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6화 격파
불의 거인.
아니지. 마그마로 만들어 낸 골렘을 타고 있는 건 탈모맨과 마그마 요정이 맞았다.
아직까지 복귀하지 않아서 탑 밖으로 퇴출당한 줄 알았는데.
“야, 이 자식아! 뒈진 줄 알았잖아!”
“살아 있을 줄 알았다구! 바퀴벌레! 탈모벌레!”
크게 티 내지는 않았지만 걱정하고 있던 건 핥짝이와 냥펀도 마찬가지.
특히 핥짝이는 당장이라도 달려가 주먹을 날릴 거 같았으나.
해후를 나누기에는 아직 남아 있는 적들이 많다.
“하하하하! 그럼 멀쩡하지!”
“일단 여기부터 정리하고 이야기는 나중, 이이익! 이 쫄쫄이가!”
-쿠웅!
마그마 골렘이 움직이자 마그마 요정이 탈모맨의 머리를 붙잡는다.
손속에 거침이 없는 것이, 안개 속에 갇혀 있는 동안 탈모맨에게 시달린 모양.
“막 움직이면 안 된다고!”
“하지만 이렇게 해야 자세가 맞는데.”
“골렘 유지하는 게 쉽지 않거든?!”
“악! 아악! 머리카락 잡지 말라고!”
“어차피 탈모라며!”
“…누가 그런 모함을?”
탈모맨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우리 쪽으로 쏠렸지만 그런 걸 신경 쓸 멤버들이 아니다.
“뭐, 이 씨. 순서 차이야, 순서 차이. 지금 다 뽑아 줘?”
“진실은 언제나 잔혹한 법! 당당히 밝히는 게 낫다구!”
“아니…….”
슬픈 눈을 한 탈모맨이 나를 바라봤고 난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왜 날 봐.
나도 얘네한테 당하고 살아.
그건 그거고.
탈모맨과 마그마 요정이 탑승한 골렘을 살폈다.
저걸 탑승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마그마 요정은 그나마 좌석이랄 것에 타 있기는 한데.
“근데 넌 왜 파묻혀 있냐?”
“여기 뜨끈하니 괜찮아.”
“그래. 행복하면 됐다야.”
탈모맨은 보타이를 경계로 골렘에 파묻혀 있었다.
저놈의 보타이를 찢어 버리든가 해야지.
덕분에 마그마 골렘은 웅장한 몸체에 비해 괴상한 느낌이 되었다.
“저거 탈모맨이 조종하는 거 같지?”
“어. 그런 거 같아.”
핥짝이의 말에 동의했다.
처음 등장하면서 날린 슈퍼맨 펀치.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다.
무투파가 아닌 마그마가 보일 만한 기술도 아니고.
탈모맨이 직접 골렘을 조종했다고 봐야 한다.
거인을 상대하려면 평범한 골렘으로는 불가능.
탈모맨의 격투 실력을 첨가하는 것으로 반전을 꾀한 거다.
덕분에 격렬하게 움직이는 골렘을 유지하는 게 힘들긴 하겠다만.
‘어떻게든 살아남았으니 잘된 거지.’
-치이이익.
골렘의 틈 사이로 흘러내린 용암이 열기를 내뿜는다.
피처럼 흐르는 용암을 윤활유 삼아 골렘이 몸을 움직인다.
탈모맨과 마그마 요정의 난입으로 거인들이 잠시 멈췄지만 그것도 잠깐.
기습적인 주먹질에 나가떨어졌던 거인도 몸을 일으켜 세웠다.
-구드드득.
전사의 모습을 한 녀석들이 저마다 무기를 꺼낸다.
중앙섬에 오고 나서부터는 무장을 한 놈들도 출현했다.
그냥 맨손으로 싸우면 좋을 텐데.
“위험한 놈들은 미리 쳐내야 해.”
우리도 진형을 갖추었다.
탱커가 생겼다.
그것도 아주 든든한 탱커가.
정면은 탈모맨과 마그마 요정.
줄여서 탈모 요정.
좌측에는 나와 초코쪼코.
우측에는 핥짝이와 냥펀.
총원 여섯 명.
“드디어 처음으로 안개를 몰아내겠네.”
몰려오는 안개에 후퇴하기만을 반복했었으나.
새롭게 결성된 팀이라면 우리가 맡은 안개에 숨어 있는 거인들을 모조리 처치하는 것도 문제는 없을 것이다.
-쿠웅. 쿠웅.
-콰아아아앙!
앞으로 걸어 나가던 골렘이 가속도를 붙이며 몸통 박치기를 한다.
힘겨루기라도 하는 건가.
양손으로 골렘을 붙잡은 거인의 근육이 부푼다.
그것이 신호.
우리도 움직였다.
“초코쪼코, 한 마리 잡고 있을 수 있겠어?”
“10번만 찍으면 되겠네. 발가락 다 날리면 알아서 발이라도 잡고 구르겠지.”
탈모맨이 잡고 있는 녀석을 제외해도 남은 거인은 셋.
핥짝이와 냥펀은 붙어 있어야 한다.
저주 아티팩트를 뿌리는 것과 압축을 통한 연계를 펼치려면 둘의 합공이 필수니까.
그러니 남은 둘은 나와 초코쪼코가 붙잡고 있어야 한다는 것.
“금방 끝마치길 빌어야지.”
맨 처음 잡은 놈처럼 무장하지 않은 놈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전투에 특화된 놈들이다.
핥짝이면 알아서 잘하겠지만.
장비를 차고 있는 대상에게는 천적과도 같으니.
-콰지지지직.
압축으로 전사 거인의 발등을 덮고 있던 갑옷을 찌그러트리는 모습이 보인다.
그럼 나도.
“잡아 보실까.”
가장 후방.
작두를 쥐고 있는 놈을 향해 날아갔다.
대충 거적때기인지 털옷인지 모를 것을 입고 있는 녀석.
한 손에는 방패까지 들고 있다.
-쐐애애액!
거침없이 날아오는 작두를 피하며 인벤토리에서 창을 꺼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만들고 있던 온갖 장비와 포션.
창이라고 없을 리가 있나.
-푸우욱!
힘차게 던진 창이 놈의 종아리에 박힌다.
비교적 얇은 곳을 노렸는데 관통까지는 힘든가.
창 관련 스킬이 있는 것도 아니니 순전히 기술로만 사용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기술도 완성되면 스킬이나 마찬가지지만.’
그런 의미에서.
[잊혀지지 않는 창기사(SSS) Lv.10+]
“끼에에에에엑!”
내게 창술을 알려 주는 녀석이자 훌륭한 자폭맨, 아니 부하!
망구가 활약할 순간이다.
-파바바바박.
인벤토리에서 집히는 대로 창을 꺼내 땅에 박았다.
진중한 자세로 창을 고른 망구가 비명과 함께 투창을 날렸으니.
-푸화아아악!
작살에 맞은 물고기처럼 놈의 종아리를 뚫고 나온 창날이 보였다.
“역시 망구! 잘한다!”
“끼엑! 끼에에에엑!”
드디어 전투에서 활약했기 때문일까.
길게 비명을 지른 망구가 눈가를 훔친다.
망령이라서 눈물도 안 나오면서 시늉은.
망구의 창이 거인에게도 통한다는 것은 확인됐으니.
“덕춘아, 연결 부탁할게.”
“그에에.”
난 말뚝과 프램버그에서 받아 온 쇠사슬을 넘겼다.
재빨리 괴력으로 말뚝을 박아 넣고 창과 쇠사슬을 연결한다.
둘이 열심히 해 줄 테니 나도 할 일 해야지.
“헤이. 여기다, 여기!”
파이어 밤을 터트리며 놈의 얼굴에서 알짱거렸다.
놈이 곧장 반응하며 작두를 내리쳤다.
그 움직임이 제법 빠르다.
종아리에 창이 박히긴 했으나 거인은 컸고 창은 놈 입장에서는 이쑤시개에 불과하다.
조금 몸이 굼떠졌지만 아예 움직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는 뜻.
날아다니는 게 목적이었다면 날개를 꺼냈겠지만 지금 내 목표는 시선 끌기.
-콰아아아앙!
폭발을 일으킬 때마다 터지는 불길과 굉음.
그것이 놈의 눈을 가리고 신경을 긁었다.
거기에 중간중간 발사한 오로라 빔이 얼굴을 노리고 들어갔으니.
-치이이이익.
흉하게 구멍이 뚫린 채 지져진 놈이 살벌한 표정을 짓는다.
아쉽네.
눈을 노렸더니만 놀라운 반응 속도로 고개를 돌려 뺨에 맞았다.
-후우우웅.
다시금 날아오는 작두.
머리를 좀 쓴 건가.
검날이 아니라 면으로 후려치려 한다.
거인이 쥐고 있는 만큼 들고 있는 무기 또한 어마어마한 사이즈를 자랑했으니.
“이건 좀.”
공중에서 바로 빠져나갈 수 없었기에 무지개다리를 이용했다.
목적지는 바닥.
-쿠구구구궁!
빠르게 아래로 미끄러지는 사이 무지개다리와 작두가 격돌했다.
굉음과 함께 후두둑 떨어지는 파편들.
이쯤에서 끝났으면 좋았으련만.
“이런 영악한 놈을 봤나.”
놈의 작두질은 페이크였다.
어쩐지 휘두르는 속도에 비해 힘이 빠진 거 같더라니.
작두를 넓게 휘둘러 내 시야를 차단하며 반대 손으로 날 움켜잡으려 한다.
코앞까지 다가온 손바닥.
그 크기에 하늘이 가려졌고 피할 길은 없어 보였으나.
-파앙!
[달라붙기(S) Lv.MAX]
묘기를 부리듯 몸을 튕기며 놈의 손등에 올라탔다.
잡을 것도 마땅치 않았으나 스킬의 보조로 어떻게든 매달렸다.
아무리 괴물 같은 놈이라지만 주먹을 뒤집어서 쥘 수는 없을 터.
역시나 날 떨쳐 내기 위해 팔을 세차게 휘두른다.
절대 안 떨어지지.
-콰악!
아예 혼돈검까지 박아 버렸다.
그렇게 버티려는 찰나.
-스으으으윽!
놈이 작두를 쥐고 있는 손으로 팔뚝을 쓸어버린다.
그저 쓸어내리기에 불과했지만 절대적인 질량과 힘이 더해진다면 교통사고나 마찬가지.
검을 회수하며 놈의 방패에 달라붙었다.
팔뚝에 고정된 방패 면적만 해도 어지간한 원룸 사이즈는 된다.
제멋대로 기우는 방패 위를 달리고 붙잡으며 손을 피했고, 내가 있던 자리에는 붉은 마법진만 빛났다 자취를 감췄다.
웃기지도 않는 술래잡기를 하며 다시 점프.
-콰악!
다시금 놈의 손등에 검을 박아 넣으며 달라붙었으니.
“이런 짐승 같은 놈을 봤나.”
녀석이 커다란 입을 쩍 벌리며 나를 씹어 먹으려 한다.
그렇게 해라.
나도 그 편이 좋으니까.
거인의 고약하면서도 뜨거운 입김이 가까워지는 찰나.
[시한폭탄(SSS) Lv.9]
[시한폭탄(SSS) Lv.9]
[시한폭탄(SSS) Lv.9]
.
.
.
놈의 손등에 수많은 폭발 마법진을 새기고 발을 박찼다.
허공으로 붕 뜬 채로 손가락을 튕겼으니.
-따악.
-콰과과과과광!
손등에 박힌 시한폭탄이 일제히 폭발하며 놈의 얼굴을 날려 버린다.
바닥에 착지하며 자세를 잡았다.
저 정도로는 죽지 않는다.
지금도 뼈가 드러난 놈의 손가락 사이로 형형하게 빛나는 눈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살점까지 덜렁거리는데 아프지도 않나.
터프한 녀석이 크게 한 발 내디디며 작두를 내려친다.
정확히는 그렇게 하려 했다.
-티잉.
-끼이이이익!
놈의 다리에 박힌 수많은 창.
창끝에 연결된 쇠사슬과 쇠사슬을 고정한 말뚝들.
“끼이아아아!”
“그에엑.”
내가 놈과 싸우는 동안 망구와 덕춘이가 만든 작품이었고.
메이드 인 프램버그의 질긴 쇠사슬이 놈의 움직임에 제약을 만들었다.
팽팽해진 쇠사슬이 삐걱거렸으나 끊어지는 일은 없었다.
발이 꼬인 놈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하나.
-쿠구구구궁.
앞으로 고꾸라지는 것뿐.
꼴에 머리를 쓰는지 방패가 달린 손으로 머리를 감쌌지만 의미 없는 행동이다.
왜냐.
“시한폭탄 아직 다 안 터트렸는데.”
놈의 손을 피해 달아나며 방패에도 시한폭탄을 깔아 뒀다.
한마디로 그 방패로 머리를 보호한다는 건.
“폭탄 달린 헬멧을 쓴다는 거지.”
-따악.
손가락을 튕기는 것과 동시에 방패 안쪽이 번쩍인다.
붉게. 이어서 하얗게 빛이 뿜어져 나오는 듯했고.
-콰아아아앙!
놈의 몸과 방패가 들썩일 정도의 폭발이 터져 나왔다.
쿠구구궁.
납작해진 뒤통수와 방패에 깔린 상체가 움찔거리더니 축 늘어진다.
“한 마리는 잡았고.”
놈이 죽은 것을 확인하는 사이, 망구와 덕춘이가 창과 쇠사슬을 회수한다.
다른 녀석들은 잘하고 있으려나.
초코쪼코 쪽이 좀 걱정되기는 하는데.
“잘하고 있네.”
탈모맨이 마그마 골렘을 이끌며 보조하고 있었다.
상대하는 거인 두 마리와 뒹굴며 쌈박질하는 걸 보니 적성에 맞는 것도 같고.
“죽어라! 죽어!”
-쾅! 콰아아앙!
신나게 망치를 내리찍으며 거인의 발등을 다짐육으로 만들고 있는 초코쪼코.
육중한 몸을 가누지 못해 비틀거리는 놈을 향해 태클을 거는 마그마 골렘.
-콰르르르릉!
두 거대한 거체가 한번 구를 때마다 안개 속 마을이 난장판이 된다.
거인들을 숭배하던 놈들이 찌부러지는 건 물론이요.
우드드득.
건물이 통째로 부서지거나 터져 나가는 건 예삿일이었다.
-터업.
골렘이 거인을 깔아뭉갠 사이, 틈이 난 다른 거인이 초코쪼코를 걷어차려 했지만 막혔다.
뒤통수에 눈이 달렸나.
보지도 않고 손을 뻗어 거인의 발목을 움켜잡는다.
순간적으로 비틀거리는 타이밍.
-파각!
초코쪼코가 높이 뛰어오르며 놈의 오금을 강타했고.
“가자! 냥펀!”
“느아아앗!”
다른 거인을 해치운 핥짝이와 냥펀이 양쪽에서 달려들었다.
냥펀이 빠르게 금화를 뿌린다.
[골드 익스플로젼(SSS) Lv.10+]
-콰아아앙!
산탄총처럼 흩어진 금화가 터져 나간다.
화려한 황금빛이 거인을 두드리는 사이, 핥짝이가 금속으로 만든 와이어로 놈을 칭칭 둘러맨다.
“하나, 둘!”
“신제품! 거인 절단기 나왔습니다, 고갱님!”
냉큼 와이어 끝을 붙잡은 냥펀이 땅에 몸을 박아 넣으며 고정한다.
남은 거야 뭐.
[압축(SSS) Lv.10+]
-꾸득. 꾸드드득!
-촤아아아악!
급속도로 압축되는 와이어로 거인을 토막 내는 것뿐.
거인이 조각나는 사이, 탈모맨과 마그마 요정 쪽도 싸움이 끝났다.
“우오오오오!”
엘보우와 파운딩으로 거인의 머리통을 뭉개 버린 탈모맨이 포효했다.
무려 여섯 마리.
에렘바트의 영역에 들어서고 난 이후 최고의 성과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놈이 자랑하던 안개 속 마을과 주민들도 갈아 버렸으니 속이 다 시원해지는데.
-구오오오오오!
안개 어딘가, 음색만으로도 노기가 가득 찬 에렘바트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침묵과 시선의 에렘바트가 망가진 마을을 보며 분노합니다!]
“오. 개빡쳤네, 쟤.”
“그러라 하지, 뭐.”
핥짝이의 말에 어깨를 으쓱였다.
꼬우면 어쩔 건가.
그럴 거면 중앙섬에 오질 말았어야지.
그리고 벌써부터 저렇게 화내면 쓰나.
“아직 화날 일은 한참 남았는데.”
그동안 우리의 영역을 침범했던 녀석도 느껴 봐야 한다.
역으로 자신의 영역이 헤집어지는 느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