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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700화 (700/740)

700화 인기가 좋다

사람들이 수중전을 질색하는 이유가 몇 있다.

운신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도 있지만.

-퍼엉!

“케르르르륵!”

안에서 놈들을 터트리거나 썰어 버리면 굉장히 불쾌하거든.

이미 발이 닿지 않을 정도로 올라가 버린 해수면.

나를 마중 나온 몬스터를 처리하고 있자니 가뜩이나 뿌연 바다가 더욱 더러워진다.

몸뚱이가 큰 만큼 피도 많이 들어 있는 건지 피가 안개처럼 번진다.

그뿐일까.

-철벅.

터진 살 조각과 기타 부산물, 노폐물 같은 찌꺼기까지 가득하다.

시야 확보가 정말 어렵다는 것.

해양 몬스터 중에는 시력이 나쁜 경우가 많았는데 왜 그런지 알 것 같다.

‘뭐가 보여야 눈 뜨고 다니지.’

보이는 것도 없으면 눈에 힘주고 다녀 봤자 장님일 뿐이다.

지금 내가 그렇다.

대형종이 덤벼들 때 파이어밤 한 번 터트렸다가 고생깨나 했지.

기포가 미친 듯이 솟아오르는 건 고사하고 폭발의 진동에 몸까지 흔들렸다.

흩어진 몬스터 조각에 시야가 더 좁아지는 건 덤.

더불어.

“크르르르륵!”

“게륵. 게르르륵!”

망할 몬스터들이 피 냄새를 맡고 득달같이 달려든다.

쀽!

갑작스럽게 못생긴 얼굴을 내미는 녀석의 눈알에 검을 박아 넣고 머리통을 후렸다.

물의 저항 때문에 힘이 덜 들어가기는 했지만 두개골을 부수기에는 충분했다.

뇌 기능을 잃은 닥터 프로그맨이 위로 떠오른다.

-와작!

그걸 한입에 삼키며 등장하는 건 망치 상어.

빠르게 돌진해 혹처럼 자란 앞머리로 때려죽이고 살점을 물어뜯는 괴물이다.

5등급 정도 됐던 거로 기억한다.

저것 때문에 해양 무역이 개판 났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에에엑!”

물론 이곳 바다에서 서열을 따지면 한참이나 밑이겠지만.

-철썩!

고유 능력은 고유 능력이라는 건가.

물속이고 뭐고 속도가 전혀 줄지 않는다.

나를 보며 아가리를 벌리던 녀석의 윗머리가 터진다.

커다란 입을 벌리며 추락하는 녀석.

-척.

덕춘이를 향해 엄지를 세웠다.

주변은 얼추 정리된 것 같고.

“푸하!”

일단 위로 올라갔다.

그새 물이 더 찼는지 이전에 올라갔을 때보다 오래 걸린 거 같은데.

먹구름이 몰려와 무채색의 공간이 된 망망대해.

섬은 가라앉았으며 빌딩만 한 파도가 수시로 친다.

해류가 뒤엉켜 소용돌이가 빈번하게 등장했고.

-콰르르르르릉!

하늘에서는 벼락이 내리쳤다.

바다로 내리꽂히는 번개라.

나름 볼 만했으나 마냥 감상할 수는 없었다.

“거의 다 왔으려나.”

지금까지는 수중을 통해 이동했다.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나도 가능하면 하늘로 이동하고 싶기는 한데.

범람이 일어난 지금은 공중으로 날아오르기가 힘들다.

억지로 날개를 장착하고 날면 못 날 것도 아니다만.

‘그럼 체력 소모가 너무 커.’

이 필드에는 날지 못하게 잡아 두는 효과가 있다.

[심해의 범람이 모든 것을 끌어내립니다.]

“말장난도 아니고. 아오.”

우리 입장에서는 바다가 위로 솟아오르는 거지만 바다는 다르다.

범람을 일으킨 놈 시선에는 바다보다 위에 있는 것을 바닷속으로 끌어내리는 것이었으니.

미간을 구겼다.

혼돈의 파편은 저마다의 규칙을 지니고 있다.

일반적인 상식과 논리를 따르지 않는 그들만의 법칙.

그 형태는 다양했으나 놈들이 품고 있는 개념에 따르기 마련이다.

질병과 도박으로 이루어진 델버튼이 역병의 안개를 퍼트린 것처럼.

도주와 실수로 이루어진 라프테와 싸울 때도 몸이 멋대로 움직이며 실수를 남발했었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이 녀석, 일반적인 혼돈의 파편이 아니야.”

“그에에.”

놈이 부리는 능력은 지금까지 만난 놈들과는 궤가 달랐다.

침묵과 시선의 에렘바트.

일전에 마주쳤던 놈의 눈동자.

안개 속에 숨어 춤을 추는 환상.

그런 건 이해할 수 있다.

다만.

“범람이랑은 무슨 관계냐고.”

이 부분이 걸린다.

뭘까.

종족 특성 같은 건가.

적어도 스킬이나 권능은 아니다.

반쪽짜리도 아니고 그런 걸 쓸 리가 없다.

내 권능으로도 그런 정보는 뜨지 않았다.

미간을 찌푸렸다.

어쩌면 나름의 서사가 있는 놈일지도 모른다.

혼돈의 파편이 가지는 개념은 그들의 삶과 깊은 연관이 있으니까.

“생각은 나중에.”

합류가 우선이다.

이미 시간이 많이 지체됐다.

대략적인 상황은 전했으니 알아서 잘 막고 있기는 하겠다만 언제까지고 떨어져 있을 수는 없다.

다행이라 해야 하나.

“드디어 보이네.”

그동안 뻘짓을 하며 헤엄친 보람이 있는지 목적지가 보였다.

모래사장은 보이지 않았다.

진작에 바다에 먹혔을 테니까.

[무지개다리(S)]

-촤아아아악.

거센 파도 소리와 간헐적인 천둥만 치는 공간, 무지개가 뻗었다.

단조로운 세상에 뿌려진 한 줄기 빛이랄까.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지 바다가 부글거렸다.

“그아오오오!”

“우오오오오!”

초대형종 몬스터 두 마리가 바다를 박차고 입을 벌린다.

어지간한 선박은 그대로 삼킬 듯한 사이즈.

비현실적인 광경이었으나 별다른 감상은 없었다.

그저.

“양치도 안 하는 놈들이 어디다 주둥이를 들이밀어.”

위에서 아래로.

손가락을 내리그었다.

[오로라 빔(SSS) Lv.6]

[일렉트릭 쇼크(SS) Lv.10]

-콰자자자자작!

오색찬란한 빛의 기둥이 놈의 몸을 꿰뚫는다.

그 공백을 채우는 벼락.

한순간 세상이 밝아진다.

온몸이 타 버려 바다로 가라앉는 놈들을 보며 클린과 샤워를 사용했다.

“찝찝한 곳이야.”

이래 봤자 얼마 안 있어 더러워지겠지만 기분 전환은 충분히 됐다.

그런 내게 멤버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방금 그거 너지!

-공블아이 맞징. 반짝이만 봐도 알겠당.

-오오오오오! 폭죽놀이!

-폭죽이 터지는 중인가용?

-아니. 공블아이가 터지는 중입니다. 깔깔!

내가 터트린 걸 본 모양.

어두컴컴한 곳이라 그런가 스킬만 써도 신호탄이 된다.

말하는 걸 보니 다들 제정신이 아닌, 아. 원래 이랬지.

평소와 같은 걸 보니 마음이 좀 놓인다.

이쪽은 걱정 없고.

“늦어서 미안. 곧 합류해.”

-지각 10분마다 정수리 한 대인 거 알지?

-공블아이 이제 빗살무늬토기 되는 거양? 오목해질 거 같은뎅.

-빗살? 뱃살은 아는데, 하하하! 난 없지만!

-핥짝앙. 쟤 머리부터 찍어 줭.

-오케이. 넌 나랑 영어 공부랑 역사 공부도 같이 한다.

-…….

-야, 대답.

-공공아이, 도와줘! 얘들이 나 괴롭혀!

탈모맨이 나를 불렀지만 살포시 무시했다.

“응. 좀 심하다. 공부시키자.”

-공공아이, 너마저!

배신감 어린 탈모맨의 외침에 절로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너마저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얘는 공부 좀 해야 된다.

암만 그래도 빗살무늬토기는 알아야지.

탑 밖으로 나가면 사회화 교육 좀 시키면서 학원을 보내 넣든가 해야겠다.

“진짜 얼마 안 남았네.”

통신을 끄며 입꼬리를 올렸다.

97층.

100층까지 남은 층은 고작해야 3개.

지금까지는 탑을 오르는 것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밖에서 어떻게 할지도 생각해야 한다.

나뿐만 아니라 이곳까지 오른 이들 모두.

좋든 싫든 밖으로 나갈 시기가 가까워지고 있으니까.

-띠링.

그런 내 생각에 동조해 주는 건가.

커뮤니티 알림이 울렸고.

“뭐야.”

중앙섬이 공격받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 * *

범람 10일 차.

그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퍼스트 몬스터들이 등장했다.

그것도 혼돈을 가득 머금은 채로.

[퍼스트 피쉬 맨]

-인어? 어인?

-그 무언가입니다!

“망구! 앞으로!”

“끼아아아아!”

몬스터가 무한정 쏟아져 나오는 건지 해양 몬스터는 여전히 많았다.

덕춘이뿐만 아니라 망구까지 불러다 써야 할 지경.

가뜩이나 거슬리는 게 퍼스트 몬스터다.

그 자체로도 물량으로 밀어붙이면 걸리적거리건만.

“오오오오! 내 주먹맛을 봐라!”

-콰아아아앙!

“공공아이, 얘들 튼튼한데?”

필드 효과인지 아니면 혼돈 때문인지 자체적으로 강화가 되어 있다.

방어선이 축소되면서 탈모맨과 조를 이루었다.

여전히 공격하면 쓰러지는 놈들이긴 하지만 손맛이 다르다.

탈모맨의 펀치에 가루가 되었어야 할 놈들이 팔다리는 남기고 죽었으니.

“앞까지 가지 말자. 지금은 진형부터 안정화해야 돼.”

“물론이지. 일이 터져도 자리는 지킨다! 흔들리지 않는 신념! 동료에 대한 믿음!”

으하하하!

호탕하게 웃은 탈모맨이 달려드는 가오리 인간을 반으로 찢어 버린다.

저게 찢어지네.

후두둑 떨어지는 피를 털어낸 탈모맨이 눈을 번뜩인다.

“그런데 안개가 좀 준 거 같아.”

“그렇군.”

탈모맨의 말대로다.

8일 차까지는 안개가 제법 끼었는데 지금은 그렇게 심하지 않다.

일반적인 해무라고 해야 하나.

여전히 독성 가스가 가득 차 있는 건 마찬가지였으나 이전보다 나아진 건 분명했다.

물론 스킬 레벨이 오르면서 적응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흘낏, 탈모맨을 확인했다.

아직까지 크게 문제는 없어 보이지만 눈가에 실핏줄이 올라왔다.

단순히 피곤한 거면 다행인데.

“몸 상태는 어때? 중독됐다든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든가.”

“찌뿌둥하기는 한데 아직 괜찮아.”

녀석에게 생명수를 던졌다.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거다.

별말 없이 마시는 걸 보니 몸에 아예 무리가 없지는 않은 모양.

눈을 가늘게 떴다.

‘놈들이 강해진 것도 있지만 우리가 지친 것도 크다.’

며칠째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싸우고 있으니 당연한 건가.

우리가 이럴진대 다른 곳이라고 멀쩡할 리가 없다.

그 증거로 빅스타 길드가 담당하던 곳이 무너졌고.

설마하니 이지키일이 당했을 줄은 몰랐는데.

-띠링.

커뮤니티가 울린다.

[갓블레스]: 약 2시간 후에 뒤로 물러날 겁니다.

[갓블레스]: 준비된 방어선은 그곳이 마지막이에요. 이후부터는 중앙섬에 합류해야 해요.

오필리아의 메시지.

빅스타 길드가 담당하던 영역이 무너지면서 오각형 형태의 방어선이 사각형으로 바뀌었다.

방어선 규모가 줄어든 것.

그만큼 감당해야 할 적도 많아졌을뿐더러 탈락자도 조금씩 생기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 있다면.

[이지키일]: 헤이! 다들 멘탈 관리 잘하라구! 센터는 내게 맡겨요우

전멸당한 빅스타 길드 일부가 다시 위로 올라왔다는 것.

그들은 모두 중앙섬으로 배정됐다.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다시 전선을 형성하기에는 적들의 침입이 거셌으며.

‘절반이 날아갔어.’

여분의 코인을 가지고 있는 건 이지키일을 비롯해 고작해야 2명이었다.

2명으로는 방어선을 만들지 못한다.

안 그래도 중앙섬을 제어할 사람이 애매했는데 잘됐지.

문제는.

[스마일캡]: 오필리아. 문제가 좀 있는데, 방어선 좀 더 유지해야 돼

[갓블레스]: 일이 생긴 건가요?

[스마일캡]: 난이도가 훨씬 올라갔잖아. 에이션트 몬스터 최소 두 마리는 제거하는 게 좋아

이 부분.

이번 범람은 기존과 다르다.

훨씬 강력하고 이전과는 다른 패턴을 보이고 있다.

97층의 지배자인 스마일캡도 놀라는 중이다.

원인은 말할 것도 없이 혼돈.

망할 혼돈이 가득 차면서 일이 꼬이고 있다.

혼돈은 시스템마저도 무시하려는 경향이 있었으니, 지배자의 권한을 사용하는 것도 문제가 생겼다.

쉽지는 않겠지만 스마일캡의 말에 동의한다.

“에이션트 몬스터라. 잡을 수 있으면 잡아 두는 게 좋긴 한데.”

놈들만 잡아도 퍼스트 몬스터나 기타 잡몬스터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걸 예방할 수 있다.

다만 이놈들이 모습을 드러내냐가 의문이지.

[스마일캡]: 어떻게 권한으로 놈들을 끄집어낼 수 있을 거 같아

[스마일캡]: 통제가 안 돼서 기회 몇 번 없어. 가능한 한 번에 끝내야 해

녀석도 아무런 방법 없이 말을 꺼내지는 않은 모양.

의견이 빠르게 오갔고 결론은 금방이었다.

[정수리 핥짝]: 후딱 잡아 버리고 뒤로 빠지자

[마그마 요정]: 해일 일으켜도 되나?

[화무선]: 허허. 중앙섬과 가까우니 그건 자제해 주시오, 낭자.

[갓블레스]: 좋아요. 에이션트 몬스터들을 불러 주세요, 스마일캡.

어차피 잡아야 한다면 잡을 수 있을 때 잡는다.

지금도 탈모맨이 한 말이 맴돈다.

안개가 옅어졌다.

나를 마주했던 망할 혼돈의 파편도 모습을 감추었다.

뭔가 꾸미는 게 분명했고.

‘그 전에 치울 수 있는 놈들은 치워야 돼.’

놈이 뭔가를 준비한다면 우리도 그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됐다.

[스마일캡]: 알았어, 간다! 다들 준비해! 어디로 떨어질지 모르니까!

스마일캡의 외침과 함께 벼락이 내리쳤다.

소용돌이치는 구름과 일그러지는 공기.

공간이 비틀리는 느낌이 들며 메시지가 떠올랐으니.

[97층 지배자의 권한으로 에이션트 몬스터를 부릅니다.]

[난이도 상승을 확인]

[적합한 요구에 시스템이 응합니다!]

-쿠르르르릉!

벼락 줄기가 연달아 떨어진다.

천지가 뒤흔들리는 굉음.

물보라와 함께 끔찍하고도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으니.

“이런 씨.”

[고대의 존재들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눈앞으로 에이션트 몬스터가 분명한 것들이 등장했다.

그러니까.

하나, 둘, 셋…….

“네 마리네?”

“우리 인기 좋다?”

탈모맨의 말에 얼굴을 쓸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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