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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733화 (733/740)

733화 섹시했다!

덩그러니 남아 있는 플래티넘 등급 숭배자의 시체를 내려다봤다.

의아하기는 했었다.

어떻게 숭배자가 후보자를 죽일 수 있었는지.

다른 이들도 아니고 루키 그룹, 요정 클럽, 쁘찡연합 인원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말이다.

‘숭배자들이 숨어 있기라도 했나 했는데.’

혹은 플래티넘 등급인 만큼 특별한 뭔가가 있어서 수작을 부렸을 거라고 예상했다.

보기 좋게 빗나갔지만.

다른 것도 아니고 혼돈의 파편을 소환하다니.

“일단 생존자 먼저 찾자.”

“혼돈의 파편이 멀지 않은 곳에 있어요. 조심해야 해요. 노블 나이트 한 분을 데려가시는 게.”

“아니. 괜찮아.”

오필리아가 뭐라 더 말하기도 전에 앞으로 달렸다.

그녀도 말리지 않았다.

이번에 습격당한 이들 중에는 나와 함께 등반해 온 멤버들이 섞여 있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탈모맨의 보타이가 떨어져 있던 것이 아른거린다.

언제고 뜯어 버려야지 생각하고 있긴 했지만 이런 걸 원한 건 아니었다.

‘애들 코인이 얼마나 남았지?’

모르겠다.

어느 순간부터 코인에 대해서 말하지 않게 되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멤버들의 경우에는.

‘코인이 없다는 걸 알게 되면 지금처럼 못 움직여.’

상대방이 죽으면 끝이란 걸 알기에 위험한 순간 대신 몸을 던질 녀석들이니까.

내가 무한 코인을 가지고 있어 죽을 가능성이 높은 일에 자진해서 뛰어드는 것과 같은 이유다.

‘모든 가능성은 열어 둔다. 탑 밖으로 나갔을 가능성까지 모두.’

아니었으면 좋겠지만 언제나 최악의 수는 염두에 둬야 한다.

그것이 탑에서 살아남는 방법이었고 좀 더 옳은 판단을 하게 만드는 기준이었으니까.

흩뿌려진 피.

전투의 흔적을 빠르게 훑었다.

‘생각해라.’

머리가 뜨거워지는 기분이었으나 머리를 멈춰서는 안 된다.

감정에 삼켜져 봤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땅을 차고 주먹을 질러 봤자 바뀌는 건 없으니.

그 시간에 혹시 모를 생존자를 찾아 치료하는 게 맞았다.

“연락이 동시에 끊겼어. 기습을 받은 건 전원이고 생존자가 있더라도 치명상. 커뮤니티도 하기 힘든 상태.”

그게 아니라면 가능성은 두 가지.

모든 코인을 사용하고 밖으로 나갔거나.

“아직 도망치고 있거나.”

냉정해지자.

만약 코인이 남아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쯤 안전지대에서 살아났을 거다.

목격자 한 명이라도 말을 해야 한다는 것.

그쪽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탑 밖으로 퇴출당한 인원?

그것 또한 받아들여야 한다.

어차피 탑은 거쳐 가는 곳.

우리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건 바깥일 테니까.

오히려 축하해 줘야지.

그러니 내가 집중할 건.

‘도주 중인 이들.’

부상자는 오필리아에게 맡긴다.

치명상을 입었다면 멀리 가지 못했을 것이고 오필리아의 신성력이라면 얼마든지 치료할 수 있다.

덕춘이가 없으면 포션밖에 못 쓰는 내가 남아 봤자 의미가 없다.

내 쪽이 기동력이 더 좋으니 그 장점을 살릴 수밖에.

[날개 없는 천사의 왼쪽 날개(SSS)]

[마왕의 오른쪽 날개(SSS)]

-파아아앙!

양쪽으로 돋아난 날개를 힘차게 휘저었다.

파공성과 함께 몸이 주욱 날아간다.

“음!”

그 충격만으로도 뼈가 시리다.

뮬랑 카센과 전투를 한 여파가 여전히 남아 있다.

나뿐만이 아니겠지.

오필리아 쪽도 체력적으로 지쳐 있다.

그녀 역시 전투 후 바로 엘리니를 보호하러 왔다가 다시 이곳까지 왔으니.

상황 한번 더럽게 꼬였다.

작정하고 이런 타이밍을 만든 거겠지만.

“그에에.”

“나도 봤어.”

허공을 나는 시점, 덕춘이가 어딘가를 가리켰고 나 또한 그곳에 있는 물건을 확인했다.

유독 눈에 띄는 물건.

“적어도 냥펀은 살아 있네.”

헨젤과 그레텔도 아니고 도주 경로에 금화를 뿌려 놨다.

캐릭터 확실하네.

누가 봐도 냥펀인 걸 알겠다.

그렇다는 건.

“다른 애들도 같이 있을 가능성이 커.”

물론 모든 사람이 같이 있는 건 아닐 거다.

흔적이 중간에 갈렸다.

그 말이 뜻하는 바는 하나.

‘무리를 나눠서 도주했다는 거지.’

조금이라도 생존율을 올리며 탈출하는 방법이 무엇일까.

간단하다.

사방으로 흩어지면 된다.

잡히는 사람은 잡히는 거고.

나머지는 도망치고.

어떻게 보면 각자도생.

그만큼 급박한 상황이었다는 거다.

-띠링.

커뮤니티 알람이 울렸다.

빠르게 창을 띄워 확인하자 익숙한 이름이 보였다.

[니머리 탈모]: 어우. 다들 잘 도망치고 있냐?

[니머리 탈모]: 나 방금 살아남. 간만에 머리 아프네, 영감탱이 장사더라

살짝 안도했다.

탈모맨이 당한 건 아쉽지만 코인이 남아 있던 모양.

[니머리 탈모]: 공듀. 걔한테 도전하지 마. 기습을 때리든가 해야 돼

내게 전해 주는 메시지.

그사이 놈에 대해 파악한 건가.

악몽과 도전의 발칸.

녀석이 가지고 있는 도전이라는 개념 때문이겠지.

탈모맨이 당했을 정도면 보통 녀석은 아닐 거다.

[니머리 탈모]: 아직 핥짝이랑 냥펀은 살아 있는 듯?

[니머리 탈모]: 화무선이랑 마지막잎새는 탑 밖으로 나간 거 같고 찌리리는 여기 있어

찌리리 요정도 당한 건가.

화무선과 마지막잎새는 코인을 다 쓴 모양.

그럼 생존자는 멤버들을 제외하고.

‘스마일캡과 마그마 요정, 섹시가이.’

섹시가이도 어떻게 살아남은 모양.

흔적은 세 갈래로 나뉘어 있었다.

우선은 멤버들을 찾는다.

[쁘띠공듀]: 뒤는 저한테 맡겨용! 혼☆쭐을 내줄 테니꺄!

-구구구궁.

혼돈이 가까워지고 있다.

* * *

숲 지대를 벗어난 언덕길.

냥펀이 핥짝이를 붙잡고 끌고 있었다.

그 뒤에 다가오는 적을 바라보며 기세를 올리고 있는 김정현.

“누님! 가십쇼! 여긴 저, 섹시가이 김정현이 막겠습니다!”

호탕하게 소리치고 있었으나 몸이 떨리는 걸 감출 수는 없었다.

악으로 깡으로.

흙바닥을 뒹굴고 개처럼 싸우면서도 악착같이 등반해 온 그에게도 눈앞의 적은 두려웠다.

쫄려도 허세를 부리고 어떻게든 이겨 내며 살아왔다.

그렇기에 지금도 두 다리로 설 수 있었으나.

‘시, 시발. 존나 쎄다. 가늠이 안 돼.’

그건 어디까지나 결국에는 이길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

때로는 스펙보다 패기가 승부를 좌우했으나 이번만큼은 달랐다.

가늠이 안 된다.

상대가 자신보다 얼마나 강한지.

모든 걸 다 내려놓고 바닥의 바닥까지 처박혀 싸웠을 때 마지막까지 서 있을 사람이 누구인지.

“그대가 도전자인가.”

느긋이 걸어오는 존재.

악몽과 도전의 발칸.

다른 혼돈의 파편과 비교하자면 그리 크지도 않다.

흉흉한 개념을 달고 있으면서도 겉모습은 그저 건장한 체격의 노인이었으니까.

성성한 백발을 뒤로 넘긴 채 끝이 뭉뚝한 막대기를 지팡이 삼아 걸어오는 모습은 여유로웠다.

그래서 더욱 괴상했다.

저 모습으로 껄껄대며 사람을 찢는 모습을 보았으니.

눈동자도 없이 검게 물든 발칸의 눈이 섹시가이를 응시한다.

-스스스.

차가운 칼날이 가슴을 헤집는 기분.

소름이 돋은 팔을 간지러워서 긁는 척 문지른 김정현이 앞으로 한 발 나섰다.

“노친네가 쓸데없이 정정해 가지고. 그래. 내가 도……!”

“시끄러! 네가 가서 뭐 하려고! 넌 빠져 있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가 문장을 잇기 전, 번뜩 눈을 뜬 핥짝이가 소리를 질렀다.

“아니, 아까 이미 푸닥거리하다 굴러가셨잖아요! 사람이 반으로 접혔었는데!”

“그건 내가 유연해서 그런 거고!”

“쫌요! 냥펀 누님, 데려가 봐요.”

핥짝이 또한 발칸과 싸웠으나 결과는 좋지 않았다.

빈사 상태에 빠졌다가 냥펀이 겨우 살려 냈으니까.

구명 아티팩트가 아니었다면 탑 밖으로 나갔을 것이다.

그녀에게 남은 코인은 없었으니.

“으이잉! 일단 빼자구. 지금 상태로 뭐 못 해. 쟤 날뛰면 서포트도 못 한단 말이양!”

“다시 싸우면 내가 이긴다니까!”

“그게 지금은 아니라구!”

최후의 승자.

핥짝이의 권능이었으며 그 어떤 적과 맞서도 결국에는 승리를 쟁취하게 해 준 능력.

그러나 모두 알고 있다.

권능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않으며 절대적이지도 않다.

내가 잡고 있는 사이 빠져나가라.

핥짝이의 말은 그것이었으며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이 자리에 없었다.

그렇기에 냥펀은 핥짝이를 잡아끌었다.

발버둥 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으나 의미 없는 저항.

이미 제대로 걷지도 못할 수준이었기에 질질 끌려갈 뿐이었다.

“야! 죽지 마! 죽는다, 알았지?”

“거 좀 빨리 좀 가요. 진짜. 나 벗는다!”

“저, 저, 미친놈이!”

훌렁, 옷 벗어 던진 섹시가이가 우렁차게 외쳤다.

“덤벼, 갸스꺄!”

[SS급 권능, 공평한 개싸움의 신이 발휘됩니다!]

-적의 능력치를 본인 기준으로 맞춥니다.

[너도나도 무장해제(SSS) Lv.MAX]

-상대방과 본인의 무장을 해제합니다.

[무능력자의 해피 존(SSS) Lv.10+]

-일정 범위를 스킬 사용 불가 지역으로 만듭니다.

일대 영역이 그의 권능 아래 놓인다.

스킬도 장비도 없이 존재 자체로 싸우는 공간.

SS급에서 멈춘 권능은 혼돈의 파편에 제한을 걸기에는 부족했지만.

워낙 어지럽게 살아온 덕일까.

그에게는 혼돈이 유독 잘 반응했고.

[혼돈이 당신의 의지를 반깁니다!]

-우우우우웅!

“호오. 신기한지고.”

-덜컹.

-떨그럭.

노인이 지팡이가 저절로 떨어져 굴러갔다.

숨겨져 있던 단검과 독침, 암기류가 장착 해제되어 떨어졌으며.

“노인 공경이 없군.”

등급이 붙어 있는 옷이었는지 상의와 신발까지 탈의되었다.

그와 함께 드러나는 피지컬.

노인이라는 말이 어색하게 발달된 근육과 그 위를 덮고 있는 흉터들이 위압감을 준다.

“…노인네 몸이 왜 저러냐고.”

슬쩍, 자신의 몸을 훑어본 섹시가이가 주먹을 쥔다.

다시 옷을 입기에는 늦었다.

울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개싸움의 신과 탈모 형님의 의지를 이어받은 나!”

속으로 눈물을 삼키며 김정현이 달렸다.

숭배자가 기습적으로 소환한 혼돈의 파편을 붙잡아 전멸을 막은 탈모맨.

이번에는 자신이 그 역할을 할 차례였다.

“섹시해질 시간이다!”

괴성과 함께 내지른 주먹.

발칸 또한 주먹을 내밀었다.

답답할 정도로 느리게.

김정현은 가능성을 보았다.

같은 스펙.

다른 스킬도 장비도 쓰지 못해 개싸움만 이어 갔던 경험이 말해 줬다.

‘이길 수 있다!’

한 번에 다운그레이드된 신체에 바로 적응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강한 대상일수록 박탈감은 배가 되는 법.

거기다.

[칭호, 기피 대상이 발휘됩니다!]

[칭호, 자의식 과잉이 번쩍입니다!]

[칭호, 솜주먹 곰주먹이 불끈거립니다!]

.

.

.

다른 건 몰라도 칭호의 효과는 쓸 수 있었다.

전투의 우위에 서기 위해 필사적으로 칭호를 쌓아 왔던 그였고.

“노력은 배신하지 않……!”

-뻐억.

그것을 끝으로 기억을 잃었다.

기묘한 각도로 들어온 주먹이 턱을 갈기고 지나간다.

그 여파에 종이 인형처럼 날아가는 섹시가이가 바위에 처박히기 직전.

-터업.

누군가가 그를 받았다.

잠깐 블랙아웃이 왔던 섹시가이가 눈을 뜬다.

자신의 등을 붙잡고 있는 남자.

“형님?”

“섹시했다, 김정현. 가서 쉬어.”

이블아이가 등장했다.

덕춘이도 어깨에 달라붙더니 그의 상처를 핥았다.

“흐, 흐헤헤. 덕춘 님.”

“그에에.”

“억!”

질색하면서도 섹시가이의 상처를 치료해 준 덕춘이가 그의 멱살을 잡고 안전한 곳으로 옮긴다.

남은 건 이블아이와 발칸.

스릉.

검을 뽑은 이블아이가 어깨를 풀었다.

“넌 나랑 이야기 좀 하자.”

“새로운 도전자인가?”

“아니.”

뚜벅뚜벅 그를 향해 걸어간 이블아이가 입꼬리를 올렸다.

“그냥 패러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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