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기회는 자주 오는 게 아니다(3)
목동 구장은 흔히들 아마추어 야구의 성지라고 말한다.
듣기로는 한 20년 전에는 동대문 야구장이라는 곳도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아무튼 고교야구 선수라면 누구나 목동 야구장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
한 때 프로야구 구단의 홈구장으로도 사용됐던 만큼 신월 야구공원이나 구의 야구공원보다 시설도 훌륭했고 특히 프로에서 사용하던 전광판을 그대로 사용했기에 뭔가 느낌부터가 달랐다.
오늘은 우리가 원정팀이라 경기 시작 50분 전부터 30분 정도 가볍게 몸을 풀었다.
-따악!!
배팅 케이지에서 규혁 선배가 툭 쳐낸 야구공이 담장을 두들겼다.
확실히 체급이 깡패는 깡패다.
저런 폼에 저런 타이밍이면 기껏해야 외야 플라이 정도가 한계여야 할 텐데. 그래도 담장까지 날아가다니 말이다.
이후로 규혁 선배가 몇 차례 더 공을 두들겼다. 그리고 그 가운데 담장을 넘어간 것은 단 하나. 선배가 케이지에서 내려오며 가볍게 투덜거렸다.
“역시 목동이라 쉽지 않네. 공이 안 뻗어.”
“맞바람이 좀 부나 보네요?”
“어.”
KBO 프로야구 팬들에게 목런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목동 하면 홈런 구장의 대명사다.
하지만 사실은 조금 다르다. 물론 구장의 크기가 그리 크지 않고 펜스가 낮아서 얼핏 보면 홈런이 나오기 쉬운 조건이긴 하다. 다만 그것은 목동 외야 쪽에 바짝 붙은 안양천을 고려하지 않은 이야기였다.
엄밀히 말했을 때 목동은 당시 홈런왕이 목동을 홈으로 썼기에 파크팩터가 살짝 타자구장으로 나왔을 뿐, 투수구장에 살짝 가까운 중립구장이다. 뭐, 실제로 우리 권역에서 사용하는 신월, 구의, 목동 가운데서 홈런이 제일 나오지 않는 구장은 목동이기도 하고 말이다.
-딱!!
야수가 던져주는 공을 가볍게 받아넘겼다.
확실히 몸이 조금 더 잘 돌아간다.
물론 고작 일주일.
규혁 선배랑 운동 좀 했다고 몸이 갑자기 좋아졌을 리는 없다.
하지만 그래도 원체 타격에 큰 신경을 안 쓰던 몸이라 그런지 뭔가 몸이 좀 풀린 느낌은 있다.
그렇게 연습을 끝내고 간단하게 바나나 등의 간식을 먹는 시간.
어느새 옆에 앉은 조유진이 호들갑을 떨며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미쳤네. 미쳤어. 20개를 쳐서 8개를 담장을 넘긴다고? 그것도 목동에서?”
“호들갑 떨기는 누가 들으면 뭐 대단한 거라도 한 줄 알겠다.”
“대단한 거 맞지!!”
물론 고등학생을 기준으로 하면 대단한 건 맞다.
그래, 고등학생을 기준으로 한다면 말이다.
아까 전에도 내가 연습 배팅에서 홈런을 칠 때마다 아직 경기까지 30분이나 남았음에도 관객석에 들어온 관중들은 연신 감탄을 내뱉었었다.
솔직히 민망했다.
마치 어른이 초등학교 시험지를 풀었는데 어떻게 백 점을 맞을 수 있냐며 감탄사를 듣는 느낌이랄까?
아무튼 그래서 이후로는 장타보다는 그냥 밀어치기에 조금 더 집중해서 연습을 했다. 뭐, 개인적으로 마지막에 하나. 밀어서 넘긴 공은 제법 마음에 들었다.
“그보다 오늘 사람 왜 이렇게 많은 거야? 아까 우리 연습할 때만 해도 거의 백 명은 돼 보이던데. 이런 식이면 경기 때는 거의 이삼백 명 정도 모이겠는데?”
“아마 더 올 수도 있을 걸?”
“더 온다고? 왜?”
보통 야구장에 오는 고교야구 주말리그 관객 숫자는 많아야 이백 명 남짓이다.
물론 명문 팀끼리의 경기일수록 관객의 숫자는 늘어난다. 그만큼 화제성이 있어서냐고?
그럴 리가.
이유는 간단하다. 단순히 명문 팀일수록 팀원의 숫자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 중앙고 야구부의 경우 총인원이 스물일곱에 불과하지만 바로 이전 주에 붙었던 천남고만 하더라도 부원 숫자가 마흔을 넘어간다. 그리고 부원 수가 많다는 것은 그 지인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보통 경기를 하면 부모님의 경우 한 분은 꼭 오는 편인데, 아무래도 비슷한 실력이면 집에서 더 신경 쓰는 아이를 출전시킬 확률이 높다는 것이 학부모들의 일반적인 생각이다. 실제로도 어느 정도 영향을 주는 편이기도 하고.
어쨌거나 그런 식으로 고교야구의 관객은 부모님, 혹은 가족이나 친척 지인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조유진이 나의 의문에 답했다.
“최수원 너 때문이잖아.”
“나?”
“어, 얼마 전에 교장이 조회까지 열어가면서 너 무슨 신기록이니 뭐니 그랬잖아. 보니까 뉴스도 났더만.”
“아아······. 그 조회가 그거였어?”
얼마 전에 방송 조회를 한 번 했던 기억이 있긴 했다. 요즘 조회 없는 학교도 좀 많은데 우리 학교는 교장이 말하는 걸 좋아해서 한 달에 한 번 정도 조회가 있다.
다행이었다. 안 그래도 아침에 훈련하면 졸려 죽을 것 같은데 그나마 조회하는 날은 한 시간 엎드려서 푹 잘 수 있는 날이니까.
“야, 잠깐만. 조유진 너 설마 조회 그걸 다 보고 있는 거야? 잠 안자고?”
“당연하지. 교장 선생님 말씀에 배울 게 얼마나 많은데.”
“미친······. 넌 사회 나가면 진짜 사회생활 잘할 스타일이다.”
뭔가 이 순간 이 녀석이 그 실력으로 어떻게 프로에 10년이나 붙어 있을 수 있었는지 그 비결을 알 것만 같았다.
녀석이 말을 이어갔다.
“암튼 교장 선생님 말씀이 너······. 그러니까 애들보고 경기 좀 보러 가라서 응원 하라고 하시더라.”
“뭐야. 교장이 그런 말 했다고 애들이 여기까지 경기를 보러 온다고? 에이, 말도 안 되지. 애들 공부하기도 바쁠 거 아니야.”
“공부 같은 소리 하네. 중간고사 끝나고 이제 이 주 지났다. 게다가 듣기로는 3반에 은진이도 온다고 해서 애들 좀 더 오는 것 같던데.”
“은진이? 그게 누군데?”
“뭐? 3반 박은진을 몰라? 왜, 그 아이돌 연습생 하는 애 있잖아.”
“아이돌 연습생?”
사실 내 입장에서 고등학교 시절은 벌써 15년도 넘게 지난 일이다. 같은 반 녀석들 얼굴도 가물가물한 마당에 옆 반에 아이돌 연습생이 기억이 날 리가······. 다만 내가 이름을 전혀 모르는 걸 보니 딱히 연예계에서 성공하지는 못한 것 같다.
하긴 열여덟이나 먹은 연습생이 데뷔도 못 했으면서 고등학교 야구나 구경 올 정신이면 성공하는 게 더 이상한 일이겠지.
“그래서 걔 구경하겠다고 다른 반 애들도 몰려오는 거야? 야구 보러 오는 게 아니라?”
“아니, 꼭 그런 건 아니고. 뭐 그냥 아무 이유 없이 경기 구경 가라고 하면 좀 그런데 너······. 하여간 고려일보에도 막 우리 나오고 이랬다니까 궁금했겠지.”
“근데 왜 아까 전부터 말을 하다 말아. 내가 뭘 어쨌다고.”
“에휴, 아니다. 아무튼 학교에서 애들 꽤 많이 응원 왔다니까 오늘도 잘해보자.”
“나야 뭐 당연히 잘하지. 안 그래도 신기록 갱신도 달렸는데.”
“야!! 야!! 너!!”
조유진이 한참 당황해서 어버버 말을 더듬었다.
솔직히 말을 삼키는 것이 티가 너무 많이 나서 모른 척해주기도 어려웠다. 괜히 신기록 언급하면 부정 탄다. 뭐 그런 이유였겠지.
게다가 오늘 라인업도 감독님은 뭐 내가 어깨 별로 안 좋다고 했으니 하루 쉬어가라며 지명 타자로 올려줬지만 누가 봐도 이건 신기록 의식이었다. 심지어 오는 내내 왜 하필 오늘 경기가 목동이냐며 투덜대기까지 했는데 그걸 눈치 못 채면 바보겠지. 뭐, 아주 큰 차이는 없다지만 아무래도 신월이나 구의 보다 목동이 홈런이 좀 덜 나오는 건 사실이니까.
“에휴, 하긴. 신문사에서도 이렇게 잔뜩 왔는데 눈치 못 챌 수가 없겠지.”
“잔뜩?”
“어 내가 본 것만 해도 한 세 군데는 되더라.”
세 군데라······. 그래, 물론 고등학교를 기준으로 보면 이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런 걸로 호들갑을 떨기에는 내가 이뤘던 것이 너무 대단하다. 그리고 같은 의미에서 사실 이 20년 만의 신기록이라는 것도 좀 민망하다. 너무 당연히 해내야 하는 기록 같달까?
***
“은진아!! 박은진!! 여기야. 여기!!”
예쁘게 생긴 여자아이 하나가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드는 아이들에게 달려갔다.
‘선수 친구들인가?’
고려일보의 이지연이 다시금 시선을 돌려 경기장을 바라봤다.
조금 전 배팅 연습은 정말 대단했다. 고작 고등학생이 쳐내는 것마다 담장을 넘겨대는 광경이라니.
스마트폰을 들어 기사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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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간한 찌라시마다 붙는 광고 댓글조차 없었다. 공 팀장의 이야기처럼 그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 묻혀버린 그런 기사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표정은 그리 어둡지 않았다.
그녀는 기자가 되고 싶었다.
우라까이나 쳐내는 그런 기레기 말고 진짜 기사를 쓰는 그런 기자.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신문이 솔직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던 시대는 이미 저물었다. 대체 요즘 시대에 누가 종이 신문을 구독한단 말인가. 언론의 절대갑은 이미 포털이었고 포털 메인에 노출되지 못하는 기사는 아무런 가치를 갖지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힘을 발휘하는 기자는 존재했다.
그 이름만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기자들. 특히나 스포츠의 영역은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그런 스포츠에서 어떻게 이름만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기자가 될 수 있을까?
결국 답은 양질의 기사뿐이다.
우라까이가 아닌 진짜배기 기사.
물론 매우 어려운 일일 것이다. 괜히 선배들이 죄다 KBO 기자실에 모여 앉아 거기서 나눠주는 자료나 옮겨 적고, 인터넷에서 SNS나 뒤져보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모두 스타의 이야기를 원한다.
그러나 이제 2년 차 애송이 기자인 그녀가 그런 스타들과의 단독 인터뷰를 따내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다.
그렇기에 그녀는 언제나처럼 오늘도 스타를 찾아 직접 발로 뛰었다.
아주 오래 전 그녀의 선배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1회 초.
지명 타자 최수원이 타석에 올라왔다.
무려 20년 만의 대기록
4연타석 홈런에 도전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