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위대한 도전(1)
“네? 갑자기 고맙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니, 그냥 뭐랄까······.”
의아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수원의 모습에 이진우가 한참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정리했다. 분명 미리 정리해뒀던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머릿속이 엉클어져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그러니까 수원이 너 처음 봤을 때······.”
참으로 긴 이야기였다.
최수원이 신입생일 때 아직 2학년이었던 자신들. 그때부터 유달리 눈에 띄었던 그 녀석은 위아래도 없었고, 거기서 위는 자신들만이 아닌 3학년들까지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 너는 아무와도 친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자신들이 소외당하는 느낌을 주는 압도적인 실력자였다는 것. 그리고 그 가운데는 안병영도 너 때문에 선배들에게 많이 끌려갔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이야기를 삼킨 채 이진우가 그냥 웃었다.
그래, 지금은 구구절절 그런 다 지나간 이야기를 굳이 꺼낼 필요가 없었다.
“아니, 그냥 주말리그 우승시켜줘서 고맙다고.”
“에이, 뭐에요 선배. 고작 주말리그 가지고. 게다가 이거 저 혼자 한 것도 아니잖아요.”
“너 혼자 한 게 아니기는. 사실상 너 혼자 한 거지. 백하민 기세 보니까 네 홈런 아니었으면 아예 퍼펙트게임 할 기세더라.”
“그거야 뭐. 근데 유진이 녀석도 안타 하나 쳤고······.”
“짜식이 어울리지 않게 겸손한 척하기는.”
최수원이 머쓱하게 웃었다.
“그리고 고작이 아니야.”
“네?”
누군가에게는 통과점, 아니 어쩌면 통과점조차 되지 못하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일일 수도 있었다. 아마 그가 지금보다 조금 더 어렸더라면 그 불합리함에 분노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이 대학을 꿈꾸며 학업에 열중했던 고등학교 3년 동안, 이진우는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이라는 것이 얼마나 얄팍했는지, 그리고 그 얄팍한 재능의 끝이 어디까지인지를 매일매일 실감하는 하루를 보내왔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 야구를 시작해서 이제 고3이니까 벌써 11년 째네. 아마 넌 모를 거야. 솔직히 말해서 너라면 내가 야구 계속 왜 하는지도 이해가 잘 안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 진작에 때려치우고 수능 공부나 하는 게 인생에 더 도움이 될 텐데 말이야.”
“······.”
“짜식이. 정말 그렇게 생각했나 보네.”
“아니······, 그게 아니라······.”
“괜찮아. 수원아, 근데 말이야. 어쩌겠냐. 야구가 너무 좋아서 미치겠는데. 솔직히 나도 알아. 나 가능성 없는 거. 이만큼 해봤는데 모르면 그게 사람 새끼겠냐? 뭐, 병영이 정도라도 됐으면 기대라도 해보지. 운 좋으면 어디 지방에 대학이야 야구로 갈 수 있겠지. 근데 프로? 어휴, 똥볼 투수로 유명한 프로 투수가 던지는 속구 평속이 내 최고 구속보다 4km/h나 빠른데 프로는 무슨 프로겠냐. 워워, 그렇게 너무 미안한 표정 짓지 말고.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네가 그냥 스쳐 지나가는 여기. 주말리그 우승이 나한테는, 아니 어쩌면 우리 팀 대부분 녀석한테는 마지막이라는 말이야. 그래서 그 마지막을 우승으로 끝내게 해줘서 너무 고맙다고. 그냥 뭐, 그런 이야기가 하고 싶었어.”
이진우의 그 담담한 소회는 최수원에게 너무나도 무겁게 다가왔다.
10살에 처음 야구를 시작해서 서른넷까지 24년. 그리고 다시 돌아와서 삼 개월.
만약 누군가가 수원에게 어째서 야구를 했느냐를 묻는다면 그는 ‘내가 잘하는 일이니까.’라고밖에 답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
최수원 자신보다 한 살 많은.
하지만 그보다 스물세 살이나 어린.
청년과 소년의 경계에 있는 한 남자가 고작 십팔 년밖에 되지 않는 인생에서 얻었던 절망과 상처를 진솔하게 드러내는 그것은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최수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맺힐 만큼 말이다.
“야, 뭐야. 최수원 너 울어?”
“아, 아뇨. 그냥 바람 때문에 모래가 눈에 좀 들어가서.”
괜스레 눈을 비비는 수원을 진우가 따듯하게 바라봤다.
“아무튼 그래서 고맙다고. 그래도 나중에 내가 여자친구 생기면 고등학교 때 야구부로 우승도 해봤어. 뭐 이런 이야기도 할 수 있는 추억을 만들어줬잖아. 그리고 여자친구랑 결혼까지 해서 아이라도 생길 때쯤 되면 넌 프로 야구에 엄청 유명한 선수가 됐을 테니까. 그것도 자랑해도 되겠다. 좀 귀찮더라도 싸인도 좀 해주고 나 아는 척도 좀 해줘야 한다? 프로 야구 선수면 그래도 애들 팬한테는 엄청 잘해야 하는 거 알지? 그래야 나 같은 팬이 생기는 거야. 어? 무릎 꿇고 애들 눈 보면서 싸인도 좀 해주고 말이야.”
수원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뭐가 아니야? 설마 사인 안 해주고 모른 척 하겠다는 이야기야?”
“아니, 그게 아니라 여기가 선배의 마지막이 아니라고요.”
“그래, 인마. 나도 알아. 내 인생 창창하고 앞으로 야구 아니더라도 할 거 많은 거. 그냥 내 야구 인생의 마지막이 여기라는 거야.”
“아뇨. 그게 아니라. 선배들 대회 아직 하나 남았잖아요. 왕중왕전.”
“아니 그건······.”
진우가 말을 멈췄다.
그래, 왕중왕전. 어찌 그라고 욕심이 나지 않을까.
하지만 그건 애당초 불가능한 꿈이다.
전국의 기라성 같은 학교들이 모여 토너먼트를 벌인다.
일주일에 한 경기만 뛰는 주말 리그야 베스트 멤버, 혹은 최수원과 같은 규격 외의 괴물 하나로 이겨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토너먼트는 결국 팀 전체의 힘이 필요하다. 심지어 백하민을 앞세운 그 명문 천남고조차도 왕중왕전이 아닌 대통령배 딱 한 번밖에 우승이 없을 정도다.
“무려 십 년이 넘게 해온 일의 피날레인데 고작 여섯 개 학교가 아웅다웅했던 주말리그의 우승은 너무 초라하잖아요. 나중에 여자친구한테 자랑하려면 그래도 전국대회 우승 투수 정도는 돼야죠.”
그렇기에 수원 역시 우승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 어쩌면 수원 본인의 팔을 갈아 넣는다면 가능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 얻는 우승이 그들에게 무슨 가치가 있을까. 또한, 수원에게 왕중왕전은 하반기 주말리그와 마찬가지로 그냥 스쳐 지나가는 통과점에 불과했다. 굳이 거기에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수원은 지금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인생에 가장 중요한 매듭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좋아하지만, 좋아하는 것을 계속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진우의 담담한 술회 속에 얼마나 많은 끊어낼 수 없는 미련이 담겨 있는지도 느낄 수 있었다. 아무리 수원이라고 해도 재능이 없는 선수를 프로로 인도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가능하리라.
우승이 아니다.
수원은 그들에게 고작 지역 우승에 만족하고 그것을 유종의 미라 자위하는 기억을 대신하여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우승에 도전하는 기억과 경험을 선물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것은 설사 실패로 끝난다고 해도 더할 나위 없이 가치 있는 것이 될 수 있으리라. 비록 불가능한 일에 끝까지 머리를 들이밀었던 11년 청춘의 보상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할지라도 말이다.
“수원아······.”
진우의 목소리가 떨렸다.
어째서였을까? 이성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함을 알지만 최수원을 보고 있자면 어쩌면 가능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수원이 말을 이어갔다.
“아, 맞다. 근데 선배, 아직 여자친구도 없는데 벌써 상상 속에서 아이까지 만드시는 건 좀 오버 아닙니까? 일단은 여자친구부터 만드셔야죠. 그러고 보면 우승보다 그게 더 힘든 도전 같기도 하고······.”
“야, 인마. 내가 운동하느라 바빠서 안 만든 거지. 마음만 먹으면 금방이야.”
“그러셨군요. 잘 알겠습니다.”
“최수원. 뭐냐 그 눈빛? 진짜라니까. 아니, 내가 안병영도 아니고!!”
“아니, 진짜로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진심으로요.”
“뭐지? 분명 긍정을 하는데 이상하게 기분이 나빠······.”
기분이 나쁘다고 말하는 진우의 표정은 그 말과는 달리 그리 나빠 보이지 않았다.
홀로 벽을 세우고 고고하게 지내던 최수원은 어느 순간부터인가 조금씩 벽을 허물었다. 그 안에 조유진을 넣었고, 조규혁을 넣었으며, 안병영을······. 하여간 이제는 진우 자신까지도 그 품을 허락했다.
그리고 진우는 그것이 참으로 보기 좋았다.
***
어린 시절 나는 아버지가 싫었다.
다른 애들은 죄다 놀이공원이니 캠핑이니 가족끼리 놀러 간다는데 나는 그런 게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조금 자란 이후에도 여전히 나는 아버지가 싫었다.
아니, 어련히 알아서 야구 잘하고 있는데 대체 봉투는 왜 줘서 괜히 애들이 나만 싫어하게 만들고, 남들 다 기숙사에서 생활한다는데 부득불 학교는 집에서 다녀야 한다고 고집하지를 않나.
무엇보다 가장 많이 화가 났던 것은 그렇게 집에서 학교에 다니게 해 놓고는 일주일에 한 번 얼굴을 볼까 말까라는 점이었다. 당시 나는 이건 자라나는 아동 청소년에 대한 정서적 학대가 분명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거기서 더 자랐을 때.
그러니까 내가 결혼하고 다시 이혼했을 때.
그때 즈음부터는 아버지가 싫지는 않았다. 그래도 이제 머리가 좀 굵어져서 그런지 아버지 잔소리에 나도 적당히 독설로 대꾸할 수 있어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뭐 그렇다고 다른 가족들처럼 돈독한 것까지는 아니었고 그냥 적당히 생일이나 이혼기념일 같은 거 서로 챙겨주면서 데면데면하게 지냈다.
“쯧, 재혼은 언제 할 생각이냐.”
“한 번 갔다 왔으면 됐지, 재혼은 무슨 재혼입니까. 아버지도 한 번 만에 할 게 못 되는 걸 깨달아서 재혼 안 하신 거잖아요.”
기억하기로는 대충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것 같다.
그리고 그 후로 2년인가?
아버지가 갑자기 암으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망할, 한참 MVP를 향해 달려가던 시즌 막판이었는데 암에 걸린 걸 알리지 않은 것도 내 할 일 하라는 의도였고, 유언도 내 할 일 하라는 게 유언이었다.
물론 나는 그 해에도 2등으로 MVP를 타지 못했다. 아버지의 죽음 때문에 흔들려서가 아니었다. 그냥 빌어먹을 투타겸업때문이었다.
난 2등을 이미 두 번이나 했었지만, 그래도 눈물을 흘린 적은 없었다. 또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때 MVP 2위 소식을 듣고는 집안 욕조에 쪼그려 앉아서 꺽꺽거리면서 울었던 것 같다.
하여간 마지막까지 좋아할래야 좋아할 수가 없는 아버지였다.
어쨌거나 이 쓸데없이 긴 과거 회상의 결론은 나는 아버지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버지.”
“그래.”
무려 일주일만에 함께 하는 아침 식사였다.
열일곱의 몸으로 돌아오고 석 달. 나는 아버지의 얼굴을 본 것이 열 번도 채 되지 못했다.
“저 방학 때 미국 좀 다녀오고 싶은데요.”
“미국은 왜?”
“피칭 좀 제대로 배워보고 싶어서요.”
“피칭? 그거라면 작년에 인천 드래곤스에서 투수 코치했던 최규식 코치 붙여주마.”
무뚝뚝한 얼굴로 태블릿PC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기계처럼 답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마 이맘때의 나는 바로 이 정도 지점에서 항상 ‘네.’라고 답하며 포기를 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그게 뭐였든지 간에 말이다.
솔직히 그때는 아버지의 저 무뚝뚝한 얼굴이 너무 무서웠었다.
“싫은데요.”
하지만 이제는 오지 않을 미래에서 이미 너무 많이 해봤던 탓일까?
거절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탁!!
아버지가 태블릿PC를 탁자에 조금 거칠게 내려놓았다.
“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