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8화 고동 소리
바다 특유의 비린내와 올라간 수온으로부터 풍겨 오는 뜨끈한 바람.
스마일캡이 뿌려 버린 온갖 독극물과 그에 녹아 버린 몬스터의 썩은 내는 불쾌했다.
그것들이 만들어 낸 해무는 말할 것도 없었고.
-스으으으.
느긋하리만치 천천히 다가오는 안개.
마을 도로를 따라 깜빡이던 가로등이 천천히 꺼진다.
나 또한 찾아오는 어둠을 기다렸다.
인기척이라고는 없는 마을, 굳게 닫히고 판자에 못을 박아 막은 창문.
무탈히 이번 범람이 끝나길 바라는 이들이 내건 붉고 흰 종이 장식.
몇몇 가구에서는 흙을 파고 돌 인형을 심어 놨다.
“그때 봤던 물건이군.”
처음 이곳에 떨어졌을 때 봤던 버려진 섬들.
그곳에서 발견한 돌 인형과 비슷한 형태다.
손을 머리 위로 들거나 바닥에 넙죽 엎드린 모습.
범람을 일으키는 존재에게 부탁이라도 하는 걸까.
아니면 가족과 재산을 지킬 수 있도록 기도하는 걸까.
-푸흐으으으.
지척까지 다가온 안개가 나를 지나친다.
별다른 저항감은 없었다.
그저.
[독 내성(SSS) Lv.3]
[저주 내성(SSS) Lv.2]
[어둠 내성(SSS) Lv.5]
[질병 내성(SSS) Lv.2]
그 속에 품고 있던 고약한 것들을 뱉어 낼 뿐.
조악할지언정 반듯하게 서 있던 건물들이 연기에 일그러진다.
어두운 하늘이 바닥까지 내려온 듯 묵직한 존재감을 뽐냈으며.
-키딕. 카각.
단단한 뭔가가 부딪치는 소음이 들려왔다.
방향성은 확실하지 않다.
안개가 매질 역할이라도 하는지 기분 나쁘게 웅웅거리는 소리도 주기적으로 들린다.
미약하지만 꾸준하게 신경을 건드는 것이, 오래 들으면 우울해질 것 같다.
“정신병 걸리기 딱 좋은 곳이구만.”
“그에에.”
가볍게 몸을 풀었다.
해무는 범람의 징조.
여기서는 보이지 않지만 섬의 외곽 부근은 바다에 잠기고 있을 거다.
내가 해야 할 일은 간단하다.
가라앉는 섬으로 들어오는 몬스터를 적당히 줄이는 것.
섬이 물에 잠기려 하면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다시 죽인다.
너무나 간단하고도 반복적인 일.
다른 상위 헌터들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일반적인 몬스터는 이곳에 오른 등반가에게는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으니.
그럼에도 스마일캡은 검증된 이들만이 나서길 바랐다.
필시 이유가 있을 터였고.
“그건 지금부터 알아봐야지.”
혼돈검을 위로 올렸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날카로운 기감에 잡히는 무언가.
-서걱.
크게 반월을 그리며 그은 검.
하늘 위에서 뚝 떨어진 해양 몬스터가 반으로 갈린다.
“키아아아악!”
두 동강 나 내장을 쏟으면서도 펄떡이는 녀석.
커다란 청새치같이 생긴 놈인데 아는 정보가 없다.
해양 몬스터는 그 특수성 때문에 연구된 게 많지 않으니까.
한 가지 분명한 게 있다면.
“어우, 비린내.”
참기 힘들 만큼 지독한 비린내를 풍긴다는 것.
코를 움켜잡고 뒤로 물러섰다.
그래도 괜찮다.
후각은 예민한 만큼 금방 지치니까.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기는 할 거다.
“뭔, 물고기가 위에서 떨어지냐.”
바다에서 뛰어오르기라도 했나.
아니면 뭐, 토네이도 같은 거에 휘말려서 날아올랐다든가.
“하늘에서 떨어지든 땅에서 솟든 베면 그만이지만.”
놈을 시작으로 허공에서 해양 몬스터들이 추락하기 시작한다.
등급이 낮은 건 그대로 다짐육이 되기도 하고.
-퍼슥.
처음부터 죽은 사체가 떨어지기도 했다.
독극물을 이기지 못하고 죽었는지 가스가 차 몸이 부풀었다.
더불어 냄새가 몹시 지독했다.
“크어어어엉!”
“바다 물소도 있었네.”
해양 몬스터 주제에 앞다리가 달린 놈.
집채만 한 덩치로 달려들어 뿔을 박는 괴물이다.
물고기만 상대하는 것도 지루했는데 잘됐다.
-콰자자자작!
혼돈검을 쉴 새 없이 휘둘렀다.
덩치가 큰 놈들이 많은 만큼 힘을 좀 줘야 한다.
그 결과.
-후두두둑.
반쯤 터진 놈들이 파편이 되어 쏟아졌다.
찝찝하기 그지없다.
몬스터의 피와 살을 뒤집어쓰는 게 유쾌한 경험은 아니니까.
“키하아아악!”
“크르르르르!”
다른 쪽으로 떨어졌던 놈들이 이쪽으로 다가온다.
서펀트처럼 지느러미가 발달한 객체는 기어서.
상어 같은 놈들은 몸을 퍼덕이며 달려든다.
어이가 없어 가지고.
“땅에 올라오면 별것도 없는 놈들이.”
몸도 제대로 못 가누면서 날 물겠다고 이빨을 부딪친다.
[검강]
-촤아아아악!
망설임 없이 놈들을 베고.
[오로라 빔(SSS) Lv.4]
멀리 있는 놈은 오로라 빔으로 관통시켰다.
배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놈이 엎어진다.
퍼석.
“아이 씨.”
투구에 날아온 살 조각이 주륵, 떨어진다.
미간을 찌푸리며 사방으로 흩어진 사체 조각을 향해 손을 내뻗었다.
[파이어 밤(SSS) Lv.9]
[스킬 레벨 업!]
[파이어 밤(SSS) Lv.10]
태우면 악취가 줄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었고.
-콰아아아아앙!
“크합!”
불길이 치솟기 무섭게 주변에서도 폭발이 일어났다.
갑작스러운 폭발에 몸이 흔들리는 것도 잠시.
‘가스.’
이내 원인을 찾았다.
하늘에서 떨어져 내린 몬스터 사체.
거기서 나온 가스가 가열성이다.
불이 붙으면 같이 터진다는 것.
거기다가.
[독 내성(SSS) Lv.3]
[스킬 레벨 업!]
[독 내성(SSS) Lv.4]
[질병 내성(SSS) Lv.2]
[스킬 레벨 업!]
[질병 내성(SSS) Lv.3]
유독 가스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
“속 메스꺼운 건 오랜만이네.”
입에 고인 침을 뱉었다.
멀미와 함께 시야가 돈다.
그것만으로도 짜증 나건만.
“카득. 카드득.”
“키드득.”
게 떼가 모습을 드러냈다.
일반적인 게는 아니고.
“시체 게로군.”
시체를 뜯어먹고 사는 몬스터.
한 마리 한 마리는 별거 없는데, 최소 수천 단위가 움직이는 대규모 군집체 몬스터다.
참고로 놈들이 먹는 시체는 직접 만든 것도 포함된다.
피 냄새, 비린내가 진동하니 놈들이 가장 먼저 찾아온 것.
육지에서도 돌아다니는 놈들이니 더 그렇겠지.
그런 놈들이 눈에 들어왔다는 건.
-끼드득. 까득!
-카각. 카드드드.
이미 근방은 놈들이 모두 접수했다는 뜻이다.
감지도 못하는 눈을 부릅뜬 채 입을 떡 벌린 해양 몬스터 사이로 게가 얼굴을 내민다.
입과 아가리를 파고들어 살점을 찢고 갉아먹는 놈.
몸통에 내장이 엉켜 질질 끌고 오는 놈.
어떻게든 먹어 보겠다고 죽지도 않은 몬스터의 지느러미에 달라붙은 놈까지.
-키디디딕.
죽은 해양 몬스터를 잘게 쪼개 쉴 새 없이 입에 넣던 놈들의 눈이 내게로 향한다.
무기질적인 눈에는 어떠한 감정도 없다.
그저 맹목적인 무언가만 남아 내달릴 뿐.
-티디디딕!
-키딕. 티디디딕!
쇠젓가락으로 미친 듯이 테이블을 치는 듯한 소음.
앞서가는 놈 위에 올라타고 수많은 다리가 꼬여 제멋대로 비틀거리는 놈들이 파도가 되어 다가온다.
수십 마리의 개미가 눌어붙은 사탕을 굴리면 저런 느낌일까.
“하아.”
저것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던 나는 그냥 바닥에 누워 버렸다.
바다의 메뚜기 떼 같은 놈들이라 지나가는 자리에는 무엇 하나 남지 않지만 그래서 뭐.
나까지 씹어 먹을 건 아니지 않은가?
그냥 놈들이 신나서 내게 달라붙게 놔뒀다.
-우득. 우드득.
고작해야 1kg 정도 나가는 놈들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묵직해진다.
서로가 서로의 무게에 짓눌려 으깨지면서도 멈추지 않는다.
비교적 얇고 부드러운 코 끝과 귀를 연신 집게발로 잡는 놈들.
간지러우면서도 소름 돋는 감각을 느끼며 충분한 시간을 기다렸고.
[일렉트릭 쇼크(SS) Lv.7]
[일렉트릭 쇼크(SS) Lv.7]
[스킬 레벨 업!]
[일렉트릭 쇼크(SS) Lv.8]
-파지지지지지직!
“키게게게겍!”
“카가가가각!”
아낌없이 전격을 쏟아부었다.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전격.
스파크로 어두웠던 공간이 일순간 번쩍이며 생기를 되찾는다.
얽히고설킨 놈들이 하나 되어 튀겨진다.
발작하듯 4쌍의 다리와 집게발을 허우적거리는 놈들을 발로 밟으며 일어섰다.
-잘박.
검에 붙은 살점을 털어 내고 있자니 어느새 메인 도로까지 물이 찼다.
싸우는 사이 이만큼이나 물이 올라온 건가.
귀에 꽂은 통신 아티팩트를 켰다.
“A 지점, 물이 차오르는 중. 다음 섬으로 이동할게.”
-오케이. 여기도 물 차고 있어.
-얘네 냄새낭! 나도 갈겡!
-나도 이동 중! 여기 좀 빨리 찬다.
같은 섬인 만큼 멤버들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은 모양.
굳이 더 욕심낼 필요 없다.
-티딕. 티디디딕.
꽤 많은 수를 죽였음에도 이질적인 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내 시야에는 살아 있는 게가 한 마리도 없는데.
불규칙하게 울리는 마찰음에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이 짓거리를 며칠씩이나 해야 하다니. 벌써 징그럽군.”
“그에엑.”
-파앙!
신경질적으로 발을 박차고 도로를 따라 달렸다.
다음 섬까지 가려면 2시간은 뛰어야 한다.
임시로 이어진 다리가 있으니 그쪽이 잠기기 전에 갈 생각.
-틱. 티딕.
-구오오오오.
신경 건드는 쇳소리를 덮으며 뱃고동 소리가 울렸다.
새롭게 들리는 소음에 마을을 뒤돌아봤지만, 자욱한 안개와 그 안에서 흔들리는 마을이 보일 뿐이었다.
몇 개인가.
건물에 불이 켜진 것 같았지만 눈을 깜빡이니 어둠만이 남는다.
하늘까지 덮어 버린 안개.
그 사이로 얼룩과도 같은 형상이 스치듯 지나간다.
웃고 있는 고래?
뭔 말 같지도 않은 것을 본 것 같다.
-철벅. 철퍽.
눈을 의심하며 달리는 이 순간에도 하늘에서는 썩은 생선이 비 쏟아지듯 내려오고 있었다.
* * *
“후우.”
이지키일이 길게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뻑킹 스모그. 뻑킹 아이슬랜드. 아이 원트 빅맥.”
탑에 오르며 담배를 끊었던 이지키일이었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그것조차 없으면 이곳에서 버티기 힘들었다.
안개로 가득한 섬에서 며칠씩이나 전투를 진행하고 있다.
그사이에 괴상하고도 이상한 일은 계속해서 벌어졌다.
모두가 떠났을 마을의 창문에는 사람의 형상이 보였다 사라졌고.
휴식을 위해 잠깐 눈을 감았음에도 하늘이 선명하게 보였다.
무형의 존재가 귓가에 바람을 불어 화들짝 깨는 건 다반사였으며.
-하하하하하!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건만 웃음소리가 머리를 뒤흔들었다.
초인의 반열에 오른 만큼 어지간한 일에는 체력이 깎이지 않건만, 안개에 덮인 섬에서는 그것도 아니었다.
어쩌면 정신적인 피로감일지도 몰랐다.
지독한 불면증에 잠을 자지 못했기 때문일까.
그럴 리가.
“일주일 동안 안 자고 싸우기도 했다고.”
며칠 잠들지 못한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분명히 수증기가 코끝에 맺힐 만큼 습하고 더운데도 등 뒤에 돋은 소름은 가시질 않는다.
“브레드, 거긴 괜찮아? 헤이, 브로?”
함께 움직이고 있는 빅스타 길드원들과도 연락이 끊겼다.
알 수 없는 힘이 그들의 통신을 막는 듯했다.
그것도 아니면 죽었거나.
후자는 떠올리지 않으려 했다.
아직 퍼스트 몬스터도 등장하지 않았다.
일반 등급 몬스터를 상대로 브레드가 당했을 리 없었다.
뭔가 일이 생긴 걸까?
어쩌면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영국 놈들을 데려왔어야 했는데. 안개에 익숙하잖아.”
피식 웃으며 꽁초를 밟아 끈 이지키일이 벽에 기대고 있던 몸을 일으켜 세웠다.
저 멀리, 일렁이는 뭔가가 있었다.
심해 아귀인가.
희미하게 흩어지는 푸른빛을 향해 이지키일이 걸어갔고.
-구오오오오.
뱃고동 소리와 함께 안개가 그를 집어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