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9화 괴이체
유령 마을.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곳에 남아 있는 탐사대의 메시지.
“탐사대라. 흐음.”
턱을 쓸어내렸다.
무엇을 탐사한다는 거지?
99층을 돌아다니겠다는 건 알겠다.
위로 올라갈수록 그 층을 차지하고 있는 존재의 영향력이 커서일까.
필드 규모도 비례해서 커지는 경향이 있었으니.
100층에 오르기 전, 마지막 층인 이곳은 역대급으로 넓은 필드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뭐, 여기까지도 그렇다 치지만.
‘99층에 있는 뭐를 찾고 있는 걸까.’
숭배자의 왕?
그 녀석을 찾는 건가.
찾아서 어쩌려고, 이기지도 못할 텐데.
피하기 위해서 녀석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다면 또 모르겠지만.
오필리아가 보여 줬던 기록구.
그 기록구를 가지고 있다가 죽은 녀석을 지칭했던 단어는.
‘관측체라고 했었지.’
베드록 바알루제의 영역에 들어갔다가 죽은 녀석이 마지막으로 비췄던 사람들.
그들이 아마 탐사대라 불리는 이들일 것이고.
간단히 정리하면.
“탐사대는 숭배자의 왕을 관측하고 있다.”
대충 이런 이야기가 된다.
잠시 팔짱을 끼며 생각을 했지만 결론은 간단했다.
“오필리아가 열쇠군.”
“그에에.”
결국 그녀가 해답이다.
크게 도움은 안 됐지만 97층과 98층의 공략법을 스마일캡의 경험을 토대로 짰다면 이번에는 오필리아의 차례다.
99층의 기록구를 보유하고 있다는 건 이곳에 그녀와 연결점이 있는 NPC가 있다는 뜻이니까.
탐사대라는 무리가 무엇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지, 우리에게 우호적인지는 모른다.
그래도 아예 맨바닥에 들이박는 것보다는 나을 터.
만나 보기는 해야겠다.
“합류는 다들 못 한 거 같고.”
혹시나 싶어 커뮤니티를 열었지만 멤버들도 그렇고 합류한 이들이 없다.
아무래도 99층에 들어선 이들은 뿔뿔이 흩어지는 모양.
예외가 있다면 노블 나이트 정도다.
이 녀석들은 집단 스킬로 묶여 있는 놈들이니까.
“그에엑.”
“여기도 있네.”
덕춘이가 귀를 잡아당기며 한쪽을 가리킨다.
탐사대가 남겨 둔 것으로 보이는 흔적이 더 있다.
마을 곳곳에 남아 있는 건가.
‘무슨 그림인지는 모르겠군.’
덕춘이가 발견한 것은 그림.
어떻게 보면 지도의 일부 같기도 하고 크게 보면 무언가의 형태 같기도 하다.
기묘한 생김새를 확인하며 마을을 좀 더 둘러보았다.
“마을 사람들이 떠난 지는 길어 봐야 한 달도 안 됐으려나.”
음식물 찌꺼기가 남아 있다.
파리도 몇 마리 날아다니고 있고.
시간이 오래 지났다면 파리조차 남지 않는다.
유충은 보이지 않으니 이미 자라서 성채가 된 것일 테고.
대략적으로 계산해 보면.
‘최소 일주일. 아마 이 주일 정도 지났군.’
그 기간 동안 마을 주민들이 모조리 떠난 거다.
도대체 왜?
이곳에서 살기가 힘들어서?
아니면 생존을 위협하는 뭔가가 있나.
살림살이를 가지고 떠난 것을 봤을 때 일정한 주기로 떠도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할 이유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탐사대라는 녀석은 최근에 다녀간 거겠네.”
벽에 긁어 두었던 것도 그렇고 그림도 그렇고 오래되어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사람들이 있었다면 그러지도 않았겠지.
버려진 건물, 탁자에는 아예 쪽지까지 있다.
-괴이체 두 구 발견.
-탐사대 구역 확보 예정.
-처리반 대기 요청.
“괴이체라… 탐사대가 찾고 있던 게 이건가?”
상황을 봤을 때는 내가 생각한 게 맞아 보이는데 실제로는 어떨지.
그들이 말하는 괴이체라는 게 뭔지도 모르겠다.
어림짐작했을 때 일반적인 몬스터는 아니다.
그랬다면 몬스터의 등급이나 이름을 적어 두었을 테니까.
“99층에 있는 NPC들이 몬스터 때문에 집단적으로 움직일 리도 없고.”
이미 명칭이 정해진 재앙이나 에이션트 몬스터도 아닐 거다.
수상쩍은 부분이 한두 개가 아니었지만.
‘탑에서 이상하지 않은 게 어디 있다고.’
직접 부딪치면서 확인해 보는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들의 경험과 정보도 중요하지만 맹신해서는 안 된다.
스스로 판단하지 않으면 휩쓸리니까.
이곳, 90층대의 테마는 혼돈.
이미 스마일캡의 경우를 보지 않았던가.
[혼돈이 고조됩니다.]
내가 원인인지 99층의 혼돈도 더 거세지고 있다.
과연 베드록 바알루제는 얼마나 강하려나.
‘숭배자의 왕과 제대로 맞붙기 전에 몇 번 죽을지도 모르겠군.’
필요하다면 몇 번이든 죽어서 놈의 약점을 파악할 생각이다.
이미 중간 다리는 만들어 뒀다.
97층의 에렘바트, 98층의 하이덴.
두 녀석 모두 나를 별다른 제약 없이 통과시켜 줄 테니까.
“음?”
여러 생각을 이어 가는 타이밍, 창문 밖으로 일단의 무리가 보였다.
가벼운 옷차림, 최소한의 장비를 착용하고 있다.
짐은 따로 아공간 아이템에 넣어 둔 모양.
그들도 나를 발견했는지 손을 흔들며 반색한다.
나 역시 폐가에서 나왔으니.
“처리반 쪽인가! 빨리 오게, 괴이체가 이동하려 하니까.”
놈들이 따라오라며 손짓한다.
내게 향한 적의는 없다.
다만.
‘저 녀석들. 인기척이 있었나?’
창문 밖으로 보일 때까지 근처에 다가오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건물 안에 있어서?
아니면 생각에 잠겨 있어서?
99층에서 활동하는 NPC인 데다가 탐사대이니 인기척을 줄이는 것도 불가능은 아니겠지만.
‘못 느낄 수가 없는데.’
하이덴을 계승하며 혼돈의 파편에 반쯤 발을 걸쳤다.
개념 하나를 사용할 수 있으니 이제 빼도 박도 못한다.
그에 따른 효과라고 해야 하나.
오감은 물론이요, 스킬이나 칭호 같은 고유한 의미와 규칙을 가진 것들에 예민해졌다.
“아, 흔적을 남긴 게 너희인가?”
“여기 탐사대 명찰 안 보이나? 농담할 시간 없네!”
자연스럽게 녀석들을 따라 움직였다.
수상한 게 있으면 확인해 봐야지.
그래도 조심하는 게 좋으니.
[SSS급 권능, 별을 주시하는 눈이 발휘됩니다!]
-츠즈즈즛.
녀석들의 정보를 확인했다.
[빅 모르튼]
-99층 NPC.
-5번 탐사대의 대장입니다.
-(혼돈에 오염되어 정보를 읽을 수 없습니다.)
일단 탐사대는 맞고.
다른 정보를 못 읽어 내는 게 아쉽다.
적어도 숭배자는 아니니 다행인 건가.
“위치는 파악했는데 처리가 안 돼서 곤란하던 참이었네.”
“이번에 나타난 녀석은 특이한 힘을 쓰더군요.”
“아아. 정말이지 하마터면 들킬 뻔했다니까. 망할 놈들 같으니.”
거리낌 없이 편하게 말을 거는 것이 마치 나를 처음부터 알고 있던 것만 같았다.
보통은 모르는 사람이 오면 경계 먼저 하지 않나?
‘아니면 99층은 등반가가 처리반 역할을 하는 걸지도 모르겠네.’
특별한 역할이 주어지는 것도 탑에서는 흔한 일이니.
유심히 놈들의 움직임을 눈에 담았다.
날래다.
괜히 탐사대라 불리는 게 아니라는 건지 움직임에 무게감이 없다.
마치 유령이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
권능에 스킬이나 권능이 걸리지 않는 걸 보면 탐사대만의 기술일까.
배울 수 있으면 배워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이동하는 타이밍.
-띠링.
커뮤니티 알람이 울렸다.
오필리아가 공개 채팅방에 글을 올렸다.
[갓블레스]: 이곳은 극도로 위험한 곳이에요. 수상쩍은 공간에 들어서면 바로 빠져나와야 합니다.
[갓블레스]: 99층에는 2, 3, 4, 7, 9번 탐사대만 존재하는 걸 명심하세요.
[갓블레스]: 다시 말하지만 이곳에 존재하는 탐사대는 이게 전부입니다.
탐사대에 대한 정보.
그중 유효한 탐사대 번호를 적어 두었는데.
힐긋.
내 앞에 걸어가는 녀석들을 확인했다.
이슬을 피하기 위함일까, 허리까지 오는 짧은 망토에는.
‘5번.’
숫자 5가 적혀 있었다.
“조금 있으면 도착이네! 들키지 않게 조심하라고. 기습할 생각이니.”
빠르게 커뮤니티를 끄는 찰나, 빅 모르튼이 소리쳤다.
“그러지.”
속마음을 감추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가슴은 차갑게 가라앉았다.
이놈들.
‘정체가 뭐냐.’
앞장서는 놈들의 뒤통수를 응시했다.
뭐 하는 놈들인지 확인이 필요해 보였다.
* * *
99층, 광활하게 뻗은 대지에 우두커니 솟아난 건물 하나.
붉은 벽돌로 만들어진 주택은 한적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마당에 자라고 있는 꽃에 물을 주던 드루이드가 고개를 들었다.
“흐음. 불청객이군.”
저 멀리, 숨을 생각 없이 다가오는 인물이 있다.
아니, 달려오고 있다고 해야 하나.
“와! 건물!”
드루이드, 말렛은 다가오는 자가 수상하다고 생각했다.
틀림없는 등반가.
그것도 99층에 올라온 강자다.
온갖 사선을 오갔을 테니 기운은 예리하고 조금이라도 미심쩍은 건 확인하는 철두철미함이 있어야 했는데.
‘뭐지? 그냥 미친놈인가?’
자신을 향해 직선으로 달려오는 녀석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심지어 옷차림도 이상했다.
초록색 쫄쫄이.
극도로 단련된 몸이 부각되는 것이 미묘하게 부담스러웠으나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멈춰라. 다가오면 적으로 간주하겠다.”
99층에 도달한 인간이라면 자신에게도 위협적인 존재라는 것을.
수많은 위협이 도사리는 필드에서 어떻게든 안전하고 평안한 삶을 찾아 이곳까지 왔다.
언제고 탑을 떠날 대상 때문에 터전을 버릴 생각은 없었다.
그렇기에 견제했으니.
-꾸드드득.
나무로 이루어져 있던 팔이 휘며 활로 바뀐다.
그대로 시위를 당기자 마력의 화살이 잡힌다.
괴이체라도 충분히 타격을 줄 수 있는 능력!
-후웅!
그 기세만으로 바람이 몰려온다.
그의 주택 벽면, 이제는 빛이 바랜 5번 탐사대의 망토가 펄럭였다.
이제는 사라져 버린 5번 탐사대의 유일한 생존자.
탐사를 포기하고 삶을 선택한 이에게 뒤는 없었다.
눈앞의 존재도 멍청이는 아닌지 표정을 굳힌다.
“어? 야야!”
“허튼 수는 안 통한다.”
감미로운 유혹으로 함정에 빠트리거나 기습을 가하는 간악한 존재들이 한둘이던가!
오랜 시간을 탑에서 살아오며 배운 것이 있다면 함부로 남을 믿지 말라는 것.
휘둘릴 바에는 대화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옳았다.
동시에 대처는 단호하게.
자신이 정한 영역에 진입하는 순간 가차 없이 활시위를 놓을 것이었으나.
“너 뒤에 이상한 거 있다.”
“내가 네놈 말을 믿……!”
-슈팟!
가벼운 발소리와 함께 사라지는 신형.
탈모맨이 움직였고 말렛은 잠깐이지만 그 움직임을 놓쳤다.
그 사실에 서늘함이 등을 훑었으며.
‘나를 지나쳤다?’
대처하기도 전에 탈모맨이 자신을 스쳐 지나간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늦게나마 말렛이 뒤로 돌았고.
“희한하게 생겼네. 재앙도 아니고 혼돈의 파편도 아니고.”
-고오오오!
불길한 혼돈과 기운을 풍기는 존재가 손톱을 뻗었다.
거대한 그림자처럼 형태 없이 흔들리는 괴물.
99층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괴이체.
[정의의 일격(SSS) Lv.MAX]
-쩌어어엉!
굉음과 함께 탈모맨의 주먹이 괴이체의 발톱을 뭉개 버린다.
충격에 괴이체가 주춤하는 타이밍, 말렛 또한 활시위를 놓았으니.
[소용돌이(SSS) Lv.MAX]
-콰드드드득!
화살이 회전하며 만들어 낸 소용돌이가 괴이체의 팔을 찢어발겼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녀석을 앞에 두고 착지한 탈모맨이 뒤를 힐끗한다.
“그, 아까 뭐라 하지 않았어?”
“…믿고 연계 공격을 했지. 초면이지만 합이 잘 맞는군.”
“하하하! 그러게, 괜찮네!”
말렛은 직감했다.
평온한 인생은 글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