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0화 99층, 나쁘지 않을지도?
탐사대를 따라 이동한 지 40분가량 되었을까.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콰직!
-빠드드득!
99층에는 몬스터가 많았고.
“이걸로 식량은 충분하겠군.”
“그나마 다행이야. 화조국에서 상단이 언제 올지도 모르잖아.”
“도축 먼저 해 둘까?”
이곳에 있는 NPC들은 자급자족을 기본으로 활동했다.
요리 스킬까지 있는지, 몬스터를 잡은 후 먹을 수 있는 부위는 따로 보관했다.
게다가 말하는 것으로 봤을 때는.
‘화조국도 99층은 거의 안 오는 모양인데.’
탑 전역에 물품을 납품하는 화조국도 이곳은 반쯤 포기한 느낌.
다른 안전지대나 기타 일반 몬스터만 돌아다니는 곳이라면 상관없겠지만 이곳은 아니었다.
이들이 말하는 괴이체라는 대상과 숭배자의 왕이라는 위협이 있었으니.
화조국 입장에서도 상인을 보내기 껄끄러운 것이다.
‘장비도 여기서 만든 건가.’
가만 보니 마감이 대충 되어 있거나 수리한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것만으로는 충당이 안 된다는 거겠지.
놀랍게도 조잡한 물건 말고 상당히 공을 들여 만든 물건도 있다.
뛰어난 장인이 있다는 의미.
식량, 장비, 기타 모든 것을 알아서 해결한다라.
‘독자적인 생태계가 만들어졌어.’
고립되어 있는 탑.
그 안에서도 자생 가능한 특수한 층.
그곳이 99층이이었다.
이 정도 상황까지 왔다는 건.
‘시스템이 아니라 이곳에 사는 NPC들이 만들어 낸 사회가 있을 거야.’
NPC들이 만든 마을이든 도시든 뭔가가 있다는 뜻이었다.
시스템의 영향을 받지 않고 오로지 99층에서 살아가기 위해 만들어진 곳 말이다.
‘놈들에 대한 걸 파악하면 그쪽으로 향해야지.’
일단은 여기부터.
-띠링. 띠링.
아까부터 커뮤니티 알람이 울리고 있었으나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내가 계속 뒤에 있는 것이 신경 쓰였던지 탐사대원들이 옆에 붙었으니까.
“언제 도착하지?”
“다 왔다네. 괴이체의 종류는 둘. 하나는 고목. 다른 건 쥐새끼.”
고목과 쥐새끼라.
특징을 말하는 건가.
괴이체라는 것이 따로 정해진 몬스터가 아니라서 이렇게 부르는 듯한데.
“저기다. 다들 보조 준비.”
일정 기점으로 느긋이 대화를 하던 이들이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인기척을 줄이고 자세를 낮추며 전진.
나 또한 요동치는 혼돈을 느꼈다.
특이하다.
재앙도 혼돈의 파편도 아니다.
정제되지 않고 흔들리는 느낌.
예전에 비슷한 것을 본 적이 있다.
‘74층, 세계수가 있던 시나리오.’
그곳에 있던 크리처와 유사하다.
정령과 드루이드가 스스로의 정체성과 존재를 대가로 괴물이 되었던 일을 기억한다.
그렇다는 건.
“그르르르.”
“츠츠. 츠츳!”
‘놈들도 비슷한 케이스라는 거군.’
바닥에 엎드려 포복했다.
수풀 사이에 몸을 숨긴 채 놈들을 주시했다.
혼돈의 영향을 받아 종족을 초월한 무언가가 된 괴물들.
한눈에 놈들이 괴이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뿌리를 이용해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나무에는 잎사귀 대신 칼날이 붙어 있었으며.
‘저건 수인이랑 비슷하네.’
쥐새끼라 불렸던 녀석은 라이칸스로프처럼 두 발로 일어서서 연신 코를 벌렁거리고 있다.
덩치가 사람보다 크다는 게 특징이랄까.
몸 두께를 보니 힘깨나 쓸 거 같다.
“어느 쪽 먼저 처리할 건가? 나머지는 우리가 눈길을 끌고 있겠네.”
“쥐새끼 먼저.”
괴이체로 변해도 종족 특성 자체는 사라지지 않는 건지 칼날 나무의 움직임은 다소 굼떴다.
그러니 비교적 빠르게 움직이는 것 먼저 처리할 생각이었고.
-타앗.
은신 스킬을 사용해 모습을 감추며 진입했다.
“츠츠츳?”
아직 거리가 있음에도 쥐새끼가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후각이 예민하군.
딱 좋은 물건이 있다.
-파아앙!
발을 박차며 달렸다.
그와 동시에 아공간에서 포션을 꺼내 던졌으니.
[악취 포션]
-고약한 냄새가 퍼집니다.
-비위가 약하다고요? 우엑!
-쨍그랑!
“츠에에에엑!”
포션이 깨지며 올라오는 악취에 놈이 헛구역질한다.
평범한 사람이 맡아도 정신을 못 차리는데 이 녀석은 오죽할까.
패닉이 온 상태가 공격 타이밍.
[검강]
[절삭(SSS) Lv.7]
[스킬 레벨 업!]
[절삭(SSS) Lv.8]
-촤아아악!
“츠으으읏!”
목을 날리려 했으나 놈이 몸을 비틀었다.
아쉽게도 오른팔이 잘려 나가는 것으로 끝.
좀 더 몰아치면 된다.
‘튼튼하긴 하다.’
단번에 자르기는 했다만 그건 놈이 방심해서 그런 거고.
시뻘건 눈으로 날 노려본 녀석이 고속 이동 했다.
-사아아악!
잔상이 남을 정도로 빠른 속도!
발톱을 길게 뻗으며 나를 긁는 척 페이크를 주더니 바짝 몸을 바닥에 붙인 뒤 네 발로 돌진했다.
커다란 주둥이에 빼곡하게 박힌 송곳니.
-콰직!
내 종아리를 물었다.
펠라인 세트에 막혀 대미지는 거의 없었으나 이빨이 조금 피부에 닿았고.
[독 내성(SSS) Lv.10+]
[저주 내성(SSS) Lv.10]
[질병 내성(SSS) Lv.10+]
패시브 스킬이 발동되었다
위생적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건 좀 너무하네.”
이빨을 다 뽑아 버리든가 해야지.
빠르고 강력하기는 하나, 그래 봐야 쥐새끼.
살점을 뜯고 싶은 건가, 이빨을 박아 넣은 채 몸을 흔드는 녀석의 머리통을 붙잡았다.
뇌가 작아서 그런지 덩치에 비해 머리가 작다.
어디 시궁창에서 굴렀는지 눅눅하면서도 끈적한 촉감이 별로니.
“좀 말려 줘야겠군.”
[일렉트릭 쇼크(SS) Lv.MAX]
-파지지지지직!
아낌없이 전기를 쏟아 줬다.
그걸로도 모자랄까 싶어 파이어 밤까지.
-콰아아아앙!
폭발의 여운이 가셨을 때는 손에 잡히는 게 없었다.
머리는 물론이요, 상체까지 터져 버렸으니까.
손을 털어 내자 쥐의 사체가 고꾸라진다.
‘신기하네.’
놀랍게도 쥐의 내부에는 내장이 없었다.
시커먼 혼돈이 꾸물거리며 나오다 사라질 뿐.
저것도 생명체라고 볼 수 있나?
‘애초에 뇌나 심장과 같은 약점이 있는 건가.’
머리통이 날아간 후 죽은 걸 보니 약점 자체는 비슷한 거 같은데.
아무튼.
“저것만 치우면 끝인가.”
탐사대가 눈길을 끌고 있겠다 말한 게 거짓이 아니었는지, 나무 괴이체는 연신 날아오는 원거리 공격에 짜증을 부리고 있었다.
-우드드득!
-차아앙!
기다란 가지를 채찍처럼 휘두를 때마다 파공성이 터진다.
더불어.
-파사삭!
비수를 던지듯 가지를 휘두를 때 칼날로 이루어진 잎사귀를 던졌다.
탐사대가 있던 곳이 부산스러워진다.
아무리 그들이라도 저런 걸 그냥 맞아 줄 수는 없으니 피하는 거겠지.
“나무 쪽이 더 강하네.”
공격만 봐도 알 수 있다.
못해도 퍼스트 몬스터급은 넘는다.
저런 놈들이 이곳에 깔려 있는 건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무에 다가갔다.
탐사대를 견제하면서도 나를 신경 쓰고 있었는지 땅속에 묻혀 있던 뿌리가 일제히 솟아올랐다.
-파아아악!
사람 몸통만 한 뿌리가 사방에서 덮쳐 온다.
빠져나갈 곳을 없애기 위함인가, 그물처럼 엮여 들어오는 공격이 나쁘지 않았으나.
-서걱.
-촤가가가가각!
한 호흡에 이어진 수십 번의 검격에 조각나 사라진다.
-구오오오!
놈 또한 이 정도로 끝낼 생각이 없는지 곧장 뿌리가 재생한다.
초재생 능력.
내 쪽이 가장 위협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는지 탐사대를 공격하는 것을 포기하고 내게 전력을 쏟는다.
칼날 달린 가지를 휘두르고 내려찍는다.
육중한 무게와 함께 스치기만 해도 베일 예리함이 뒤섞이니.
-콰아아아앙!
-콰자자자작!
옳은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몽둥이로 난도질하는 느낌.
옆으로 몸을 피하며 검을 찔러 넣었다.
-캉!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이파리가 부르르 떨린다.
‘잎사귀 쪽이 강도가 상당해.’
탐색용으로 찌르긴 했지만 깨지지 않고 버틸 줄이야.
이런 게 밖으로 나가면 어떻게 될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혼돈의 파편이 지배자로 있던 층은 여럿 있었지. 그중 이곳에만 괴이체가 있다는 건.’
괴이체란 99층에만 나타나는 돌연변이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그때 번뜩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잠깐만.”
괴이체가 이곳에만 있다?
녀석이 가지고 있는 잎사귀를 다시 살폈다.
가볍고 날카로우며 강도도 뛰어나다.
그야말로 최고급 제작 재료!
심지어 이곳이 아니면 얻지도 못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싹 쓸어 가야겠는데?”
언젠가 탑 밖으로 나가게 되면 다시는 못 구한다는 거 아닌가.
당연한 일이지만 상점창이나 그런 곳에서 파는 것도 아니고.
되돌아 생각해 보니 방금 잡은 쥐새끼도 그렇다.
놈의 송곳니. 그걸 사용하면 저주와 질병, 독 속성을 가진 아이템을 만들 수 있을 텐데.
“이것 참, 허허. 요즘 파밍하는 재미가 없던 건 어떻게 알고.”
씰룩.
입꼬리가 올라간다.
괴상하게 생긴 나무가 괜히 귀여워 보인다.
나무껍질 패턴도 예쁜 거 같고.
저거 뿌리는 재생하던데 포션 재료로도 쓸 수 있으려나.
어쩌면 영약을 만들 때 쓸 수도 있다.
포션과 영약.
이후, 밖으로 나가면 나의 든든한 자금줄이 되어 줄 상품이기도 했다.
“흐흐. 으흐흐.”
-움찔.
나무 괴이체가 멈칫하더니 뒤로 물러난다.
왜 도망가고 그러냐.
얼마나 쓸 만한지 테스트도 좀 하려는데.
촉감이 좋으면 손잡이로 써도 좋고, 탄성이 좋으면 활로 만들 수 있다.
방호력이 좋으면 방패나 갑옷 재료로도 쓸 수 있지 않을까?
아무래도 나무가 금속보다는 가벼우니 경량화도 가능할 거다.
“조금만. 조금만 만져 보자!”
-고오오오!
파이어 밤은 사용하지 않는다.
귀한 재료를 망가트릴 수는 없으니.
이럴 줄 알았으면 쥐새끼도 머리통만 남기고 터트릴걸.
두 번 다시 같은 실수는 하지 않는다.
쪼개고 문지르고 눌러 보자!
“아! 도망가지 말고!”
난 기쁜 마음으로 도망치는 괴이체를 쫓았다.
“쟤 좀 이상한데요, 대장?”
“눈깔 돈 거 봤어? 미친놈인 거 같은데.”
“몰라. 묻지 마. 나도 무서워.”
저 멀리, 탐사대의 중얼거림이 들린 거 같았지만 기분 탓이 분명했다.
* * *
99층, 텐트촌.
마을을 버린 주민들이 새로운 터전을 향해 움직이며 만들어진 공간에는 냥펀이 있었다.
그녀는 이 상황이 달갑지 않았다.
‘화조국 지부는 어디에 있징?’
어지간하면 층마다 화조국 지부가 있다.
지부가 없더라도 상품을 출납하는 담당자가 있었다.
적어도 어떤 상품이 수요가 있는지, 필요한 물자가 무엇인지 알아야 장사를 하니까.
냥펀은 화조국 소속이었으며 동시에 그곳의 수장인 금천황후의 계승자.
갈매기를 보내든 아니면 따로 통신 아티팩트를 사용하든 연락이 와야 정상이건만.
‘왜 연락이 없냥!’
고민해 봤지만 나오는 결론은 하나였다.
“흑흑, 장사 할 곳이 아니라는 거잖앙.”
장사할 만한 여건이 안 되는 곳이라는 뜻.
달리 말하면 아주 위험한 곳이라는 의미였다.
환경이 척박하고 혼돈의 파편이 지배자로 있는 곳에서도 화조국은 활동을 하니까.
당장 99층에 들어서자마자 권능이 반응하고 있었다.
[SSS급 권능, 안전제일이 꼬리를 세웁니다.]
그나마 지금은 좀 나은 상태.
맨 처음 떨어진 곳에서는 당장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매번 층에 진입해서 빠르게 안전한 마을로 도착할 수 있던 비결.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다 보면 대체로 사람들이 있었다.
다만.
“오오오! 화조국의 상인! 여기, 포인트 있습니다!”
“저리 꺼져! 포인트 몇 푼 있다고 들이밀어! 여기 괜찮은 부산물이…….”
“크흠. 포인트는 없고 아티팩트가 있는데 현물로 계산 가능한지요?”
그 사람들이 화조국을 애타게 찾고 있던 사람들인지는 몰랐다.
뜨거운 열기를 보이며 달라붙는 NPC들을 보며 냥펀이 울상을 지었다.
“으에에. 그러니까 이걸로 뭘 사고 싶다구?”
이곳에 모인 NPC들은.
“보안 장치 달린 집이요!”
“마을을 건설해 주십쇼!”
“화덕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환기 좀 잘되는 거로.”
“혹시 혼돈 방지 시트 같은 건 없나요?”
‘…그걸 왜 상인한테 찾냐구우, 미친놈들앙.’
자기 집 마련에 진심인 이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