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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723화 (723/740)

723화 가까운 존재

바바리안의 수장과 싸우는 데 있어 스킬을 사용하겠다는 생각은 진작에 버렸다.

90층대까지 오른 바바리안에게는 파이어 밤도 대미지가 온전히 들어가지 않는다.

직선으로 이어지는 오로라 빔은 맞힐 수도 없고.

그보다 등급이 낮은 스킬은 통하지도 않았다.

물론 간접적인 변화를 주는 건 가능했지만.

‘잡다한 수를 쓰기에는 수준이 높다.’

디그나 워터.

그런 것들로 변수를 만들기도 쉽지 않다.

이미 시도해 봤다.

-두두둑.

“하하! 간잡이 같은 짓을! 이곳의 전사는 고작 이 수준인가!”

땅을 파내고 화염으로 시야를 가렸지만 저 바바리안한테는 통하지 않았다.

초인의 기준으로도 초인인 괴물이 날뛰는데 함정을 판다?

그건 예측이 아닌 예지는 할 수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움직임을 쫓는 것만으로도 벅찰 수준이니까.

모든 능력이 육체로 몰빵 된 괴물.

그 수준은.

-콰아아앙!

탈모맨과도 비견할 만했다.

‘단단하고 무겁다. 그런데 빠르기까지 하다?’

헛웃음이 다 나온다.

순수한 신체 능력만 보면 탈모맨보다 강할지 모르겠다.

탈모맨 또한 권능과 스킬 대부분이 스스로를 강화하는 데 집중되어 있음에도 그렇다.

-후두둑.

놈의 공격에 날아가 처박힌 것도 잠시.

몸을 일으켜 세우자 돌조각이 떨어진다.

이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다.

나 또한 몸이 단단한 건 마찬가지라서.

[독자무강獨者武强(SSS) Lv.7]

[강철의 의지(SS) Lv.10+]

[강체强體(SS) Lv.10+]

[물리 공격 내성(SSS) Lv.10]

놈 또한 아직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

그건 상대하고 있는 내가 잘 안다.

특히나 저 대검.

‘귀한 물건을 가지고 있군.’

[북부의 대검(SSS)]

-북부의 정수가 담긴 대검입니다!

-튼튼하고 또 튼튼합니다!

-휘두르는 속도에 비례해 무게가 증가합니다.

혼돈검과 같은 SSS등급.

매우 심플한 성능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최상위 등급이 매겨졌다는 건.

“그 검, 부러질 일은 없겠군.”

“하하! 아직까지는 그러했지. 자네가 쓰는 검도 특이하지만 단단하던데.”

그렇겠지.

혼돈이 담긴 걸 제외하면 단단한 게 유일한 옵션이니까.

혼돈의 파편을 상대하는 데는 이만한 물건이 없다.

눈앞에 있는 녀석은 혼돈의 파편과 비견될 만한 괴물이고.

‘그나마 혼돈이 섞여 있어서 딜이 박히는 거지.’

녀석의 절대적인 방호력을 혼돈이 비틀지 않았다면 검도 제대로 안 먹혔을 거다.

[검강]

물론 깊게 찌르려면 더 힘내야겠지만.

마력이 검에 깃들며 날카로움을 더한다.

“이제야 제대로 할 생각이 드나 보군!”

“가볍게 할 대상은 아닌 거 같아서 말이야.”

-슈슉!

그 말과 함께 다시 한번 격돌했다.

거대한 크기임에도 불구하고 섬광처럼 휘둘러지는 대검.

속도에 비례해 한없이 무거워지는 일격을 검으로 받아 냈다.

그냥 부딪치는 것으로는 안 된다.

방금처럼 중량 차이로 날아갈 테니까.

[만근추환(S)]

-쿠구구구궁!

다행히 나 또한 무거워지는 거라면 자신 있다.

뿌리 내리듯 고정된 하단.

강렬한 힘을 버텨야 하는 팔이 삐걱거리고 올라간 혈압에 핏줄이 붉어졌지만 감당할 만하다.

갈란의 눈이 번뜩인다.

다른 바바리안 또한 마찬가지.

“갈란의 공격을 정면으로 막았다!”

“과연! 작지만 강한 전사!”

“위대한 전사들의 전투를 보는 것 또한 영광!”

미친놈들.

풍압에 커다란 몸을 비틀거리면서도 신나게 떠들어 댄다.

터프하다고 해야 할지, 무식하다고 해야 할지.

“흐하하하! 오랜만에 제대로 된 전사를 만나는구나!”

“나도 오랜만에 팔이 저릿한데.”

꾸우우욱.

갈란이 힘으로 검을 짓누른다.

몇 번 부딪치지 않았지만 하나는 확실히 알겠다.

‘힘으로는 못 이긴다.’

지금도 놈의 대검을 버티는데 팔이 후들거린다.

모든 능력이 스탯으로 치환된 놈이니 애초에 힘으로는 안 되는 게 정상.

그렇다면 기술로 승부를 봐야 하는가?

-츠르르륵.

-콰악!

비스듬히 검을 비틀며 대검을 흘렸다.

대검은 강력하지만 커다란 만큼 다루기 어려운 무기.

특히나 근접한 상태에서 기술을 구사하면 맞대응하기 부담스러운 법이었으나.

-콰득!

바바리안은 억지로 대검을 돌리는 대신 맨손으로 내 검을 붙잡았다.

검강으로 도배한 검을.

그럼에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

“화끈하네.”

“칭찬 고맙군!”

입꼬리를 올린 녀석이 그대로 검을 잡아당긴다.

이대로 레슬링이라도 하려는 건가.

그건 사양이다.

저런 괴력을 상대로 몸싸움하고 싶지는 않아서.

[파이어 밤(SSS) Lv.10+]

-콰아아앙!

순간적으로 출력을 높여 검강의 덩치를 불리며 놈과 나 사이에 폭발을 일으켰다.

벌어진 손아귀와 폭발의 반발력에 서로의 몸이 뒤로 밀려난다.

큰 의미가 있지는 않았다.

초인끼리의 전투에서 고작해야 몇 미터는 한 걸음이면 도달하는 거리니까.

-수욱!

갈란의 몸이 늘어나는 것처럼 보이더니 코앞까지 당도한다.

위에서 아래로.

수직으로 떨어지는 검.

검을 바짝 당겨 사선으로 흘려보냈다.

-콰아아앙!

폭탄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터져 나가는 대지.

그 여파에 지반이 흔들리며 발을 디디는 것조차 버거웠으나.

[달라붙기(S) Lv.MAX]

내게는 상관없는 일이었으며.

-후웅!

-콰드드득!

말 같지도 않은 균형 감각을 가지고 있는 갈란 또한 마찬가지였다.

한 호흡에 연격으로 몰아닥치는 공격을 피한 뒤 발끝으로 놈의 종아리를 걷어찼다.

탈모맨한테 배운 기술이었고 사람의 인체 구조를 가지고 있는 이상 다리가 아파야 정상이었으나.

“흐읍!”

놈에게는 큰 타격이 없었다.

되레 발차기를 한 틈을 타 앞으로 달려든다.

몸의 균형이 뒤로 가 있기에 대응하기 쉽지 않았으나 나 또한 균형이 깨진 건 중요하지 않았다.

-콰아아앙!

등 뒤로 폭발을 일으켜 강제로 균형을 세웠으니까.

아니.

오히려 추진력을 더해 놈의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초근접.

검을 휘두를 공간조차 포기하며 몸을 비틀었고.

[칭호, 밤을 부르는 자가 발휘됩니다!]

[스탯이 상승합니다!]

칭호 효과로 스탯을 향상.

그대로 엘보우로 녀석의 얼굴을 후렸다.

아찔한 통증이 느껴진다.

얼굴이 강철로 만든 건가.

거기에 느껴지는 화끈한 통증까지.

“퉤.”

코가 부러지며 코피를 줄줄 쏟아 내는 녀석이 입에 담긴 걸 뱉어 낸다.

엘보우에 맞으면서 내 팔뚝을 씹었다.

미친놈. 갑옷까지 같이 물어뜯었다.

흉하게 구멍이 난 펠라인 세트가 조금씩 수복된다.

“평생 틀니 낄 일은 없겠어.”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전사에게 필요한 건 영광과 전투뿐. 다른 건 필요 없다.”

단순해서 좋네.

이미 일대는 박살 난 지 오래.

협곡이었던 공간은 붕괴해 물이 고이고 있다.

전투가 끝나면 호수로 변하지 않을까.

한가로운 생각을 하며 검을 돌렸다.

긴장감이 떨어진 건 아니다.

녀석은 강하다.

확실히 강하다.

90층대를 폼으로 올라온 게 아니었으며 바바리안 특유의 야성은 상대방의 기세를 잡아먹는다.

그 화끈한 전투 스타일에 홀려 놈의 페이스에 휘둘릴 게 뻔하다.

분명 그렇기는 한데.

‘싸울 만하네.’

어느새 견적이 잡혔다.

녀석은 나를 이길 수 없다.

그동안 상대해 온 놈들이 워낙 괴물 같은, 아니지. 진짜 괴물이었던 것도 있었지만.

“부족해.”

결론적으로 긴장감만 느껴질 뿐, 목숨이 위험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새삼 깨달았다.

같은 90층대에 오른 존재라도 격차는 존재한다.

당연한 말이다.

98층에 올라온 이들 모두 강자인 건 분명했지만 그중에도 유독 강한 이들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나는.

[혼돈이 깃듭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혼돈을 보유하고 있다.

다시 한번 검을 휘둘렀다.

평범한 수평 베기.

다른 잡다한 기술을 버리고 이어지는 깔끔하면서도 정석적인 궤적.

[SSS급 권능, 굴하지 않는 검귀가 번뜩입니다!]

스치듯 검 끝이 갈란의 팔뚝을 가른다.

주륵.

드래곤의 비늘과 같던 녀석의 피부가 갈라지며 피가 흘러내린다.

검강조차 맨손으로 잡았던 놈에게 드디어 붉은색이 덧칠된다.

불쾌한 감각이 속에 응어리진다.

짜증 나지만.

‘효율적이다.’

혼돈의 파편과 어울리며 나 또한 그에 맞춰진 것인가.

아니면 에렘바트를 기점으로 변화가 생긴 것인가.

그들을 상대하며 길러 낸 능력은 조금씩 그들과 비슷하게 만들어 갔다.

악마화를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

종은 다를지언정 놈은 사람이었고.

[혼돈이 바바리안의 규칙 일부를 무시합니다.]

강제되는 혼돈에 휩쓸렸다.

마법이 거부하는 종족.

그 근원조차도 꺾어 버리는 것.

검강이 예리함을 되찾는다.

-콰과과과광!

연달아 터지는 폭발에 놈의 털과 피부가 타오른다.

점점 능숙해지는 능력에 기분이 더러웠지만 결과는 달콤했다.

“숨겨진 수가 있었구나!”

“있지, 그럼.”

물론 그것으로 놈의 투기를 억누르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뭐 어떤가.

내 공격이 통한 순간부터 전투의 끝은 정해져 있었으니.

-푸화아아악!

불길을 뚫고 달려드는 녀석 앞에서 스킬을 사용했다.

[안개질주(SSS) Lv.6]

놈의 대검이 나를 갈랐지만 이미 안개화가 된 이후.

치솟는 열기에 몸을 맡기며 안개 일부를 놈의 코와 입으로 밀어 넣었다.

이어 놈의 등 뒤에서 육체를 되찾는 동시에.

[망자귀환亡者歸還(SSS) Lv.5]

버프를 몸에 둘렀다.

주륵.

팔과 다리에 피가 흘러내린다.

안개화 되었던 몸 일부를 놈의 배 속에 쑤셔 넣었으니 당연한 일.

이 정도면 싸다.

90층대에 오른 괴물을 잡는 대가로.

-콰직!

온몸에 활짝 펼쳐진 혈문을 느끼며 주먹을 쥐었다.

머리로 떠올리는 심상.

그것이 더욱 구체화되었고.

[혈문개방血門開放(SSS) Lv.10]

[혈술, 혈각장血角場(SSS) Lv.6]

그것으로 끝이었다.

칭호와 스킬로 강화된 능력치.

혼돈이 뒤섞인 혈술이 놈의 몸속을 헤집어 놓았으니까.

“쿨럭!”

코와 입으로 피와 살점을 토해 내는 녀석의 몸이 크게 휘청인다.

말랑한 내장도 바바리안 정도 되면 단단해지는지 내부가 엉망이 되었음에도 놈은 두 발로 서 있었다.

그게 전부였다.

빠르게 생명이 빠져나가고 있는 게 눈으로도 보였다.

창백해지는 안색과 한 번도 내려놓지 않았던 대검을 땅에 기대고 있었으니까.

“…순수한 전사의 싸움은 아니었지만. 훌륭하다.”

그 말을 끝으로 갈란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무너진 협곡 위로 바바리안들의 함성이 울렸다.

* * *

기사도와 징벌의 뮬랑 카센.

그녀가 하늘을 올려다봤다.

칙칙한 날씨에 구름만 잔뜩 끼어 있다.

가만히 눈을 감자 그녀의 심상 세계에 타오르는 불꽃들이 보였다.

그중 하나가 꺼졌다.

자신의 손으로 꺼트렸다.

남은 건 2개의 홍염과 3개의 청염.

그 안에서 유독 빛나는 백염 하나.

“듣던 것보다 더 괴물이네.”

초코쪼코가 뮬랑 카센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조심하라고. 괴물 같은 건 너뿐만이 아니니까.”

그 말을 끝으로 초코쪼코의 몸이 빛이 되어 사라진다.

안전지대로 돌아갔을까, 아니면 탑 밖으로 나갔을까.

말없이 파괴된 공간을 둘러보던 그녀 또한 느끼고 있었다.

뿌려 두었던 강력한 재해 중 하나가 죽었다.

동시에 느껴졌다.

자신과 유사한 기운.

증오해 마지않던 존재들과 한없이 가까우나 명백히 다른 존재가.

【곧 마주치기를.】

허공에 떠오른 뮬랑 카센이 몸을 웅크린다.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형체.

다음 불꽃을 향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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