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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727화 (727/740)

727화 보험

뮬랑 카센을 놓쳤다.

아쉽지만 그렇다고 얻은 게 없지는 않았다.

‘어떤 능력을 사용하는지 대충 알겠어.’

기본 형상은 발키리를 닮았으며 공중전도 가능.

날개 자체도 훌륭한 무기이며 순간이동에 맞먹을 정도의 고속 이동이 가능하다.

거기에 막는 것이 불가능한 수준의 공세까지.

“클레이모어가 가장 문제군.”

결과를 정해 놓고 들어오는 대검은 상식을 아득히 뛰어넘은 것이었다.

방호력으로만 보자면 최고인 노블 나이트가 번번이 방어에 실패했다.

심지어 오필리아의 영역 안에서도 마찬가지.

‘그건 검술이었어.’

혼돈의 힘이 아닌 본신 자체의 능력.

얼마나 높은 경지에 오른 건지 감도 안 잡힌다.

알리오스라면 파훼할 수 있을까?

그를 계승한 나는 알 수 있다.

‘10번 싸우면 6번은 진다.’

순수하게 검으로만 승부로 본다면 그 정도 차이가 나지 않을까 싶다.

알리오스가 강한 것은 맞지만 상성이 좋지 않다.

클레이모어는 다루기 까다로운 만큼 위력이 강했고 리치도 길었으니까.

태생적인 병장기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그만한 실력의 차이가 있거나 다른 보조 장치가 필요하다.

스킬이나 권능, 칭호 같은 것들 말이다.

문제는 그녀 역시 혼돈이라는 힘이 있다는 것.

물론 이 정도로 기가 죽지는 않는다.

이렇게 저렇게 말은 했지만.

‘큰 차이는 아니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격차가 있지는 않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처음 마주쳤고 오필리아 또한 상대의 능력을 온전히 몰랐기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

97층에서 스마일캡이 보여 줬던 영상을 보기는 했지만 눈으로 보기만 하는 것과 실제로 겪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니까.

만약 다시 붙는다면 지금 같지는 않을 거다.

“부상은 어때?”

“시간이 있으면 회복할 수 있어요.”

오필리아뿐만 아니라 노블 나이트 또한 부상을 입었다.

착용한 장비도 부서졌지만 그거야 뭐, 예비 장비가 있을 테니 괜찮을 거다.

“나 먼저 움직일게. 회복되면 합류해.”

“어느 쪽으로 갈 거죠?”

고민해야 한다.

녀석은 후보자를 노리고 있다.

오필리아가 데리고 있던 후보자가 죽었으니 남은 건 넷.

눈을 가늘게 떴다.

어디로 갈지는 알 수 없다.

그저 예상할 뿐.

‘후보자는 불꽃으로 비유된다.’

오필리아가 데리고 있었던 후보자는 붉은색이었고.

내게 말했던 건.

‘백염은 살아 있다.’

백염.

하얀 불꽃.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짐작이 갔다.

뮬랑 카센이 굳이 살아 있다고 말할 대상은 한 명이었으니.

‘엘리니.’

떨어졌음에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유일한 후보자.

지금까지 없던 변수.

이질적으로 다른 행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마지막은 엘리니다.’

지금까지 뮬랑 카센은 98층 전역을 돌며 후보자를 마주했다.

엘리니라고 다를까?

다른 후보자와 달리 마음먹는다면 얼마든지 죽일 수 있었다.

그녀를 보호할 등반가가 없으니까.

맥과 약탈자들이 있긴 하지만 그들은 뮬랑 카센 앞에서는 있으나 마나 한 전력이다.

그렇다면.

“스마일캡에게 간다. 넌 탈모맨이 있는 쪽으로 가 줘.”

탈모맨에게 연합 사람들이 가기는 했지만 그걸로는 부족하다.

마그마 요정과 화무선, 냥펀과 핥짝이 4명은 곧 합류할 예정.

남은 건 스마일캡이었다.

그걸 떠나더라도 뮬랑 카센이라면 그쪽으로 갈 거 같다.

벌써 2번이나 싸우지 않았던가.

녀석 입장에서는 오래된 적이기도 했다.

동시에 가장 신경 쓰이는 대상이기도 하겠지.

처음에는 30분. 두 번째는 수 시간을 싸웠다.

그렇다면 세 번째 도전하는 스마일캡은 뮬랑 카센을 대상으로 얼마나 싸울 수 있을까?

적어도.

‘내가 도착할 때까지는 잡아 두겠지.’

그래야 한다.

녀석이 모든 후보자를 죽이고 엘리니에게 향하기 전 끝을 볼 생각이다.

그럴 생각이었으나.

-띠링.

[스마일캡]: 녀석이 다시 나타났다. 후보자만 죽이고 떠났어

[스마일캡]: 아 씨. 이 새끼 도망치는 스타일 아니었는데 바로 치고 튀네

[스마일캡]: 푸른 불꽃? 그쪽으로 간대. 난 일단 화무선 있는 쪽으로 간다

“벌써?”

“스마일캡에게 갈 필요는 없을 거 같군요.”

순식간에 후보자가 한 명 더 줄었다.

이곳을 떠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이런 일이?

“도대체 뭘 한 거야.”

순간 어이가 없었지만 이해는 할 수 있었다.

스마일캡은 애초에 후보자를 버리는 공략을 사용했다.

당연하게도 후보자를 지키는 것보다는 혼돈의 파편을 불러내는 수단으로 바라봤다는 것.

그에게 있어 중요한 건 후보자가 아니라 뮬랑 카센과의 전투였다.

따지고 보면 노블 나이트도 그러했다.

이들에게는 후보자보다 오필리아의 안전이 훨씬 중요했으니까.

“후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쁜 건 아니다.

나도 그렇지만 NPC보다는 자신이 더 중요하며 결국 떠날 이 세계보다는 언제고 나가게 될 바깥세상이 더 소중하다.

단발적인 인연이다.

어차피 후보자는 전투가 시작되면 죽는 존재다.

혼돈의 파편이라는 괴물과의 싸움은 일반인이 감당할 수 없으니까.

-꾸득.

묘하게 기분이 좋지 않았으나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었다.

집중하자.

상황이 수시로 바뀌고 있다.

이대로 휘둘릴 필요 없다.

“오필리아, 부탁 하나 하지.”

“부탁이라면?”

스마일캡과 오필리아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따로 움직일 필요가 없다는 것.

지금 이 순간에도 후보자를 데리고 있는 이들이 모이고 있다.

탈모맨과 연합 사람들이 만났고 현재 냥펀과 핥짝이와 합류하고 있다.

[스마일캡]: 난 화무선이랑 합류할게

[찌리리 요정]: 저는 도착했어요!

루키 그룹과 요정 클럽도 저쪽으로 몰리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해야 할 선택지는 정해져 있다.

“혼돈의 파편을 잡으려면 이 방법을 써야 해.”

조금은 개인적인 이유가 들어간.

그렇지만 공략을 향하는 길이자 보험.

난 대략적인 계획과 이유를 알렸다.

남쪽으로 향하고 있는 엘리니를 지키라고.

“…알겠어요.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위치는 실시간으로 전달해 드리죠.”

“고맙군.”

“서두르겠습니다. 얼마나 떨어졌을지 모르니까요.”

휴식을 포기한 노블 나이트가 남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오필리아와 노블 나이트는 부상을 회복해야 한다.

당장 전력으로 써 봤자 본래의 힘을 쓸 수 없다는 것.

그러니 회복하는 시간 동안 이동해 엘리니가 있는 무리에 합류하는 게 좋았다.

“후보자를 지킨다. 이게 이번 공략의 핵심이야.”

뮬랑 카센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는 없다.

다만, 후보자가 있다면 녀석은 떠나지 않는다.

정면 대결이 성사되려면 이 조건이 지켜져야 했다.

[냥냥펀치]: 거의 다 왔당! 조금 있으면 탈모맨이랑 합류함

[쁘띠공듀]: 냥펀! 냥펀! 탈모맨도 그렇고 후보자를 무조건 지켜야 돼용!

[정수리 핥짝]: 스마일캡한테 이야기 들었어. 후보자 죽으면 바로 떠난다며?

[니머리 탈모]: 엇? 그럼 나 합류하지 말고 주변에 있을까?

[정수리 핥짝]: 그것도 나쁘지 않지. 혹시 잘못되면 다음 기회는 있어야 하니까

[냥냥펀치]: ㄴㄴ 전력 분산할 여유 없음. 할 때 뭉쳐야 됨

[쁘띠공듀]: 오필리아도 뚫렸어욧! 힘 합치는 게 좋아용

[정수리 핥짝]: 스마일캡이랑 노블 둘 다 뚫렸으면 그게 낫겠네. 탈모쉨 빨리 와라

[니머리 탈모]: 예스! 이제 도착!

[쁘띠공듀]: 저도 곧 갑.니.닷!

-파아아아악!

멤버들을 향해 날았다.

‘엘리니에게 녀석이 가기 전까지 남은 기회는 두 번.’

그 안에 끝을 맺어 보자.

* * *

공터.

원래부터 공터는 아니었다.

비교적 평탄한 곳에 자라 있던 나무와 바위를 모조리 밀어 버린 공간.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공블아이 왔냥!”

“오필리아랑 같이 싸웠다며.”

“오오오! 형니이이임! 오셨습니까, 아우 인사 박습니다!”

“크흑! 핵심 멤버분들과의 전투라니. 감동. 또 감동입니다!”

멤버들과 섹시가이, 마지막잎새였다.

다행이다.

아직 뮬랑 카센이 나타나지 않았다.

저쪽에서도 별말 없는 걸 보니 등장하지 않은 모양.

고속 이동 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걸 수도 있고 아니면 전력이 모인 것을 보고 조심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성격을 봤을 때, 적이 많다고 망설일 거 같지는 않다만.

잠시 주변을 둘러봤다.

움찔. 내 시선을 받고는 움츠러드는 후보자.

“짜잔! 얘가 걔야. 인사해.”

“악! 치지 말라니까요!”

탈모맨이 후보자의 등짝을 두드린다.

바로 짜증을 내는 걸 보니 탈모맨이랑 그리 잘 맞는 거 같지는 않다.

아니면 사춘기든가.

10살 정도였던 엘리니와 달리 탈모맨이 데리고 있는 후보자는 십 대 중반은 되어 보였으니까.

그래도 성격이 어둡지는 않네.

탈모맨 옆에 있으면 시무룩해 있기도 힘들지.

조금 피곤할 수는 있겠지만.

“으으. 안녕하세요.”

“어. 반갑다.”

슬쩍 냥펀을 불렀다.

“너희가 데리고 있던 후보자는?”

“핥짝이랑 합류했을 때처럼 증발했엉.”

증발이라.

후보자끼리 만나면 방해가 들어오고 그걸로도 모자라면 강제로 한쪽이 사라진다.

원리는 궁금하지 않다.

무엇을 기준으로 사라지는지가 중요하지.

아마 예상하건대.

‘후보자를 지키는 사람과의 인연에 따라 달라지는 게 아닐까.’

뮬랑 카센도 말하지 않았던가.

후보자는 불꽃이고 각자 색이 다르다.

오필리아와 스마일캡은 붉은색.

가장 낮은 인연을 맺은 이들일 거다.

둘은 후보자를 우선시하지는 않았으니까.

‘다음이 푸른색.’

엘리니를 제외한 후보자의 색으로 예상된다.

다른 후보자에 비하면 좀 더 깊은 인연을 만든 이들.

탈모맨을 보니 더 확신이 든다.

녀석은 정이 많은 편이었고 다른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니까.

그렇다는 건.

‘비교적 탈모맨이 데리고 있던 애가 더 친밀하다는 거군.’

후보자끼리 만났을 때, 비교적 인연이 옅은 쪽이 사라지는 거 같다.

이제 와서는 의미 없는 추론이지만.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있었다.

‘중간에 도망치지는 않겠어.’

뮬랑 카센을 잡으려면 후보자가 있어야 한다.

전투 도중에 탈출하거나 돌발 행동을 하는 순간 녀석은 다른 곳으로 향할 거다.

후보자와 헤어진 이들에게는 관심이 없는 녀석이니.

“작전은 간단해. 싸움이 시작되면 둘이 후보자를 지켜 줘.”

“예, 형님!”

“그런데 만약 위험하면 데리고 자리를 피해도 되나요?”

마지막잎새의 물음에 잠깐 고민했다.

괜찮을까?

“으음. 전투 중에 문제 생기는 것보다는 대피하는 게 좋아 보이는데.”

탈모맨의 의견이다.

사실 우리도 어느 쪽이 정답인지는 모른다.

정답은 혼돈의 파편만 알고 있겠지.

고개를 끄덕였다.

전투에 휩쓸려 죽는 것보다는 그 편이 차라리 낫다.

이걸로 작전은 끝.

“그런데 저쪽에 안 붙어도 되겠어?”

핥짝이가 물었다.

두 팀으로 나뉘지 말고 한곳에 다 모여 있는 것도 방법이라고.

맞는 말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따로 떨어져 있는 이유는.

“서로 방해될 거야. 어느 한쪽에 나타나면 그때 합류해도 늦지 않고.”

에렘바트를 상대로 여럿이 모여 싸우는 건 괜찮았다.

녀석은 대규모 침공을 해 왔으니.

반면 뮬랑 카센은 홀로 움직인다.

그렇다고 초대형 몬스터처럼 큰 것도 아니다.

결국 사람이 몰려 봤자 엉킬 뿐이다.

심지어 하나의 팀도 아니라 쁘찡연합, 루키 그룹, 요정 클럽으로 나뉘어 있다면 더더욱.

핥짝이도 이해했는지 어깨를 으쓱인다.

“어디로 오려나.”

탈모맨의 중얼거림.

그 물음에 답을 하는 걸까.

-우우우웅!

신호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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