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9화 꺼지다
핥짝이의 외침에 모두가 인상을 구겼다.
후보자가 공격받고 있다는 소식.
뮬랑 카센은 이곳에 있다.
그렇다면 다른 이들이 있는 곳을 공격하는 건 누구인가.
몬스터나 재앙?
그따위 건 문제 되지 않는다.
쁘찡연합을 제외한 모든 인원이 모두 모여 있는 곳이다.
에이션트 몬스터든 뭐든 다 덤벼도 해결할 능력이 있다는 것.
달리 말하면.
‘그런 강자들이 있음에도 덤빌 수 있는 존재가 있다!’
정답은 빠르게 나왔다.
“플래티넘 등급이군.”
“숭배자야.”
이곳에 또 다른 혼돈의 파편이 있는 게 아니라면 그게 정답이다.
미간을 좁혔다.
잊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98층에 머물면서 인지하지 못했다.
분명 올라올 때만 하더라도 이곳에 플래티넘 등급의 숭배자가 있을 걸 예상했음에도 말이다.
이유는 하나.
‘활동은 아예 안 했었어.’
뮬랑 카센의 이미지가 너무 강했다.
지금 상황이 벌어질 때까지 아무런 행동도 보이지 않았으며 우리를 방해하지도 않았다.
무의식적으로 생각한 거다.
녀석은 이곳에 없다.
있더라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거라고.
인내심이 강한 녀석이었다.
심리적인 경계심이 줄어들고 의식하지 못할 때까지, 확실한 기회가 올 때까지 기다린 것이니.
“다들 정신 제대로 잡아! 그쪽은 그곳에 맡긴다!”
“기껏해야 숭배자 한 명이야! 걱정 안 해도 될 거야!”
핥짝이 또한 같은 결론에 도달했는지 의지를 불태운다.
이미 일은 벌어졌다.
갑작스러운 기습이든 뭐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지금은 서로를 믿어야 한다.
다른 쪽을 모두 신경 쓸 여유가 없다.
-콰지지직!
영혼의 크기를 불려 넓어진 녀석의 영역.
뮬랑 카센이 가지고 있는 개념 중 하나인 기사도가 발휘되었다.
가뜩이나 강력한 녀석의 힘이 더욱 거세졌으니.
-우득. 우드득.
검을 꽂아 넣었음에도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운다.
마치 동영상을 거꾸로 돌리듯 무릎 하나 굽히지 않고 서서히 올라오는 몸체.
그녀의 등 뒤로 뻗어 나온 빛의 날개가 빠르게 움직인다.
-지이이이잉!
엄청난 진동!
정면을 뚫으려면 검과 갑옷을.
뒤를 치려면 빛의 날개를 꺾어야 한다.
모든 것을 공격에 치환했음에도 막대한 방호력을 자랑한다.
“크흠!”
속이 울렁거린다.
어느새 부풀어 오른 뮬랑 카센의 영혼이 일대를 집어삼켰다.
온전한 자신의 영역.
남의 영혼에 들어온 이상 그녀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스마일캡이 당한 이유를 알겠군.’
몸에 힘을 줬다.
이 정도로 당할 생각은 없다.
나 또한 혼돈이 가득했으니 녀석의 능력 일부를 무시하는 건 가능하다.
악마화를 하면 완전히 영향을 무시하고 나만의 영역을 구축하는 것도 가능하겠지.
그동안 녀석이 가만히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시간이 필요했고.
“우랴아아아!”
거칠게 영역을 잡아 뜯으며 돌입한 탈모맨이 주먹을 휘둘렀다.
-쩌엉!
쇳덩이가 부딪치는 소음과 함께 충격파가 터진다.
정면으로 얼굴을 맞았음에도 꼼짝도 않는 뮬랑 카센.
파워가 부족했나?
설마.
-콰아아앙!
한 박자 늦게 재차 충격이 이어진다.
갑옷을 뚫고 안으로 퍼져 나가는 충격.
푸슉!
곧게 뻗은 뮬랑 카센의 코에서 피가 흘러나온다.
“붙잡고 있을게! 핥짝아, 얼른!”
“우오오오!”
콰과과광!
반쯤 매달리다시피 녀석을 붙들고 있는 사이, 탈모맨이 연달아 주먹을 내질렀다.
북을 두드리듯 갑옷을 때린다.
방어를 무시하고 들어가는 정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막강한 방어력을 자랑하는 갑옷을 피해 대미지를 넣고 있었으나 이래서는 공격할 수단에 제한이 생긴다.
그러니 갑옷을 없애야 한다.
섹시가이가 있으면 좋겠지만.
‘그럼 우리 쪽도 장비가 해제되니 핥짝이가 나서야 돼.’
【…나를 부르는 목소리.】
허공으로 시선을 던진 뮬랑 카센의 신형이 떠오른다.
이대로 탈출하려는 건가.
목적지는 보나 마나 스마일캡이 있는 곳.
그곳으로 보낼 수는 없다.
가뜩이나 숭배자가 습격하고 있는데 거기에 뮬랑 카센까지 가세한다?
전멸당해도 할 말이 없다.
그러니 잡아야 한다.
스마일캡과 다른 이들이 숭배자를 잡고 이곳으로 합류할 때까지.
“어딜!”
[만근추환(S)]
-쿠구구구궁!
무게를 더욱 늘렸다.
“그에에에!”
덕춘이 역시 혀로 뮬랑 카센의 발목을 붙잡고 잡아당겼다.
탈모맨의 연타가 이어지는 순간.
“가랏! 핥짝잉!”
“잘 버텼어!”
냥펀과 핥짝이가 안으로 진입했다.
[압축(SSS) Lv.10+]
생명체만 아니면 뭐든 압축할 수 있다.
그건 뮬랑 카센의 갑옷이라도 마찬가지.
-끼기기기긱!
금속이 비틀리는 괴상한 소음.
찌그러지던 갑옷이 일정 수준 이후로는 압축되지 않는다.
도대체 얼마나 단단한 건지.
혼돈에 의해 만들어진 물건인 건가.
[해제(SSS) Lv.9]
이대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핥짝이가 돌연 압축을 풀어 버린다.
폭발적으로 팽창하며 늘어나는 갑옷을 다시 압축한다.
-뿌드득! 빠득!
급속도로 팽창과 압축이 반복되며 갑옷에 균열이 간다.
아무리 튼튼한 물건이라도 이 모든 것을 버티는 건 불가능.
-콰장창!
이윽고 갑옷이 부서진다.
갑옷이 아니더라도 몸 자체가 말도 안 되게 단단했으나 이거면 충분하다.
“지금 쏟아부어! 딱 10초!”
기회를 놓치지 않고 냥펀이 아티팩트와 스킬을 뿌렸다.
각각 엄청난 가치를 품은 물건들이 우리를 감싼다.
[동족상잔 금지령(SSS)]
[공격 중지! 아군이다! (SS) Lv.5]
[파티장의 명패(SS)]
[대미지 적립 포인트(SSS)]
.
.
.
같은 편으로 인식된 대상의 공격을 무시하거나 보호하는 물건들.
직접 녀석을 붙잡은 채 싸워야 하기에 화력을 쏟아부을 수 없는 우리를 지키기 위한 방법.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무런 걱정 없이 공격을 퍼부을 수 있다.
냥펀의 아티팩트와 스킬이 우리를 지켜 줄 수 있는 시간은 고작해야 10초.
10초는.
‘전투에 있어 엄청난 시간.’
-구구구궁.
[칭호, 밤을 부르는 자가 발휘됩니다!]
[찾아온 밤에 스탯이 상승합니다!]
[칭호, 악마 노역소의 대항자가 강대한 적을 인지합니다!]
[칭호, 폭탄마가 폭발을 원합니다!]
[버프 다이스(S) Lv.MAX]
[4]
[충격파]
어두워진 하늘, 힘이 차올랐고.
[아스트랄 레인보우(S)]
-10초간 모든 공격 스킬 대미지 10배 증가.
-10초 후 공격에 사용된 스킬 대미지 10%로 고정.(1시간 동안 유지)
-하루에 한 번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버프류 중 가장 강력한 펠라인 스킬을 꺼냈다.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
[SSS급 권능, 두 세계의 지배자가 빛납니다!]
[SSS급 권능, 괴력난신이 힘을 부풀립니다!]
[칭호, 마왕의 가호가 함께합니다!]
[칭호, 초인의 길이 발동합니다!]
탈모맨의 존재감이 부풀어 오른다.
[SSS급 권능, 최후의 승자가 번뜩입니다!]
[칭호, 집단 전술의 대가가 전쟁을 선포합니다!]
[칭호, 승리를 위한 노력가가 발휘됩니다!]
[단합(SSS) Lv.8]
핥짝이의 의지가 타오르며 우리를 격려한다.
[SSS급 권능, 안전제일이 동료를 보호합니다!]
[SSS급 권능, 특혜 상인이 혜택을 풉니다!]
[칭호, 화조국의 황금마차가 개방됩니다!]
[칭호, 돈지랄이 반짝입니다!]
이윽고 냥펀의 권능이 우리를 보호하는 동시에 수많은 보물이 흘러나왔으니.
한계까지 차오른 댐이 격류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지듯 막강한 위력.
뮬랑 카센이 도망치지 못하게 잡고 있는 지금, 가장 큰 화력을 뿜을 수 있는 건 역시.
[되갚기(SSS) Lv.8]
[파이어 밤(SSS) Lv.10+]
[일렉트릭 쇼크(SS) Lv.MAX]
폭발과 전격.
요동치는 기운과 함께 멤버들의 스킬도 발동됐다.
[일격필살(SSS) Lv.9]
[정의의 일격(SSS) Lv.10+]
[풀 대출!(SSS) Lv.8]
[골드 익스플로전(SSS) Lv.10+]
[해제(SSS) Lv.10+]
[맹목적 관성(SSS) Lv.9]
상대를 없애겠다는 강력한 의지만 남은 공간.
-쿠구구구궁.
-콰아아아앙!
눈도 귀도 멀어 버릴 굉음과 빛!
혼신의 힘을 다한 일격에 공간마저 찢어져 울린다.
터져 버린 대지와 하늘이 울부짖으며 온몸이 바스러지는 충격이 강타했다.
보호받고 있음에도 이 정도.
몸을 보호하기 위해 자동으로 패시브 스킬이 발동되었으며 날카롭게 벼려진 감각이 위험의 경종을 울린다.
남아 있는 감각은 하나.
촉각.
붙잡고 있는 뮬랑 카센의 근육이 꿈틀거리는 게 느껴진다.
충격에 의한 반동인가.
아니면 어떻게든 버티기 위한 발버둥인가.
-후오오오오!
열기로 솟구친 상승 기류가 폭풍처럼 휘몰아친다.
뜨거운 바람에 입안까지 마를 지경.
강렬하다 못해 감각을 마비시켰던 충격이 가시며 오감이 돌아온다.
알 수 있었다.
‘뮬랑 카센의 몸이 무너졌다.’
잡고 있는 몸의 부피가 줄어들었다.
몸 일부가 완전히 파괴됐다는 증거.
핵폭탄이 떨어진 듯 시야가 닿는 범위 전체가 초토화되어 있다.
보이는 거라고는 사막으로 변해 버린 대지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분지뿐.
크레이터의 중앙, 서 있는 건 나와 멤버들.
그리고.
-타닥. 타닥.
잿더미처럼 변해 버린 뮬랑 카센.
그녀는 미동조차 없었다.
투구 사이로 보이는 눈동자는 공허했으며 벌어진 입에서는 연기가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피부의 감촉도 딱딱한 나무껍질과 같았고 심장조차 뛰지 않았으나.
그럼에도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아스트랄 레인보우가 종료됩니다.]
[사용 스킬이 디버프에 걸립니다.]
강력한 버프를 사용한 리바운드가 왔다.
“으으으, 삭신이야.”
“형체도 안 남을 줄 알았는데 얼마나 튼튼한 거야?”
“하하하! 튼튼하면 좋, 직! 아파!”
“등신아, 적은 말랑해야 좋은 거지.”
괜히 헛소리하다 등짝을 맞은 탈모맨이 몸을 비튼다.
핥짝이 손이 맵기는 하지.
그건 그거고.
“아직 안 끝났어.”
방심은 금물이다.
다들 눈치챘을 거다.
“시스템 알람이 안 떴거든.”
“진짜 징그럽다구!”
“포탈이 안 열린 거 보면 뭐가 더 있네.”
아직 98층 클리어가 뜨지 않았다.
뮬랑 카센을 잡는 것 외에 다른 조건이 필요한 걸지도 모른다.
당장 숭배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가.
그렇다 하더라도 확실히 끝낼 건 끝내야 한다.
혼돈의 파편의 괴상한 능력과 생명력은 모두가 아는 사실.
다시 부활할 가능성도 있었기에 확실히 매듭을 지어야 했다.
“우럅!”
가장 먼저 탈모맨이 주먹을 날렸고.
퍼석!
그와 함께 재 가루가 터지며 어깨 일부분이 부서져 내렸다.
한 번에 부서지지는 않는다는 건가.
상관없다.
확실해질 때까지 두드리면 그만이니까.
-스릉.
나 또한 검을 뽑아 휘두르는 타이밍.
-터업.
뮬랑 카센이 내 검을 붙잡았다.
순간 등 뒤로 소름이 돋았다.
여전히 엉망진창인 모습.
검을 붙잡는 힘도 약해졌지만 초점이 잡힌 눈에는 광채가 맴돈다.
쩌적.
몸이 움직이며 타 버린 피부가 떨어져 내린다.
갈라진 입술이 천천히 움직인다.
【…푸른 불꽃이 꺼졌다.】
뇌리에 박히는 목소리.
서늘한 감각이 가슴을 훑는 그 순간.
-지이이이잉!
뮬랑 카센의 날개가 움직였고.
“그에엑!”
덕춘이가 혓바닥을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