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나는 늘 특별했다(2)
지연이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날 경기의 여파는 내 생각보다 훨씬 대단했다.
평소에 워낙 사업이 바빠서 왕중왕전 정도 되지 않으면 경기 관전은 나오지 못하는 아버지도 이번 주말에는 지인들과 함께 경기를 보러 오겠다고 하실 정도였으니까.
게다가 월요일 아침.
무려 이주 연속 아침 조회가 있었다. 평소라면 숙면 시간이 확보됐다고 개꿀이라고 했겠지만 매우 안타깝게도 오늘 조회의 주인공은 나였다.
“(전략)······ 이를 칭찬하고자 이 표창장을 수여합니다. 2025년 5월 13일 중앙고등학교장 곽. 대. 룡.”
아니, 토요일에 경기 뛰고 이틀 동안 인터뷰랑 이것저것 적당히 끝냈는데 월요일 아침 조회에 대뜸 표창장을 수여하다니 나는 학교의 행정 처리가 이토록 신속할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가끔 있던 방송 조회 때도 항상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자서 그런지 얼굴도 생소한 교장이 나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리고 그나마 낯이 익은 학생부장 선생님은 커다란 렌즈 달린 카메라로 나와 교장을 연달아 촬영했다.
“그래, 운동하는데 뭐 어려운 건 없고?”
의례적인 인사.
아마 이게 시험이었다면 여기서 교장이 기대하는 정답은 신경 써주신 덕분에 그런 것 없습니다!! 라고 씩씩하게 답하는 것이겠지.
그리고 만약 여기서 표창장을 받은 사람이 진짜 열여덟 살의 최수원이었다면 그 정답을 맞혔을지도 모른다. 고작 한 살 위의 선배도 까마득했던 열여덟 소년에게는 감독보다 높은 교장은 더할 나위 없이 어려운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아쉽게도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나는 그 외양은 어떨지 몰라도 내면은 그로부터 십칠 년이나 더 굴러먹은 서른다섯 살의 중년 남자였다.
또한, 나는 이미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금일봉을 하사하러 왔던 구단주에게 한마디 하는 걸로 구단의 오랜 문제가 해결된 일이라든지, 홈런왕 결정되고 SNS에 내 사진 올린 대통령에게 리트윗 한 번 했더니 국가대표에 관련된 개 같은 문제가 해결된 일 같은 것들.
물론 교장과 구단주, 대통령. 그 스케일은 천양지차로 다르지만 현재 내가 소속된 곳에 권력자라는 데는 변함이 없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야구부에는 케이블 머신이랑 스미스 머신. 그리고 중량 덤벨이랑 원판이 필요합니다.”
“케이블 뭐? 뭐라고? 박 선생님 지금 이 학생이 말하는 게 뭐죠?”
“아, 그게 그러니까 운동기구를 말하는 것 같은데······.”
“지금 야구부에 운동기구가 부족한가요?”
“아니, 꼭 그렇지는······.”
“네!! 지금 인원수가 서른 명이 다 돼가는데 기구가 부족해서 중량 운동을 하려면 꼭 기다려야 합니다. 순번을 정해서 하고 있기는 한데 대기 시간이 너무 길어서 효율이 매우 떨어지는 상황입니다.”
교장이 고개를 갸웃하며 학생부장에게 다시 물었다.
“그 기구라는 게 많이 비쌉니까?”
“네, 그게 박감독이 올린 서류가 있기는 한데. 올해는 과학실에 들어갈 기자재들 비용도 있고······.”
“아아, 알겠습니다. 일단 관련 서류 바로 교장실로 가져다 주세요.”
역시. 권력이 최고다.
나름대로 야구부의 숙원사업 중 하나였던 체력단련실 운동기구 문제가 고작 교장의 말 한마디에 단박에 해결이 됐다.
“교장 선생님 감사합니다!!”
“허허, 감사는 무슨. 선수가 운동 열심히 하고 싶다는데 기구가 부실해서 운동 못하는 게 어디 말이 되나. 최수원 학생. 열심히 해서 꼭 좋은 결과 얻기를 바래요.”
“넵!! 아, 그런데 교장 선생님. 그 스미스 머신 말인데요. 3D로 해주시면 안 되나요? 그게 운동 효과도 좋고 부상 방지에도 엄청 좋다고 해서요.”
***
“와······, 이게 대체 몇 명이야?”
구의 야구공원.
조유진의 입이 쩍 벌어졌다.
분명 프로 구장으로까지 사용됐던 목동 야구장에 비하자면 구의 야구공원의 수용인원은 적었다. 하지만 관객석이 무려 500석으로 평소 그 좌석의 절반 정도 채우면 충분히 많이 채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야구장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스탠드 형식의 나무 좌석들은 앉을 자리도 없이 빽빽하게 들어찼으며 심지어 자리에 앉지 못한 일부 사람들은 여기 야구장은 뭐 이리 좁냐고 투덜거리며 경기가 보일만한 자리를 찾아 서성였다.
지난번 경기보다 많은 기자들.
그때와 마찬가지로 열 개구단의 스카우트들.
그리고 BJ 혹은 유튜버로 추측되는 개인용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까지. 물론 조유진은 평소 인터넷 방송을 즐겨보지 않는 탓에 알 수 없었지만, 주변에서 누군가 알아보는 이들이 있는 걸 보면 그래도 최소한의 인지도는 있는 사람들도 오늘 경기를 보러 온듯 싶었다.
‘아이 씨······.’
물론 저들의 목적은 최수원이다.
뉴스에도 나오고 신기록도 세우고 어쩌고 하니까 빨대 좀 꽂아 보겠다고 이렇게 찾아온 것이겠지. 하지만 자신의 플레이를 불특정 다수가 본다고 생각하니 긴장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무엇보다······.
‘아니, 외국인은 또 뭐야.’
큼지막한 카메라를 든 외국인.
3대 500은 물론이거니와 600도 너끈히 칠 것 같은 거대한 흑인 남자가 카메라를 세팅하며 뭐라뭐라 떠들고 있었다. 사람이 워낙 크다 보니 그 커다란 카메라가 조막만해 보인다.
설마 메이저리그 스카우트인가?
설득력이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고작 두 경기라고 하기에 지지난 경기와 지난 경기에서 수원이가 보여준 임팩트는 너무 강했다.
151km/h를 던지는 홈런왕이라니. 요즘 메이저리그도 투타 겸업으로 뜨겁다던데 최수원 정도면 충분히 투타겸업을 노려볼만할지도 모르겠다.
-뻐엉!!
약 70미터 밖에서 최수원이 던진 공이 미트에 틀어박혔다.
깔끔하다.
그나저나 감독님은 대체 무슨 생각이신 걸까? 지난 경기야 수원이 홈런 신기록이 달렸으니 선발 투수가 아닌 지명 타자로 내보냈다고 하지만, 오늘은 아예 우익수라니. 설마 진짜로 수원이를 투수가 아닌 야수로 전환 시키려는 걸까?
하지만 그러기에는 151km/h를 던지는 어깨가 너무 아까울뿐더러 지금 팀에 제대로 된 투수라고는 최수원 저 녀석과 병영 선배뿐이다.
-뻐엉!!
조유진이 던진 공을 최수원이 가볍게 받아냈다. 조금 높았는데 뒤로 물러나는 대신 팔을 위로 쭉 뻗어 잡아내는 모습이 제법 멋지다.
‘확실히 기럭지가 길어서 그런가?’
그러고 보니 인터넷 댓글 중에서 최수원 잘생겼다는 댓글들도 제법 많았다. 일일이 찾아가며 비공감을 누르기는 했지만 지금 그라운드에서 공을 던지고 받는 꼴을 보니 인정하기 싫어도 인정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물론 그래도 비공감은 누를 거지만.’
경기가 시작됐다.
병영 선배는 그리 잘 던지지 못했다.
조유진 본인이 공을 받았기에 잘 알 수 있었다. 오늘의 병영 선배는 그냥 평소 그대로의 병영 선배였다. 이를 악물고 던지면 132km/h 대신 제구가 좀 흔들리고 적당히 던지면 128 전후의 공이 제법 원하는 코스에 들어온다. 커브는 별로였지만 슬라이더는 괜찮았다.
“나이스!!!”
그러니 지금 마운드의 병영 선배가 포효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오늘 공을 잘 던졌다기보다는 상대 팀의 방망이가 맛이 갔다고 보는 것이 맞았다.
7이닝 4피안타 2볼넷 6삼진 그리고 1실점.
104개의 공을 던지고 그가 마운드를 내려왔다.
그리고 7회 말.
9번 타자인 조유진 자신의 차례가 돌아왔다.
***
사람들은 큰 경기에 강한 선수라느니 뭐 핀치 히터라느니 하는 표현을 종종 사용한다.
정말로 그런 선수가 있느냐. 없느냐로 갑론을박이 많긴 한데 일단 그런 선수가 있다고 쳤을 때 조유진은 절대 기회에 강한 선수는 될 수 없었다.
-부웅!!!
“스트라잌!! 아웃!!”
오늘 경기 벌써 세 번째 삼진.
물론 본래도 타격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오늘 유달리 몸이 굳었다. 관중의 숫자와 언론사의 카메라들에 새삼 긴장한 탓으로 보였다.
7회 말. 원아웃에 주자 없는 상황.
카메라 렌즈가 모두 나를 향했다. 풀이 죽어 들어오는 조유진의 엉덩이를 가볍게 두들겨 주고 타석에 섰다.
왼손으로 헬멧을 고쳐 쓰고 머리를 탁탁 두 번 두들겼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배트를 두 번 강하게 꾹 쥐고 홈플레이트를 한번 톡 두들긴 뒤 자세를 바로 잡는다.
마운드의 투수가 공을 뿌렸다.
오늘 경기에서 보여준 그 루틴 그대로였다.
-뻐엉!
-뻐엉!!
-뻐엉!!!
-뻐엉!!!!
스트레이트 볼넷.
지난 경기에서 살짝 빠지는 공을 넘긴 탓인지 진짜 방망이에 공이 스치지도 못할 곳으로 내던졌다. 혹시라도 뒤로 빠지더라도 어차피 주자도 없으니 상관없다는 뜻이겠지.
3타석 연속 볼넷.
뭐, 타당하다면 타당한 선택이긴 한데······.
일루에 걸어나가 헬멧을 벗고 정강이에 찬 보호대를 풀었다. 1루 코치님이 건네주는 도루장갑을 낀 채 살짝 몸을 낮추고 세 걸음 정도 거리를 벌렸다.
여차하면 2루로 달릴 수도 있다는 위협.
물론 실제로 달릴 생각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가뜩이나 긴장해서 흔들리는 투수다. 이것만으로도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마운드의 투수가 두 개의 공을 던져 각각 파울과 볼.
그리고 세 번째.
-딱!!
우리의 작전형 2번 타자가 놀랍게도 유격수 키를 넘기는 안타를 기록했다.
제법 큼지막한 타구였다.
전력을 다해서 2루로 달렸다.
타구를 직접 살피는 짓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런 건 3루 코치의 몫이다.
‘달려!!’
2루를 밟은 발을 멈추지 않았다. 크게 여섯 걸음. 이제 3루까진 그리 멀지 않았다. 응? 그런데 3루 코치의 팔이 멈출 생각을 하지 않고 돌아간다.
상대 팀의 수비에서 뭔가 실수라도 있었던 걸까? 하긴, 뭐 고교야구에서 특별히 이상한 일은 아니다. 특히나 오늘 상대팀의 수준을 생각해본다면 더더욱.
오른 발.
왼 발.
다시 오른 발.
그리고 다시 왼 발.
베이스의 안쪽을 살짝 밟았다. 원심력에 따라 몸이 밖으로 딸려 나가려고 한다. 이미 몸은 살짝 왼쪽으로 누인 이후다. 오른팔의 움직임을 키웠고 왼팔의 움직임을 억제했다.
그렇게 밖으로 크게 돌 것 같은 몸을 최대한 억제하며 홈을 향해 빠르게 달음박질쳤다.
저기 비어 있는 베이스가 보인다.
포수가 살짝 앞으로 나와 공을 기다리고 있다.
느낌이 왔다.
헤드퍼스트 슬라이딩.
몸을 날려 왼손으로 가볍게 홈플레이트를 –톡 두들겼다.
-뻐엉!!
그리고 거의 동시에 울리는 포구음.
넉넉하게 내가 빨랐다.
“세이프!!!”
7회 말. 원아웃에 8:1 콜드게임.
경기가 종료됐다.
***
벤자민이 한국에 온 지도 벌써 3주째.
그는 매번 경기장을 찾았지만 여전히 이곳에 온 목적은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Suwon Choi(OF)
Hit : ??
Power : ??
Run : 55
Fielding : 40
Arm : 70
Suwon Choi(RHP)
Fastball : 60
Slider : 45
Changeup : 40
Control : 40
“네, 보스. 아쉽지만 지지난 경기와 지난 경기에 이어 오늘 경기도 첫 타석에서의 파울을 제외하고는 타격은 보지 못했습니다.”
“@#$%@$#%^”
“아니, 그게 상대 쪽에서 아예 상대를 안 해주는 데 제가 뭐 별 수 있습니까? 상식적으로 그만한 타자라면 상대팀이 그러는 것도 당연하죠. 아 대신 이번에는 피칭을 좀 봤습니다. 피칭도 아주 좋았습니다. 물론 아직 몸도 키워야 하고 고칠 점도 많아 보였습니다만, 반대로 말하자면 그런 상태로도 151km/h를 던진다는 거죠. 그리고 다음주 화요일부터는 황금사자기라는 토너먼트가 열린다니까 거기서는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네, 네, 알겠습니다. 자세한 건 이전처럼 영상과 보고서를 함께 보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