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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가 그냥 홈런을 잘 침-3화 (3/305)

3화. 내 인생의 흑역사(2)

대체 어째서일까?

지금 확실한 것은 이 행크 애런 카드, 그리고 그 백동휘라는 사람이 뭔가 연관이 있다는 점이었다.

백동휘······.

그가 기억하기로는 제법 잘나가는 예능인이다. 08년생인 최수원 자신이 아주 어렸을 때 개그 프로그램에 출연했었고 한참 운동하느라 TV를 자주 못 챙겨볼 때도 식당 같은 데서 켜져 있던 프로그램에 자주 얼굴을 비추곤 했다.

쓸데없이 반으로 접힌 스마트폰을 펴서 익숙한 녹색 창에 백동휘라는 이름을 검색했다.

“없어······.”

하지만 검색 결과는 처참했다. 얼굴 모를 백동휘들의 SNS만이 나를 반겨준다. 억지로 기억을 더듬어 분명 백동휘가 출연했던 걸로 기억하는 유명한 예능 프로그램들도 검색했다. 그러자 거기에는 낯선 얼굴의 연예인들이 자리 잡고 있다.

혹시 나의 기억이 잘못된 걸까? 아니면 그냥 꿈이라도 꿨던 것일까? 하지만 이 새로운 올 타임 홈런왕이라고 적힌 행크 애런의 사인 카드는 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

“늦었네? 새끼가 조또 빠져가지고. 이래서 통학하는 새끼들은 안된다니까.”

“야야, 그만해라. 무려 어제 경기를 승리로 이끈 위대한 에이스님인데 우리 같은 천민들은 그냥 닥치고 조빠지게 훈련 해야지. 안 그러냐 수원아?”

“······.”

“새끼, 또 개무시하네. 아주 시발. 야구 잘 하는게 벼슬이야. 벼슬.”

“야, 그게 무슨 개소리야. 어디 우리 수원이 벼슬이 야구 잘하는 것만 있나? 어? 집도 잘 살지. 어? 부모님이 감독님이랑도 친하지. 무려 코치님보다 높은 분 아니냐. 우리 같은 쩌리들은 그냥 어이고, 최수원 에이스님. 다음 경기 저도 선발로 좀 넣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그냥 이렇게 굽실거려야지.”

이른 아침.

정신없이 스마트폰을 뒤지다 그만 아침 연습에 늦어버렸다.

사실 어제 경기에서 내가 던진 공의 개수는 규정을 꽉 채운 105개. 다음 경기가 일주일 후에 있던 만큼 고교야구 투구 규정을 꽉 채운 개수였다. 투구 직후인 만큼 몸도 무겁고 어깨도 제대로 올라가지 않는다.

하지만 저기 뒤에서 비아냥거리는 놈들의 말과는 달리 나는 그런 날에도 단 한 번도 훈련을 빠진 적이 없었다. 물론 저놈들의 말 가운데서 맞는 말도 많았다. 첫 번째는 내가 야구를 잘하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우리 집이 제법 산다는 부분이었다.

-드르륵

앞문이 열리고 선생님이 들어왔다.

삼삼오오 모여 잡담을 나누던 녀석들이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 가운데는 뒤에서 내 귀에 들리게 험담을 늘어놓던 놈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수업이 시작됐다.

분명 나는 공부를 못하는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수업 내용은 도통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백동휘라는 인물은 대체 누구인지. 어째서 검색을 해도 나오지 않는 것인지. 무엇보다 내가 그 자리까지 대체 어떻게 올라간 건데 그걸 다시 해야 한다고?

아, 물론 수업 내용이 이해가 안 된 것은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기는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무려 이십 년 만의 수업이었고 내가 생각할 때는 수업 내용 자체에도 문제가 있었다.

수학이야 원래 태생이 사람이 못 알아듣게 만들어진 과목이니까 그러려니 하겠는데, 난 분명 한국인인데 무슨 이유인지 국어도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영어. 그래 영어는 내가 미국물만 근 십 년을 먹어 이제는 현지인들과 대화도 자유롭게 되는데도 무슨 이상한 용어들을 써가며 외우라는데 왜 외워야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4년 전 선배들까지만 하더라도 수업 시간에 보통 엎드려 자고, 중간중간 수업들은 빠지기도 하면서 동영상으로 대체하는 식으로 체육 특기자들을 배려해줬던 시절도 있었다고 들었는데 법이 바뀐 이후로는 얄짤이 없다.

심지어 성적에서 낙제를 하면 대회 출전 금지 조항까지 신설이 돼서 마냥 엎드려 자기도 힘들다.

7교시. 오후 4시 10분까지 수업을 모두 꽉꽉 채워 듣고 아침에 제출했던 스마트폰과 가방을 챙겨 체육관으로 향했다.

“어이고, 귀하신 몸이 그래도 오후 훈련은 참석을 하실 모양이신가보네?”

“야야, 하겠냐? 감독님이 또 어이고!! 우리 귀한 에이스님이 어제 105개나 던지시느라 고생하셨는데 저기서 관전하십쇼. 이러시겠지.”

“그런가?”

같은 반의 머저리들이 또 쓸데없는 이야기를 수군거렸다. 저 둘 이름이 뭐였더라? 그게 그러니까······. 티몬이랑 품바였던가? 확실히 생긴 건 정확히 티몬과 품바인데······. 그래,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이름도 얼추 비슷했던 것 같다.

자기들 딴에는 나를 괴롭힌다고 괴롭혔고 당시에는 나도 아무 이유 없이 누군가가 나를 미워한다는 것에 제법 상처를 받았었다. 물론 괴롭힘이라고 해봐야 딱 저 들릴까 말까 한 저런 험담 정도까지였지만.

뭐, 생각해보면 애당초 저놈들이나 나나 미래를 생각하면 싸움 따윈 해선 안 되는 처지였고 혹시라도 그런 것 없다고 해도 192cm에 87kg인 나와 180도 되지 않는 꼬꼬마들인 저 녀석들과의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커다란 장벽이 존재했으니 싸움 자체가 성립이 되지를 않는다.

“수원아, 왔어? 몸은 좀 어때? 괜찮아?”

“어, 그냥 뭐 공 던진 다음 날 컨디션이지.”

“그래, 그러면 오늘은 스트레칭이나 하자. 거기 경석이랑 지민이도 스트레칭 같이 하자. 너희도 하루 종일 책상에서 수업 듣느라 몸 굳었을 거 아냐.”

“어, 어. 그럴까?”

아, 이제 기억났다.

지민이라는 녀석이 티몬. 경석이라는 녀석이 품바다. 아쉽게도 이름이 생각보다 티몬과 품바에서는 조금 벗어나긴 했지만 그래도 그냥 티몬과 품바 쪽이 기억하기 편하니 그렇게 기억하도록 해두자.

그리고 지금 나에게 활발하게 인사를 한 이 녀석의 이름은 조유진. 그래도 내 동기 중에서는 나를 빼고는 제일 성공하는 녀석이다. 무려 프로에 3라운드로 뽑혀서 팀의 세 번째 옵션 정도 되는 포수로 10년 정도 프로 생활을 했고, 나중에는 막창집도 제법 크게 냈다. 나도 서너 번 찾아가서 싸인도 해주고 매상도 제법 크게 올려줬다.

나의 팍팍한 고교 생활에 그나마 친구가 하나 있다면 그나마 이 녀석이 아니었을까?

물론 나에게 이 녀석은 하나뿐인 친구였겠지만, 아쉽게도 이 녀석에게 내가 유일한 친구는 아니었다. 이 녀석은 애당초 태어나기를 인싸로 태어난지라 지금처럼 티몬과 품바뿐만 아니라 위아래 두루두루. 그러니까 좋은 놈, 나쁜 놈, 개자식들 안 가리고 다 친하게 지냈다.

그러니까 예컨대 저기 저 개자식과도?

“오, 최수원이. 오후 훈련은 안 늦게 나왔네?”

“오셨습니까. 선배님!!”

“당연히 와야지. 내가 뭐 누구처럼 공을 졸라 잘 던지는 것도 아니고. 출석이라도 부지런히 해야 마운드에 올라가지 않겠냐?”

저 까까머리에 여드름 빡빡 난 녀석의 이름은 안병영. 쉽게 말해 개자식이다.

내가 입학하기 전에는 중앙고를 이끌 촉망받는 유망주였다고 한다. 뭐 고1이 최고 132km/h까지 던졌다니까 그런 이야기 들을만하긴 했다. 문제는 고3인 지금도 여전히 132km/h밖에 못 던진다는 점이지만 말이다.

사실 지금까지는 과거로 돌아온 것이 혼란스럽고 앞으로 어떻게 다시 그 짓거리를 해야 하나 막막했다.

게다가 수업까지 지루해서 정말 돌아가실 것 같았는데 저 녀석 얼굴을 보고 나니 갑자기 내가 왜 이 시대로 돌아왔는지 그 목적을 알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왜, 사람이 살다 보면 가끔 이불 킥할만한 일들이 있지 않던가.

나 역시 그런 게 제법 된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했던 인터뷰라든지, 전처한테 청혼했던 일이라든지 그런 여러 가지 일들. 그리고 그 모든 일 가운데 가장 오래된 일이 바로 고등학교 시절 저 개자식에게 굽신거리고 어떻게든 잘 보이려 아양을 떨었던 일이었다.

“아이, 선배. 솔직히 어제도 저 새끼가 뭘 했습니까. 선배가 다 했죠. 공만 빠르면 뭐합니까? 볼질을 그렇게 하는데. 안 그러냐? 지민아?”

“말해 뭘 하냐.”

“새끼들. 친구한테 말이 심하네. 수원아, 내가 미안하다. 하여간 빠따나 돌리는 놈들은 투수한테 뭐가 중요한지를 통 모른다니까. 130으로 아무리 구석구석 찌르고 기가 막힌 변화구로 타자들 방망이 붕붕 돌리면 뭐 하냐. 150짜리 하나 딱 들어가면 게임 끝나는걸. 안 그러냐?”

예전에는 이런 말을 들으면 미안한 감정을 느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마치 내가 아버지의 빽으로 저 자식의 에이스 자리를 빼앗았고, 실제 성적은 저 자식이 더 잘 나오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뭐 양보하겠다 이런 생각을 했던 건 아니고, 그 미안함을 느끼지 않기 위해 더 이를 악물고 노력했지만 말이다.

안병영 놈이 은근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내가 보통 여기서 어떻게 말을 했더라?

아!!! 그래, 기억났다.

“네, 아주 지당한 말씀이십니다.”

“응?”

“이런, 제대로 못 들으셨어요? 아주 지당한 말씀이시라고요. 원래 타격의 꽃은 홈런. 투구의 꽃은 강속구 아니겠습니까? 변화구 따위 강속구 못 던지는 쫄보들이나 던지는 약자의 공일 뿐이죠.”

“뭐라고 이 새끼야?”

아, 이게 아니었나?

뭐, 아니었으면 말고.

개자식의 인상이 크게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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