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 갇혀 고인물-719화 (719/740)

719화 그런 건 안 적어도 돼

커뮤니티 알람이 뜬 후 잠시 고민했다.

아무래도 NPC들은 커뮤니티를 볼 수 있어서 옆에 있을 때 보기가 꺼려져서.

다만, 지금은 약탈자 녀석을 데리고 있어 엘리니와 함께 있다.

잠깐 자리를 비운 순간 무슨 일이 생길 수도 있었고 시스템이 엘리니와 헤어졌다고 판단할 가능성도 있었다.

지금 확인하는 게 맞을까.

별 시답잖은 잡담일 수도 있는데.

“아저씨?”

“엘리니, 내가 말해 줬던 거 기억나지?”

“어떤 거요?”

“무슨 상황이 벌어졌을 때, 스스로의 몸을 지키는 법도 알아야 한다고.”

고작해야 10살 정도 된 애가 무엇을 할 수 있나 싶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약자에게는 약자만의 생존 방식이 있으니까.

예로 들자면 지금은.

“스스로가 약하다면 더 강한 사람을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지.”

“그에에.”

어깨에 달라붙어 있던 덕춘이를 엘리니에게 건넸다.

“사람은 아니지만, 저 정도 수준이면 얘가 잡을 수 있거든? 자, 미션이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이 녀석 못 도망가게 잘 감시하고 있어.”

엘리니가 양손 가득 잡히는 덕춘이를 바라본다.

수많은 감정이 스치는 얼굴.

나 같아도 개구리 달랑 주고 스킬 펑펑 써 대는 각성자 잡아 두라 하면 어이가 없을 테지만.

‘덕춘이를 몰라서 그렇지.’

나름 나에 대한 신뢰가 있으니 믿어 주리라 믿는다.

“그에엑.”

덕춘이도 걱정 말라며 엄지를 세운다.

“빨리 와야 해요. 버리고 가면 안 돼요!”

“안 버리거든? 금방 올 거야.”

타앗.

그 말을 남기고 자리를 이동했다.

별거 아닌 일일지도 모르지만 커뮤니티를 확인해 봐야겠다.

준비했던 계획이 꼬였다.

새로운 상황과 정보가 나왔다면 미리 알아 두는 게 좋았다.

더불어.

“계속 엘리니를 옆에 둘 수는 없거든.”

옆에서 지켜보는 것 정도야 얼마든지 하지만 그거에 얽매이면 안 된다.

그 자체로 내 행동 범위가 줄어드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시스템이 헤어진 것으로 판단한다?

그럼 어쩔 수 없는 거지.

언제부터 시스템에 휘둘리며 움직였다고.

“이쯤이면 되겠군.”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 커뮤니티를 켰다.

난리가 났다.

온갖 이야기가 올라오고 있었는데.

[스마일캡]: 후보자끼리 만나면 사건이 발생하는 거 같아

[마지막잎새]: 초코쪼코 쪽이랑 합류하려는데 몬스터 웨이브 터졌어요!

[니머리 탈모]: 어? 나도 그랬는데

[화무선]: 헌데 근육팡팡전사는 어제부터 연락이 없소. 기습받고 후보자와 떨어졌다는 이야기는 들었소만.

[화무선]: 송곳 요정을 보러 간다지 않았소?

[송곳 요정]: 온다고는 했는데 합류 못 했어. 여기 반란 일어났거든

먼저 근육팡팡전사의 실종 소식과 정체불명의 사건들.

[섹시가이]: 속보! 속보오오오! 근육팡팡전사 있던 곳에 혼돈의 파편 출몰!

[냥냥펀치]: 엑! 진짜임?

[정수리 핥짝]: 재앙 아니라?

[섹시가이]: 누님, 우리 팡팡이가 재앙한테 뒈질 짬은 아니라고요!

[마그마 요정]: 그건 그런데 재앙도 까딱 잘못하면 당하지 않나?

[섹시가이]: 마그마 누님까지!

[니머리 탈모]: 난 믿어. 우리 근육이가 그럴 리가 있나!

[정수리 핥짝]: 잠깐잠깐. 그 전에. 연락 안 되는 사람들 더 있어? 확인해 봐

[갓블레스]: 노블 나이트는 문제없습니다

다음으로 혼돈의 파편의 등장.

온갖 일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지고 있다.

난이도가 올라가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벌써 탈락자가 나올 줄이야.

“일이 터져도 단단히 터졌군.”

혼돈의 파편이 등장한 건 그렇다 친다.

그 녀석은 후보자와 헤어질 때 등장하는 녀석이다.

근육팡팡전사는 특수 게이트가 터지며 몰아닥친 몬스터 웨이브와 그 근방에 위치하던 도적 떼와 마찰이 있어 도주했고.

그 과정에서 후보자가 떨어졌다고.

뭐, 말로는 그렇지만 실제로는.

‘후보자가 도주했다고 했지.’

패닉에 빠지면 무슨 일을 할지 모르는 게 사람이다.

아직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성숙하지 못한 경우라면 더 그렇겠지.

다들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 후보자는.

“됐다. 이미 일어난 일인데 생각해서 뭐 해.”

아무튼 포인트는 이거.

그동안 잠잠했던 혼돈의 파편이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과.

“다시 종적을 감추었다는 것.”

그나마 똑같이 후보자를 잃은 섹시가이가 근육팡팡전사와 합류하기 위해 이동하다가 목격해서 다행이다.

아니었다면 녀석이 활동하는 것도 몰랐을 테니까.

일단 이건 패스하자.

결국 마주치게 될 건 알고 있었으니.

내가 신경 쓰이는 건 이 부분이다.

‘후보자끼리 만나려 하면 사건이 벌어지는 거 같다라.’

스마일캡과 마지막잎새의 말이 걸린다.

근육팡팡전사 또한 따지고 보면 송곳 요정을 만나러 가는 중이었고.

“나도 탈모맨에게 가고 있었지.”

단순 우연이라고 볼 수 있을까.

그렇다고 하기에는 겹치는 부분이 너무 많은데.

누군가의 의지가 개입됐다고 보는 게 맞아 보인다.

오케이.

드디어 이곳의 규칙이 보인다.

첫 번째.

후보자는 모두 진짜다.

두 번째.

후보자끼리는 만날 수 없다.

만날 경우 적어도 한쪽은 사라지도록 설계되어 있다.

세 번째.

혼돈의 파편은 후보자가 사라지면 등장한다.

“이제 좀 정신이 드네.”

겉으로 드러난 3개의 규칙.

난 두 번째에 집중했다.

후보자끼리 만날 수 없다?

“어떻게 할 건데?”

반란을 일으킬 건가?

아니면 몬스터 웨이브랑 재앙, 특수 게이트를 펑펑 터트려?

어쩌면 반란군이라든가 기타 방랑자들, 도적이나 군대가 쳐들어올 수도 있겠지.

그런데.

“그거 전부 안 통하면 본인이 등판해야지.”

가장 확실하게 방해할 수 있는 수단은 혼돈의 파편인 본인이 나타나는 거니까.

그렇다.

굳이 후보자라 떨어질 필요 없다.

만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궁금하네.

만약에. 녀석까지 등장했는데도 우리를 막지 못하고 후보자끼리 만나면 어떻게 되려나.

“시스템이 직접 나설지도 모르겠군.”

어떤 방식이든 상관없다.

우리의 목표는 위로 올라가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녀석을 잡아야 하니까.

물론 거친 방법인 건 맞다.

그 과정 중에 등반가들도 죽어 나갈 테고 후보자들도 휘말릴 게 분명하다.

이곳에 올라온 누구도 그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요새화를 시킨다.”

그리고 찾아오는 위협을 모두 물리친다.

그게 내가 떠올린 98층의 공략법이다.

생각을 마친 후 계획한 것을 정리해 커뮤니티에 올렸다.

마침 냥펀도 현 상황을 정리하고 있었다.

[냥냥펀치]: 생존자 19명 추정. 그중 후보자랑 헤어진 사람이 8명!

[정수리 핥짝]: 후보자가 11명 남았네. 언제 이렇게 줄었대

위로 올라온 인원이 21명이었으니까, 알게 모르게 2명이 당했다.

99층에는 과연 몇 명이나 올라갈 수 있을까.

때 되면 알겠지.

-띠링.

냥펀이 내게 개인 메시지를 보냈다.

[냥냥펀치]: 일단 공략 아이디어 공유해 볼겡

[쁘띠공듀]: 공듀는 감동인 것이에오!

[냥냥펀치]: 우… 우욱! 아무튼 너 할 거 하고 있엉

이쪽은 냥펀이 해결해 줄 터.

다시 엘리니가 있는 방향으로 돌아갔다.

그런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건.

“움직이지 마! 안 그럼 인질의 목숨은 없다!”

“읍읍! 으으읍!”

꽁꽁 묶인 약탈자의 목을 감싸고 칼을 들고 있는 엘리니였다.

의기양양하게 엘리니의 머리 위에 올라가 팔짱을 끼고 있는 덕춘이는 덤.

아. 갑자기 피곤해지네.

슬며시 눈 뼈를 문질렀다.

“너희 뭐 하니?”

“아저씨가 궁지에 몰리면 인질을 잡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해서 연습을 좀. 헤헤.”

부끄러운지 머리를 긁적이는 엘리니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친절하게 자세를 교정해 줬다.

“자. 인질의 머리는 네 몸에 딱 붙이고 있어야 해. 얼굴은 뒤통수 쪽으로. 인질이 점프하면서 박치기하면 아프거든.”

“아하!”

“나중에 힘이 더 생기면 목 말고 턱 아래를 겨눠. 그래야 바로 뇌 찔러서 즉사하니까.”

“네! 좀 더 크면 그렇게 할게요!”

“그래도 입은 잘 막았네. 잘했어.”

“그엑 그엑.”

덕춘이가 장하다는 눈빛으로 엘리니의 머리를 토닥인다.

그런 엘리니의 손을 잡고 다른 손으로는 인질의 멱살을 잡아끌며 나아갔다.

이제 와서 이런 생각 하는 게 좀 그렇기는 한데.

‘나 잘하고 있는 거 맞나?’

살짝 애 망치고 있는 기분인데.

흘낏. 엘리니를 살폈다.

해맑게 미소 짓고 있어 볼이 빵빵하다.

본인은 좋아하는 거 같으니 괜찮겠지, 뭐.

* * *

약탈자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곳은 성이었다.

그것도 제법 규모가 큰 성.

제법 웅장할 만도 했지만 전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볼품없어 보였다.

성벽이야 일부 무너져도 써먹을 수 있다 치는데.

“문은 달아 놔야지, 이것아.”

“크읍! 안쪽에 내성이 있다. 들어와 봤자 포위되어 죽을 뿐이야!”

약탈자 녀석의 머리통을 때리자 눈을 부릅뜬다.

“엘리니.”

“네! 눈을 그렇게 뜨면 못 써요!”

-뽁!

“끄악! 이런 미--!”

냅다 녀석의 구레나룻을 뜯은 엘리니에게 약탈자가 욕을 하려 했지만 내 손에 막혔다.

어디 애 앞에서 욕을 하려고.

다람쥐처럼 내 뒤로 숨은 엘리니의 머리를 두드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98층의 세계관은 간단했다.

크고 작은 왕국이 사방에 깔려 있는 곳.

대부분 사이즈가 작다.

왕국이라고 해 봤자 인구수 15만. 많아야 50만 명 정도라고 하니까.

지금이야 반토막도 더 났겠지만.

아무튼 상황이 그렇다 보니 각성자들이 반란을 일으키거나 정부를 무시하고 독자적인 집단을 형성하고 있단다.

여기도 마찬가지고.

몬스터의 영역이 늘어나는 지금, 놈들을 막을 수 있는 힘을 가진 세력에 붙기 마련이다.

덕분에 현재는 왕국이라 불릴 만한 곳은 남아 있지 않다.

왕이라는 작자가 처음부터 각성자들을 대우해 주고 하나로 힘을 합쳤다면 인류의 영역이 더 커졌을 텐데.

“이전에 있던 왕도 멍청하군. 세상이 바뀌었으면 대우도 바뀌어야 하는 건데.”

“너라면 얼마 전까지 기라면 기고 죽으라면 죽는 놈들 상대로 그럴 거 같나?”

그런가?

가만 생각해 보니 우리나라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대놓고 탑 못 올라가게 가짜 공략법을 뿌려 댔으니.

언젠가 본인들이 감당하지 못할 만큼 강한 헌터들이 나올 줄도 모르고.

진짜 예상하지 못했을까?

‘글쎄.’

막상 그렇게 돼도 어련히 체제에 순응하겠거니 하고 있지 않았을까.

지금 밖은 어떨까. 궁금하긴 했다.

나중에 확인해 보면 되겠지.

‘이제 얼마 안 남았으니.’

-털썩.

끌고 가던 약탈자를 밀어 던졌다.

녀석이 말한 대로다.

“거기! 이곳에 온 목적이 뭐냐!”

“등반가 출신인가? 저 녀석도 그리 약한 놈은 아니었는데.”

“도시 쪽으로 빠진 녀석들이 복귀하지 않고 있더니만. 네놈 짓이었나!”

놈들이 외성의 문을 고치지 않은 이유.

안으로 들어온 이를 포위해서 공격하기 위함이다.

대놓고 있는 함정이라고나 할까.

“야, 여기 주인장 이름이 뭐지?”

“헥톤 포엔타다! 이곳의 주인이자 인류의 희망!”

-터억.

가볍게 턱을 쳐 기절시킨 후 반듯이 눕혀 줬다.

갑자기 소리 지르고 있어. 놀라게.

아무튼 덕분에 이름은 알아냈고.

“아아.”

목을 풀었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는 타이밍.

“헥톤 포엔타! 방 빼! 뒈지기 싫으면!”

새로운 집주인이 왔다.

환영해라.

-끼에에에에!

내성 너머, 허공을 날아 돌아오는 망구가 보였다.

녀석의 손에는 턱수염이 인상적인 사내가 있었고.

“…대장님?”

“악마다! 악마가 나타난 거야!”

그의 부하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이익! 이이익! 웬 놈이냐! 더러운 흑마법사 녀석아!”

헥톤 포엔타가 얼굴이 붉어져라 내게 소리를 질렀다.

오해가 있다.

난 흑마법사가 아니다.

“방 빼라고. 이젠 내가 여기 쓸 거니까.”

집주인(예정)이지.

자고로 부동산 거래는 소유주와 직접 만나서 해결해야 하는 법이었다.

옆에선 엘리니가 꼼지락거린다.

“생존법. 집이 없으면 뺏어라… 메모…….”

난 조용히 엘리니의 수첩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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