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 갇혀 고인물-701화 (701/740)

701화 다 부수면 된다

스마일캡의 권한으로 불러온 에이션트 몬스터.

이것만 보면 사기적인 능력을 보인 게 맞다.

에이션트 몬스터는 게이트가 터지는 게 아니라면 특이 게이트 안에 있어야 하니까.

달리 말하면 게이트 안에 들어가지 않았음에도 공략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뜻.

놈들만 처치하면 몬스터 웨이브도 어느 정도 줄어들 게 분명했으나.

“왜 여기 몰빵이냐고!”

“하하하! 강한 힘에는 그만한 책임이 따르는 법! 약자를 지켜라!”

“여기 약자 없거든? 이미 다 죽어서?”

호탕하게 웃으며 주먹을 쥐는 탈모맨을 보며 이마를 쳤다.

이거 일부러 이쪽으로 보내 버린 거 아닌가?

오죽하면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물론 나도 시스템 메시지를 본 만큼 의도된 게 아니라는 걸 알지만.

아마도.

‘혼돈에 이끌려서 온 거 같은데.’

에이션트 몬스터는 혼돈을 품고 있으니까.

무의식적으로 내 쪽에 향했을 가능성이 있다.

따지고 보면 휘말린 건 탈모맨이라는 거지.

미안하지만 잘됐다.

나 혼자 다 정리하는 건 쉽지 않아서.

특히나.

[필드 특성에 맞춰 에이션트 몬스터가 강화됩니다!]

필드적으로 우세한 건 놈들이다.

똥개도 집에서는 한 수 먹고 들어간다는데.

해양 몬스터를 부리는 놈들이면 바다에서는 무적이나 다를 바 없겠지.

-피유우우웅. 파앙!

-파방. 파앙! 팡!

신호탄 먼저 사용했다.

보스급 몬스터.

그러니까 에이션트나 에렘바트 같은 녀석과 싸운다는 것을 밝혔다.

그것도 4개 연달아 쐈다.

이곳에 다 모였다는 뜻으로.

“몇 명 차출해서 지원 보내 주려나.”

“그러면 좋겠는데.”

솔직히 보내 줄지 어떨지 모르겠다.

가만 생각해 보면 놈들이 전면으로 나서기 전에도 힘들었던 전장이라.

힘들지만 어쩌겠나.

쉬운 길만 가서는 답이 없는데.

‘전력 파악부터.’

한 가지 다행인 점이 있다면 놈들 또한 갑작스럽게 불려 온 탓에 바로 움직이지 않고 있다.

여기가 어디인지.

자신에게 제약이 걸리지는 않았는지 살펴보는 거겠지.

애초에 놈들끼리 사이가 좋아 보이지도 않고.

빠르게 권능을 사용했다.

[아삼바]

-피시맨의 시초!

-에이션트 몬스터입니다.

-인어와 어인, 두 종족이 갈리기 전의 존재죠!

[크라카놈]

-크라켄의 시초!

-에이션트 몬스터입니다.

-신화와 전설, 그 시작점을 맞이하세요!

[뭄무스]

-최초의 지형형 몬스터!

-에이션트 몬스터입니다.

-말미잘? 산호? 그 비슷한 무언가입니다!

[타카프탄]

-해룡의 시초!

-에이션트 몬스터입니다.

-바다 신화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과연 해양 몬스터 기반이라 이건가.

하나같이 초대형급이다.

그나마 피시맨의 시초는 대형급 정도인데 나머지는 올려다보는 데만 목이 아플 지경.

크라켄이나 해룡이면 해양 몬스터 중에서도 유명하니까.

심지어 지형형 몬스터까지 있다.

-꾸드드득.

-우득. 우드득.

나와 탈모맨이 있던 섬 전체가 변화한다.

석회질 같은 산호가 자라나더니 건물이고 뭐고 할 것 없이 모두 잡아 삼켰다.

특유의 빛깔을 내며 뻗어 나가는 산호의 모습은 꽤나 장관이었으나.

-푸쉬이이이.

말미잘인지 뭔지 흐느적거리는 게 구멍을 벌름거리더니 가스를 내뿜었다.

묘하게 달콤한 냄새.

그 냄새에 홀리면 안 된다.

그대로 중독되거나 홀리는 수가 있을 테니.

왜냐.

당장 나도 그런 느낌이 들거든.

“그에에엑!”

-찰싹!

“으억! 목, 목 돌아간 거 같은데!”

본인도 모르게 산호 쪽으로 걸어가던 탈모맨이 목을 문지른다.

헛짓거리 하기 전에 덕춘이가 뺨을 갈긴 것.

목 좀 돌아가고 살았으면 싸게 먹힌 거지.

“우리를 한자리에 모으다니. 지배자라 한들 무례하구나.”

해룡이 입을 열었다.

목구멍이 길어서인지 목소리가 우렁우렁 울린다.

뭐라 해야 하나.

풍기는 기세와 무게감이 다르다.

에이션트 몬스터에도 급이 나뉘는 건가.

‘괜히 신화니 전설이니 하는 게 아니네.’

저 정도면 영물에 더 가깝지 않을까 싶을 정도.

뭐, 이상할 건 없다.

재앙 중에도 영물 출신이 있고.

옥토선생의 경우에는 재앙이자 에이션트 몬스터였다.

사실상 재앙급이라 불리기도 어려운 괴물이었지.

지금은 내 부하지만.

“침몰을 약속받은 자들아, 가라앉을 준비를 하라.”

저기, 크라켄의 시초도 급이 된다 이건지 입을 연다.

지형형 몬스터야 입이 없으니 그렇다 치고.

피시맨은 쥐고 있는 창을 땅에 박으며 나를 노려보고 있다.

슬쩍 해룡과 크라켄을 살피는 것이, 둘에 비하면 급이 낮은 모양.

자존심 강한 에이션트 몬스터가 저렇다는 건 진짜 차이가 난다는 거다.

오케이.

적어도 다섯 마리의 에이션트 몬스터 중 가장 강한 둘은 이쪽으로 왔다.

부담이 커지긴 했지만 달리 말하면.

‘다른 쪽은 여유가 생겼다는 거지.’

가뜩이나 빅스타가 전열에서 빠지며 방어선이 일그러졌으니 시간을 벌어야 한다.

하늘을 보니 동쪽에서도 신호탄이 올라오고 있다.

요정 클럽인가.

저쪽이면 걱정 없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찌리리 요정이랑 마그마 요정이 있어.’

자고로 물 타입의 상성은 번개 아니던가.

거기다가 마그마 요정은 해양지진도 일으킬 수 있으니 충분히 상대할 만하다.

지금쯤이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다들 알 테고.

“탈모맨, 물고기 인간이랑 해룡 쪽 맡아 줘.”

“문어랑 산호 처리하게?”

“어. 그게 편할 거 같아.”

정신 공격 면역에 광범위 공격이 주력인 내게는 저 둘이 상대하기 좋다.

탈모맨이 강하기는 하지만 저런 타입들은 안 맞기도 하고.

녀석도 그렇게 판단했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가자! 얼른 끝내고 도와줄게!”

-파악!

싸울 상대를 정하기 무섭게 탈모맨이 쏘아져 나간다.

나도 시작해야지.

이걸 좋다고 해야 하나.

“다 부숴도 되니 편하네.”

근처에 사람도 없거니와 지형형 몬스터가 주변을 잠식한 시점에서 기존 건축물들은 수명을 다했다고 보는 게 맞았다.

거기에 더불어.

“땅에 발 붙이고 싸우니 얼마나 좋아.”

놈들이 나타나며 무릎까지 물이 차올랐지만 이 정도면 양반이다.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양팔을 펼쳤다.

[파이어 밤(SSS) Lv.10]

[파이어 밤(SSS) Lv.10]

[파이어 밤(SSS) Lv.10]

[오로라 빔(SSS) Lv.6]

[오로라 빔(SSS) Lv.6]

[오로라 빔(SSS) Lv.6]

.

.

.

시원하게 갈겼다.

손끝을 따라 뻗어 나가는 십여 개의 광선.

그것에 맞춰 일대를 폭발시키는 거대한 폭발!

-콰과과과과광!

굳건하게 자리 잡은 산호가 박살 나며 진득한 체액을 뿜는다.

바닥이 터지고 거대한 조각이 떨어져 진형이 붕괴되는 건 덤.

“구오오오오오오!”

“뭐야. 소리 낼 수 있었잖아?”

정확히는 말미잘 같은 게 떨리면서 내지른 거지만.

아무튼 내 공격이 마음에 드는 거 같아 다행이다.

괜히 에이션트 몬스터가 아닌지 지금 이 순간에도 회복을 하고 있지만.

“덕춘아, 망구야, 가자.”

“그에엑!”

“끼아아아악!”

난장판 만드는 데 스페셜리스트가 바로 나다.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바닥에서 붉은 마법진이 점멸한다.

물수제비를 한 강가 위로 둥그런 파문이 이어지는 것처럼.

-파아아악!

사방으로 뿌려진 마법진은 말할 것도 없이 시한폭탄.

-투콰아아아아앙!

“건방을 떠는구나!”

폭발에 휘말린 산호초가 진액과 가스를 내뿜는 와중, 보다 못한 크라켄이 거체를 움직였다.

크다.

진짜 크다.

‘일반적인 크라켄과 비교해도 배는 크겠군.’

크기로 유명한 몬스터 중 하나가 크라켄이건만.

그것의 시초 정도 되면 뭐가 달라도 다른 모양이다.

후웅!

다리 하나가 날아오는데 무슨 아파트가 덤벼드는 거 같다.

일대에 있는 것들을 죄다 박살 내며 다가온다.

점프해서 피하기에는 너무 크고 옆으로 피하기에는 면적이 크다.

그러니.

[검강]

[절삭(SSS) Lv.5]

[도축(S) Lv.MAX]

[영혼 찢기(SSS) Lv.5]

-사각!

베어 내는 수밖에.

날아오던 속도 그대로 잘려 나가는 다리.

여전히 신경이 살아 있는지 마구 꿈틀대며 주변을 부순다.

“구오오오오오!”

우습게도 그럴 때마다 비명을 지르는 건 산호초 몬스터지만.

지형형 몬스터의 단점이라고 할까.

영역 전체를 이용해 공격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말하면 주변 어딜 찔러도 타격을 입는다는 거다.

내가 하든, 저 괴물 문어가 하든.

“야야, 너희 같은 편이야. 배려 좀 하면서 싸워라.”

“불경한 놈 같으니!”

성질머리가 나쁘네.

다리 하나 잘려서 그런가.

어차피 또 자랄 거면서.

-꾸드드득.

벌써 새살이 돋고 있지 않은가.

일정 수준 이상부터는 죄다 회복 능력을 갖추고 있다.

거기까지지만.

저런 놈들을 한두 번 상대해 보나.

이럴 줄 알고 영혼 찢기도 같이 사용했다.

물론 만능은 아니다.

‘조금씩 움직이는군.’

영물만 돼도 영혼에 입은 타격을 회복할 수 있다.

전설과 신화의 시초가 되는 놈이라면 말할 것도 없지.

그렇다 한들 바로 회복하지는 못하니.

“얼마나 잘 버티는지 보자고.”

회복이 멈출 때까지 계속해서 썰어 버리면 그만이다.

박재경이 이 자리에 있었으면 좋아했을 텐데.

잘라도 계속 자라나는 문어라니.

식재료 배급소 그 자체 아닌가.

피식 웃으며 뛰어올랐다.

나를 노리고 두 개의 다리가 찔러 들어온다.

저 덩치에서 나오는 속력이라고 믿기 힘들었으나.

-콰아아앙!

나도 그리 쉽게 당하지는 않는다.

측면으로 파이어 밤을 터트려 방향을 틀었고.

[달라붙기(S) Lv.MAX]

검을 박으며 놈의 다리에 달라붙었다.

손으로 놈의 끈적이는 피부를 잡아 찢으며 위로 올라탔다.

그대로 돌진.

꿈틀거리는 다리를 달리며 검을 늘어트렸다.

-촤아아아악!

검강으로 한껏 늘린 검날.

피부와 근육이 찢어지며 피가 분수처럼 솟아오른다.

그 모습이 아파 보여 마음이 안 좋다.

지혈도 해 줘야지.

[시한폭탄(SSS) Lv.6]

[시한폭탄(SSS) Lv.6]

[시한폭탄(SSS) Lv.6]

.

.

.

내가 지나간 자리.

그 위로 문신처럼 새겨졌던 마법진이 폭발한다.

등 뒤로 느껴지는 뜨거운 열기.

[날개 없는 천사의 왼쪽 날개(SSS)를 착용합니다!]

[마왕의 오른쪽 날개(SSS)를 착용합니다!]

그 반발력에 몸을 맡기며 날개를 펼쳤다.

바람을 타고 앞으로 전진.

오른손으로는 혼돈검을.

왼손으로는 오로라 빔을 뿜으며 날았다.

그 아래로 시한폭탄이 심어지는 건 당연했다.

-파드드드득!

거대한 다리가 삽시간에 조각이 되어 흩어진다.

“크하아아악!”

괴성을 지르며 남은 여섯 개의 다리를 휘두르는 녀석.

피할 곳조차 보이지 않았으나 고도로 집중된 오감이 빈틈을 찾아낸다.

묘기를 부리듯 틈을 빠져나가며 공격을 이어 나가는 순간, 거대한 산호초가 모습을 드러냈다.

-콰아아앙!

냅다 들이박는 산호초를 피해 몸에서 힘을 뺐다.

[만근추환萬斤錘環(S)]

-무겁게! 무겁게!

-마력을 담아 무게를 늘릴 수 있는 고리입니다!

릴카의 퀘스트로 받은 아티팩트.

중량 팔찌의 대용품으로 에이션트 드래곤, 메리뮬레에게 받은 물건을 발동했다.

-후우우웅!

급격히 무게가 늘어나며 극적으로 아래로 떨어졌고.

“크하아아! 뭄무스, 우둔한 것아!”

산호초가 나 대신 크라켄을 들이박았다.

무슨 빌딩에 후두려 맞는 광경에 작게 감탄하는 것도 잠시.

-푸화아아아!

산호초와 말미잘에서 가스가 뿜어져 나온다.

저주와 환각을 일으키는 동시에 사람을 홀리는 것이었으나.

[정신 보호(SSS) Lv.MAX]

[독 내성(SSS) Lv.9]

[저주 내성(SSS) Lv.6]

내게는 의미 없는 발악이었다.

“그에에에!”

폴짝.

위로 뛰어든 덕춘이가 나를 지나쳐 크라켄의 눈알로 향한다.

녀석의 의도를 파악했다.

오케이. 저쪽은 영물끼리 잘해 보라 하고.

-쿠웅!

-쩌저저적!

무게 그대로 산호로 뒤덮인 바닥을 깨부수며 착지했다.

“이쪽은 내가 처리하면 된다 이거지.”

위에서 끔찍한 비명이 들린다.

고유 능력, 폭식을 사용한 건가.

놈의 큼지막했던 눈알이 사라졌다.

서열 정리에 들어간 두 영물을 보며 망구를 불렀다.

“끼아아아!”

자신이 활약할 때가 됐다는 걸 느낀 걸까.

망구가 힘차게 비명을 지른다.

나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망구에게 썰매를 맸다.

이전, 드래곤 산맥에서 사용했던 그 썰매.

스키날 대신 칼날을 달아 놓은 그거였다.

팡팡. 바닥을 밟았다.

역시나 지형형 몬스터인 만큼 바닥도 산호초로 뒤덮여 있다.

“칼날로 긋고 다니면 얘도 좋아하겠지.”

돌아다니는 김에 폭탄도 좀 터트리고.

지형형 몬스터를 잡는 방법 뭐 없다.

그냥 놈이 차지한 곳을 죄다 부수면 그만이니까.

툭.

망구의 어깨를 쳤다.

“출발.”

“끼아아아…….”

구슬프게 운 망구가 빠르게 썰매를 몰았다.

저 멀리, 해룡과 일전을 벌이던 탈모맨이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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