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2화 도전?
신나게 검을 휘둘렀다.
탑을 오르며 온갖 종족을 마주쳤다.
보기 힘들다는 호문쿨루스와 드래곤까지 마주쳤으니 어지간한 종족은 다 봤다고 생각했는데.
‘바바리안은 새롭군!’
세상은 넓었고 당연히 내가 보지 못한 종족도 있었다.
바바리안이 그랬다.
거대한 체구.
모습 자체는 사람이랑 다를 바 없었지만.
-콰앙!
기본적으로 타고난 근질과 체력, 단단한 피부는 사람과는 확연히 달랐다.
근처에 다가가기만 해도 올라오는 누린내에 코가 시큰하다.
어째서 야만인이라고 부르는지 알 거 같다.
“씻고 살자, 이것들아.”
“전사는 전투의 열기로 씻는다.”
“아. 입 냄새.”
양치도 좀 하고.
체온이 높은 건지 검을 맞대고 있으면 뜨겁고 고약한 놈의 숨결이 그대로 느껴졌다.
그거랑 별개로.
“크하아아!”
바바리안은 타고난 전사였다.
패기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야성이라고 해야 하나.
사람보다는 짐승을 상대하는 기분이다.
후퇴를 모르는 전투에 미친 놈들.
-콰지직!
불리한 것이 분명한데도 기합과 달려오는 녀석의 머리통을 때려 부쉈다.
그대로 절명한 녀석이 앞으로 고꾸라지고.
“강한 전사다!”
“중앙의 겁쟁이들에게 저런 존재가 있었단 말인가!”
-우아아아아아!
동료가 죽었음에도 다른 바바리안들을 환호성을 지를 뿐, 복수하겠다며 날뛰지 않았다.
정정당당하게 싸웠다면 별 불만 없는 거 같다.
“후우.”
잠시 숨을 돌리며 바바리안에 대한 정보를 정리했다.
확실히 특이한 종족이다.
마법의 사용을 허락받지 못한 존재.
그 대신 강한 육체를 얻은 이들이 바바리안이었고 놀랍게도.
[Tip. 바바리안은 스킬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대신 육체가 진화하죠!]
이들은 스킬도 사용하지 못했다.
스킬도 마법으로 지정되는 모양.
거인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래도 권능과 칭호는 쓸 수 있는 거 같다만.
‘진짜 미친놈들이야.’
난 그렇게 판단했다.
스킬 대신 육체가 진화한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놈들과 싸우면서 똑똑히 알게 됐다.
스킬을 담은 일격을 맨몸으로 받아 냈으니 더 할 말이 없다.
심지어 영혼 찢기도 제대로 안 박힌다.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건 달리 말해.
‘본인에게 쏘아지는 마법도 무시한다는 거지.’
그냥 마법이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종족인 거다.
덕분에 원치 않게 땀내 나는 싸움을 하고 있는 중이고.
그렇다 한들 어렵지는 않았다.
이 정도면 적당히 상대할 만했으니까.
‘본대에 있는 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곳에는 90층대까지 올랐을 것으로 추정되는 바바리안이 있다.
북쪽에 위치한 것들을 모조리 박살 내고 오고 있는 녀석.
현재 98층에는 1개의 절망과 4개의 재해가 있다.
징조 없이 등장해 모든 것을 파괴하는 혼돈의 파편. 그것이 하나의 절망이었고.
“바바리안. 드워프. 흡혈귀. 수인.”
각 종족들을 이끄는 수장들이 4개의 재해다.
인류의 영역을 좁혀 오는 존재들.
개인적인 감정은 없다.
세상에 사람만 사나. 다른 종족도 살지.
결국에는 다 살겠다고 이러는 거라 불만은 없다만.
‘침공당하는 입장에서는 아니란 말이야.’
어쩌겠나.
서로 사이좋게 지내는 게 불가능하다면 내 집은 내가 지켜야지.
그런 의미에서 바바리안은 내가 감당하는 게 맞았다.
별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바바리안과 상성이 나쁜 애들이 제법 있거든.’
스킬이 아니더라도 검으로 승부를 볼 수 있는 나와 애초부터 무투파인 탈모맨이면 차라리 나은데, 스킬 의존도가 높은 이들이면 바바리안은 천적이다.
스킬이 제대로 안 먹히는 것만 보면 뭐랄까.
“그냥 뭐, 리틀 혼돈의 파편 아닌가.”
그놈들도 혼돈 수치 낮으면 대미지 안 박히니까.
공격이 안 통하는 것만 생각하면 비슷한 느낌이다.
아무튼.
“너희 중에 나보다 강한 사람은 없다! 우두머리를 데려와라!”
내게 덤빈 놈들은 모두 해치웠다.
여전히 바바리안이 남아 있었으나 도전장을 내밀지는 않았다.
이놈들은 철저하게 힘의 우열로 서열이 정해져 있다.
서열이 크게 차이 나는 대상을 이긴 자에게는 도전하지 않는다.
명확한 약자가 강자에게 도전하는 것 또한 모욕이었으니까.
“크흑! 분하지만 저 녀석의 말이 맞다!”
“조그만 주제에 강하다.”
“나의 명석한 머리로 봤을 때, 인간의 기사는 갑옷 색이 다양할수록 강하다!”
“오오! 과연 빛나는 머리다!”
“빛머리!”
“빛머리!”
“…왠지 기분 나쁘다. 하지 마라.”
어째 지능에 하자가 있는 거 같다만.
약탈자 중 한 명이 이런 말을 했지.
바바리안이 마법에게 거부당하는 건 너무 멍청해서라고.
의사소통은 가능하니 다행이다.
남아 있는 바바리안 중 가장 서열이 높은 녀석이 앞으로 나왔다.
“이름이 무엇인가, 강한 전사여.”
“이블아이다.”
“그래, 이부르. 나, 타툰의 이름을 걸고 반드시 우두머리에게 당신의 도전을 전달하겠다.”
“아니, 이블아이라고.”
“다음에 다시 보지, 이부르!”
그 말을 끝으로 선발대로 나선 바바리안들이 우르르 되돌아갔다.
괜히 뒤통수가 당겼다.
놈들의 뒷모습에 탈모맨이 겹쳐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됐다. 얌전히 돌아가는 것만 해도 어디야.
괜히 온갖 계략이다 전략이다 해서 사람 피곤하게 만드는 것보다는 저게 낫다.
“이블아이 경, 굉장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구려.”
“어디 가서 자랑할 정도는 아닙니다.”
“겸손도 과하면 실례라오. 도와줘서 고맙소.”
맥이 고개를 숙인다.
별거 아니라며 손사래 쳤다.
바바리안이 덤빈 것치고는 피해가 적다.
그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눈앞의 기사, 맥이 사람들을 보호했기 때문.
“가장 큰 일을 한 건 맥 경이지요. 성채로 오세요. 지금쯤 마을 사람들을 보호하고 있을 겁니다.”
“성채라면, 설마?”
“네. 잠시 성채를 관리하고 있거든요.”
-휘이익!
타이밍도 좋지.
약탈자 놈들이 말을 끌고 온다.
그중 한 명의 손에는 검은색 군마도 있다.
맥의 표정이 밝아진다.
“대장님! 오다가 쓸 만한 말도 구했습니다!”
“응. 가져와. 맥 경이 주인이야.”
“넵! 말씀드렸는지 모르겠는데, 제가 잃어버린 거 찾아주는 게 취미입니다. 하하!”
냉큼 말고삐를 맥에게 넘긴 녀석이 물러난다.
“아저씨, 멋있었어요!”
“너도 다 크면 할 수 있다.”
“저는 검 잘 못 쓰는데.”
“쓰다 보면 늘어.”
가만 생각해 보니.
‘검술은 따로 알려 준 적이 없군.’
생존법이나 기타 잡기술은 많이 알려 줬는데 정작 검술은 알려 준 게 없다.
아직 신체가 다 자라지도 않았거니와 검술이란 게 단기간 배운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나 역시 알리오스의 권능과 기억이 없었다면 이렇게 빨리 배우지는 못했겠지.
다만.
-후웅! 훙!
사람에게는 재능이라는 것이 있다.
나를 따라 하는 것인지 엘리니가 자기 몸통만 한 검을 휘두르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마구잡이로 검을 내지르는 거 같은데 결과물은.
-파앙!
보는 내가 놀랄 지경이다.
원래 이랬던가?
검을 휘두를 때 가장 많이 실수하는 것이 무게중심과 팔만 사용하려는 습관이다.
놀랍게도 엘리니는.
“가능성 있다. 아니, 할 수 있을 거야.”
타고난 감각으로 몸 전체를 이용하고 있다.
딱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좌에서 우로 그을 때 선이 짧아.’
오른팔이 부러졌다가 잘못 붙었다.
그 결과 왼팔보다 오른팔이 살짝 짧았고 검로를 긋는 궤적이 미묘하게 달랐다.
‘마음 같아서는 치료하고 싶은데 불가능하지.’
이미 붙어 버렸기에 다시 부러트리고 재결합해도 원상태로 복구가 안 된다.
다 큰 성인이면 모를까 엘리니는 성장기였고 이미 잘못 붙은 상태로 몸이 자라 버렸다.
팔이 짧아진 상태로 몸이 발달했다는 것.
그렇다 한들 재능이 빛을 바래지는 않았다.
“대검이라. 엘리니, 그 검을 고른 이유가 있어?”
엘리니가 선택한 검은 클레이모어. 대검이었다.
자기 몸만큼이나 큰 무기였고 쉽게 다룰 물건이 아니다.
내 질문에 눈을 깜빡인 엘리니가 대답했다.
“어. 제가 작아서요?”
과연. 신체적 불리함을 무기로 커버하겠다는 건가.
무지성으로 멋있어 보이는 걸로 고른 줄 알았더니.
“그리고 왠지 손에 잘 잡혀요.”
허접하게 만든 나무 검이었으나 손에 착 감기는 게 눈에 보였다.
검이 좋은 게 아니다.
사람과 무기의 상성이 좋은 거지.
내가 망구에게 창술을 배웠음에도 검을 주로 쓰는 것처럼.
탈모맨이 주먹질을 고집하는 것처럼.
고민이 끝났다.
어차피 후보자들이 모일 때까지 이곳에 있어야 한다.
검술 약간 가르치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다.
그렇다면.
“내가 대검은 잘 몰라서. 다른 전문가한테 배워서 올게.”
맥에게 엘리니를 맡겼다.
성채로 복귀할 때 같이 가라는 뜻.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늦지 않게 와요. 오늘 저녁 맛있는 거래요.”
엘리니가 손을 붕붕 흔든다.
이전에는 도망갈지 모른다고 생각했었지만 지금은 반대가 되었다.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사이가 되었으니.
이것도 98층의 비틀린 부분 중 하나려나.
입꼬리를 올리며 발을 박찼다.
-콰앙!
목적지는 정해져 있다.
듣자 하니, 이곳에 찾아온 바바리안의 우두머리는.
‘대검을 쓴다고 했지.’
어차피 만날 거 시기를 앞당겨야겠다.
90층대까지 올랐으니 모르긴 몰라도 잘 쓸 거다.
뭐든 배우는 데는 실전만큼 좋은 게 없다.
적어도 나는 그랬고.
-후웅.
얼마 지나지 않아 바바리안들이 몰려 있는 협곡에 도달할 수 있었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인간.
바바리안의 눈에 투기가 올라온다.
“오오! 인간!”
“우리를 먼저 찾아온 자는 그쪽이 처음이다!”
“싸우러 왔나?”
호전적이기는.
오자마자 싸우러 왔냐니.
정답이다.
“약속을 잡았는데. 타툰은 아직인가.”
“타툰? 아! 이부르!”
“인간의 강한 전사!”
내가 먼저 오지는 않은 모양.
좋다. 이놈들 하나하나 다 상대하면 그것도 귀찮은데.
-쿠르르릉!
진동음이 들린다.
“왔다! 위대한 바바리안!”
“갈란이 도전자를 맞이하러 왔다!”
덩친 큰 녀석들이 호들갑을 떨며 옆으로 비켜선다.
그 사이로 다가오는 녀석.
‘오. 제법.’
느껴지는 기세부터가 심상치 않다.
90층대까지 오르며 얻었을 모든 스킬들이 육체의 성장으로 이루어진 괴물.
“이야기는 들었다, 이부르.”
“이부르가 아니라 이블, 됐다. 그래. 이부르다.”
“내 자리에 도전한다고 들었다. 우리는 전사. 같은 전사라면 다른 존재라도 상관없다.”
어?
약간의 오해가 있는 거 같은데.
바바리안의 우두머리 따위 되고 싶지 않다.
“신성한 투쟁을 위해!”
“우오오오오!”
갈란이 대검을 치켜들며 소리치자 바바리안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도전. 도전이라.
타툰 이 녀석, 도전이라 알리겠다는 게 이거였나.
벌써 머리가 아프지만 뭐든 됐다.
“도전자여, 준비는 되었나.”
“충분하고도 남을 정도로.”
말은 필요 없었다.
쿵!
그가 발을 박찼고.
-콰아아아앙!
놈의 대검과 나의 검이 맞부딪쳤다.
굉음과 함께 터져 나가는 공기.
맛보자.
90층까지 오른 NPC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