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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731화 (731/740)

731화 집으로

정면에 선 뮬랑 카센.

몸은 엉망진창이었지만 클레이모어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곧게 뻗은 검신을 내민 채 똑바로 나를 응시한다.

나 또한 검을 들었다.

-파악!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 없다.

검으로 대화를 하자.

그렇게 말하고 있는 거니까.

나 또한 동의했다.

그렇기에.

-콰아앙!

처음부터 힘껏, 검을 내질렀다.

빠르게 뻗어 나간 상단 치기.

능숙하게 클레이모어를 비틀며 검을 받아 낸 뮬랑 카센이 땅을 찼다.

-촤아악!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흙더미를 보며 피식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야지.

누굴 보고 자랐는데.

비겁하지 않다.

뮬랑 카센이 말하는 기사는 고지식한 그런 존재가 아니다.

승리하는 자.

당당히 강대한 적 앞에 설 수 있는 자지.

-스스스슥!

눈을 감지도, 손을 뻗어 막지도 않았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몸을 바짝 낮췄다.

엎어지듯 균형을 낮추는 동시에.

[칭호, 발목 수확자가 빛납니다!]

[검강]

마나의 칼날을 길게 뽑아 발목을 노렸다.

최선의 방어는 언제나 공격일 뿐.

물러서지 않는다.

흐름을 넘기는 그 순간 연쇄적인 공격이 다가올 테니.

-콰득.

변칙적인 공격에 당황할 법도 하건만, 뮬랑 카센의 반응은 빨랐다.

발을 들어 올리더니 그대로 내 검을 밟아 버린다.

말 같지도 않은 동체 시력과 반사 신경.

무게에 짓눌린 검을 빼내기도 전에 클레이모어가 들이닥친다.

검을 놓고 피할 것인가.

아니면 그대로 맞을 것인가.

양자택일.

내 선택은.

“내가 보폭 줄이라 했었지?”

-콰아아악!

태클.

검을 잡아당기는 동시에 어깨로 다리를 밀어 버렸다.

위에서 떨어지는 검도 균형이 무너지면 파괴력이 줄어드는 법.

쿠웅!

“크흡!”

그럼에도 등에 박히는 위력이 보통이 아니었으나 맞을 만했다.

펠라인 세트와 패시브 스킬이 함께했으니 버틸 수 있다.

넘어트린다.

그 순간 클레이모어처럼 커다란 무기는 사용하기 힘드니까.

빛의 날개도 타들어 간 지금, 그녀의 뒤를 받쳐 줄 건 아무것도 없다.

【이기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나와의 전투가 즐겁다는 걸까.

뮬랑 카센의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고.

-꾸우우욱!

태클을 방어하지 않고 그대로 넘어갔다.

정확히 말하면 넘어가는 동시에 다리로 내 몸통을 붙잡았다.

트라이앵글 초크!

정석적인 자세는 아니었지만 그것과 유사하다.

내가 찌르지 못하도록 상체를 고정시킨 채 다음 행동을 이어 갔으니.

-카드드득!

거대한 클레이모어를 양손으로 붙잡고 끌어당긴다.

데스 사이드로 벼를 수확하듯 내 목을 자르기 위해 들어오는 칼날!

말 그대로 길로틴.

완력으로 목을 두 동강 내겠다는 의지가 전해진다.

정말이지 무식하기 짝이 없었으나 때로는 그게 정답인 법.

빠드득.

펠라인 세트가 갈리는 소리와 함께 섬뜩한 예기가 뒷목에 느껴진다.

[독자무강獨者武强(SSS) Lv.7]

[강철의 의지(SS) Lv.10+]

[강체强體(SS) Lv.10+]

[물리 공격 내성(SSS) Lv.10]

-키딕! 키디디딕!

경질화된 육체에서 괴상한 소리가 난다.

검은 내 목을 뚫지 못했으나 조금씩 파고들고 있다.

시간을 끌면 목이 잘리는 것도 불가능은 아닐 터.

일단 벗어난다.

몸을 사선으로 비트는 동시에 다리를 뻗었다.

잠깐이지만 생겨난 틈.

-빠악!

거리낌 없이 박치기로 녀석의 코를 강타했다.

충격으로 움찔거리는 타이밍에 녀석의 팔을 밀어내며 빠져나왔다.

그냥 나가는 건 아쉬우니 오로라 빔도 함께.

-카가가가강!

겨우 매달려 있던 갑옷의 파편이 박살 나며 울컥, 뮬랑 카센이 피를 토해 낸다.

나 역시 빠져나오며 관절이 나갔는지 어깨가 덜렁거리지만.

이 정도쯤이야.

“노력 많이 했네.”

삐그덕거리는 관절을 맞추며 말했다.

【물론이다.】

대형 무기의 단점인 근접전을 커버하기 위해 그래플링도 배웠다는 건가.

바닥을 뒹구는 기사.

겉보기에는 흉할지 몰라도 더없이 효율적이다.

그리고 승부에서는.

‘겉멋은 필요 없지!’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검을 휘둘렀다.

반사적으로 그녀 또한 검을 내밀었으니.

[프로즌 브레이크(SS) Lv.6]

[스킬 레벨 업!]

[프로즌 브레이크(SS) Lv.7]

-쩌어어엉!

그 자세 그대로 팔을 얼어붙게 했다.

이걸로 잡을 수는 없다.

힘을 주는 것만으로도 깨부술 수 테니.

실제로 얼리기가 무섭게 팔에 균열이 간다.

1초도 되지 않는 순간에 얼음을 부순 뮬랑 카센이 클레이모어의 폼멜로 관자놀이를 때렸다.

터엉!

투구가 흔들리며 눈이 돌아갔지만 애써 정신을 차렸다.

“앞다리는 가볍게 해야지.”

대형 무기를 휘두르는 만큼 앞쪽에 무게가 쏠리기 마련.

바바리안과 싸우며 대검을 사용하는 것도 일부 익혔다.

다름 아닌 엘리니 본인을 가르치기 위해 했던 일이니 모를 수가 있나.

위협적으로 얼굴을 향해 검을 그었다.

눈으로 칼날이 들어오면 본능적으로 시선이 끌리기 마련.

그대로 앞으로 크게 내딛듯 뮬랑 카센의 허벅지 안쪽을 찍어 눌렀다.

쏠린 중심만 흐트러트려도 자세는 무너지는 법이었으니.

다만.

【기본기는 충분히 배웠다. 스승은 그대 한 명이 아니었으니.】

오랫동안 훈련해 온 하체는 쉽게 꺾이지 않았다.

그동안 이어 온 수련과 스스로를 믿기에 보일 수 있는 당당함.

그녀의 눈에 불꽃이 일렁인다.

뮬랑 카센이 말한 스승이 누구일까.

맥? 어쩌면 다른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기사가 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전수한 사람이 있을 테니.

반면에 나는?

‘내가 뮬랑 카센의 스승이라 볼 수 있는가.’

알 수 없다.

내가 인연을 가진 것은 엘리니고 눈앞의 존재는 이제는 없을 세계의 잔재였으니.

전혀 다른 사람.

독립된 객체로 봐야 옳았으나.

-카강! 카앙!

“좌에서 우로 그을 때 생기는 틈은 여전하네.”

【팔은 치료가 안 되더군.】

잘못 붙어 짧아진 오른팔과.

【그래서 강점을 키웠다.】

-콰아아아앙!

산조차 쪼갤 듯 강한 수직 베기에 휘몰아치는 바람, 그 결을 따라 흔들리는 푸른 머리카락은 내 이성을 혼동케 한다.

처음 마주했음에도 오랫동안 알아 온 듯한 미묘한 감각.

-콰아앙! 쾅!

초 단위로 주고받는 공방.

섬뜩하면서도 상쾌한 검풍과 예리함이 오가는 속에서도 그녀의 눈에는 즐거움이 돋아났다.

어쩌면 애환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필사적인 걸 수도 있다.

지금 이 순간 눈앞에 보이는 건 옳고 그름이 아닌 그녀와 나 둘뿐이었으니.

-츠르륵. 파앙!

불똥을 튕기며 혼돈검을 긁어 들어오는 검을 쳐 냈다.

충격파와 함께 돌개바람이 휘몰아치고 물결처럼 퍼지는 마력의 파동에 땀방울마저 증발한다.

-피슉.

클레이모어가 스치고 지나간 목덜미에 피가 흘러내린다.

피보다 뜨거운 열기는 더해져만 갔고.

【그대는 여전하군.】

“나한테는 며칠이라.”

다가오는 검만큼이나 깊숙이 파고든 감정과 느낌.

상처를 헤집는 칼날처럼 직관적인 공감과 유대가 낙인처럼 남았다.

뒤엉키고 인과관계가 엉켜 어느 쪽이 진짜인지, 만들어진 것인지 알 수 없다.

그저 뮬랑 카센이 엘리니를 자신의 과거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만 느껴질 뿐.

자기 위안인지, 아니면 혼돈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기적이 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엘리니를 지켜라.】

-스스스스.

【나는 뮬랑 카센.】

그녀가 원하던 과거는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강대한 적의 앞에.

확정된 멸망을 가져올 괴물 앞에 맞서 승리를 쟁취하는.

아무런 힘도 낼 수 없는 연약한 존재에게 등을 보이며 나서는 버팀목이 있어야 했으니까.

악역을 자처한다.

지켜진 적 없는 어린 시절을 보호해 줄 존재의 등장.

그 이야기의 완성은.

【세계를 멸망시킬 혼돈의 파편이다.】

[징벌]

-콰르르르릉!

그녀의 죽음으로 완전해진다.

들어 올렸던 검이 떨어지며 꽂히는 일격.

그 충격의 여파에는 엘리니도 들어갔다.

자신을 위해 자신을 죽이고자 하는 괴물.

시스템조차 선업이라 부르는 힘을 쓰는 과거의 영웅.

위대한 존재가 나락으로 처박히길 자처한다.

그렇기에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그렇게는 안 돼.”

[SSS급 권능, 굴하지 않는 검귀가 번뜩입니다!]

-콰아아아앙!

위로도, 응원도 아니다.

확정된 검의 경로.

그것을 온몸으로 받아 냈다.

그러지 않으면 내 뒤에 있는 모든 것이 부서질 테니.

쿨럭!

피를 토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진입을 방해하는 검을 무시한 채.

정확히 목을 노리고 들어오는 검이 허공을 가른다.

[안개 질주(SSS) Lv.6]

혼돈을 이용한 일격은 막을 수 없다.

인과관계를 무시하는 공격의 결과는 정해져 있으니까.

그러니 나 또한.

[망자귀환亡者歸還(SSS) Lv.5]

[잊혀지지 않는 창기사(SSS) Lv.10+]

그에 걸맞은 괴물이 되어야 한다.

-끼아아아아!

망구의 비명과 함께 영혼이 합쳐진다.

마치 그녀가 영혼을 부풀려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어 내듯이.

나 또한 넘쳐흐르는 마기로 내 영혼을 좀먹어 가며 나만의 영역을 만들어 낸다.

어떠한 규칙도 없이 흩날리던 혼돈이 손에 잡힌다.

생명을 거부하는 마기를 받아들인 대가로 완전히 장악한 혼돈.

그렇기에 다른 누구의 영향도 받지 않는 나만의 고유 영역이 생성되었고.

[행운이 번쩍입니다!]

[혼돈이 규칙을 무시합니다!]

[SSS급 권능, 스킬 합성이 과부화를 일으킵니다!]

[가능성을 뛰어넘은 스킬의 조합!]

[새로운 스킬을 창조해 냅니다!]

-구구구구구궁!

[악마화(SSS) Lv.1]

[절대 영역(SSS) Lv.1]

내가 해 온 모든 것이 시스템의 인정을 받는다.

파괴되던 몸이 안정을 되찾는다.

숨 쉬는 것조차 괴로웠던 육신이 붕괴하는 것을 멈추었으며.

[징벌]

-콰르르르릉!

정해진 기사의 일격은 내게 닿지 않았다.

[날개 없는 천사의 왼쪽 날개(SSS)가 빛납니다!]

[마왕의 오른쪽 날개(SSS)가 힘을 더합니다!]

-파앙!

거센 파공음을 내뿜으며 뮬랑 카센을 잡고 하늘 높이 떠올랐다.

대포처럼 쏘아진 나와 그녀.

허공에 떠오른 나와 뮬랑 카센이 검을 치켜든다.

[검강]

이세계에서 건너온 마력의 검날이 번뜩인다.

너무나 강렬하게, 모든 것을 태울 듯이.

[선업이 존재감을 부풀립니다!]

-파아아아앗!

그녀 역시 영혼을 크게 부풀리며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어 냈고.

【일검.】

순수한 실력으로 이루어진 검이 맞붙었다.

빛난다.

독보적으로 환하기에 주변의 것들을 지우는 섬광이 우리를 중심으로 퍼져 나간다.

청각의 영역을 벗어나 조용하기까지 한 격돌.

직감했다.

일대는 사라진다.

그 무엇도 남을 수 없다.

정점에 오른 자의 검은 그만한 위력을 품고 있었으며 나 역시 그에 상응하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다.

그렇기에.

[무지개다리(SSS)]

승리를 위해.

-촤아아아아!

그녀가 원하는 결말을 위해.

앞으로 나아갔다.

저 멀리, 내가 준비했던 그곳으로.

그녀와 함께 가장 오랫동안 머물렀던 성채로.

거대한 충격이 빠르게 멀어진다.

꿈결 같은 무지개를 타고 끝을 향해 질주한다.

마지막을 장식할 불꽃놀이를 맞이하러.

이제는 비어 버린 성채와 천막.

-따악.

[시한폭탄(SSS) Lv.9]

[시한폭탄(SSS) Lv.9]

[시한폭탄(SSS) Lv.9]

.

.

.

오랫동안 집을 비웠던 그녀를 위한 폭죽이 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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