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수가 그냥 홈런을 잘 침-39화 (39/305)

39화. 팀 보다 위대한 개인은 없다(2)

1차전의 대승.

팀 선수들의 표정이 밝았다.

사실 최근 팀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아니, 나쁠 수가 없었다. 기본적으로 승리는 항상 팀을 단단하게 만드는 법이고, 지난 주말리그 내내 중앙고등학교는 연전연승을 거듭했으며, 최근의 연습게임 역시도 패배한 적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오늘 저들의 표정이 밝은 이유는 오늘 경기가 대승이었다는 점. 그리고 그렇게 대승한 경기가 토너먼트의 1차전이라는 중요한 경기였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그 승리가 자신들의 손으로 일궈낸 승리였다는 점이었으리라.

“양 코치. 안병영이랑 이진우는 좀 어때?”

“둘 다 마지막 토너먼트인 만큼 지금 의욕이 장난이 아닙니다.”

“오늘 병영이 공보니까 확실히 공의 위력은 살아 있더군. 날리는 것만 좀 어떻게 하면 될 것 같던데 말이야.”

“그 부분은 지속적으로 신경 쓰고 있습니다.”

“그래, 근데 혹시 진우는 뭐 없나? 수원이도 그렇고 병영이도 그렇고 자네가 손을 조금 본 이후로 확 달라졌는데, 그것까진 아니더라도 뭔가······.”

양세준이 잠시 당황했다.

하지만 그 당황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물론 그가 수원이나 병영이에게 뭔가 특별하게 해준 것은 없었다. 그저 평소에 하던 대로 지도했을 뿐이다. 하지만 어디 꼭 특별한 것이 있어야 뭔가 바뀐다던가. 원래 운동은 하루 이틀에 이뤄지는 게 아니고, 꾸준한 노력이 일정 범위에 다다랐을 때 폭발하듯 성장하는 법이다. 그러니 엄밀히 말하자면 자신의 지도 이후로 확 달라졌다는 말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아무래도 그 둘은 원래 포텐셜이 좀 있던 애들이고 진우는······.”

“그렇군.”

이번 시즌 청룡기에 참가한 팀의 총 숫자는 52팀. 12개의 시드 고교를 제외한다면 총 여섯 번의 승리를 해야지 우승을 차지할 수 있다. 오늘 있었던 1라운드가 비시드 고교끼리의 승부였다면 당장 다음 라운드부터는 한 지역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고등학교와 붙는다는 의미다.

쉽지 않았다.

물론 최수원은 치트키였다. 오늘도 보지 않았던가. 그 터무니없는 공을 결승타로 만들어버리는 배팅만 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야구는 혼자 하는 게임이 아니다. 아무리 위대한 투수가 있다고 해도 이기기 위해서는 점수라는 것이 필요하며, 아무리 위대한 타자가 있다고 해도 타선의 힘이 받쳐주지 못한다면 그와의 승부를 피하면 그만이다.

하물며 고교야구의 토너먼트다. 투수는 절대 완투가 불가능하고, 일정 이상을 던지면 다음 경기에서 뛸 수 없다. 결국 하나의 절대적인 에이스가 아닌 투수진 전체의 뎁스가 승패를 가른다. 마치 프로야구의 리그전처럼 말이다.

“야 수원아, 잘 봤지? 어? 내가 딱!! 치니까 공이 부웅 하고 날아가는데 사람들 표정이 어휴.”

“네, 규혁 선배. 일루에서 잘 봤습니다. 침착하게 잘 당겨 치시던데요.”

“내 안타는? 유격수와 삼루수 사이를 절묘하게 빠져나가는 적시안타 어땠어?”

“유진이 너는 운이 좋았지. 천남고 노우진이었으면 그대로 병살로 이닝 종료였을걸?”

“푸하하하하, 역시 수원이가 빈말은 하지 않는다니까. 쪼유 인마. 너는 오늘도 특타다. 아니, 그 상하체분리타법은 대체 왜 수정이 안 되는 거냐?”

“아니, 그래도 오늘은 제법 받쳐놓고 친 것 같은데······.”

“카메라 감독님!! 이따가 오늘 경기 영상 찍은 거 저희 좀 보여주시면 안 됩니까? 쪼유가 자꾸 헛소리하는데요.”

아이들 사이에서 왁자지껄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박 감독은 알고 있었다. 저 아이들이 저렇게 웃을 수 있는 것은 승리가 이어지는 기간뿐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웃음이 끊기는 순간이 그와 함께 3년을 같이 한 아이들의 마지막이라는 것도.

박 감독이 그 왁자지껄한 곳을 슬쩍 한 번 바라보고 그들에게 말했다.

부디 저 왁자지껄함이 조금이라도 더 오래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그득 담아서.

“양 코치, 서 코치. 그러니까 우리도 조금만 더 연구해보자고.”

“네.”“네!!”

***

“경아 PD 이거 진짜 괜찮은 작품 하나 나오겠는데? 애들 표정이 다들 살아있어.”

“거봐요. 내가 뭐라고 그랬어요. 최수원 걔는 좀 어때요?”

“글쎄. 모델이 좋아서 그림은 예쁜데 뭔가 좀 그 나이 같지 않게 여유롭다고 해야 하나? 분명 이거 큰 대회인데 별로 흥분한 게 없어. 자기가 잘하는 게 너무 당연하다는 얼굴이야. 뭔가 고등학생들이 읏샤읏샤 한다는 느낌으로 다큐가 나오려면 차라리 최수원의 분량을 좀 줄이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아니, 그건 안 되죠. 지금 제일 핫한 애가 걔인데.”

이게 바로 다큐멘터리의 문제다.

드라마나 예능은 작가나 PD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끌어갈 수 있다. 설혹 현장에서는 그게 잘 안 되더라도 어느 정도의 편집을 거치면 그런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가고 심지어 재밌다. 물론 다큐 역시 편집의 힘은 위대하다. 최경아는 9년 차 다큐 PD로 그 편집능력에 충분히 자신이 있었고 이것 역시 그녀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끌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다큐는 드라마, 예능과는 달랐다. 다큐는 그보다 훨씬 정직하다.

다큐 PD가 드라마나 예능 PD보다 더 도덕적이라서 그런 게 아니다. 단순히 장르의 재미가 어디에서 오느냐의 문제다. 어느 정도 편집이야 당연히 있지만, 그 방향 자체를 완전히 틀어버리면 다큐가 재미가 없어진다. 예능과 드라마에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조금 말이 안돼도 넘어가는 만들어진 판타지와 웃음이라면 다큐에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현실에 존재하는 진짜 감동이기 때문이다.

현실적이라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도전하는 청소년. 그리고 그 압도적인 천재성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넘어설 수 없는 현실이라는 장벽. 그 앞에 흐르는 땀과 눈물.

이것이 최경아가 이번 다큐멘터리에서 원하는 그림이었다.

“김 감독님. 감독님이 보기에 중앙고 애들 얼마나 올라갈 것 같으세요?”

“글쎄, 그거야 모르지. 이런 스포츠라는 게 워낙에 단판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니까.”

“아니, 누가 정확하게 맞추래요? 그냥 감독님이 보기에는 어떠냐고요.”

“글쎄, 뭐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최수원이가 지치는 타이밍이 얘들 떨어지는 타이밍 아니겠어?”

“그러면 한 준결승?”

“글쎄, 얼추 그 정도 아닐까? 준준결승 뛰고 준결승은 아무래도 경기가 좀 촘촘해질 테니까 그 이상은 진짜 운이 많이 따라야 한다고 본다.”

4라운드. 혹은 5라운드.

“근데 수원이가 꼭 지치리라는 법은 없잖아요. 야구는 체력 소모도 덜하기도 하고······.”

“야!! 생각을 좀 해봐라. 고등학생이잖냐. 본래 일주일에 한 경기 뛰는. 게다가 투구 수 제한도 있고. 아니, 애당초 사람들이 뭐 축구나 농구 같은 스포츠에 비하면 야구가 레저라고 하는데 그게 아니거든. 물론 한 경기 한 경기는 좀 쉬울 수도 있어. 하지만 그런 스포츠는 최소 사흘씩 쉬어주잖아. 이 회복이라는 게 보통 중요한 게 아니거든. 어? 근력 운동만 하더라도 말이야 같은 부위를 이틀 연속 안 하는데 야구 선수들은 대체 며칠을 연속으로 뛰어야 하는지 알아?.”

“알았어요. 알았어. 하여간 야구 이야기만 나오면 아주 목에 핏대를 세운다니까. 그러면서 또 이거 촬영하는 건 왜 그렇게 튕긴 거래? 딱 덕업일치구만.”

“야, 너 카메라 감독들도 각자 특기가 다 있는 법이다? 어? 스포츠 찍는 게 말이야······.”

“아휴, 알아들었습니다. 하여간 잔소리는.”

지금 최수원의 태도를 보자면 너무 침착하고 또, 자신만만하다. 불가능에 도전하는 청소년의 열혈 따위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김 감독님, 근데 그러면 혹시 이건 어때요?”

“뭐?”

“다큐 내용을 조금 이원화를 시켜서 원래 하려던 건 다른 애들한테 포커스를 맞추고, 수원이는 얘가 얼마나 대단한 유망주인지를 좀 강조하는 거죠. 그리고 그런 유망주가 있는데도 결국 우승은 힘든 것이 팀 스포츠라는 거. 뭐, 최수원도 지금이야 저렇게 침착하지, 최종적으로 탈락하면 감정 폭발하지 않겠어요?”

“얼마나 대단한 유망주인지를 강조한다고? 뭐 어떤 방식으로 하려고?”

“글쎄요······. 뭐, 인터뷰? 좀 유명한 사람들로?”

***

아침 훈련이 시작되기 직전.

아주 잠깐의 여유시간.

안병영이 최수원에게 슬쩍 다가가 주머니에 꼬깃꼬깃 접어둔 종이 한 장을 건넸다.

-반성문-

본인 안병영은 올해 4월 13일 천남고와의 경기에서 매우 훌륭한 수비를 보여줬던 최수원에게 수비를 칭찬하는 대신 ‘송구 똑바로 못 하냐?’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당시를 생각해보면 그런 수비를 해냈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고 자세가 뒤틀린 만큼 그 정도 송구만 해도 훌륭한 것이었는데 그 부분을 고려하지 못했다는 점이 본인의 커다란 실수였습니다.

특히 이 경우 문제가 되는 부분은······.

“다시.”

“어?”

“다시 써오시라고요. 제가 말씀드렸죠. 4과 말고 사과를 해야 하는 거라고.”

“아니······. 그러니까 그게······.”

“어렵지 않아요. 솔직하게 쓰세요. 솔직하게.”

안병영이 쓸쓸하게 반성문을 들고 돌아섰다.

어제 1시간이나 걸려서 자필로 작성한 반성문이었다. 하지만 반려 당하는 데는 고작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대체 뭐가 문제라는 것일까? 솔직하게? 내가 뭐 거짓말이라도 하고 있다는 이야기인가?

‘진우한테 상담을 좀 해볼까?’

자신도 모르게 든 생각에 안병영이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미쳤어. 안병영? 이 쪽팔린 걸 남한테 상담을 한다고?’

후배에게 반성문을 제출하는 걸 남에게 상담한다고?

심지어 그것도 이미 네 번이나 제출해서 통과는 딱 한 번밖에 못 했는데 대체 왜 통과를 못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상담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대체 솔직하게가 무슨 소리야······.”

자신이 작성한 반성문을 다시 한번 차근차근 읽어 보았다. 이전에 통과했던 것과 대체 무슨 차이가 있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육하원칙도 잘 지켰고 반성도 철저하게 했다.

아니, 뭔가 틀린 부분이 있다면 그걸 구체적으로 알려주기라도 하면 고치겠는데. 그냥 솔직하게라니. 그렇다고 때려치우라고 집어 던질 수도 없는 것이 최수원의 원포인트 레슨은 분명 확실한 효과가 있었다.

“그러니까 오늘 1교시가 수학이었지?”

아무래도 오늘 오전 수업 시간도 좀 편히 쉬는 것은 그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사람의 몸은 모두 다르다.

뼈와 근육의 길이와 부피, 관절의 유연성, 근육의 수축력이나 회복력 등등. 그런 의미로 봤을 때 멍게 녀석과 나의 몸은 질적으로 너무 큰 차이가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분명 도움이 되는 부분이 존재했다. 나 자신의 피칭을 홀로 점검할 때는 알 수 없던 것들이 멍게라는 확실하게 틀린 교보재를 두고 관찰하니 속속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레그 리프팅 탑 이후 밸런스 포인트에서 멈춤 동작을 삭제하니 스트라이드에서 무게 중심이 너무 빠르게 흘러나갔다. 게다가 밸런스 포인트에서 멈춤 동작을 삭제하고 빨라진 타이밍만큼 백스윙의 타이밍도 조금 빠르게 가져가야 했는데 그게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덕분에 릴리즈 포인트가 흔들리고 그게 제구의 난조로 이어진다.

정말 훌륭한 반면교사다.

-반성문-

본인 안병영은 올해 4월 13일 천남고와의 경기에서 매우 훌륭한 수비를 보여줬던 최수원에게 수비를 칭찬하는 대신 ‘송구 똑바로 못 하냐?’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당시 저는 제 피칭에 약간의 실수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해서······.

“흐음······. 뭐 아직 좀 부족하긴 합니다만. 일단 이리 와보세요.”

그래, 원래 사과문은 자기 자신의 허물을 바라보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다.

뭐, 아무리 멍게라도 통과와 다시를 거듭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것을 느낄 날이 오겠지? 그게 아니더라도 적어도 다음번에는 그런 나이스한 수비를 보고 송구 어쩌고 하는 개소리 대신 나이스 캐치 정도는 말하는 인간이 되리라 믿는다.

뭐, 어느 유명한 사람이 이런 말도 남기지 않았던가.

‘교육은 인간 행동을 계획적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이다.’

-뻐엉!!

“아이, 그거 아니라니까요. 거기서 조금 더 쭈욱 당겼다 가시라고요.”

“이······, 이렇게?”

물론 멍게가 인간의 범주에 들어갈지 아닐지는 좀 지나 봐야 알 일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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