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수가 그냥 홈런을 잘 침-20화 (20/305)

20화. 나는 늘 특별했다(1)

“으······. 벌써 월요일이라니.”

올해로 서른셋.

수도권 대학을 나와 서울에 위치한 중소기업에 다니는 오규환씨는 야구를 좋아하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는 하루를 시작하는 그만의 루틴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출근똥이었다.

“역시 똥은 월급 받으면서 싸야지.”

물론 어차피 업무량은 정해져 있고 포괄임금제라는 명목으로 주어지는 임금이기에 그 업무를 다하지 않으면 퇴근 따윈 하지 못하는 환경으로 매일 같이 야근하는 규환 씨였지만, 그럼에도 그는 도저히 이 루틴만큼은 포기할 수 없었다.

“응?”

그리고 그런 그의 또 다른 작은 취미는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는 와중에 스마트폰으로 프로 야구 기사 두 개 정도를 읽는 것이었다.

물론 프로야구광인 그는 이미 전날은 물론이거니와 어지간한 경기의 결과는 모조리 꿰고 있었지만 그래도 일주일의 경기 결과를 종합한 칼럼류는 또 그 나름의 맛이 있는 법이었다.

“이게 뭔 헛소리야?”

하지만 오늘.

포털 스포츠 기사 상단에 유달리 그의 눈을 자극하는 기사가 하나 있었다.

[한국 고교야구에 혜성처럼 등장한 제2의 오타니!! 151km/h를 던지는 홈런왕 최수원을 만나다.]

“오타니?”

사실 KBO의 팬 가운데는 NPB는 당연하고 MLB쪽 선수를 제대로 모르는 사람의 수가 적지 않았다.

그들은 보통 한국인 선수가 MLB에 진출했을 때 그와 관련된 선수들만 약간 아는 정도였고, 그렇기에 21세기 메이저리그를 지배했던 마이크 트라웃조차도 그들에게는 그냥 ‘어디서 들어는 본 것 같은 선수’에 불과했으니까.

하지만 그런 그들에게도 오타니 쇼헤이라는 이름은 특별했다. 단순히 아시아인이 MLB에서 압도적인 활약을 펼치기 때문이 아니었다.

사실 아시아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최정상급 활약을 하는 것 자체가 처음이 아니었다. 또한 MVP를 타는 것 역시 처음이 아니었으니 오타니 쇼헤이의 인기는 단순히 아시아인이 미국에서 최정상급의 활약을 한다는 데 있지 않았다.

야구의 역사.

이백 년에 가까운 그 장대한 역사 속에서 인종과 국가를 떠나 그와 같은 선수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오타니 쇼헤이는 단순히 아시아인의 한계에 도전하는 야구선수가 아니었다. 그는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아시아인이었다.

그렇기에 오규환 씨는 그 기사 제목에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그냥 빠른 공을 던지는 고등학생이 타석에서 좀 활약을 한 것 같은데, 애초에 야잘잘이라고 재능 있는 투수가 고교리그에서 타석에서도 활약하는 일은 흔하다.

당장 한국인 가운데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굵직한 족적을 남긴 타자 최성수의 경우만 보더라도 고등학생까지는 투수와 타자 양쪽 모두로 크게 이름을 날렸었다.

게다가 괜히 조회수 좀 끌어보자고 어린 선수까지 데려다가 오타니 이름을 써먹는 건 이 선수에게도 그리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아직 덜 여문 선수에게 대중의 관심이란 약보다는 독이 되는 경우가 더 많았으니까.

“하여간······. 기레기들 설레발은 진짜.”

하지만 그렇게 투덜거리면서도 결국 눌러볼 수밖에 없는 기사였으니 제2의 오타니 쇼헤이, 151km/h를 던지는 홈런왕이란 그만큼 매력적인 단어들임은 분명했다.

***

경기가 끝나고 감독님이 나에게 직접 와서 말했다.

“네? 인터뷰요?”

“그래, 다른 곳에서도 하고 싶다고 요청이 잔뜩 들어왔는데 뭐 잡다한 인터넷 신문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사실 고려일보는 무시하기가 좀 그래서 말이다.”

“고려일보라면 지난 주에 제 홈런 기사 실었다는 그 신문 말씀이시죠?”

“정확히 말하자면 실은 건 아니지. 그건 인터넷판이었으니까. 근데 이번에는 내일 아침 종이 신문에 올릴 거라고 하더라. 일단 잠깐 10분 정도 오늘 경기에 대한 것만 인터뷰한다고 하니까 긴장할 필요 없이 가서 대답만 잘하면 될 거다.”

“네, 알겠습니다.”

사실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니었다.

어제 내가 보인 활약은 십대 일간지를 넘어 TV에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만한 대기록이었으니까. 아마 오늘 저녁에 공중파에서 인터뷰어가 오고 뉴스에 한 꼭지 정도 잠깐 나간다고 해도 크게 이상하지 않다.

게다가 요즘 시대에 무슨 종이신문이냐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이게 생각보다 파급력이 만만치 않게 크다. 10대 일간지, 그 가운데서도 3대 일간지로 꼽히는 고려일보정도 되면 여전히 발행 부수만 백만 부를 넘기고 그 가운데 유료부수도 70만부 정도 된다.

무엇보다 인터넷 뉴스들은 그 이미지상 좀 찌라시의 느낌이 있지만 종이 신문에는 무시할 수 없는 전통이라는 것이 있어서 비슷한 글이 실려도 설득력과 공신력이라는 것이 생겨난다.

“안녕하세요. 고려일보 이지연 기자라고 합니다.”

응? 이지연?

잠깐만, 얘가 왜 여기서 나오지?

짧은 머리. 화장으로 가려지지 않는 다크 서클.

오늘의 인터뷰어인 고려일보의 기자는 퇴폐미가 넘쳐나는 미인으로 나에게는 매우 익숙한 얼굴이었다.

“안녕하세요. 최수원입니다.”

그러고 보니 얼핏 일간지 기자로도 뛰었던 적이 있다고 듣긴 했던 것 같다. 뭐라더라? 청운의 품을 안고 언론고시 힘들게 통과해서 기자가 됐는데 어디 인터넷 찌라시 기레기들이랑 하는 일이 별반 다를 게 없어서 때려치우고 다시 시험 봐서 공중파로 왔다고 했었나? 아무튼 그렇다.

물론 그때와는 인상이 조금 다르긴 했다.

옷도, 머리도, 피부도 훨씬 더 찌들어 있었지만 그럼에도 눈동자가 훨씬 더 반짝인다.

“최수원 선수, 오늘 경기 아주 잘 봤습니다. 사실 지난 주에도 최수원 선수에 관해 기사를 하나 썼는데 혹시 보셨나 모르겠네요.”

“아, 죄송합니다. 평소에는 훈련 때문에 너무 바빠서······. 그나마 시간이 조금 남는 건 수업 중간중간 쉬는 시간인데 수업 시작 전에 폰을 다 걷어가서 인터넷 할 시간이 없어요.”

“하하, 그렇군요. 이거 갑자기 확 고등학생이라는 실감이 드는데요?  하지만 오늘이 지나면 아마 인터넷이 아니더라도 최수원 선수 본인에 관한 이야기를 언론을 통해 들을 수밖에 없을 것 같네요. 보시다시피 오늘 사고를 내도 아주 제대로 내셨거든요. 5타석 3타수 3안타 3홈런 2볼넷. 지난 경기까지 더하면 8타석 6타수 6안타 6홈런 2볼넷입니다. 그러니까 최근 두 경기 슬래시 라인이 1.000/1.000/4.000이죠. 게다가 무려 6이닝 무실점!!”

다다다다 말을 내뱉는 지연이의 눈동자가 아주 반짝반짝 빛났다. 돌이켜보면 얘는 이전에도 그랬다. 진심으로 야구를 좋아하고 이 일을 하는 것에 가장 큰 보람을 느꼈다. 그래, 지연이는 살짝, 아니 대놓고 워커 홀릭이었다.

그리고 지연이를 누나가 아닌 이름으로 부르는 것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나와는 잠깐 사귄 적이 있었다.

당시에도 엄청 오래 애틋하게 사귄 건 아니었고 지연이도 나도 쿨하게 서로서로 좋게 헤어졌다. 물론 나는 좀 어릴 때라서 헤어진 이후에 헐리웃 식으로 좀 쿨하게 굴지 못하긴 했었다. 한동안은 SBC와는 인터뷰를 좀 피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괜찮다. 완전 쿨하다. 나도 미국에서만 9년을 살았는데, 뭐 지금 내 마인드면 거의 헐리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칭찬 감사합니다. 확실히 듣고 보니 제가 최근 두 경기에서는 조금 대단하긴 했네요.”

“조금이 아니죠. 장담하는데 오늘 공중파에서 저희한테 자료화면 요청 엄청 할 겁니다. 팀장님이 나한테 오늘 엘리츠랑 마린스 경기 있는데 거기 안가고 고등학교 경기에 장비 챙겨간다고 구박했던 것만 생각하면!! 아······, 아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흥분해서 쓸데없는 이야기를 했네요.”

“괜찮습니다.”

“지난 경기에서 3연타석 홈런을 치셨는데요. 오늘 첫 타석에서 홈런을 치면 4연타석 홈런으로 20년 전 박주원 선수와 고교야구 타이기록이 된다는 점 알고 계셨습니까?”

“네,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혹시 기록 의식하고 계셨나요?”

아주 잠깐의 고민.

별것 아닌 질문이지만 생각보다 중요하다. 이전의 나는 첫 미디어 인터뷰를 조지는 바람에 진짜 몇 달을 크게 고생했다. 물론 이건 생방송도 아니고 지연이라면 알아서 잘 편집해서 내보내 주겠지만 그래도 앞으로 언론을 대하는 컨셉을 어떻게 잡을지를 결정짓는 첫 답변인 셈이다.

“네, 기회는 자주 오는 게 아니니까요. 그러니까 깰 수 있을 때 깨두는 게 좋죠.”

***

-쾅쾅쾅!!

“오 대리!!”

오규환 씨가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시간은 30분이나 지나 있었다.

평소의 그는 출근똥은 무조건 10분 내외, 길어봐야 15분을 넘기지 않는 국룰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인터뷰 기사를 시작으로 어제 저녁 9시 뉴스에 짧게 나온 최수원의 플레이, 그리고 유튜브에 올라온 조금 더 많은 영상들을 보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가는 줄을 몰랐다.

“@#$^%@$%#^@#$%!!!!!”

9시 30분 회의 시작인데 화장실에서 대체 몇 분을 있는 거냐며 소리를 지르는 팀장님의 목소리가 그의 귀청을 때렸지만 그리 큰 영향은 주지 못했다.

최수원의 기사에 달렸던 수많은 댓글들.

-고교야구 주말리그에서 홈런 좀 치고 151 던진다고 오타니? 진짜 요즘 오타니가 뜨니까 개나 소나 다 오타니 타령이네. 오타니는 고딩 때 160 던짐.

-fact) 오타니도 고2 때는 151밖에 못 던졌다.

-오타니는 구속이 다가 아님. 거기에 내구성이랑 체력까지 탈인간 급인게 핵심이지. 루스가 살아 돌아와도 지금 오타니처럼은 절대 못 함.

-고딩 때 투타 겸업은 제법 됨. 얘도 걍 그런 애들 중에 하나일 거임. 6연타석 홈런에 151던지는 어깨면 지금부터 전업으로 우익수 시키면 되겠네.

-오타니도 고 2때는 151던졌다잖아. 체격조건 보니까 오타니 못지 않은데 야수 시키기에는 아깝지. 막말로 160을 던지는 투수가 나올지도 모르는 건데.

-근데 이렇게 되면 이번 시즌은 최수원 쟁탈전인가? 꼴찌 경쟁 치열하겠네.

-응, 어차피 마수원임. 우리 2년 연속 꼴찌 ㅅㄱㅇ

-마린스 니네 이번 시즌 지금 6위잖아. 내가 볼 땐 얜 돌수원이 운명임.

-마, 니 DTD 모르나. 우리는 어차피 봄린스라 봄에만 반짝이다. 딱 기다리라. 조만간 또 10위 간다.

-본인 방금 설득됨.

-얘 이름 수원인 거 보니까 대충 봐도 수원 돌핀스 팬임. 암튼 그럼. 얜 돌핀스 올 듯.

2천개가 훌쩍 넘어가는 댓글들.

물론 그 가운데 대부분은 뻘소리들이었다.

하지만 다른 고교야구 관련 기사 대부분이 무플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실로 터무니없는 관심이다. 성공적인 제목 어그로인 것일까? 아니면 오규환 자신처럼 이 녀석의 플레이에서 뭔가 특별함을 느낀 것일까.

‘그러니까 이번 주말에 목동이라고 그랬나?’

월요일 아침 9시 45분.

오규환 씨는 벌써 토요일의 일정을 생각하고 있었다.

***

“데이빗. 우리 국제 유망주 한도액이 올해 4.75mil이었던가?”

“네. 그리고 그 중에서 1.25mil을 사용했죠.”

“아, 맞다. 그랬었지······. 그러면 3.5mil이 남았군. 끄응······. 이걸 어쩐다······. 아!! 옛날이 그립구만. 국제유망주 슬롯 트레이드는 대체 왜 막은 거야!!”

“만약 안 막혔다면 우리는 진작에 다 팔아치우고 3.5mil이나 남아 있을리가 없지 않을까요? 근데 갑자기 국제유망주 한도액은 왜요. 도미니카에 무슨 소식이라도 있어요?”

“노노노, 도미니카가 아니야. 한국. 한국이라고.”

조쉬가 데이빗에게 내민 태블릿.

그곳에는 151km/h의 공을 던지는 최수원의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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