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8화 99층
개인적으로 궁금했다.
탑에 있는 존재들은 모두 계승자를 가질 수 있는가?
계승자라는 건 생각보다 범위가 넓다.
이건 시스템의 영향도 큰데.
‘일반 NPC가 아니라 중립 NPC도 계승자를 가질 수 있지.’
쁘찡연합 사람 중에 그런 케이스가 몇 있었다.
상위 층부터는 중립 NPC가 대거 나오고, 그중에는 강력한 힘을 가진 녀석도 여럿 있으니.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계승자가 된 이들이 존재했다.
“이상하지는 않아.”
NPC에게 주어지는 새로운 기회.
계승자를 구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었고 중립 NPC 또한 새로운 기회를 가질 수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그 외의 존재들은 어떨까?
‘에이션트 몬스터나 재앙, 영물의 계승자가 될 수도 있을까?’
현상으로 나타나는 재앙이야 대화 자체가 불가능하니 그렇다 치지만, 그렇지 않은 존재들도 있지 않은가.
당장 옥토 선생 같은 경우는 혼돈의 파편과도 비견되는 강자다.
이성도 있었으며 동시에 수인족의 시조가 되는 에이션트 몬스터이기도 했다.
‘다른 레비아탄이나 메스토카같이 몬스터 성향이 더 강한 놈들은 모르겠지만.’
하는 짓도 그렇고 태생도 그렇고 몬스터인 놈들이라 등반가를 공격하면 했지 계승자로 삼을 거 같지는 않았다.
막말로 몬스터가 원래 세계 가서 뭘 할까.
거기서도 때려 부수면서 사람 잡아먹던 놈들인데.
그래도 만에 하나라는 것이 있으니 아예 없다고는 말 못 하겠다.
어디까지나 가능성의 영역이다.
그런 걸 시도한 사람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으며 설사 있더라도.
‘말은 안 했겠지.’
재앙이든 에이션트 몬스터든 대부분 적으로 마주하게 되니까.
계승에 성공했더라도 공식적으로 밝히기는 꺼림칙할 거다.
인류의 배신자.
숭배자를 계승한 이들이 입을 꾹 다물고 있던 것과 비슷한 이유랄까.
그런 의미에서.
“내가 혼돈의 파편의 계승자를 하게 될 줄이야.”
나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사실 지금도 안 믿긴다.
등반가 중 나만큼이나 혼돈의 파편과 많이 싸운 사람이 없을 텐데.
정작 내가 계승자가 되었다.
웃긴다면 웃긴 이야기였다.
그런 나를 위로하고 싶은 걸까, 하이덴이 말을 걸었다.
【친구여, 그대와 같은 경우가 없던 건 아니다.】
“그래? 의외네. 나 말고 더 있을 줄이야.”
새삼 반가운 소식이다.
하기야 탑은 오랫동안 존재해 왔으니 과거에 누군가는 했을 수도.
【정확히, 는 시도 했었, 다고 해야겠군. 그자는 죽었으니.】
“…야.”
그건 그냥 없다는 거잖아.
뭐, 대충 짐작은 간다만.
“슬슬 할까?”
계승 작업을 시작할 때가 됐다.
이미 녀석과의 계약은 다 해 두었다.
나에 대한 비밀을 지킬 것.
우리 세계에 위해를 끼치지 말 것.
녀석이 정말 우리 세계를 구경하는 게 목적이라면 날뛸 이유는 없으니까.
하이덴은 흔쾌히 승낙했다.
애초에 이 녀석은.
‘사람 많은 곳 안 좋아한다고 했었지.’
내가 뭐라 하지 않더라도 사람들 앞에 나설 생각이 없었다.
거기에 마지막으로.
[하이덴이 98층의 지배자가 되었습니다.]
[하이덴은 사람들 앞에 나서고 싶지 않습니다.]
[98층을 프리패스 존으로 공표합니다!]
뮬랑 카센도, 발칸도 사라진 지금.
98층은 빈 공간이었고 그곳을 하이덴이 차지했다.
탈모맨을 비롯해 위로 올라올 사람들이 있기에 쉽게 통과할 방법을 마련할 생각이었는데.
‘아예 프리패스로 만들어 버렸네.’
화끈하다고 해야 할지, 귀찮음이 많다고 해야 할지.
아무튼 이걸로 다른 녀석들이 위로 향하는 건 어렵지 않을 거다.
【그럼 시작하겠다.】
그 말을 끝으로 녀석의 혼돈이 내게 뻗쳐 왔고 난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스스스스!
“으음!”
가뜩이나 혼돈이 가득한 몸에 더욱 많은 혼돈이 몰리자 과부하가 걸린다.
그것 또한 계승이 완료되면 해결될 문제지만.
달갑게 여기지 못하는 존재도 있었으니.
[시스템이 지정한 대상을 벗어났습니다!]
[경고!]
[혼돈의 파편은 계승 대상이 아닙니다!]
[시스템이 개입합니다!]
-파지지지직!
스파크와 함께 메시지창이 깨지기 시작한다.
버그 메시지가 떠올랐다.
현 상황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건가.
강력한 혼돈이 휘몰아치며 나와 녀석의 연결을 끊으려 했으나.
[혼돈이 규칙을 거부합니다.]
[당신의 유형은 정의할 수 없는 혼돈입니다!]
[???-히든 퀘스트가 초월 조건을 일부 달성하길 원합니다!]
나는 그것과 거리가 있었다.
공격하듯 들어오는 혼돈?
이미 차고 넘친다.
그것만 보면 혼돈의 파편과 별다른 것도 없는 게 나다.
버그야 등반 초창기부터 봤던 거고.
저 망할 히든 퀘스트는 나를 혼돈의 파편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그렇기에 시스템의 개입은 아무런 영향도 없었으며.
【성가신 것이, 있구나.】
그 여파마저도 하이덴의 손짓에 사라졌다.
허무하리만치 당연하게.
[전 서버 최초! 혼돈의 파편의 계승자가 되었습니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등반가의 신분으로 두 개의 개념을 가졌습니다!]
[보상이 지급됩니다!]
버그가 사라지며 메시지가 정상으로 돌아온다.
동시에 연달아 떠오르는 알람.
[???-히든 퀘스트]
-모든 계승을 완료했습니다!
-더 이상 계승하지 못합니다.
-초월 조건 일부를 달성했습니다!
히든 퀘스트가 나의 계승이 온전히 이루어졌음을 알렸고.
-쿠오오오오!
제멋대로 흘러 다니던 혼돈이 내 몸에 고착되는 것이 느껴졌다.
[보상으로 혼돈의 증표가 새겨집니다!]
[속성: 카오스를 얻습니다.]
가슴이 따끔거린다.
바늘로 피부를 찌르는 듯한 감각에 확인해 보니.
-스스스스.
검게 칠해진 문양이 번뜩이고는 몸에 흡수되었다.
뭐야, 이건?
의아함도 잠시.
“이건?”
【이제 그대도, 반쯤은 혼돈, 의 파편이라 볼 수 있겠구나.】
느낄 수 있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혼돈.
그것이 통제 안으로 들어왔다.
다른 마력이나 신성력을 다루듯 손쉽게 내 의지에 따라 움직인다.
【스스로를 증명하라. 개념은, 살아온 삶의, 증표. 네가 어떤 자, 인지 탐구하라.】
뜬구름 잡는 소리 같았으나 이해할 수 있었다.
혼돈의 파편에게 있어 개념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으니.
한마디로.
‘나도 나만의 규칙을 만들 수 있는 건가?’
이건 확인이 필요하다.
그보다.
‘초월 조건이 일부 달성됐다는 건 역시 그건가.’
오랜만에 상태창을 확인했다.
그곳에 새롭게 생겨난 항목.
[속성]: 카오스
거기에.
[개념]: 반골反骨, 부끄러움
“이런 씨.”
기존에는 확인할 수 없었던 개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럴 거라고 예상은 했다.
권능은 늘어나지 않았다.
애초에 이 녀석은 NPC가 아닌 혼돈의 파편이었으니까.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개념을 전해 줄 거라 생각했지만 직접 받으니 기분이 참 별로다.
【어울린다.】
“시끄러워.”
흡족해하는 얼굴을 보니 괜히 열불이 난다.
그러거나 말거나 녀석은 자기 할 말을 했다.
【이제야, 보다 선명, 해지는군. 이미 개화한 개념, 을 잘 살펴라.】
녀석의 말대로다.
놀랍게도 내게는 이미 활성화된 개념이 있었다.
보유하고 있다는 뜻이 아니다.
나만의 규칙이 하나 만들어져 있다.
[개념-반골反骨]
-꼭 있습니다. 하지 말라는 거 하고 멋대로 행동하는 청개구리!
-당신은 규칙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당신은 규칙을 무시합니다!
‘이게 능력이었군.’
그동안 악마화 등을 통해 다른 녀석들의 규칙을 무시한 전적이 여럿 있다.
당장 시스템의 의지에 따른 적도 별로 없고.
버그 메시지를 한두 번 받은 것도 아니다.
혼돈의 특성을 이용한다고만 생각했는데 설마 내 개념을 사용하고 있던 걸 줄이야.
【그동안은, 무의식적으로 사용, 했지만 이제는 아니, 다. 인정을 받았으니.】
“그거 고맙군.”
확실히 시스템의 인증을 받은 것과 아닌 것은 차이가 크다.
스킬과 비슷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스킬이라는 것도 기술의 일종이었으니 훈련을 통해 스킬 없이 사용할 수 있다.
당장 내가 이번에 얻은 절대 영역과 악마화도 기술로 실행하고 이후 시스템에 의해 스킬로 인정받은 케이스니까.
여기서 좋은 점은 이거.
“보정치가 들어오겠네.”
시스템에 등록이 되면 보정치가 붙는다.
활 한번 안 써 본 사람이 스킬을 스면 백발백중을 하는 것처럼.
악마화 역시 망령을 영혼에 붙이는 기술이라 부담감이 상당했으나, 스킬로 인정받은 지금은 그 정도의 반발력은 없을 것이다.
이거면 충분하다.
내가 신경 쓸 대상은 혼돈의 파편이었으니.
놈들의 규칙을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부 무시할 수 있다면 나쁘지 않았다.
【이만, 가라. 내가 할 수 있는 건, 모두 했다.】
“가야지. 그런데 더 해 줄 말은 없냐? 100층이나 99층. 탑에 대한 비밀이라든가.”
【100층이라. 말해 봐야, 의미가 없다. 선택은 그대의 몫이니.】
그러고 보니 100층에서는 선택이 있다고 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히든 퀘스트.
초월의 조건 중 하나가 선택이었으니.
혼돈의 파편 모두 제각기 선택을 했고 그 결과는 보다시피.
즉, 조언도 답도 줄 수 없다는 거였다.
“잘 있어라. 간다.”
미련 없이 포탈로 향했다.
그 타이밍. 녀석이 뜬금없이 말을 걸었다.
【그대를 처음, 만났을 때가 기억, 나는구나. 강한 끌림을 느꼈지.】
녀석과의 첫 만남은 70층 안전지대의 이벤트가 시작이었고.
[칭호, 수상한 초대를 받는 자의 효과!]
[당신에게 흥미를 느끼는 존재들이 있습니다!]
[칭호, 잊혀진 세계의 왕의 효과!]
[잊혀진 존재들이 당신에게 관심을 보입니다!]
이전, 혼돈이 올라가며 얻은 칭호로 더더욱 내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유독 내게 혼돈의 파편과 기타 이상한 놈들이 꼬이는 원인이기도 하다.
그 말을 왜 꺼내는 걸까.
【베드록 바알루제. 그자를 조심하라.】
하이덴이 나를 굽어본다.
【탑으로 되돌아온 자. 그는 어떤 존재보다 많은 개념을 가진 자이니.】
-스르르르.
그 말을 끝으로 녀석은 모습을 감추었다.
마지막 말은 조언이자 경고였다.
99층에서 나를 기다리는 녀석에 대한 정보였으니.
“개념이 여러 개인 녀석이라.”
그 말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모든 숭배자들의 왕.
“녀석도 혼돈의 파편이었군.”
그것도 두 개만 있어도 까다로운 개념을 잔뜩 달고 있는 괴물.
정말이지.
“미친놈들투성이야.”
그래도 어쩌겠나.
난 위로 올라갈 것이고.
“어떻게든 되겠지.”
100층에 도달할 것이다.
-우우우우웅!
[99층에 진입합니다.]
망설임 없이 99층으로 올랐다.
익숙한 울렁임.
빛과 함께 어디론가로 전송되는 기분.
-타앗.
이내 발에 땅이 닿았으니.
[99층 진입 완료!]
[무운을 빕니다!]
드디어 90층대의 마지막 층.
탑의 꼭대기 바로 아래.
“내가 왔다! 99층아!”
99층에 도달했다.
호기롭게 소리쳤으나 돌아오는 건 휑한 바람뿐.
“…다들 어디 있는 거야.”
나를 반기는 사람은 없었다.
보이는 거라고는 버려진 마을 정도.
딱히 전투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피도 없었고 부서진 건물도 없다.
물건들이 마구잡이로 흩어져 있긴 했으나 저거야 뭐, 몬스터들이 빈집 드나들면서 엎지른 거 같고.
그거 말고는 특별할 게 없었다.
사람들이 떠난 마을. 딱 그 느낌이었으니.
“상상했던 거랑은 좀 다르네.”
오필리아가 보여 줬던 기록구.
그것을 통해 봤던 99층의 단편적인 모습은 꽤나 인상 깊었었다.
올라오자마자 몬스터와 숭배자가 몰려들지는 않을까 싶었더니만.
괜히 힘이 빠져 마을이나 둘러봐야겠다 생각한 그때.
[통역(A) Lv.10]
폐가 벽면, 인위적으로 긁어 놓은 낙서가 보였다.
워낙 희미해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넘어갈 만한 글귀.
-생존자 집결하라.
-제5탐사대 대장, 빅 모르튼.
누군가 남긴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