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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고스란히 까발리는 저주 (1/129)


1화. 고스란히 까발리는 저주
2022.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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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구원을 바라는, 완벽하지 않은 세계의 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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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긴 대로 버르장머리가 없으시네요.”

한 소녀의 폭언이 화기애애하던 연회장에 찬물을 끼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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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인사는 마저 해야겠죠. 이렇게 뵙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시온 라우렐 백작님.”

이어진 모욕이 남은 웃음기마저 싹둑 끊어 냈고, 별안간 떨궈진 날벼락에 귀족들은 선 채로 얼어붙었다.

파티를 즐기던 귀족들은 멍한 얼굴로 한 소녀를 바라보았다.

물빛 드레스를 입은 그 소녀의 이름은 이비 아리아테.

차기 성녀 후보이자, 방금 단 두 마디로 연회장의 분위기를 박살 낸 범인이었다.

그 소녀를 중심으로 연회장에 싸늘한 침묵이 감돌았다. 그리고 모두가 당황한 그때, 사태의 원흉인 이비는 아주 조용히, 그러나 누구보다도 격렬히 경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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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뭐라고 했지?’

이비는 놀란 토끼 눈으로 침묵이 내린 연회장을 돌아보았다. 그러곤 자신의 앞에 선 화려한 미남을 다시 올려다보았다.

그의 이름은 시온 라우렐. 이 연회를 주최한 라우렐 대공의 동생이자, 방금 이비로부터 버르장머리가 누락되었다고 매도당한 당사자였다.

이비가 꽁꽁 얼어붙어 눈을 깜빡이는 사이, 백작이 입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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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백작의 단조로운 물음에 이비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변명했다.

아니, 변명하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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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긴 대로 버르장머리가 없지만 뵙게 되어 영광이라고 했습니다, 백작님.”

하지만 정작 이비의 입에서 튀어나온 것은 발랄한 시비였고, 이비는 기겁하며 헛숨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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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뭔가 잘못됐다. 그러지 않고서야 예의 바른 이비가 오늘 처음 만난 사람에게 이런 막말을 해 댈 리 없었다.

이비는 너무 놀란 나머지 급히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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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실례했습니다, 백작님. 제가 하려던 말은 이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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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백작이 변명을 막으며 이비에게 몸을 기울였다.

거리가 좁혀지며 백작의 얼굴이 보다 가까워졌다. 그래서 이비는 곤혹스러운 심정으로 한 뼘 거리에 놓인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백작은 대단한 미인이었다.

깎아 낸 듯 섬세한 이목구비는 흠잡을 데가 없고, 이비를 마주 보려고 친히 낮춘 어깨는 그가 얼마나 큰 사람인지 실감하게 했다. 게다가 샹들리에 아래 반짝이는 금발은 후광처럼 눈부셨다.

다만 소문과 다른 것이 있다면, 텅 비어 생기가 하나도 없다던 하늘색 눈동자가 지금은 묘하게 집요한 색채를 띤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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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무슨 말을 하려고 했습니까?”

백작이 이비를 주시하며 물었다. 해명할 기회를 주는 건지 분노를 참는 건지 종잡을 수 없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절박했던 이비는 판단을 뒤로한 채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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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똑바로 하고 다녀, 이 버릇 없는 자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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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차라리 죽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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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꿈이야…….’

또 한 번 입이 멋대로 움직여 이비를 곤경에 빠트렸다.

이비는 이 상황이 차마 믿기지 않아 덫에 걸린 토끼처럼 백작을 망연자실 바라보았다.

한편 이비를 마주 보는 백작의 눈빛은 여전히 묘했다.

화가 난 것도 같고, 신기한 것을 구경하는 것도 같고, 직전의 무례를 어떻게 처벌할지 고심하는 것도 같았다.

그의 모호한 눈빛과 연회장의 침묵이 이비의 숨통을 조였다.

귀족들은 이비를 잠자코 지켜보았다. 착하고 온순한 성녀 후보께서 갑자기 왜 저런 기행을 저질렀는지 다들 궁금해하는 얼굴이었다.

이비는 그들에게 해명이든 변명이든 하고 싶었다. 하지만 또 이상한 말이 나올까 봐 차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겁먹은 이비는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러곤 자신에게 내리꽂히는 무수한 시선을 뒤로한 채, 결국 그 연회장에서 도망쳐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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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어떻게 된 거지?’

마차에 올라탄 이비는 숨을 몰아쉬며 직전의 일을 떠올렸다.

아까 이비는 수백의 귀족이 보는 앞에서 대귀족인 시온 라우렐을 모욕했다. 심지어 버르장머리 운운하면서.

감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곳 티엔다에서 대귀족이라 불리는 건 단 네 가문뿐이고, 그중에서도 첫 번째로 꼽히는 것이 바로 라우렐 대공가다.

라우렐은 귀족들의 귀족이며 왕이 없는 이 대륙의 실질적인 주인.

그런데 그 라우렐 대공이 주최한 연회에서 그 라우렐 백작을 모욕하다니.

이비는 울고 싶은 심정으로 그 자리의 귀족들이 뭐라고 수군거릴지 상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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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원래 저런 성격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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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발탁 전에 본성을 알아서 다행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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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하고는, 누가 비스 출신 천민 아니랄까 봐.

저절로 그려지는 비난에 이비는 눈을 질끈 감았다.

지금은 유력한 차기 성녀로 거론되고 있지만, 사실 이비는 밑대륙인 비스에서 온 하층민이다.

비스의 보육원에서 지내던 이비는 열다섯 살이 되던 해에 신의 가호를 받았다. 그래서 탑주의 눈에 들어 귀족의 세계인 윗대륙, 이곳 티엔다로 올라오게 되었다.

그 후 열여덟 살이 되어 티엔다 사교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였지만, 보수적인 귀족들은 하층민인 이비를 매섭게 냉대했다. 몇몇 어린 귀족들은 저 천출이 언제쯤 비스로 도망칠지 철없는 내기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견고한 악의에도 불구하고 이비를 향한 배척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신의 가호를 받는 이비의 경이로운 능력과, 그에 걸맞은 선하고 따스한 성품 때문이었다.

결국 냉랭하던 귀족들도 하나둘 마음을 열었고, 지금은 이비를 차기 성녀로 거론할 만큼 사랑하게 되었다.

그런데 바야흐로 오늘, 그간의 노력이 와르르 무너졌다. 이비가 모두가 보는 앞에서 경박하게 막말을 뱉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하늘에 맹세코 이비는 이런 말을 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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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멋대로 나왔어. 나도 모르게. 대체 왜 이런 일이…….’

이비는 혼란스러워하며 원인을 찾다가, 돌연 헛숨을 삼켰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집사가 이런 말을 해 준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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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비 님, 사교계에 나가시려면 저주에 대해서도 알아 두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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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드문 경우입니다만, 귀족들은 암살을 사주하듯 저주를 의뢰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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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저주는 기이한 방식으로 대상을 곤경에 빠트립니다. 그러니 주의하셔야 합니다.

그래, 들어 본 적이 있다. 저주에 대해.

그 말을 떠올린 이비는 동시에 자신의 상태를 확신했다.

아마, 아니. 분명 이건 저주다. 그러지 않고서야 입이 이렇게 멋대로 움직일 리 없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이비의 여린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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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 때문이라고 하면…… 다들 믿어 줄까?’

대귀족인 라우렐 백작님을 모욕한 게 본의가 아니었다고 하면, 직전의 무례는 전부 저주 때문이라고 하면…….

이비는 그렇게 생각하다 질끈 눈을 감았다.

정체불명의 저주보다 귀족들의 시선에 더 전전긍긍하는 자신이 조금 미웠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티엔다와 비스에는 결코 넘을 수 없는 신분의 벽이 존재하며, 그 안에서 오만은 권리이고 비굴은 의무였다.

이비가 발만 동동 구르는 사이 마차는 어느새 이비의 저택에 도착했다.

주인의 이른 귀가에 하인들이 허둥지둥 마중 나왔지만, 이비는 그들을 뒤로한 채 곧장 방으로 달려갔다. 그러곤 문을 등지고 심호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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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명하려면 먼저 어떤 저주인지 알아야 해.’

이비는 그렇게 생각하며 침실에 놓인 전신 거울을 바라보았다.

거울 속엔 검은 머리카락을 늘어트린 청초한 소녀가 숨을 죽이고 서 있었다. 공들여 치장한 모습이 자기 눈에도 예뻐 도망쳐 나온 처지가 새삼 서글펐다.

이비는 속상함에 입술을 깨물다가 거울을 향해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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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비 아리아테. 마냐냐 탑의 성녀 후보이자, 저주에 걸린 것으로 추정되는 이비 아리아테…….”

이비는 생각나는 대로 몇 마디 중얼대다가 도로 울상을 지었다. 백작에게 막말을 할 때와 달리 지금은 말이 제대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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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설마 다른 사람 앞에서만 말이 꼬이는 거야?’

그럴싸한 가정이지만 아직 단정 짓기는 일렀다. 아까 이비는 백작 앞에서도 잠깐이나마 말을 제대로 할 수 있었다.

이비가 거울을 노려보며 거듭 고민하는데, 똑똑 노크 소리가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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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비 님, 접니다.”

문밖에서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비의 집사인 디에스의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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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셨다는 이야기 들었습니다. 예정보다 일찍 오셨는데, 혹시 무슨 일이 있으신지요?”

집사가 점잖게 물었지만, 이비는 설명할 여력이 없어 적당히 둘러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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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회장에서 라우렐 백작한테 버르장머리 없다고 욕하고 뒷감당을 못 해서 도망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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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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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아니, 둘러대려고 했다.

그런데 이비의 목소리는 또 한 번 본체의 의지를 거슬렀고, 이비는 놀라서 입을 틀어막았다.

또다. 또 입이 멋대로 움직였다. 왜지? 왜 하필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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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이거 혹시……?’

멍하니 굳어 있던 이비는 어떤 예감에 헛숨을 삼켰다.

그러고 보니 그랬다. 이비의 입에서 원치 않는 말이 나올 때는, 그 전에 어떤 특정한 상황이 있었다. 맨 처음도, 두 번째와 세 번째에도, 그리고 지금도.

이어지는 추측에 이비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러곤 문밖에 있는 집사에게 조심히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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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집사. 이 얘긴 잠깐 덮어 두고, 질문 하나만 해 볼래요? 평소에 궁금했던 거 아무거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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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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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만요, 중요한 일이에요.”

이비가 머뭇대는 집사를 채근했다. 그에 집사가 마지못해 운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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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비 님, 이번에 폐기한 탑주님의 조각상은 정말 실수로 깨트리신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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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그거 일부러 발로 차서 깬 거예요.”

이비의 가감 없는 대답에 일순 침묵이 감돌았다.

이비는 놀라서 눈을 휘둥그렇게 떴고, 문밖의 집사도 잠시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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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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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주가 빡치게 해서요.”

집사가 영문을 물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비는 저도 모르게 대답하고 멍하니 얼어붙었다.

의미심장한 정적 후, 집사가 나직이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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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비 님, 혹시 제 베르다드 한정 찻잔의 행방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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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요. 내 방 화분에 묻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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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깼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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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런데 이건 실수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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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제가 찾을 때마다 왜 모른다고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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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너는 잔소리와 뒤끝이 어마어마하니까…… 그, 그만! 이제 됐어요!”

집사의 연이은 추궁에, 그리고 자신의 입에서 술술 흘러나온 자백에 이비는 기겁하며 문답을 중단했다.

집사가 이 문 좀 열어 보라며 소리쳤다. 그래서 이비는 문고리를 꼭 붙잡고 버티며 신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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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수가…….”

이비는 비로소 깨달았다. 자신이 어떤 저주에 걸렸는지, 그리고 라우렐 백작을 비롯한 귀족들에겐 아무 해명도 할 수 없다는 것도.

온화하고 고결한 성품을 지닌 성녀 후보 이비 아리아테는 저주에 걸렸다.

확신컨대 그것은 타인의 물음에 반드시 솔직하게 대답하는 저주.

그리고 불과 한 시간 전, 저주에 걸려 정직해진 이비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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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긴 대로 버르장머리가 없으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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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똑바로 하고 다녀, 이 버릇 없는 자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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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아…….”

자신의 말을 곱씹던 이비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여기까지 온 이상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저주 탓으로 치부했던 이 저렴한 막말은 사실 이비의 순도 높은 진심이었다.

착하고 온순한 이비 아리아테는 본디 까칠까칠하고 속물적인 성격을 가졌지만, 오직 성녀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얌전한 척 연기해 온 녀석이었다.

그런데 날벼락같이 떨어진 저주가 하필이면 그 가식을 고스란히 까발리는 저주였으니, 상황을 깨달은 이비는 문을 등진 채 주저앉았다.

그러곤 숨 쉬는 법도 잊고 묵음으로 비명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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