침-40화 (40/305)

40화. 팀 보다 위대한 개인은 없다(3)

“아, 미치겠네.”

한설고의 감독 구재경이 자신의 머리를 벅벅 긁었다.

답이 나오지 않아서일까? 아니다. 답은 뻔했다.

그들의 바로 다음 경기 상대. 중앙고의 최수원은 규격 외의 괴물이다. 몇몇 머저리들은 뭐 하반기 리그에서 나온 성적이네 뭐네 하면서 헛소리를 하는데 올해 황금사자기 최우수 투수 백하민이 지난 1년 반 동안 허용한 홈런이 총 여섯 개. 그게 전부 최수원이 기록한 홈런이다.

무조건 고의 사구다. 그것 말고는 답이 없다.

문제는 그렇게 나온 답이 과연 승리로 이어질 수 있느냐 하는 부분이었다. 실제로 하반기 지역 리그도 그렇고 지난 1라운드도 그렇고 그 답을 그대로 실행했던 팀들 가운데 승리했던 팀은 하나도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정면 승부하면 결과는 백하민이 될 확률이 농후하다.

“아, 무슨 고등학생이 약점이 없네······.”

현역 시절 나쁘지 않은 투수였던 구재경이다. 공이 빠른 것도 아니고, 특출난 변화구가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두둑한 배짱과 빼어난 커맨드로 무려 8년이나 프로 1군 무대를 경험했다. 하지만 그런 구재경조차도 자신의 전성기 기량을 가정해도 저건 답이 없었다.

그나마 약점이 있다면 선구안 정도? 단순히 존 설정의 문제인지, 아니면 선구안의 문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존을 빠져나가는 공에도 종종 방망이가 흘러나온다.

하지만 그것도 구재경이 판단하기에는 고교 레벨에서 감당하기 힘든 타격 능력을 갖추고 있다 보니 그렇게 해도 되니까 그렇게 하는 거라고 판단함이 옳다. 실제로 그렇게 빠지는 공도 넘긴 전적이 있었으니 말이다.

최수원에 관련된 자료는 그냥 접었다.

얘는 답이 없다. 어느 상황이건 그냥 거르는 게 답이다. 차라리 이 시간에 다른 애들 연구하는 게 맞다.

현역 시절.

구재경은 비디오실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며 오직 분석으로 부족한 재능을 보충해가며 1군에서 8년이나 버텼다는 것을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그렇기에 비록 커리어가 빵빵하지는 못했지만, 지도자로서 자질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신한다.

중앙고, 완벽하게 해부해서 이겨주겠다.

***

한설고의 에이스 장호연이 마운드에 올라왔다. 그는 대전&충청 권역 지역 리그에서 전, 후반기 모두 최우수 투수상을 받았다. 하지만 장호연은 스스로가 그리 대단한 투수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말은 나면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라.

이 아주 오래된 옛말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부산이나 광주 정도나 예외가 될까. 중학 시절 전국단위로 명성을 떨치던 아이들은 대부분 서울로 유학한다.

장호연은 중학 시절 120대 초중반을 던지던 평범한 투수였고, 지금도 최고 구속은 138km/h에 불과했다. 그가 생각할 때 그런 자신이 최우수 투수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한설고 감독인 구재경의 예리한 분석이 있었던 덕분이었다.

구재경이 분석하고, 포수인 양병준이 암기하고, 때때로 지시를 받는다. 그리고 장호연 자신은 그저 그들이 요구하는 공을 던지기만 하면 된다. 그러기만 하면 놀랍게도 고작 최고 138km/h에 불과한 자신의 공이 매우 효율적으로 상대 타자들을 틀어막는 마법과도 같은 일이 벌어진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 분명 크게 다르지 않았었다.

0

중앙고의 1번 타자를 높은 코스 속구 두 개와 빠지는 슬라이더 하나. 그리고 떨어지는 커브로 삼진. 이어지는 2번 타자는 낮은 코스 바깥쪽 공으로 땅볼 아웃. 그리고 3번 최수원.

-뻐엉!!

-뻐엉!!

-뻐엉!!!

-뻐엉!!

스트레이트 볼넷.

마지막 4번 타자는 몸쪽 높은 공으로.

-딱!!

외야 뜬공 아웃.

1회 초. 잔루 1루. 무실점.

2회 초. 잔루 1루. 무실점.

그리고 3회 초.

타석에 중앙고의 9번 타자가 들어왔다.

‘중앙고의 9번 타자 조유진. 포수. 포수로는 상당히 좋은 선수인데 뭐 그건 호연이 네가 신경 쓸 필요 없는 부분이고. 타자로는 엉망이다. 좋은 공을 줘도 상관이 없을 정도지. 어지간해서는 타구가 내야를 뚫지 못해. 다만 발이 엄청 빨라서 내야 땅볼에도 종종 일루에 살아나가거든. 그러니까 베스트 상황은 선행 타자가 있는 거지. 어지간하면 병살. 그게 아니더라도 선행 주자 아웃은 가능하니까 말이야.’

덕아웃의 지시는 과감한 승부.

여기서 굳이 공을 낭비할 필요는 없었다.

-딱!!

바깥 코스 꽉 찬 공.

조유진의 방망이가 공을 건드렸다. 역시나 내야를 벗어나지 못하는 타구. 일루 파울 라인을 따라 흐르는 공을 일루수가 잡기 위해 달려 나갔다.

공을 던진 장호연이 정석 그대로 일루 커버를 들어갔다. 하지만 조유진의 발이 조금 더 빨랐다.

그의 동료들이 이야기하는 공을 제대로 날려 보내기도 전에 일루를 향해 달리는 것 같은 일명 상하체 분리 타법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여러 가지로 단점뿐인 타법이었지만 적어도 내야 안타를 양산하는 데 있어서만큼은 발군이었다.

노아웃 주자 1루.

1루 주자가 리드폭을 제법 크게 잡았다.

타석에 다시 1번 타자가 들어왔다.

1회와 크게 다를 것은 없었다.

높은 코스 속구. 단, 이번에는 삼진을 끌어냈던 그 커브를 두 번째에 던졌다.

역시나 방망이가 따라 나왔다.

-따악!!

!?

하지만 결과가 그리 좋지 못했다.

짧게 바운드된 타구가 3루 파울라인을 따라 굴렀다. 삼루수가 빠르게 달려가 공을 잡았지만 그 과정에서 공을 한차례 더듬었고, 글러브에서 공을 빼는 속도 역시 그리 빠르지 못했다.

게다가 1루 주자는 포수 주제에 발이 매우 빨랐고, 타자 역시 1번 타자에 설만큼 충분히 빨랐다.

‘괜찮아. 이럴 수도 있지.’

노아웃 주자 1, 2루.

이어지는 2번 타자를 집요할 정도로 낮은 코스 바깥쪽 공으로 승부 했다. 바깥쪽 코스 공에 방망이가 쉽게 나오는 타자지만 스윙 궤적이 다운스윙에 가까운 탓에 낮은 코스 공에 대한 타구질은 그리 좋지 못하다.

그러니 병살을 유도한다.

볼, 스트라이크, 볼, 파울, 파울, 볼.

그리하여 볼카운트 3-2.

대기 타석에 최수원이 그를 바라본다.

실로 무서운 타자다. 감독님이 말씀하시기를 ‘이대로 당장 프로에 가도 진지하게 홈런왕을 노려볼만한 타자.’ 물론 그 와중에도 ‘한 시즌 144경기를 치러내는 요령을 몸에 익히기는 쉽지 않겠지만.’이라는 단서를 다시기는 했다. 하지만 그 말은 그 요령이 제대로 익지 않았어도 홈런왕을 노려볼만한 타자라는 의미였으며 그렇기에 시즌을 치르는 요령만 익힌다면 당장에 MVP를 노릴만한 타자라는 뜻이기도 했다.

장호연이 고개를 저었다.

상황은 명쾌했다. 지금 그가 상대할 타자는 최수원이 아니었고, 최수원은 답이 정해진 타자다. 그러니 그가 지금 집중해야 하는 것은 눈앞에 있는 중앙고의 2번 타자다.

일곱 번째.

날카롭게 연마된 정신이 존의 경계를 노렸다. 확실했다. 지금 그가 던진 공은 오늘 그가 던진 공 가운데 가장 좋은 공일 것이다.

-뻐엉!!

타자의 방망이가 나오지 않았다.

루킹 삼진이다.

‘응?’

하지만 심판의 손이 올라오지 않았다.

그의 호흡이 조금 빨라졌다. 저 멍청한 심판이? 판정이 잘못될 수는 있다. 심판은 그저 구장에서 신과 같은 권위를 휘두를 뿐, 그 능력은 신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예술적인 공에 오심이 나오면 기분은 상할 수밖에 없다.

-후우.

끓어오르는 가슴을 진정시킨다.

3회 초.

노아웃 주자 만루.

타석에 항거불능의 괴물이 올라왔다.

0:0

노아웃 만루.

“아······.”

한설고의 덕아웃, 구재경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탄식이 흘러나왔다.

“감독님 어떻게 할까요?”

구재경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보통이라면 답은 뻔했다.

1점을 내주더라도 땅볼을 유도해서 병살을 노린다. 운이 좋다면 삼중살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보통 상황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보통 때와는 그 답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다만, 유감이라면 비록 답의 내용은 달랐지만, 답이 뻔히 정해져 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정도였다.

-뻐엉!!

“이야······. 독하네.”

관중석에서 경기를 관전하던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물론 고교야구라고 항상 낭만 가득한 승부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그것이 한 번 삐끗하는 것으로 나락에 갈 수 있는 토너먼트라면 더더욱.

하지만 분명 이런 장면은 쉽게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심지어 프로에서도.

0:0 만루 상황에서 고의 사구.

밀어내기 볼넷.

공을 던지는 장호연의 얼굴은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그는 그저 덕아웃의 판단을 믿고 던질 뿐이다.

-뻐엉!!

방망이를 가볍게 내려놓은 최수원이 1루로 걸어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3루에 있던 조유진이 홈으로 걸어들어왔다.

3회 초.

1:0

여전히 노아웃 만루.

타석에 4번 타자 조규혁이 들어왔다.

자존심이 상했는가? 지금 그의 앞에 나간 타자는 이 시대 한국 고교 최강의 타자다. 아니, 어쩌면 그 수식어에서 이 시대와 한국을 떼버릴 수 있는 타자일지도 모른다.

4번 타자를 앞두고 밀어내기 고의 사구? 그럴 수 있다.

그래서 자존심이 상했는가?

‘당연하지.’

당연한 것과 별개로 속이 아주 부글부글 끓었다. 그냥 볼넷도 아니고 동점 상황에서 밀어내기 볼넷? 1점을 내주더라도 최수원을 상대하는 것보다 조규혁 자신을 상대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의미다.

‘아니, 근데 상식적으로 그게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조규혁이 고개를 저었다.

그게 얼마나 합리적인 사실이건 상관없다. 어쨌거나 기분이 나쁜 건 나쁜 것이고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건 끓어오르는 것이니까.

자세를 잡고 섰다.

지난 경기 홈런을 쳤던 감각이 손끝에 남아 있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오늘 구장은 목동이 아닌 신월. 목동보다 홈런이 더 잘 나오는 곳이다.

조규혁이 타석에서 마운드를 노려봤다.

***

장호연.

확실히 훌륭한 투수였다.

내가 병역면제를 위하여 맹타를 휘둘렀던 2030년 아시안게임 당시 준결승과 결승에 모두 선발로 출전했던 투수다. 물론 진짜 선발이었다는 건 아니고, 당시 팀의 선발들이 모두 기록상으로 1회에 좀 약점이 있던 투수들이었던지라 감독이 과감하게 오프너 전략을 사용했었고 거기에 낙점된 투수였다.

통상적으로 오프너라 함은 좀 담이 약한 투수를 사용하는 것이 정석이다.

그러니까 구위 상으로는 마무리도 할 만한데, 새가슴이라 승부를 결정짓는 위치에서는 못 써먹을 투수가 있다고 가정을 하자. 그래도 구위는 좋은 놈이라 참 아쉬운데, 승부에는 비교적 영향이 덜한, 하지만 상위 타순을 상대해야 하는 1회에 써먹는다면 참으로 좋지 않은가.

하지만 장호연은 그 반대였다.

공이 빠르고 강한가 하면 그건 아니다. 최고 구속이 142km/h에 불과했고 시즌 평속은 한 138km/h쯤 된다. 다만 제구가 아주 기가 막힌다. 2분할도 아니고 4분할로 공을 집어넣는데 본인 말에 따르면 컨디션 좋은 날에는 6분할도 된다고 했다.

게다가 성격은 또 얼마나 무덤덤한지. 우리 모두의 병역이 달린 그 아시안게임에서 준결승 대만은 삼자범퇴로 그리고 일본을 상대로는 잔루 1, 3루에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제 몫을 톡톡히 해냈다.

하지만······.

어차피 도루 따위는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만루 상황, 마운드의 장호연이 크게 와인드업했다.

볼카운트는 이미 1-2.

들어올 공은 아마도 몸쪽 높은 공. 규혁 선배가 가장 껄끄러워하는 공이다.

규혁 선배의 방망이가 컴팩트하게 움직였다.

-딱!!!

물론 약점이라는 건 쉽게 극복이 안 되니 약점이라고 부른다. 각자의 스윙에는 분명 공략하기 좋은 코스, 공략하기 좋은 공이라는 것이 존재했으니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것이 완성된 선수들에게 그만한 위력의 공이 들어갈 때의 이야기다. 장호연은 제구가 아주 좋은 투수였다. 특히 고등학생 때는 어디 만화에 나오는 9분할 투수까지는 아니더라도 단순히 위아래 안팎 정도가 아닌 그 이상으로 존을 구분해서 사용할 정도로 커맨드에 특출난 재능을 갖췄다.

하지만 그가 만개한 것은 프로에서 그 제구라는 것에 어느 정도 미련을 놓은 이후의 일이다. 142km/h의 속구로 존의 구석을 공략하는 것과 132km/h의 공으로 존을 더 세밀하게 구분하는 것.

단언컨대 더 까다로운 것은 전자 쪽이다. 심지어 그렇게 제구 된 공이 노리는 곳이 뻔하다면 더더욱.

규혁 선배의 두 번째 홈런. 그리고 고교 통산 1호 만루 홈런.

그리하여 3회 초 노아웃에 5:0

우리의 3회전 진출이 사실상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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