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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화. 실종 (113/129)


113화. 실종
2023.06.29.


디에스의 주먹질에 시온의 턱이 돌아갔다.

동시에 사방에서 쇳소리가 번졌다. 그 주변의 감시자들이 일제히 검을 빼 드는 소리였다.

모렌 아르코와 몇몇 감시자들이 디에스를 매섭게 낚아챘다.

하지만 디에스가 끌려가기 전에 시온이 손을 들어서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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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드리지 마.”

시온의 제지에 모렌과 감시자들이 주저하며 물러났다.

이 관대한 처사에도 불구하고 디에스는 시온을 매섭게 노려보다 몸을 돌렸다.

그런데 그가 걸음을 채 떼기도 전에 시온이 일어나 그를 붙잡았다.

디에스가 다시 그를 노려보자 시온이 나직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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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경로로 올 예정이었지?”

그 말에 디에스의 눈이 더 사나워졌다. 하지만 시온은 그 서슬에 같이 각을 세우는 대신 침착하게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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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찾는 게 우선…….”

그런데 말을 다 맺기도 전에 디에스가 다시 주먹을 날렸다.

시온은 이번에도 얌전히 맞았다. 그 태도가 디에스를 더 화나게 만들었다.

디에스는 아예 시온의 멱살을 잡고 그를 몇 번이고 후려쳤다.

일방적인 폭행이 이어졌지만 시온은 저항하지 않았고 감시자들도 상관의 명령 때문에 나서지 못했다.

그러니 직성이 풀릴 때까지 두드려 패도 될 테지만, 디에스는 그에게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다. 지금은 이비를 찾는 게 더 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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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 줘.”

디에스가 잡고 있던 멱살을 뿌리치자 시온이 입가에 피를 매단 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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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기만 할 테니까.”

부하들 앞에서 형편없이 얻어맞은 주제에 체면을 챙길 생각도 하지 않고 다만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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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탁이야.”

디에스는 그 꼴이 어처구니없어 이를 악물었다.

죄 없는 애를 득달같이 몰아댄 게 누군데, 결국 혼자 먼 길을 돌아오게 만든 게 누군데.

그마저도 잡겠다며 이따위로 진을 친 게 대체 누군데.

그래 놓고 이제 와서 감히 걱정하는 척이라니.

디에스는 그와 상종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제안을 무시할 수도 없었다.

연락이 끊긴 이비를 찾으려면 여기 있는 병력이 필요했다.

결국 디에스는 시온의 멱살을 다시 끌어당겼다. 그러곤 화를 삼키며 나직이 짓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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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비가 잘못되면 너도 무사하지 못할 거야.”

그 말에 이미 핏기 없는 백작의 얼굴이 더 창백해졌다. 그래서 디에스는 기분만 더 더러워졌다.

저 백작을 두렵게 한 건 디에스의 협박이 아니라 전제였다.

이비가 잘못되면, 이라는 전제.

일을 이렇게 만든 게 대체 누군데, 네가 뭘 잘했다고 그딴 표정을 지어.

디에스는 이렇게 윽박지르고 싶은 걸 가까스로 참았다. 그러곤 시온의 멱살을 거칠게 뿌리쳤다.

이비가 실종되었다.

비에 씻긴 노을이 유독 아름답던, 성녀 발탁식을 엿새 앞둔 어느 봄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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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이 타듯이 붉었다.

시온은 세상을 태울 것 같은 황혼을 필사적으로 가로질렀다.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시온은 텅 빈 백지에 놓인 심정으로 자신에게 물었다. 일을 왜 이 지경으로 만들었는지.

기다리면 올 줄 알았다. 다시 만날 줄 알았고, 또 실컷 싸울 줄 알았다.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

이비를 만나는 게 더는 비현실적인 일이 아니어서, 꿈에서나 기대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서.

대체 뭘 믿고?

몇 년씩이나 찾아 헤맸으면서, 그 시간이 얼마나 지독한지 기억하면서, 그렇게 간신히 만났으면서.

대체 뭘 믿고 그렇게 안일했지?

시온은 저무는 해를 쫓듯이 날았다. 어둠이 내리기 전에 뭐든 찾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한계까지 속도를 끌어올린 비행에 점점 숨이 막혔다. 하지만 그게 무자비하게 불어오는 바람 때문만은 아니었다.

바람이 몰아칠 때마다 디에스에게 맞은 턱도 욱신댔다. 하지만 차마 아파할 염치는 없었다.

시온은 혼자 얼빠진 생각에 뒤엉켜 있다가 그에게 얻어맞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그 침착한 남자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자신을 두드려 팰 때가 되어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덜컥 알았다.

자신이 이비를 위험에 노출 시킨 것도 그제야 깨달았다.

시온은 이 상황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니 말도 안 되는 건 상황이 아니라 그의 지긋지긋한 아집이었다.

이미 이비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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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테라는 젊은 남자였어요. 왜인진 모르겠지만 저를 죽이러 왔다는 밤의 일족이에요.

그 이름을 듣고 왜 그냥 넘어갔지?

놈이 이비를 노린다는 얘길 들었으면서 대체 왜?

얼마나 위험한 인물인지 뻔히 알면서, 놈이 투기장에서 이비를 습격한 것도 다 알면서.

그런데 이비를 보호하진 못할망정 기어이 혼자 도망치게 만들었다. 그래서 노리기 좋은 기회를 만들었다. 다름 아닌 그가, 시온 라우렐이.

몰려드는 죄책감에 시온은 피가 맺힌 입술을 더 짓이기듯 깨물었다.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찾아다닐 땐 살아만 있어 달라고 빌었으면서, 안 보이면 속절없이 찾아 나서면서.

막상 앞에 있을 땐 뭐가 그렇게 못마땅했던 건지.

시온은 자신이 이비를 어떻게 몰아붙였는지 떠올리다 괴로움에 눈을 감았다.

정신이 나간 거지. 이걸 어떻게 감당하려고. 귀한 줄 모르고 마음껏 괴롭혔지.

이비가 나 없이 잘 지낸 걸 알고는 마냥 속이 꼬여서.

나만 널 찾은 게 억울하다고.

나만 또 매달리는 건 불공평하다고.

하지만 정답은 이미 알고 있었다.

과정을 엉망으로 꼬아 놨지만, 온갖 변명과 사족을 지우면 시온의 정답은 언제나 단순했다.

너를 만나고 싶었어.

정답은 이 한 문장뿐인데 대체 뭐가 중요해서.

시온은 후회했다.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그의 어지러운 심경을 흉내 내듯 수많은 용이 하늘을 휘저었다.

그가 자랑하듯 끌고 나온 군대였다. 이비를 혼자 찾던 게 막막하다며 세력을 모으더니 기어이 똑같은 상황을 만들어 써먹는다.

이렇게 본인의 유능함을 자랑하고 싶었나?

하지만 막상 이 지경이 되니 군대도 세력도 위안을 주지 못한다.

가능성을 아무리 높여 봤자 결과는 둘 중 하나라서. 찾거나, 못 찾거나. 이게 전부라서.

그 기로에 섰을 땐 혼자든 다수든 똑같은 지옥이다.

그러니 이런 상황은 처음부터 만들지 말아야 했다.

그러려고 지금까지 준비한 건데, 대체 나는 무슨 짓을 한 거지?

너에겐 함부로 덧씌우지 말라고 한 주제에, 온갖 것을 끌어안고 이도 저도 아닌 채 배회하다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

난 대체 뭘 바란 거야.

이비가 미워서 그랬나? 아니면 미워하고 싶어서 그랬나.

실은 억울해서 그랬다. 그리고 힘들어서 이젠 네가 먼저 알아봐야 한다고 정했다. 네가 먼저 다가오고 네가 먼저 달래야 한다고 멋대로 순서를 정했다. 또 외로워서.

그 결과가 이거다. 적어도 억울한 건 사라졌다. 더 힘들고 더 외로워졌지만, 그래도 이제 억울할 틈은 없다. 대신 자책해야 할 뿐.

그래서 시온은 끝없이 자책하며 이비를 찾았다.

일단 이비를 되찾으면 돌이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더 이상 널 시험하며 괴롭히지 않고 너를 만나고 싶었어, 이 한마디로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또 하염없이 너를 찾아다니는 것보단, 그 밖의 모든 일이 차라리 나으니까.

결국 시온은 이비를 찾는 것 외엔 아무것도 바라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거면 된다고 제법 기특하게 다짐했다.

그런데 마침 기다렸다는 듯 그가 묻어 뒀던 이비의 말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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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저를 찾아다니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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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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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찾아다닌 거잖아요.

그 순간 불안하게 술렁이던 마음이 전혀 다른 느낌으로 선뜩해졌다.

생각해 보니 이비는 이런 말도 했다.

그런데 이비의 마지막 말을 곱씹느라 시온은 잠시 잊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일부러 외면한 건지도 모른다. 이비를 태연히 미워하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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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단지 빚인가요? 다시 생각할 시간을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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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못 해도 반가워할 수는 있었잖아요. 그럼 나도 더 일찍 알아봤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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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여기까지 쫓아와서 할 말이에요? 그렇게 자나 깨나 내 걱정을 해 놓고…….

이비는 이렇게도 말했다. 받아들이지 않은 건 시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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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기대고 싶은 사람은 백작님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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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하니까요. 날 데리러 오기로 한 사람이, 그래서 내가 기다린 사람이 백작님이라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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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서로 특별해질 가능성이요.

절대 쉽지 않은 말이었을 것이다. 이비에겐 특히 더 어렵게 짜낸 말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시온은 이조차도 의심하고 경계하면서 기어이 트집을 잡았다. 그로써 이비가 어렵사리 한 고백을 덮어 버린 것도 결국은 그였다.

이걸 깨닫는 순간 시온의 마음에서 술렁임이 사라지고 새하얀 침묵이 내렸다.

이비는 그를 먼저 알아보았다. 그래서 먼저 다가왔고, 기꺼이 그를 달랬다.

알고 보니 이비는 시온이 혼자 고집스레 세워 둔 기준에 이미 맞추고 있었다. 그럼에도 시온은 이걸 까맣게 몰랐다.

그가 기억하고 곱씹어야 할 말은 다른 게 아니라 이것들인데, 정작 시온은 이 모든 걸 뒤로한 채 괜한 것에 매달려 있었다.

홀로 세상의 비밀을 안다는 오만에 갇혀 정작 중요한 걸 놓쳐 버렸다.

그걸 인정한 순간 그를 사로잡았던 적막이 해일로 변해 쏟아졌다. 시온의 마음도 그 무자비한 중량에 짓눌려 모조리 무너졌다.

처절하게 부서진 마음 위에 최초의 의문이 돌아왔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하지만 그 자문의 무게는 전혀 달랐다.

아까는 숨이 막혀 답답할 뿐이었다면, 이제는 폐부가 찢긴 것처럼 아파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시온은 자신이 무엇을 밀어내고 놓쳤는지 비로소 깨달았다.

그래 본들 너무 늦었다.

이비는 이미 그의 옆에 없었다.

과연 돌아올지, 돌아온다면 그게 언제일지도 알 수 없다.

설령 돌아오더라도 그때는 그에게 말해 주지 않을 것이다.

그가 무시하고 짓밟은 속삭임들을, 적어도 시간을 되돌리지 않는 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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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비의 실종이 확인되고 세 시간 후, 까맣게 내린 어둠 속에서 감시자들은 겨우 찾아냈다.

이비가 타고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마차를.

바옌의 병사들이 호위하던 그 마차는 마치 장난감처럼 토막 나 있었다. 그리고 다수의 병사가 희생된 채 그 주변에 방치되어 있었다.

감시자들은 이 흔적이 밤의 일족의 소행이라 추측했다.

이비의 집사는 그가 밤의 일족 중에서도 엔테라는 이름을 가진 새로운 요주인물이라고 특정했다.

그날 그들이 찾은 이비의 흔적은 그게 전부였다.

이비 아리아테의 실종은 그렇게 밤을 맞이했다.

그리고 이비의 집사는 주인의 수색을 감시자들에게 미룬 채, 혼자 티엔다로 올라갔다.

그러곤 수년 만에 자신의 옛 주인을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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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일이야? 네가 나를 다 찾아오고.”

로히카가 알록달록한 뱀을 손에 굴리며 말했다. 이번에 생긴 취미가 뱀 사육인 모양이었다.

다리를 꼬고 앉은 로히카는 도마뱀들이 귀엽다는 듯 자신의 손끝에 시선을 고정했고, 디에스는 차마 로히카를 직접 보지 못해 그의 발끝만 바라보며 형편없이 떨리는 손을 등 뒤로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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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비가 실종됐다는 얘긴 들었어. 큰일이네.”

그토록 데면데면한 거리를 유지한 채 로히카가 가볍게 중얼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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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직접 기른 개가 주인을 잃어버릴 만큼 무능했다니, 정말이지 무척 큰일.”

로히카가 제 말장난에 까르르 웃었다.

그 매혹적인 웃음소리가 디에스의 숨통을 조였지만, 그는 애써 견디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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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비를 노리는 밤의 일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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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그래서? 나더러 어쩌라고? 도와달라고? 구해 달라고? 아니면 복수라도 해 달라고?”

로히카는 요란하게 되묻고 또 즐겁게 웃었다. 그러면서 손에 쥔 뱀의 입을 억지로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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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너는 포기한 거야?”

로히카는 그 상태로 뱀의 독니를 잠시 관찰했다. 그러곤 스치듯 가볍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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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목숨, 이제 내가 가져가도 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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