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기회는 자주 오는 게 아니다(2)
“선배, 자, 잠깐만요.”
“엄살은. 자자, 숨 참지 말고 계속 유지하고.”
스트레칭은 통증을 느낄 정도로 하면 절대 안 된다. 그리고 규혁 선배는 놀라울 정도로 딱 그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지켜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마사지.
규혁 선배의 두꺼운 손가락이 내 몸 곳곳을 꾹꾹 눌렀다.
“몸이 좀 많이 뭉쳤네. 여기랑, 여기랑.”
“아······.”
나도 모르게 약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시원했다.
그것도 너무 시원했다. 이건 뭐 리그에서 뛰던 당시 몸을 풀어주던 프로 마사지사들과 비교해도 크게 뒤지지 않는다.
“안 되겠다. 너 앞으로 훈련 전이랑 훈련 끝나고 나랑 같이 스트레칭하고, 평소에 웨이트도 내 옆에서 같이 하자.”
“네?”
“‘네?’는 뭐가 ‘네?’야. 선배가 같이 훈련하자는데.”
“하지만······.”
뭐지? 분명 규혁 선배는 커다란 덩치와 위압적인 포스를 풍기는 선배였지만 졸업할 때까지 나와는 별 접점이 존재하지 않던 사람이었다.
“인마, 누가 너 잡아먹냐? 지금 스트레칭하는 꼴이나 몸 보니까 다치기 딱 좋아 보여서 그래.”
“그런가요?”
“그래, 피칭이야 뭐 내가 잘 모르는 거니까 딱히 별말 안 했는데. 토요일에 배팅하는 거 보니까 알겠더라. 몸은 아프리카 난민 같은 게 움직이는 건 무슨 NFL 센터백처럼 움직이네? 너처럼 비리비리한 놈이 몸 그렇게 움직이면 인대랑 힘줄 다치기 딱 좋아. 전체적으로 다 부족한 와중에 그나마 백은 좀 봐줄만한데 팔이랑 프론트가 너무 부족해.”
솔직히 말해서 내가 좀 멸치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 정도까지는 아닌데, 규혁 선배의 우람한 몸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설득이 된다.
“너 지금 키랑 무게가 몇이지?”
“189.7에 82.4kg이요.”
“거 봐, 난민 맞네. 게다가 넌 나랑 다르게 팔다리가 길어서 볼륨 채우려면 보통 근육량으로 되는 게 아니야. 아무튼 간 너 오늘 이따 오후에 근력운동 때 내 옆에 붙어라.”
“저 토요일에 공 던져서 오늘은 근력 쉬는 날인데요.”
“아, 맞다. 그러네. 그러면 이따 폴앤폴 끝내고 스트레칭 때나 붙어. 아, 그리고 시간 괜찮으면······.”
잠깐의 망설임.
그리고 규혁 선배가 나에게 슬금슬금 다가왔다.
“하······, 후배한테 이런 이야기하기 진짜 좀 그렇긴 한데. 미리 말하지만 싫으면 거절해도 된다. 절대 부담 주려는 건 아니야”
붉어진 얼굴. 거친 숨소리.
스트레칭을 하는 동안 흘린 땀 때문일까? 아니면 남자 기숙사 특유의 꼬릿한 냄새일까. 기분 나쁜 악취가 훅하고 들어온다.
나도 모르게 본능 레벨에서 거부감이 확 느껴진다.
게다가 뭐? 시간? 부담? 거절?
“그게 그러니까······, 나 배팅 연습 좀 봐주라.”
“네? 배팅 연습이요?
“응. 애들은 너 어제 그거 그냥 뽀록이라고 그러는데 솔직히 말이 되냐? 그 몸으로 홈런 세 개나 치는 게? 그것도 백하민한테서? 내가 오늘 만져보니까 더 알겠더라. 네 타격이 얼마나 대단한지.”
아니, 잠깐만.
물론 내 타격이 대단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나한테 배팅 연습을 좀 봐달라고 이야기한다고? 무능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지금 팀에 타격 코치가 없는 것도 아닌데?
“아니, 선배. 뭐 제가 대단한 건 맞는데. 그게 남을 가르칠 정도는······.”
“야 최수원. 나 동태눈 아니다. 너 타격폼을 완전히 바꿨잖아. 딱 봐도 하루 이틀 공부하고 연습한 게 아니더만. 솔직히 나도 공부 안 하는 건 아니야. 근데 조금만 제대로 공부해보려고 하면 다 유료 자료고. 그거 비싼 돈 주고 다운받아도 영어라서 해석도 제대로 못 하겠고. 그렇다고 일단 해보자니 내 몸 쓰는 일인데 또 불안하니······. 당최 뭘 할 수가 있어야지. 그 대신이라고 하기엔 뭐 하지만 나도 너 몸 만드는 거 도와줄게.”
규혁 선배······.
생긴 건 곰인데 이거 눈썰미가 보통이 아니다.
나의 시선이 규혁 선배의 몸을 훑었다. 크고 우람하다. 하지만 이건 야구 선수라고 하기에는 너무 과다하게 큰 감이 있다.
“내 몸 보면 알겠지만, 우리 형이 대학에서 스포츠재활 전공하고 있어서 궁금한 건 다 물어볼 수 있거든. 내가 다른 건 몰라도 몸 만드는 건 자신 있다.”
하지만 그래도 고등학생이 이 정도 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다.
게다가 안 그래도 근력운동은 혼자 하는 것보다는 누군가의 도움이 있는 편이 훨씬 좋다.
무엇보다 규혁 선배면 멍게 놈만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팀의 4번 타자로 영향력이 있는 선배다. 운동 루틴이야 내가 알아서 하겠지만, 그래도 최소한 원판 정리라도 도움이 되겠지.
“아니, 같이 연습하는 건 어렵지 않은데 근데 저 정말 뭐 특별하게 공부한 거 아니라서요. 그냥 연습하다 보니까 어쩌다 된 거라서······.”
“그거면 됐어. 너무 부담은 안 가져도 돼. 어차피 너랑 나랑 몸이 다른데 뭐 타격폼 다 가져가겠다는 게 아니라, 넌 투수기도 하니까. 그냥 내 폼이랑 보고 조언해줄 거 있으면 해달라는 거야.”
“네, 알겠습니다. 뭐 그 정도면 어려운 것도 아니네요.”
그리고 정확히 며칠 뒤.
나는 매우 크게 후회라는 것을 하고 있었다.
“자자, 하나, 하나만 더!! 쭈욱 쥐어 짜내봐.”
“서······, 선배!!”
“쉿!! 말은 하지 말고!! 호흡만!! 그대로 호흡만!! 자 좋다. 지금 근육이 쑥쑥 크고 있어.”
내가 알기로는 미래의 어느 시점에 열게 될 규혁 선배 체육관은 제법 크게 성공을 한다.
역시 성공하는 사람들은 괜히 성공을 하는 게 아니다.
제일 처음 스트레칭을 할 때부터 느꼈어야 했다.
규혁 선배는 인간의 한계치. 오버트레이닝과 효율적 트레이닝의 실낱같은 경계 지점을 귀신처럼 공략할 줄 아는 남자라는 것을.
“자자, 찐막. 찐막!!”
“······.”
“그래, 그렇게 호흡만. 호흡만 쭉 유지하자.”
미리 말해두지만 방금 이건 소리를 내지 않은 게 아니라, 소리를 내지 못한 거다.
굳이 시적 표현으로 말하자면 소리 없는 아우성 정도?
그렇게 참으로 알차게 나의 일주일이 흘러갔다.
***
프로야구 스카우트의 일과는 고단하다.
프로팀들은 단순히 경기를 보고 그 영상만으로 분석하여 드래프트를 뽑는 것이 아니다. 중학교 때 두각을 드러내는 선수를 기준으로 고등학교 시절 내내 거의 스토커처럼 영상을 찍어댄다. 그리고 그것으로 학창 시절의 성장세를 확인하는 것이다.
최수원 역시 그런 선수 중 하나였다.
기본적으로 150을 던지는 투수는 귀하다. 심지어 1학년 때부터 그렇게 던지는 투수는 더더욱 귀하다. 비록 제구가 좀 날리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08년생들 가운데 지금 최고 150을 던지는 투수는 고작 넷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기에 도무지 자료가 없었다.
피칭 자료는 널렸는데 타격을 찍어둔 자료가 없다. 기껏해야 스쳐가는 경기 장면 정도인데 그걸로는 도저히 뭔가를 알아내기가 어려웠다.
“확실히 타격에 재능이 있긴 한 것 같은데······.”
3연 타석 홈런이라니.
고교야구가 나무 배트를 사용한 이래 2004년 이후 처음 나온 대기록이다.
차라리 어디 명문고라도 됐다면 우연히라도 찍힌 자료들이 있을지 몰랐다. 하지만 중앙고는 빈말로도 명문이라고 하기 힘들다.
게다가 1차 드래프트가 폐지된 이후 구단들의 활동이 전국으로 넓어졌다고는 하지만 어쨌거나 스카우트들이 한 번이라도 더 가는 곳은 본래 자기가 자주 가던 곳. 그러니까 감독과 사이가 돈독한 자기 지역 팜이었다.
결국 열 개 구단 스카우트들은 이번 주 최소한 한 번. 혹은 그 이상으로 중앙고를 방문했다. 일대일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면 템퍼링이지만 그냥 가서 덕담 몇 마디 나누고 감독이랑 커피 한잔하면서 선수들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건 친목 도모다.
“그래서 박 감독님. 수원이가 태어나서 서울을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는 서울 토박이다. 뭐 그런 말씀이시네요? 지방은 내려가기 좀 껄끄럽겠다. 뭐 그런?”
“아니, 지방을 내려간 적이 없기는 누가 없답니까. 우리 전지 훈련도 제주도로 다녀왔는데요.”
“아이참, 지금 그런 말씀이 아니잖습니까.”
“그보다 이게 참 커피가 씁쓸하네요. 우리 때는 참 달달한 커피 많이 마셨었는데. 그 뭐라더라? 푸라푸치노?”
“아휴, 우리 박감독님 프라푸치노 좋아하셨구나. 다음번에는 제가 꼭 기억했다가 프라푸치노로 사 올게요.”
덕분에 최근 박 감독의 입은 귓가에 걸려 도무지 내려올 줄을 몰랐다. 프로구단 스카우트들에게 갑질이라니 그의 인생에 언제 또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
사실 프로구단의 스카우트가 자주 온다는 것은 고등학교 팀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었다. 그것은 경기 때 스카우트들 카메라가 있는 것처럼 단순히 아이들이 스카우트 눈에 띄려고 조금 더 열심히 운동한다. 뭐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돈
천박하게 배움의 전당인 학교에서 무슨 돈 문제를 논하느냐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래, 뭐 그럴 수 있다. 박 감독도 그런 생각을 하던 시절이 있었으니까.
프로구단들이 연고지 1차 드래프트를 시행할 때는 그래도 조금 나았다.
1차 드래프트는 어쨌거나 자기 팜에서 양질의 선수가 뽑힐수록 그들도 유리한 구조였고 그렇기에 프로구단들에서는 자비를 들여 ‘투자’라는 것을 했었다.
물론 전면 드래프트 이후 KBO에서는 프로 구단들에게 돈을 걷어 각 고교 팀들에게 적정한 투자를 한다. 하지만 그 지원이라는 것은 프로 구단들이 직접 하던 것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기본적으로 매년 들어가는 야구공 가격만 3천만 원이 넘는다. 경기장을 오고 가기 위한 버스 대절료. 또한 절반은 자비로 구매하고 절반만 비용지원을 한다지만 아이들에게 지급하는 방망이 값도 절대 만만치 않았다.
그나마 팀에서 유명한 프로 선수를 연달아 배출한 명문고들은 조금 낫다. 각종 장비들을 기부하거나 어떤 경우에는 통 크게 버스를 기부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중앙고는 최근 이십 년 이내 1억 이상의 계약금을 받은 프로 선수는 물론이거니와 FA에 성공한 프로 선수를 단 하나도 배출하지 못했다.
“감독님 그 대신 오늘은 연습용 공 좀 몇 박스 가져왔습니다.”
“어이쿠, 뭐 이런 걸 다 가져오십니까.”
물론 A급 새 공은 아니다. 경기에 한 번 사용했던 B급 공이다.
하지만 프로에서 연습용으로 몇 차례 돌린 C급만 해도 고교야구 연습용으로는 감지덕지할 판에 경기만 뛴 B급 공들은 거의 새 공이나 다름없다.
없는 살림에는 이런 선물은 그저 반가울 따름이다.
“그나저나 그 혹시 그 수원이 타격 연습은?”
“아, 그거요. 그 다른 팀에서도 좀 많이 찾긴 했는데······.”
“다른 팀이요? 혹시 어디인지?”
“어휴, 많죠. 아주 여기저기서 난립니다. 그보다 연습 영상은 제가 분명 어딘가에 잘 챙겨둔 것 같긴 한데. 아무튼 간 제가 찾는 대로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앞으로 잘 좀 부탁드립니다. 감독님.”
“어휴, 저야말로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스카우트님.”
박감독이 스카우트와 굳게 손을 맞잡았다.
“아, 그러고 보니······.”
“네?”
“아뇨, 아뇨. 별 건 아니고. 그냥 이번 주말 경기 때 수원이가 또 타석에 올라갈 예정이라서요. 혹시나 관심 있으실까 해서.”
“그렇습니까?”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 하는 법이다.
박 감독은 이번 뜻밖의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준비가 이미 다 되어 있는 남자였다.
그리하여 돌아오는 토요일.
서울 인천 수원 대구 대전 광주 창원 부산.
프로야구 열 개 구단 스카우트들이 목동으로 모였다.
큼지막한 카메라를 든 어느 일간지의 여기자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