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5화 호수는 어디서
달 호수 마을.
화려하지는 않지만 이름만큼 평화로워 보이는 마을이었다.
적어도 엘리니와 다른 아이들의 대화를 듣기 전까지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무언가가 있다.
그게 암묵적으로 용인되는 것인지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크게 이상할 것도 없지.’
뭐든 감춰진 어두운 부분은 있기 마련이니까.
특히나 세상이 망하고 있다면 더욱더.
노골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나름 괜찮다 볼 수도 있었다.
그 정도 여유는 있다는 거니까.
물론.
‘그게 정상이란 뜻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괜찮다?
그게 무슨 소릴까.
멀쩡해야 괜찮은 거지.
지금도 그렇다.
“뭐, 뭐야! 너 누군데!”
엘리니에게 뭉치자고 외쳤던 꼬마.
그 모습을 창문으로 보고 있던 마을 주민.
굳게 다문 입술과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에는 약간의 온정도 없었다.
혹시나 싶어서 덕춘이에게 지켜봐 달라고 했더니만 역시나.
“어반스 보호자다.”
슬쩍, 권능으로 남자애의 이름을 확인하고 답했다.
“그게 뭔 개소리! 2년 전에 온 고아인 걸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콰직.
부드럽게 잡고 있던 손목을 그대로 부쉈다.
뼈가 엇나가는 소리와 함께 녀석이 비명을 질렀다.
“크하아악! 이런 미친놈이!”
“보호자라고.”
손목을 잡고 뒹구는 녀석에게 포션을 뿌렸다.
으스러트리지는 않았으니 이 정도면 붙는다.
식은땀을 흘리던 남성이 떨리는 눈으로 날 올려다봤다.
일단 이 녀석은 대화할 준비가 된 거 같고.
“어딜 가지? 너도 일로 와, 말로 할 때.”
“으이익!”
어반스를 잡고 있던 녀석이 슬금슬금 도망치려다 멈춰 선다.
턱이 떨리는 게 이대로 도주할 수 있을지를 계산하는 것 같았으나.
“저는 그냥 따라온 것뿐입니다, 어반스 보호자님. 전 그냥 붙잡고 있었어요!”
선택은 길지 않았다.
마주 멍청하지는 않은 모양.
아니군.
-빠악.
“어억!”
멍청한 게 맞다.
누가 보호자한테 그런 식으로 말하냐.
대가리부터 박든지 사과 먼저 해야지.
뒤통수를 맞은 녀석이 기절해 널브러졌다.
“누, 누구세요?”
“네 친구 아는 사람.”
어반스가 눈치를 보며 물었다.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내 정체를 모르니 경계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뭐, 내 정체를 알아도 똑같겠지만.
결국 나 또한 남이고 이방인이다.
다른 게 있다면.
“이봐.”
“네, 넵!”
내게는 힘이 있다는 것 정도.
“나 알지?”
화륵.
손끝으로 불을 일으켰다.
덕분에 내 얼굴이 잘 보일 거다.
마을이 크지 않아 나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퍼졌을 거다.
저번에 몬스터 몇 마리 치워 준 후로는 더 그렇고.
눈을 깜빡이던 사내가 입을 딱 벌린다.
“기, 기사님이셨군요!”
동시에 눈에 의아함이 가득해졌다.
“기사님이 여기는 왜? 무슨 오해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 아이는 고아입니다. 물건을 훔치기도 하고 일도 건성으로 하는 녀석입니다.”
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더 해 보라는 뜻.
“심지어 패거리를 모아 사람들을 위협하기도 했죠. 돈을 달라 뭐라 하는데. 아니, 살 곳이든 먹을 거든 사 먹는 게 정상 아닙니까? 그냥 내놓으라 소리치면 그건 강도죠!”
“제값 주고 일을 시키지 않잖아!”
“잡일하면서 뭔 돈을 받아! 싫으면 다른 걸 해! 이 정도 조건으로 할 사람은 너희가 아니어도 널렸다고!”
둘 다 억울한 건 있을 거다.
고작해야 중학생 정도인 녀석이 일을 하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할까.
잡일을 하거나 노동을 하겠지.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것도, 기술도 없으니까.
있어도 이런 마을에는 큰돈을 벌 만한 일이 거의 없다.
대부분 농사나 작은 가게를 하는 정도라서.
“네가 먹는 밥은 그냥 나오는 줄 알아? 숙소는?”
“그게 숙소는 무슨. 쓰레기장이지! 주급을 달라는 거잖아, 그냥!”
서로 쌓인 게 있었는지 가만히 놔두자 언성이 높아진다.
“돈 받고 싶다고? 네가 일하는 걸 돈으로 받으면 지금처럼 먹지도, 자지도 못해. 뭣도 모르고 억울하다 징징거리기나 하지!”
“그럼 더 돈이 되는 일을 시켜 주면 되잖아!”
“널 뭘 믿고! 너 말고 일 잘하고 똑똑한 사람은 널렸는데. 차라리 구걸하든가!”
-짝짝.
박수를 쳐서 둘 다 입을 닥치게 했다.
“뭔가 오해하는 게 있군.”
내가 궁금한 건 이런 게 아니다.
정당한 노동이라든가 보상이라든가.
성인도 되지 못한 이가 할 수 있는 일과 그런 이들을 굳이 고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건 내 알 바가 아니다.
솔로몬처럼 옳고 그름을 따질 생각도 없다.
난 이방인.
지역을 넘어 살아온 세계가 다르다.
그러니 내 기준과 상식을 이곳에 들이밀 수도 없다.
그러고 싶지도 않고.
“이곳으로 넘어오는 부랑자와 고아가 늘었다고 들었다.”
나는 좀 더 깊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
어반스가 말했었다.
부랑자가 늘었다고.
방금 사내가 말한 것만 생각해도 이미 몇 년 전부터 이곳으로 흘러 들어오는 이들이 많다.
멸망이 가속되면 될수록 그 숫자는 더 늘어나겠지.
마을 주민들도 그걸 알기에 외부인들을 억압하는 것일 테고.
지금껏 살아온 마을을 그들에게 뺏길 수는 없으니까.
치안을 위해서라도 무한정 외부인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
물론, 그게 마음처럼 되느냐는 다른 문제다.
그냥 밀고 들어오는데 어떻게 막을 건가?
정말 놀랍게도.
“아이들은 이곳에 남았지. 나머지는 어디로 갔나?”
달 호수 마을은 그걸 해내고 있었다.
마을에 대해 알아봐야겠다고 마음먹고 움직인 지 하루도 되지 않았으나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들은 내게 상당히 호의적이었으니까.
자신들을 지켜 줄 사람으로 봤기에 술을 마신 이들은 부랑자들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6년 전부터 이쪽으로 넘어오는 사람들이 많아졌어.’
적어도 지금까지 수백 단위의 사람이 들어왔을 거다.
어쩌면 1,000명을 넘길지도 모른다.
지금도 한 달에 20명 가까이 들어오니까.
여기까지 도망쳐 온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떠났을까?
그럴 수도 있다.
듣자 하니 이곳에서 13일 정도 걸어가면 도시가 있다고 하니.
어떻게든 먹고살려면 그쪽으로 가는 게 더 좋을 수도 있다.
다만.
[니머리 탈모]: 이쪽으로 온 애들 몇 없는데?
그 도시로 떨어진 탈모맨은 내가 있는 방향에서 온 부랑자가 극히 드물다 했다.
내가 이 의문을 가지게 된 원인은 어반스가 한 말 때문이다.
분명 일리나에게 이렇게 외쳤다.
‘우리도 사람이라고.’
이게 10대 초반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인가.
다 떠나서 사람이냐니.
정말 핍박받거나 사는 게 힘든 게 전부라면 다르게 말했을 거다.
사람처럼 살 수 없다.
심지어 그 말을 하는 어반스는 꼬질꼬질할지언정 건강상태가 나쁘지는 않았다.
물론 잘 먹지는 못해서 비쩍 마르기는 했지만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다.
차라리 자신이 본 다른 사람들을 대신해 외쳤다면 이해하겠다.
여기서 내린 결론은 하나.
‘마을 사람들이 다른 부랑자에게 무슨 짓을 했다.’
그리고 그 짓은 사람한테 하면 안 될 짓이다.
아이들만 남은 이유?
폭력을 쓰면 비교적 쉽게 길들일 수 있으니까.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했다.
왜냐.
‘내가 당해 봤거든.’
스윽.
단검을 꺼냈다.
이 녀석, 답이 너무 늦다.
허벅지에 단검이 찍히기 직전 녀석이 입을 열었다.
굴러가던 눈알이 더는 떨리지 않았다.
뭔가 예상되는 게 있다는 건가.
“마, 말하겠습니다! 누구를 찾으시는 겁니까? 호수 쪽에서 오셨으면 북부에서 오신 걸 텐데 그쪽 지역 사람 중에 지인이 있으십니까?”
“남자 한 명. 12살 정도 되는 애가 같이 왔을 거다.”
“그럼 고아는 아닌 듯한데 그 혹시, 남자나 아이의 이름이 어떻게?”
“가명을 썼을 거다. 나를 껄끄러워하는 사람이니까.”
“아아. 따로 일이 있으셨군요. 제가 찾아보겠습니다!”
녀석의 말에 입을 꽉 다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곳에 내가 아는 사람은 없다.
그저 녀석이 누구를 찾느냐는 말이 걸린 거지.
이 녀석들.
‘부랑자들을 따로 관리하고 있어.’
죽이거나 쫓아냈다면 다른 변명을 했겠지.
“망해 가는 세상에 은원 한두 개 정도는 흔한 법이지.”
“그럼요. 무슨 뜻인지 압니다요. 저도 기사님 정도나 되시는 분이 어떻게 오신 건가 궁금했었는데. 제가 연락을 넣겠습니다.”
내 말에 이해했다는 듯 손사래를 친 녀석이 움직인다.
“시간은 하루. 늦지 않게 와라. 내가 머무는 곳은 알고 있겠지?”
“물론이지요.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이 녀석도 데리고 가고.”
여전히 기절 중인 녀석을 대충 던졌다.
얼떨결에 받아든 사내가 무거운지 얼굴을 구겼다.
“저, 그런데 어반스랑은 무슨 관계 신지?”
“그게 왜 궁금하지? 아까 말했을 텐데.”
“헤헤. 아닙니다. 기사님 말씀대로 이런 세상에 여러 인연이 있는 것이죠.”
그걸 끝으로 사내 둘이 되돌아갔다.
“그에에.”
내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덕춘이가 은밀히 둘을 쫓는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끼아아아아!”
망구까지 소환해 붙였다.
이 정도 했으면 별문제 없겠지.
“어반스.”
“일단 그, 고맙습니다?”
“알면 됐다. 그보다 궁금한 게 있는데.”
-드드드드.
어스월을 약하게 발동해 적당히 앉을 것을 만들었다.
내가 턱을 까딱이자 신기해하면서 맞은편에 앉는다.
“넌 뭘 지키고 싶은 거냐?”
가만히 어반스의 갈색 눈동자를 응시했다.
난 네 나이 때 아무것도 지키지 못했는데.
이미 시간은 새벽.
애가 잘 시간이었지만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망할 멸망은 아이도 어른으로 만들어 버리니까.
* * *
연락은 금방 왔다.
덕춘이와 망구까지 돌아온 걸 보면 뒤에서 수작을 부리거나 하지는 않은 모양.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사내를 따라 움직인 곳은 호수 너머.
돌아가기에는 시간이 걸려 나룻배를 타고 가로질렀다.
전에도 느낀 거지만 물이 맑다.
물고기도 제법 많은 거 같고.
‘다들 여기서 식수를 떠가던 거 같은데.’
요 며칠 마을에 있는 동안 알게 된 사실 하나.
근방에는 강이 없다.
다른 냇가도 없고.
저수지 역할을 하는 호수가 없다면 이 근방은 황량했겠지.
이 호수가 어떻게 생겨났는지는 몰랐으나.
“다 왔습니다. 부디 큰 소리를 내시지 말아 주세요.”
의문은 금방 풀렸다.
“하하.”
작게 웃었다.
그래.
망한 세상이었지, 여기.
[재앙, 사죄의 석상이 눈물을 흘립니다.]
호수 뒤편에 존재하는 작은 숲.
그 중앙에는 연못이 존재했고 천사를 본떠 만든 조각상이 그 안에 있었다.
사죄하듯 양손을 맞댄 채 감은 눈으로는 끊임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흐른 눈물이 고이고 흘러 호수로 떠내려갔다.
그 주변에는.
“제가, 제가 죽였습니다!”
“떠밀어서 미안해. 내가 정말 미안해.”
“오오. 내 죄를 용서하지 마십시오.”
사라진 부랑자들이 무릎을 꿇고 죄를 고하고 있었다.
주변에는 엎질러진 음식이 굴러다닌다.
먹은 흔적이 없다.
그저 바닥에 스며든 석상의 눈물을 간혹 핥아먹으며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간밤에 말씀해 주신 사람이 저자인 거 같은데. 으음. 이 이상 접근하면 다들 돌아 버립니다.”
머리를 긁적인 사내가 바닥에 줄지어 박아 놓은 돌멩이를 가리켰다.
저기부터가 재앙의 영역이라는 뜻이다.
“기사님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정말 위험합니다. 그래서 미리 좀 보내 놨습니다.”
삐익!
그가 휘파람을 불었다.
소리에 반응했는지 사람들 사이에 섞여 보이지 않았던 이가 손을 들어 올렸다.
재앙의 영역 안이다.
작고 마른 손.
헐렁한 소매가 흘러내리며 보이는 비틀린 팔뚝.
“더 왼쪽으로! 잘 끌고 와!”
두 눈을 천으로 가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게 만들어 뒀다.
더듬더듬 그의 지시에 따라 기도 중인 사람을 붙잡자 사내가 손뼉을 친다.
“그래! 그대로 끌고 와!”
낑낑거리며 기도를 하는 사람을 끌고 오는 엘리니를 보며 사내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참 곤란하다니까요. 그나마 애들은 덜해서 다행입니다.”
그의 말에 한 귀로 흘리며 엘리니를 바라봤다.
“눈은 왜 가린 거지”
“안 보이죠. 석상을 보면 애들도 종종 맛이 가서 아예 가려 버립니다.”
“그렇군. 부탁 하나 해도 되나?”
“네? 더 필요하신 거라도?”
필요한 건 딱히 없고.
“귀도 막고 있으라고 말해 주겠어?”
“어, 뭐. 그러죠. 엘리니! 귀 좀 막고 있어!”
녀석의 외침에 움찔한 엘리니가 귀를 막는다.
그와 동시에 내 손이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