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0화 배신자
찰나의 순간이다.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에 검을 휘두르는 것.
냥펀을 지나치고 검을 뽑고 내지르기까지의 시간은 1초도 필요하지 않았다.
섬광.
인식하되 반응하기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격이었으니까.
-카아아아앙!
다만.
상대방도 만만치 않은 괴물이었다.
가짜 이준석은 대응했다.
놈에게는 검이 없었다.
옷 소매 안쪽에 숨겨 두었던 단검을 기묘하게 비틀어 검을 받아 냈다.
단검과 장검.
두 무기가 가지는 힘이 다른 만큼 녀석의 팔이 기울었으나.
-기이이이익.
투명한 실이 풀려나와 나와 검을 붙잡는다.
권능이 발현됐다.
[SSS급 권능, 별을 주시하는 눈이 발휘됩니다.]
-츠즈즈즈.
[참혹한 운명의 실(SSS)]
-결코 끊어지지 않는 운명의 실입니다.
-실과 이어진 운명이 무엇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리 좋지는 않을 거 같네요!
-투명합니다!
끊어지지 않는 실이라.
그래.
저 정도 아이템은 있어야 파비오를 공격하겠지.
이놈이 범인이 맞다.
놈을 노려보며 눈빛을 보냈다.
급한 상황이라 녀석도 움직이기는 했지만 주변에 눈이 많다.
-스르륵.
언제 나왔냐는 듯 놈의 실이 사라지고.
“이블아이 님, 지금 뭐 하는 겁니까.”
녀석이 뒤로 물러선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검과 단검이 맞부딪친 정도로 보였겠지.
동시에 문답이 끝나는 순간 기습을 하는 것으로 비쳤을 거다.
이 순간에도 경악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눈에 들어온다.
다름 아닌 내가 이준석을 공격하는 것이었으니.
-파악!
“냥펀!”
다시금 놈에게 돌진하며 냥펀을 불렀다.
자세하게 말할 시간이 없었지만 냥펀을 믿는다.
“으으으! 사고뭉치!”
부르르 떨면서도 각종 아티팩트를 던진다.
이유는 하나.
내가 이준석을 공격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이 개입하지 않도록 막는 것.
어떠한 상황에서도 무조건적으로 내 편을 들어 주는 사람.
서로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불가능한 협력이었고.
“얼마 못 버티니까 빨리 행!”
“그럴 거야.”
난 그 기대를 저버릴 생각이 없었다.
길어 봐야 10분.
작정하고 나를 제압하려 한다면 5분.
그게 냥펀이 이들을 붙잡을 수 있는 시간이다.
이 자리에 모인 등반가와 NPC만 하더라도 수십 명.
모이라는 말 한마디에 96층까지 온 괴물들이 연합 사람들이다.
그나마 나와 냥펀이기에 섣불리 움직이지 않을 뿐.
‘놈을 완전히 제압할 필요는 없어.’
딱 한 번만 닿으면 된다.
그리고 그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어!’
[SSS급 권능, 굴하지 않는 검귀가 번뜩입니다!]
[타락한 천사의 검(S)이 대상의 경계를 끊어 냅니다!]
-찌이이이익!
타락한 천사의 검이 이준석의 귀를 베고 지나간다.
피가 흐르지는 않았다.
검이 베어 낸 것은 신체가 아니라 경계니까.
-빠드드드득!
균열, 차원, 계약, 링크 등등.
대상과 대상이 겹치는 경계를 잘라 내는 힘을 가진 검이 발동되었다.
그거면 충분하다.
저기 앞에 있는 이준석은.
‘진짜니까.’
놈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시스템이 공증했듯이 이준석은 이 자리에 있다.
내 권능으로 살펴도 이준석이라고 정보가 뜬다.
아직까지도 핥짝이와 탈모맨이 이준석을 찾지 못했다.
그러니 남은 선택지는.
“이준석을 내놔라.”
이준석의 몸에 다른 누군가가 겹쳐 있다는 거다.
그것을 끊어 내는 것이 타락한 천사의 검이고.
“크아아아아!”
이준석이 괴성을 뱉는다.
그와 함께 전신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흡사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 같지만 내 눈에는 다르다.
[SSS급 권능, 별을 주시하는 눈이 발휘됩니다.]
저건 이준석의 몸에 깃들었던 놈의 영혼.
그것이 밖으로 빠져나오고 있다.
다시 한번 더.
타락한 천사의 검을 인벤토리에 넣으며 혼돈검을 휘둘렀다.
사선을 타고 솟구치는 검이 허공을 가른다.
정확히는 위로 떠오른 배신자의 영혼을 베어 냈다.
[영혼 찢기(SSS) Lv.3]
-찌이이이익!
빠르게 흩어지는 영혼.
마음 같아서는 목을 베고 싶었지만 흉부를 가르는 것으로 끝났다.
[이준석이 육신을 되찾습니다.]
-털썩.
메시지가 떠오르는 것과 동시에 이준석의 몸이 허물어진다.
“덕춘아!”
“그에에!”
이준석을 부축하자 덕춘이가 녀석을 핥는다.
안전지대의 회복 옵션과 덕춘이의 치료까지 합쳐지니 이준석이 정신을 차리는 건 금방이었다.
“이블아이 님?”
“정신이 좀 들어?”
“여긴 대체, 아니. 크으읍!”
몸이 성치 않은지 얼굴을 구기며 머리를 붙잡는다.
팔도 떨리는 것이 후유증이 남은 모양.
그야 자신은 익히지도 않은 스킬을 사용했으니 몸에서 거부 반응이 나타날 수밖에.
게다가 방금 전 내 검을 받아 낸 것도 일반적인 수준으로는 불가능했다.
손바닥이 다 터지고 실을 다루던 손가락이 너덜거리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회복 먼저 하면서 들어. 배신자가 네 몸을 갈취해서 다루고 있었어.”
“아! 배신자. 그자로군요.”
“외형이나 그런 거 기억이 나? 파비오를 습격한 거라든가.”
“어렴풋이 기억이 납니다. 제가 큰 실례를 저질렀군요. 이 자리에 모인 모든 분께 사죄드리겠습니다.”
하나의 육체에 두 개의 영혼이 있던 만큼 혼란스럽겠지만 차근차근 답변을 해 나간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준석은 강했다.
상황 파악을 하는 것도 빨랐고.
“등반가 출신의 숭배자, 배신자가 제 몸을 조종했었습니다. 그자가 제 몸으로 파비오를 공격했습니다. 그를 찾아야 합니다.”
몸의 통제권을 빼앗겼지만 대략적인 기억은 남아 있어서 다행이다.
당황하던 이들도 이준석의 말을 이해했다.
“갑자기 공격하길래 가짜 이블아이인 줄 알았더니만.”
“그사이에 진실을 꿰뚫어 보다니, 역시 이블아이다!”
“난 냥냥펀치가 막을 때부터 알고 있었지. 후후.”
“뽑은 칼이나 넣고 말씀하시게, 멍청이.”
기본적으로 우리를 응원하는 이들.
특히나 이준석과는 심리적 거리감이 가깝다.
주로 우리끼리 떠드는 나와 멤버들과 달리 이준석은 그들과 같이 어울렸으니까.
“이게 대체 무슨.”
“배신자를 찾아야 합니다. 이 모든 일의 원흉. 저 사람은 버림 패로 쓰는 인물일 뿐입니다.”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준석은 테키드와 다른 이들에게 맡긴다.
배신자의 영혼에 타격을 입혔다.
어지간한 능력이 있다면 영구적인 타격을 입히는 게 영혼 공격.
놈에게 회복할 수단이 있더라도 바로 치료하지는 못하겠지.
‘지금 찾아야 한다.’
시간이 늦춰지면 곤란해지니.
움직이려는 나를 이준석이 잡는다.
“헤리드 포터. 그자의 이름입니다.”
“쉬고 있어.”
내가 잡아 올 테니까.
이준석의 안전을 확보한 지금 거리낄 건 없었고.
“헤리드 포터! 상처는 없겠지만 흉부에 타격을 입었다! 그놈을 찾자!”
더 이상 제한적으로 움직일 필요 없다.
가용할 수 있는 수단은 모두 쓴다.
“등반가와 NPC 사이를 이간질하고 인류를 배신한 숭배자! 노블 나이트를 살해한 살인자에게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해 주자!”
“우오오오오!”
“움직여! 움직여!”
“빌어먹을 숭배자 같으니. 배신자가 끼어 있을 줄이야.”
“가슴 움켜잡고 있는 녀석은 다 잡아 버려!”
등반가뿐만이 아니다.
NPC들 또한 이번 일의 배후를 알게 되었으니.
“숭배자 놈들 짓이었나.”
“안전지대 안에서도 설칠 줄이야.”
“어쩐지 저 자식도 처음 보는 얼굴이다 했더니만 그쪽이었군.”
“우리도 가세한다! 찾아!”
함께 수색에 나섰다.
“안전지대 입구와 포탈을 봉쇄하라!”
테키드의 명령.
발 빠른 이들이 안전지대에 위치한 문을 사수하러 떠난다.
경계 수준이 올라가는 것은 당연한 일.
이 순간부터 피스 랜드는 폐쇄된다.
남아 있는 이들은 버림 패로 사용된 숭배자와 이준석을 지킨다.
놈들에 대한 처벌은 나중에 한다.
죽이든 살리든 필요한 정보를 모두 뽑아내고 선택할 문제.
“우리도 가자.”
“애들도 뒷문에서부터 내려오고 있댕.”
“오케이. 우린 일단 포탈로 가자.”
“아항. 그쪽으로 갈 가능성이 크겠넹.”
이준석에 대한 내용은 냥펀이 개인 메시지로 핥짝이와 탈모맨에게 전달했다.
안전지대는 이미 봉쇄되었으니 찾는 건 시간문제.
내가 헤리드 포터라면 포탈로 달린다.
무력을 쓰든 뭐를 쓰든 일단 뚫고 보겠지.
“그건 걱정 안 해도 될 거야.”
우리와 함께 달리던 초코쪼코가 말을 받았다.
걱정 안 해도 된다?
“미리 연락해 놨어.”
입꼬리를 올린 초코쪼코가 위를 가리킨다.
“97층은 우리 영역이거든.”
“어?”
97층이면 90층대에서도 상위 층이다.
들어 본 바에 의하면 97층부터는 층이 분열되지 않는다.
모두가 같은 층에 소환된다는 이야기.
당연히 그곳도 90층대인 만큼 따로 지배자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는데.
“스마일캡. 걔가 거기 지배자야.”
설마 루키 그룹의 리더가 그곳의 지배자일 줄이야.
헬다잉 키친 모임에서 만났을 때도 범상치 않긴 했다만.
‘도대체 얼마나 괴물인 거야.’
어떤 놈일지 예상도 가지 않았다.
* * *
96층 안전지대.
“크하아악!”
비명을 지르며 헤리드 포터가 눈을 떴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격통.
그 뜨거우면서 서늘한 감각은 지워지지 않았다.
침대에서 몸부림치며 가슴을 움켜잡았지만 흉터 하나 느껴지지 않는다.
“크헥. 카학!”
거칠게 숨과 헛구역질을 뱉으며 식은땀을 흘리던 그가 벽을 잡으며 일어섰다.
그 또한 숭배자의 일원이었고 수많은 지원을 받는 인물이었다.
몸속에 맴도는 혼돈이 영혼이 입은 타격 일부를 지워 주기까지.
숨 쉬는 것조차 고통스러웠지만 그는 움직였다.
“위로, 올라가야 해.”
정체를 들켰다.
설마 다짜고짜 덤벼들 줄은 몰랐다.
인벤토리에서 영약을 꺼내 씹자 고통이 조금은 누그러들었다.
숭배자의 왕에게서 받은 물건.
존재의 격이 오르지 못한 그가 영혼의 타격을 입었을 때를 대비한 영약.
조금은 나아진 통증에 식은땀을 훔치며 밖으로 나갔다.
“포탈로 향한다. 길을 뚫어라.”
“알겠습니다!”
쁘찡연합이 96층에 모인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파견된 숭배자들.
하나같이 실력이 출중하다.
곧 피스 랜드 전체에 수색대가 돌아다닐 테니 그 전에 빠져나갈 생각.
“적이다! 저들을 막아!”
“귀찮은 놈들.”
안타깝게도 포탈은 이미 봉쇄되었다.
시스템으로 유지되는 만큼 포탈 자체를 막을 수는 없었지만 다른 이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NPC들이 진형을 짜고 있었다.
가볍게 눈빛을 주고받은 숭배자들이 돌진한다.
-카아앙!
-콰드드득!
아직 완벽하게 진형을 이루지 못한 이들이 빠르게 무너진다.
숭배자들 또한 급하게 길을 뚫는 만큼 피해가 만만치 않았으나.
“떨거지들 같으니.”
-쉬리리릭.
-푸슉.
헤리드 포터가 날린 실.
그것에 이어진 단검이 날아가 NPC의 머리를 박살 냈다.
손끝으로 연결된 실로 NPC들의 시체를 꼭두각시로 사용하는 건 덤.
거기에 더불어.
[파블로프의 거울(SSS)이 대상을 비춥니다!]
[만면귀의 변장(SS) Lv.7]
시체가 상대방의 가장 소중한 사람으로 모습을 바꾸었으며.
[육체기억(SSS) Lv.6]
[SSS급 권능, 마리오네트가 번뜩입니다!]
시체의 기억을 토대로 살았을 적 능력을 사용하게 해 주는 육체기억.
그것을 더욱 활용할 수 있게 만드는 조종술 권능, 마리오네트가 합쳐지자.
“이, 이이익!”
“으아아악!”
NPC들이 붕괴되는 건 한순간이었다.
옷에 묻은 피를 문지른 그가 여유롭게 앞으로 나아간다.
저 멀리 먼지구름이 피어 오르는 게, 자신을 잡으러 오는 것 같았으나.
“머저리 같으니. 늦었다.”
가볍게 비웃음을 날리며 포탈에 진입한다.
[97층으로 진입합니다.]
-우우우웅.
빛과 함께 활성화되는 전송 마법진.
이내 빛이 사라지고 97층에 도착했으니.
“후우. 짜증 나 죽겠군. 곱게 당할 것이지.”
머리를 쓸어 올리며 기지개를 켰다.
정확히는 그러려 했다.
-오싹.
그의 몸이 굳는다.
형언할 수 없는 존재감과 살기가 그를 옥죈다.
기운을 받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막히는 기분.
헤리드 포터가 침을 삼키며 눈알을 굴렸고.
“네놈이군.”
그곳에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97층의 지배자.
루키 그룹의 수장.
‘스마일캡!’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지긋이 그를 바라보는 모습은 빈틈 투성이었으나 덤빌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뿌득.
그가 이를 악문다.
잠깐이지만 스스로가 압도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했고.
“시체수집자였군. 구린 놈이다 싶긴 했는데 역시나.”
“저리 꺼져!”
악을 쓰듯 몸에 힘을 불어넣어 달렸다.
그동안 수집한 시체들이 군단이 되어 일어선다.
숭배자를 통해 입수한 온갖 아이템과 장비로 무장한 꼭두각시들.
그물처럼 뻗어 나가는 실과 의지를 가진 듯 허공으로 비상하는 단검들.
-까득.
거기에 부작용이 있지만 단기간 강력한 버프를 주는 영약까지 섭취했다.
가속된 사고 능력과 마력 컨트롤로 인해 주변이 느리게 흘러갔고.
“너 같은 놈은 이 세상에 필요 없어.”
-서걱.
‘어?’
머리가 사라진 자신의 몸이 천천히 허물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자신의 키보다 높게 보이는 시야.
빙글, 시선이 돌더니 추락하는 세상과 머리로 느껴지는 둔탁한 통증.
그게 그가 느낀 마지막 기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