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내 인생의 흑역사(1)
혹시 회귀라고 아는가?
막 정신은 서른, 마흔, 쉰인데 몸은 열여덟, 열아홉으로 돌아오는 그거 말이다.
망할. 그래, 내가 바로 그 회귀자다. 뭐? 회귀를 했다면 보통이라면 좋아서 아주 길길이 날뛰는 것이 정상 아니냐고?
잘 생각해보자. 네가 딱 전역을 해서 위병소 문을 나서는 순간 다시 훈련소 입구로 회귀를 했다면 기분이 어떨까?
아주 엿같지 않을까? 아, 혹시 전역과 동시에 신병훈련소로 회귀한 거냐고?
그럴 리가. 그냥 비유하자면 그렇다는 거다.
애당초 나는 금메달로 병역 특례 대상자라 한 달짜리 교육밖에 안 받았다.
어쨌거나 겁나게 뺑이 쳐서, 이제 좀 살만하다 싶었는데 다시 처음부터라고?
솔직히 말해서 난 정말 최선을 다했다.
운도 좋았고. 다시 해도 또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글쎄? 잘 모르겠다. 물론 쉽게 실패할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그만한 아웃풋이 또 뽑힐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쉽게 답하기 어렵다.
아니, 애당초 회귀 자체가 좀 이상하다.
보통은 막 과거를 후회하고 한탄하다가 술 마시고 한강에 빠진다던지, 이세계 환생트럭 같은 거에 치인다든지, 그것도 아니면 최소한 선글라스 낀 대머리 흑인 아저씨가 주는 빨간 약 같은 거라도 먹고 돌아오는 게 정상 아닌가?
밥 잘 먹고 침대에 누워 자고 일어났는데 열여덟 청춘이라니. 세상에 이런 억울한 일이 또 어딨겠나.
아, 그래도 아무 일도 없이 어떻게 회귀가 됐겠냐고? 뭐 짐작 가는 일이라도 없느냐고? 글쎄. 굳이 꼽아보자면······.
***
“자, 오늘은 저희가 아주 특별한 손님을 모셨습니다.”
“특별한 손님이요? 그게 누구죠?”
“누구기는요. 우리 백동휘씨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죠.”
“설마? 에이, 거짓말. 말도 안 돼. 우리 프로그램 요즘 시청률 8%도 안 나오잖아요.”
“어? 백동휘씨 지금 저희 프로그램 비하 하시는 겁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제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면 지금 투나잇쇼나 코난, 지미 키멀 같은 거 찍고 있어야죠. 애초에 한국에 있지도 않잖아요. 그리고 솔직히 한국 오면 우리 프로그램 말고 저기 엠본부에 시청률 13%짜리 가야죠. 솔직히 우리 최PD가 무슨 능력이 있다고 최수원 선수를 섭외합니까. 뭐, 성이 같으니 종친회라도 나가서 섭외했답니까?”
“그러니까요. 저도 그게 의문이긴 합니다. 정말 종친회에서 섭외를 한 걸까요? 자,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운 스포츠 스타!! 최수원 선수 모셨습니다!!”
“진짜? 진짜 진짜?”
최수원.
2027년 KBO 데뷔. 데뷔 초부터 풀타임을 소화. 3년 차인 2029년 마침내 KBO를 폭발시키고 4년간 리그를 평정.
만 25세의 나이로 MLB에 진출. 데뷔 첫해인 2034시즌 MLB 타격 트리플 크라운.
이후로 여덟 시즌 동안 홈런왕만 다섯 번. 아홉 시즌 동안 누적 홈런 수가 무려 437개.
지금까지 500홈런을 치고 명예의 전당에 못 들어간 선수는 약물 선수뿐이라는 점, 그리고 그의 나이가 고작 서른셋에 불과하다는 점. 무엇보다 이번 시즌 61홈런을 쳐내며 1927년 루스와 1961년 로저 매리스 이후, 청정 타자로는 역사상 세 번째 한 시즌 60홈런 플러스를 달성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명예의 전당 헌액은 따논 당상이나 다름없다고 평가받는다.
최수원은 현재 메이저리그 최고의 타자라고 해도 절대 과언이 아니다.
“어우, 소개가 너무 거창해서 부끄럽네요.”
“맙소사!! 진짜 최수원? 뭡니까? 분명 어제까지 미국에 계셨잖아요. MVP 발표하는 거 듣고······.”
“······.”
순간 스튜디오에 정적이 감돌았다.
바로 어제, 메이저리그 MVP발표에서 최수원은 고작 5점 차이로 MVP에서 2위를 차지했다. 통산 네 번째 MVP 2위였다.
“하하하, 괜찮습니다. 솔직히 이번에는 브라이언이 좀 잘하긴 했어요. 인정할 건 인정해야죠. 뭐 81년 만의 홈런 기록이라지만 투수로는 151이닝 2.93에 231삼진. 타자로는 49홈런에 타격왕까지 한 녀석을 어떻게 이기겠습니까. 그것도 고작 지명 타자가요.”
“고작 지명 타자라니요. 이번 시즌 최수원 선수 WAR이 무려 7.7이잖습니까. 타율이야 조금 부족했다지만, 요즘 누가 타율을 봅니까. 당장 타격 생산성만 따져도 브라이언 선수보다 훨씬 훌륭했죠.”
“이번에 MVP를 탄 브라이언 선수가 WAR로 따지면 7.6이 였죠?”
“네, 최수원 선수의 WAR이 더 높아요. 게다가 심지어 브라이언 선수 투수 WAR이 3.3이나 됩니다. 심지어 WPA로 보면 더 차이가 커요.”
사회자의 질문에 백동휘가 목에 핏대를 올렸다.
“야구, 좋아하시나 봐요?”
수원의 질문에 대답한 것은 백동휘가 아닌 사회자 쪽이었다.
“어휴, 말도 마십쇼. 동휘씨가 아주 야구광에 최수원 선수의 광팬입니다. 야구광. 최수원 선수가 한국에 있을 때부터 미국 가면 무조건 터질 선수라고. 아주 입이 닳도록 이야기를 했었어요.”
“하하, 감사합니다.”
최수원은 좋은 선수였다.
아니, 단순히 좋은 수준이 아니다. 아직 커리어 10년도 되지 않은 선수가 이대로 10년만 채우고 은퇴해도 명예의 전당은 확정이라는 말이 나오는 선수다. 그야말로 역사에 남을 위대한 타자라는 뜻이다.
하지만 그런 위대한 타자인 최수원은 놀랍게도 지금까지 MVP가 단 하나도 없었다.
“아니, 뭐 말이 나왔으니까 하는 말인데 우리 최수원 선수. 이거 이 정도면 인종차별 아니냐. 이제 뭐 이런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거든요. 벌써 MVP 2위만 네 번 아닙니까. 이번에도 5점 차이. 그러니까 최수원 선수가 1위 표가 14표. 2위 표 16표. 브라이언 선수가 1위 표 16표. 2위 표 14표 나왔잖습니까. 솔직히 브라이언 선수도 대단하긴 합니다만, 그래도 MVP는 기본적으로 원래 타자상 아닙니까.”
“어? 그래요? 미국은 MVP가 타자상인가요? 한국과는 조금 다른 것 같은데요?”
“그게 투수는 사이 영이 있으니 MVP는 어지간하면 타자에게 몰아주는 게 관례였습니다.”
“관례였다고요?”
최수원이 사회자에게 백동휘를 대신하여 답했다.
“네, 보통 당 해에 전설적인 성적을 낸 투수도 어지간하면 MVP를 타지는 못했습니다. 그보다 한 수 낮은 기록이라도 낸 타자가 있다면 타자에게 MVP를 주는 것이 관례였거든요. 하지만······. 투타겸업은 마냥 투수라고 볼 수는 없죠. 사실상 지명 타자가 일주일에 한 번 정도씩 선발 투수로까지 뛰는 셈이니까요.”
“하지만 최수원 선수, 지금까지 이게 대체 몇 번째입니까. 솔직히 지금까지 최수원 선수 MVP 2위 줬던 것들 생각하면, 이번만큼은 최수원 선수가 MVP를 받았어야 했어요. 역대 지명타자 가운데 이번 시즌 최수원 선수만큼 WAR이 나온 선수도 1978년의 짐 라이스 선수가 유일해요. 81년 만의 61홈런. 64년 만의 지명타자 최고 WAR. 이런 상징성 있는 타격 기록은 존중받아야죠. 무엇보다 투타겸업은 최근 23년 사이 벌써 여덟 번이나 MVP를 받아가지 않았습니까.”
자신의 일에 자신보다 더 크게 열을 내는 백동휘를 향해 최수원이 멋쩍게 웃으며 답했다.
“하하······. 어쩔 수 없죠. 제가 정말 MVP를 타고 싶었다면 홈런 하나 더 쳐서 홈런 신기록을 세웠어야죠.”
“아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리!!!”
“워워, 백동휘씨. 지금 최수원 선수가 MVP를 못 받은 걸로 최수원 선수에게 화내고 계신 거 아시죠?”
“아,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흥분했네요.”
이후로도 약 50분?
제법 길게 이야기가 이어졌다.
TV쇼의 사회자는 제법 적절하게 이야기를 끌어낼 줄 알았다. 수원이 굳이 시청률이 덜 나오는 이 프로그램을 선택한 것도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시청률은 수원의 출연으로 보장이 되지만 이런 양질의 프로그램은 어디까지나 쇼를 진행하는 사회자의 능력이었으니까.
게다가 백동휘는 예상보다 엄청난 수준의 야구광이었다. 비록 시대에 조금 뒤떨어진 공용 스탯을 들고 이야기를 진행하기는 했지만, 이보다 디테일한 수준의 스탯이야 각 구단에서 자체적으로 제작한 스탯이다. 오히려 일반인들이 듣기에는 백동휘의 지식도 조금은 깊숙한 너드의 범위에 속한다.
“오늘 정말 유익한 시간 감사했습니다.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돌아가시기 전에 우리 동휘씨한테 사인 좀 부탁드릴게요. 아까 중간에 보니까 매니저한테 뭔가 시키는 것 같던데.”
“아니, 최수원 선수 나오는 거 미리 말을 안 해주셔서······. 집에 모아 둔 굿즈들 좀 가지고 오라고 부탁했습니다.”
“어? 동휘씨 그거 직원들에게 갑질 한 거 아닙니까?”
“아이참, 저도 지난 크리스마스 때 매니저가 UKG팬이라고 해서 걔들한테 사정사정해서 콘서트표 받아다가 주고 그랬어요. 십 년이나 같이 일했으면 가족이죠. 가족. 가족끼리 갑질이 어딨습니까.”
팬이라는 말이 거짓은 아니었는지 정말 KBO에서 뛰던 시절부터 해서 최근까지 각종 굿즈들이 가득이었다. 한바탕 사인을 잔뜩 받은 백동휘의 얼굴에 웃음이 그득하다.
“아차차, 최수원 선수. 이건 선물입니다.”
“네? 이건?”
“평소 행크 애런 선수를 가장 존경한다고 하셨잖습니까. 우연한 기회에 얻게 된 행크 애런 74년 사인 카드입니다.”
“이런 귀한 것을······.”
“홈런왕의 기운을 받아서 기록 경신해달라는 의미로 드리는 뇌물입니다. 지금 사인 받은 이 굿즈들도 제가 죽은 다음에는 한 백 배쯤 가격이 뛸 수 있게요.”
행크 애런 사인 카드가 엄청나게 비싼가 하면 그건 아니었다.
하지만 분명 초면에 받기에는 제법 귀한 선물이긴 했다. 무엇보다 이 사인이 진짜라면 그 가치는 더더욱 높을 것이고.
게다가 행크 애런은 최수원이 평소 가장 존경하던 선수였다. 단순히 그 놀라운 기록 때문만은 아니었다. 당장 2030년대임에도 불구하고 메이저리그에 아시안에 대한 인종차별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하물며 행크 애런이 뛰던 시절은 아직 루터 킹이 자신의 꿈을 이야기 하기 전이었으며, 흑인에게 투표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것이 당연한 시절 아니었던가.
“그러면 사양하지 않고 받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수원이 카드를 받아 자신의 재킷 안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
“그러니까 일단 확실히 꿈은 아닌 것 같고.”
지금, 이 순간도. 그리고 그 생생했던 모든 것들도. 꿈일 리 만무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행크 애런······.”
NEW ALL-TIME HOME RUN KING 이라고 쓰인 환하게 웃는 행크 애런의 사인 카드. 모든 것이 뒤바뀐 방 안에서 오직 그 카드만이 또렷하게 자신의 존재를 자랑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