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발전(1)
수원 돌핀스의 단장 서영준이 스카우트팀의 보고서를 책상 위로 내려놓았다.
2025년도 이제 절반이 지났다. 이제 올해의 드래프트까지 남은 기간은 이제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 작년의 돌핀스는 아주 훌륭했다.
한때 메이저에도 진출한 적이 있던 37세의 노장 박주원에게 연장계약을 제시할 때 언론 반응은 모두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작년 시즌 그는 무려 스물네 개의 홈런을 때려냈다. 게다가 올 시즌을 끝으로 메이저 진출을 앞두고 있는 수원의 프랜차이즈 백강호는 144경기 642타석을 소화하며 37홈런. OPS만 1.077을 기록하고 MVP를 수상했다.
신구의 조화.
단순히 두 선수만을 이야기함이 아니었다. 돌핀스의 타선은 전방위적으로 훌륭했고 팀 타율, 출루율, 장타율, 득점 모든 면에서 10개 구단 가운데 가장 훌륭한 성적을 기록했다.
만약 선발 용병만 조금 제대로 데려올 수 있었더라면 아마 두 번째 우승도 가능했으리라. 그리고 그것은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는 선발 용병은 그럭저럭 나쁘지 않게 뽑아왔지만, 작년까지 팀의 3선발이자 토종 에이스로 활약해줬던 신유민이 토미 존으로 시즌 아웃됐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올해 역시 돌핀스가 강력한 우승권 경쟁자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실제로 돌핀스는 시즌이 시작된 이후 한 번도 4위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었다.
“결국 최수원 리그라 그 말이로군.”
터무니없는 성적이었다.
아무리 고교리그가 수준 차이가 크고, 특히 하반기는 주전급 선수가 대거 빠진다고 해도 0.857/0.938/2.286이라니.
물론 여섯 경기, 17타석밖에 안 되는 스몰 샘플이라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라고 자신에게 되뇌어 보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가 있는 법이다. 프로 최정상급 선수가 고등학교 리그에 간다고 무조건 저런 성적이 나올 수 있을까?
천만에.
단언하건대 단순한 프로 최정상급 선수가 아니라 메이저리거 올스타급 선수를 가져다 놔도 저런 성적을 찍을 수 있다고 확언할 수는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최수원이 메이저리거 올스타급보다 대단한 선수라는 뜻은 아니다. 상위리그에서 비슷한 성적을 내는 선수라도 그 스타일에 따라서 하위리그를 폭격하는 타입일 수도, 혹은 그냥 상위리그보다 조금 나은 성적을 내는 선수일 수도 있는 법이니까.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고교야구를 저 정도로 초토화 시켜놓는 재능이라면 KBO뿐만이 아니라 세계 최고의 리그에서도 관심을 가질만한 재능이라는 점이다.
“현재 관심을 보이는 구단은?”
“네? 아. 그야 당연히 열 개 구단 전부 다······.”
서영준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 그거야 당연한 거고. 빅리그에서 관심을 보이는 구단이 어디 어디냐고.”
“아!! 아!! 그게 그러니까······.”
“후, 박 팀장. 지금 우리 몇 위야.”
“1위랑 2게임 차이 2위입니다!!”
“그래, 우리 1위랑 2게임 차이로 2위지. 그리고 3위랑은 1.5게임 차이고. 꼴찌랑은 14경기 차이야. 그러면 우리가 최수원 리그에서 우승해서 최수원을 차지할 수 있을까? 없을까?”
“우승이라면 아직 시즌도 많이 남았고 2경기 차이니까······.”
-쾅!!
“박 팀장, 박 팀장. 아니, 좀 생각을 하고 말을 하자. 최수원 리그 우승이 리그 우승이야? 문맥이 그렇게 파악이 안 되나? 최수원이 데리고 오려면 우승 해야 해? 올해 리그 꼴찌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아······.”
“미치겠네. 진짜. 박 팀장. 자, 잘 들어. 우린 어차피 최수원 못 데리고 와. 지금 최수원이 교통사고 나서 십자인대가 끊어져도 얜 무조건 다른 팀에서 데리고 간다고. 그런데 지금 박 팀장이 최수원이를 조사해서 뭐 어쩔 거야.”
“그게 그러니까······.”
“후······. 박 팀장. 거기 앉아서 ‘그게 그러니까······.’ 반복하면 뭐가 해결돼?”
“죄, 죄송합니다!!”
“아니!! 죄송하지 말고. 좀 가서 일하라고. 일. 메이저에서 최수원이한테 관심 두는 팀 어딘지 알아 와. 일본도 싹 훑어보고. 그리고 4년 전에 백주완이 KBO에 주저앉힐 때 준비했던 자료 있지?”
“네, 네!!”
4년 전.
아직 1차 지명이 남아 있던 시절.
돌핀스는 지역 내 최대어였던 백주완이 MLB에 직행하려던 것을 막았었다.
“그거 양념 쳤던 거 말고, 원본 자료로 해서 반대로 양념 쳐서 좀 가지고 와. 적당히 티는 안 나게. 근데 누가 봐도 이건 메이저 가는 게 이득인 것 같게. 알겠어?”
“알겠습니다!!”
“자자, 빨리빨리 움직여. 저런 터무니 없는 재능이 쓸데없이 KBO에서 시간 낭비하는 건 말이 안 되잖아. 그러니까 우리가 얼른 대승적인 차원에서 빅리그로 보내주자고.”
***
중앙고의 주전 포수인 조유진은 최근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과연 계속 이대로 해도 괜찮을까?’
사실 이전이라고 해서 그런 고민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제법 괜찮은 수비형 포수였지만 그렇다고 드래프트에 확실히 뽑힐만한 포수인가 묻는다면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는 수준이었으니까.
문제는 타격 성적이었다.
최근 그의 슬래시 라인은 0.286/0.375/0.357로 전반기 리그에 비하자면 매우 훌륭했다. 특히나 최근 고교리그가 투고타저임을 감안한다면 아무리 하반기 리그가 엘리트급 선수의 성적이 좀 잘 나오는 경향이 있다고 해도 무시할 수 없는 성적임은 확실하다. 하지만 바로 옆에서 뛰는 선수의 성적을 생각해보면 결코 만족할만한 성적이 될 수 없었다.
“수원아 나, 이대로 괜찮을까?”
“엉?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그의 질문에 최수원이 대체 그게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냐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아, 물론 당연하게도 지금 조유진이 비교하는 사람은 최수원, 이 괴물 딱지는 아니었다.
0.857/0.938/2.286.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숫자란 말인가. 타율이 0.857? 아니, 현재 조유진 본인의 OPS는 0.732로 리그 전체를 통틀어보면 그렇게 낮은 것도 아닌데 이게 저 괴물 놈의 타율보다 낮다. 게다가 출루율은 뭐? 0.938? 망할, 현재 리그에 OPS 2위가 0.938이다.
심지어 2.286? 대체 그게 야구에서 가능한 숫자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괴물 딱지는 놀랍게도 타출장으로 그런 숫자를 찍어버렸다. 이건 뭐, 비교를 하려고 해도 어느 정도 따라는 갈 수 있어야 비교할 마음이 생기지.
“아니, 연습은 같이하는데 도통 나만 발전이 없는 것 같아서.”
“발전이 없기는. 너 인마 전반기에 슬래시 라인 전부 2따리였잖아. 그거에 비하자면 지금은 타율이야 여전히 2로 시작하지만, 출루율이랑 장타율은 3 아니냐. 뭐, 후반기가 전반기에 비해서 좀 덜 빡셌다고 쳐도 그 정도면 장족의 발전이지.”
“아니, 그건 그런데······.”
-딱!!
시원하게 돌아간 방망이가 타구를 저기 운동장 왼쪽 끝 그물망 상단으로 날려 보냈다. 방망이를 휘두른 남자는 헐렁한 유니폼으로도 다 가려지지 않는 근육의 소유자 중앙고의 4번 타자인 조규혁이었다.
“아니, 훈련은 셋이 같이하는데 너야 뭐 그렇다 치더라도 규혁 선배 좀 봐봐.”
“규혁 선배?”
그는 지금까지 다섯 경기 13타수 4안타 1홈런 2볼넷. 0.308/0.400/0.538이라는 성적을 기록하며 현재 최수원에 이어 권역 OPS 2위를 달리고 있었다. 최수원이라는 괴물 딱지가 존재하는 바람에 타격 관련 상을 받는 것은 글러 먹었지만 그래도 전반기 그의 성적을 생각해보면 장족의 발전이다.
조유진은 그의 발전을 옆에서 똑똑하게 지켜봤다.
그렇기에 그는 타격 코치인 서민우가 조규혁이 드디어 자신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타격에 조금 눈을 떴다고 이야기하는 것과는 달리 사실 정확하게 서민우가 시키는 것과 반대로 갔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강하게 당겨서 퍼 올려라.
요즘 인터넷만 조금 쳐봐도 여기저기 다 나오는 이야기다. 하지만 조유진이 경험해본 현실의 야구는 달랐다.
물론 알루미늄 배트를 쓰는 중학 야구까지야 그렇게 해도 통하는 애들이 많았다. 하지만 고교야구로 와서 나무 배트로 바뀐 다음에는 그런 식으로 타격하면 어지간하면 전부 외야 뜬공으로 끝이다. 결국 최대한 3루 쪽으로 밀어치고 빠르게 1루까지 달려가는 게 최선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바로 옆에서 최수원에 이어 조규혁까지 그 최선이 아닌 방식으로 놀라운 결과를 내는 것을 목격했다. 어쩌면 그 최선이라는 것이 사실 최선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아니, 나도 그냥 규혁 선배나 너처럼 풀스윙으로 잡아당기는 게 정답이 아닌가 싶어서. 솔직히 나도 공에 방망이 제법 맞추는데 내야 땅볼이 나오는 경우가 좀 많잖아. 근데 그렇게 휘두르면 나도 타구에 힘이 실리니까 내야 뚫고 안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수원이 잠시 조유진을 빤히 바라봤다.
잠깐의 고민.
“글쎄다. 그건 아무래도 내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 것 같네. 야구에 정답이 어딨겠냐. 그냥 스타일이 다 다른 거지. 프로만 보더라도 박주원이랑 최규혁이랑 둘 다 홈런왕 한 적 있지만 스타일 완전 다르잖아. 하나는 박주원은 어퍼스윙으로 띄워서 크게 날리는 스타일이고 최규혁은 레벨 스윙으로 배럴 타구 만드는 데 집중하는 스타일이고. 결국 내가 어떤 걸 잘할 수 있느냐를 찾는 게 중요한 거지, 뭐 어느 게 딱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생각보다 훨씬 진지한 대답.
무엇보다 놀랐던 점은 공부라고는 쥐뿔도 못 하는 최수원이 어퍼스윙이니 레벨 스윙이니 배럴 타구니 하는 이야기들을 너무 자연스럽게 한다는 점. 그리고 프로 선수들의 스윙 스타일까지 머릿속에 꿰고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선수들 가운데서는 이런 거 저런 거 공부 많이 하는 타입도 가끔 있긴 하다. 하지만 그건 매우 적은 숫자다. 애초에 운동하고, 학교 수업하기도 바쁜데 남는 여가 시간까지 그런 거 공부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뭐지? 최수원 주제에 왜 이렇게 똑똑한 거지? 이거 좀 이상한데?”
“뭐래 병신이. 헛소리하지 말고 가서 방망이나 휘둘러. 다음 경기 하민이 형 선발이던데 그나마 3자 만들어놨던 출루율이랑 장타율도 다시 2따리 되기 싫으면.”
“불길한 소리 하지 마. 안타 2개 쳐서 타율도 3할 만들 거거든?”
“응, 백하민 황금사자기 최우수 투수. 그리고 네 전적 0.000/0.000/0.000.”
“아, 최수원 졸라 얄밉네. 두고 봐라. 내가 내일 경기에서 꼭 안타 친다.”
“그래, 제발 좀 부탁한다. 야, 네가 나가야 나도 타점 좀 올리지. 나도 아주 이제 솔로 홈런 지겹다. 지겨워.”
그리고 마침내 후반기 주말리그 마지막 경기.
황금사자기 최우수 투수.
천남고의 백하민이 마운드 위로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