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8화 심문
범인 용의자는 여럿이 있다.
누군지 알 수 없으니 가능성 있는 사람들을 모은 후 추려 나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준석도 용의자 중 한 명이었지.’
처음에는 의심이었다.
일반적인 이유이기도 했고.
경찰이 사건 신고자를 용의자로 두는 것과 같은 이치다.
파비오를 의심했던 것처럼 그 시간에 골목에 있던 이준석을 의심하는 건 당연하니까.
놈도 그것을 알고 있을 거다.
그렇기에 영리하게도 나를 사칭한 사람을 보았다고 말했겠지.
실제로도 그쪽으로 시선이 쏠렸고.
‘그냥 거짓말을 한 것일 수도 있고 진짜 나를 사칭한 놈이 있을 수도 있어.’
만약 후자라면.
‘습격을 한 인원은 최소 2명이겠군.’
공범이 있다는 뜻이었다.
이 녀석, 얕볼 놈이 아니다.
용의주도하다.
왜 하필 이준석인가.
이유는 분명했다.
나를 포함해 멤버들은 이준석과 실제로 만난 적이 없다.
당연히 외형적인 정보도 없고 목소리나 특징도 모른다.
그렇기에 저렇게 당당히 모습을 드러낸 거겠지.
게다가.
[이준석]
-최대 등반수: 96층.
-쁘찡연합의 팬클럽 회장!
-정보를 모두 읽을 수 없습니다.
‘정보마저도 복사했어.’
이름부터 연합 회장인 것까지.
허를 찔린 기분이다.
권능만 믿었다면 의심하지도 않았을 테니.
‘혹시나 싶어서 찔러 보길 잘했네.’
범인이 변장 능력이 있다는 걸 알았기에 시도해 본 거였는데.
이준석의 형을 죽인 길드는 청룡이 아니라 구룡 길드다.
아마 이준석이 놈에게 잘못된 정보를 가르쳐 줬을 거다.
대화를 통해 놈이 가짜인 걸 드러낼 수 있도록 준비한 안배.
이준석은 끝까지 도움만 주는구나.
-툭툭.
손가락을 두드렸다.
고민이 깊어진다.
그동안 권능을 통해 숭배자들을 찾았었는데 이렇게 나온다라.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한 거지?
가르티도 정보를 볼 수 없었지만 그건 녀석의 권능으로 정보가 오염됐기 때문이다.
권능이나 스킬로도 복사할 수 있는 건 외형과 목소리 정도인데.
‘이 정도로 완벽하게 복사를 했다?’
그것도 내 권능을 완전히 속일 정도로?
암만 생각해도 불가능하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난 잠시 쉬지. 다른 사람들이 조사하고 오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테니까.”
“방해하지 않겠습니다, 그럼.”
꾸벅, 고개를 숙인 녀석이 방에서 나간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준석.
정확히 말하면 이준석으로 변신한 녀석을 찾은 건 다행이다만.
‘진짜 이준석은 어디에 있지?’
이게 중요하다.
단순히 범인을 찾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이준석을 찾아야 한다.
아직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살아 있을 거야.”
“그에에.”
녀석은 결코 약하지 않으니까.
일종의 믿음이었고 개인적인 바람이기도 했다.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뜨거운 뇌가 조금은 식는 기분.
냉정해지자.
정황상 96층에 들어온 건 맞다.
그러니 저 가짜 녀석도 이준석으로 변신한 것일 테고.
지금이라도 놈을 제압해서 정보를 빼는 것도 방법이다만.
‘그건 안 돼.’
당장 나도 범인 용의자 중 한 명이다.
이 상황에서 이준석을 공격한다?
사실이 뭐든 간에 범인으로 몰릴 수 있다.
그렇다고 놈의 정체를 증명할 방법도 없다.
녀석이 잘못된 정보를 말했다는 걸로 설득이 불가능하니까.
그냥 잘못 말했다. 그것도 아니면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우기기만 해도 내 말은 신뢰가 떨어진다.
어중간하게 건드려 봤자 역풍만 맞는다는 것.
거기다가.
‘내가 놈의 정체를 알아차렸다는 걸 알게 되면 다른 숭배자들도 움직이겠지.’
숭배자들 입장에서도 상위 헌터 숭배자는 중요한 자원일 테니까.
그렇다고 마냥 시간만 보낼 수는 없다.
이준석이 살아 있다 하더라도 어떤 상황일지 모른다.
혹여라도 큰 부상을 입은 상태라면 빠르게 구출하는 게 좋다.
커뮤니티를 켰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준석이 쓴 글은 없다.
커뮤니티를 하고 있을 힘이 없을 테니까.
혹여나 뭔가 흔적을 남기지는 않았을까 싶어 녀석이 남긴 글들을 살폈고.
-[이준석]: 96층이라니. 정말 감격스럽습니다!
-[이준석]: 개인적으로 이블아이 님과 대화를 해 보고 싶군요.
-[이준석]: 오필리아 님의 선물은 소중히 간직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준석]: 쁘띠! 사랑! 평화!
-[이준석]: 무법 지대는 위험하니 안전지대 뒷문으로 가겠습니다.
“뒷문?”
수상한 글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고 싶었지만.
[존재하지 않는 대화방입니다.]
대화방이 사라졌다.
대화방을 만든 사람이 없앴다는 뜻.
그것도 지금 지웠다.
정황상 마지막으로 이준석을 본 사람인 것 같고.
“친구 추가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라는 거지.”
그게 아니라면 개인 메시지를 주고받으면 되니까.
알 수 없는 사람이 이준석에게 접선했다.
개인 메시지를 열었다.
[쁘띠공듀]: 핥! 핫! HOT! 짝!
[정수리 핥짝]: 뭐야. 왜. 또. 뭐. 뒤지고 싶어?
[쁘띠공듀]: 심문은 잘 되어 가나용?
[정수리 핥짝]: ㅇㅇ 거의 다 끝났지.
[쁘띠공듀]: 그러면.. 공듀의 부.탁 하나만 들어주세용♡ (찡긋)
[정수리 핥짝]: …종종 느끼는 거지만 넌 정말 대단한 새끼 같아
[정수리 핥짝]: 닥치고 빨리 용건만.
[쁘띠공듀]: 이준석이 당했어요. 지금 있는 이준석은 가짜고 안전지대 뒷문에 마지막으로 있었어용. 확인 좀 해 주세여.
답은 없었다.
아마 바로 그곳으로 간 거 같은데.
탈모맨이랑 같이 있을 테니 이준석에 대해 이야기 했…….
음. 탈모맨한테는 말하지 않았겠군.
말하면 바로 난리 피울 테니까.
“냥펀한테도 일단 말해 두고.”
나는 가짜 이준석을 감시한다.
곧 있으면 용의자 색출을 위해 심문 중인 멤버들과 다른 녀석들이 돌아올 거다.
내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
범인을 잡든가.
‘아니면 이준석이 가짜인 걸 증명하든가.’
잠시 생각에 잠겼고.
이내 나쁘지 않은 방법이 떠올랐다.
* * *
멤버들이 모였다.
사람들을 심문한 결과, 축제 때 같은 시간에 다른 장소에서 나를 봤다는 이들이 나왔다.
이걸로 나를 사칭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밝혀졌고.
“용의자로 보이는 사람은 이렇게야.”
알리바이가 확실한 이들을 제외하고 남은 인물은 총 5명.
습격이 이루어졌을 때 어디에 있었는지 알 수 없는 자들이었다.
등반가가 2명.
NPC가 3명이다.
“아니, 난 그때 화장실이었다고!”
“집에 있는 것도 문제가 되나?”
“어허. 웃기는 노릇이군. 난 그저 산책하느라 외지에 있었을 뿐인데.”
저마다 억울하다고 말하는 이들.
그러거나 말거나.
“봐 보자.”
난 권능을 사용했다.
일단 여기서 범인을 잡아야 한다.
[SSS급 권능, 별을 주시하는 눈이 발휘됩니다.]
적어도 이 부분에 있어서는 내가 전문가다.
한 명씩 정보를 훑었다.
숭배자라는 정보는 없었다.
대신.
[미드 스칼렛]
-96층의 NPC.
-정보를 읽을 수 없습니다.
정보를 가리고 있는 NPC는 발견할 수 있었다.
“저 사람을 수색해 주시죠.”
“왜? 왜 나를 수색해! 너희가 뭔데!”
“하하하! 잠깐만 있어 봐.”
“범인을 찾는 중이니 양해해 주시게나.”
그가 몸부림쳤지만 탈모맨의 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
안전지대의 수장인 테키드도 허가했으니 막을 명분도 없었고.
“제, 젠장!”
놈은 곧장 품에서 단검을 꺼냈다.
망설이는 기색도 없었다.
오히려 이런 상황을 원했던 것처럼 무기를 휘둘렀다.
목적지는 옆에 있는 탈모맨.
“안전지대는 우리의 터전이다, 등반가 놈들아!”
“어이쿠.”
가볍게 몸을 틀어 검을 흘린 탈모맨.
이어 회전하며 보디블로를 갈겼으니.
“크하아압!”
그대로 명치를 맞고 주저앉는다.
바닥에 머리를 박은 녀석이 주먹을 쥔다.
“다들 파비오의 만행을 잊은 거냐! 그놈 손에 죽은 NPC가 몇 명인지는 벌써 잊은 거냐고!”
그의 외침에 NPC들이 움찔한다.
각자의 사정과 오해가 쌓인 결과기는 했지만 희생자는 분명히 있었으니까.
그 부분을 꼬집은 거다.
분열.
NPC와 등반가 사이를 이간질하려는 행위.
탈모맨 또한 그걸 알았는지 나서려 했지만 막았다.
하게 놔둬.
입 모양으로 그렇게 말했다.
“여기를 내주자? 원래 등반가들을 위해 만든 곳이니까? 그래! 말은 맞다.”
벌떡 고개를 들어 올린 녀석이 사람들을 둘러봤다.
“하지만 왜! 왜 하필 우리만 그래야 하는 거지? 다른 안전지대는? 그곳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왜 파비오의 손에 수많은 이웃이 죽은 우리만 희생해야 하는 거냔 말이다!”
NPC들이 서로 눈치를 본다.
그래. 불만이 있을 수도 있지.
안전지대가 5개나 있는데 이곳만 자리를 내놓아야 한다면 억울한 마음도 들 거다.
“양보해야 한다면 등반가들이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우리는 이곳이 터전이지만 그들은 스쳐 갈 뿐이야! 굳이 영주권을 줄 필요도 없잖아!”
두서도 없고 그저 불만만을 외칠 뿐이었지만 의미는 통한다.
몇 명은 그의 말에 동의할 수도 있다.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게 불만이어서 파비오와 노블 나이트를 공격했나?”
“정당한 복수다.”
“파비오는 그럴 수 있지만 노블 나이트는?”
놈이 떠들도록 만든 이유.
숭배자들은 분열을 원한다.
그렇기에 NPC들이 느낄 불만을 건든다.
반대로 등반가에게는 NPC에 대한 악감정이 생길 만한 태도를 취한다.
놈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죽일 수도 있다.
다만 그럼 NPC들의 반감을 산다.
제대로 된 확인 없이 NPC를 죽인 것처럼 보이니까.
그렇기에 대화를 했고.
“그 또한 등반가……!”
“다들 보아라! 이자는 등반가를 죽인 범인이다!”
우선 놈이 범인임을 확인시켜 줬다.
이걸로 놈을 처단하는 명분이 생겼으며.
“그리고 개인적인 원한과 신념으로 등반가와 NPC 사이를 이간질하고 있지. 이자의 말에는 어떠한 논리도 없다.”
그가 하는 말이 얼마나 어설프고 어이없는지 밝힐 방법이 생겼다.
놈이 하는 말을 모두 꺾으면 되니까.
“파비오에 대한 원한? 있을 수 있다. 그렇기에 그를 공격하는 것 또한 이해할 수 있다. 다만 그 또한 피해자였고 동료를 잃었지. 원한이 있는 자는 직접 담판을 지어야 한다.”
녀석을 바라봤다.
“파비오가 죽인 이들 중 너와 관련된 이가 있나?”
“NPC는 모두 이웃이다.”
“없다는 뜻이군. 이자와 희생된 NPC가 가깝게 지내는 걸 본 사람 있습니까?”
대중을 바라봤다.
그저 눈을 깜빡인다.
“글쎄. 난 저런 사람이 이곳에 있는지도 몰랐는데.”
“모르겠소.”
으득.
놈이 이를 간다.
“그쪽은 안전지대를 피스 랜드만 내주는 것이 억울하다고 했지. 그렇다면 상식적으로 다른 안전지대와 협의를 하는 게 맞지 않나?”
테키드를 살폈다.
“이곳에 있는 이들의 의사는 묻지도 않고 움직일 만큼, 그쪽이 피스 랜드를 대표하는 인물인가?”
아니겠지.
이곳의 수장은 테키드니까.
놈 앞에 쪼그려 앉은 후 품을 뒤졌다.
저항을 하며 도와 달라 소리쳤지만 주변의 시선은 싸늘했다.
탈모맨이 녀석을 붙잡았고 이내 소지품을 뒤졌으니.
“이걸로 노블 나이트를 죽인 게 맞겠지.”
“그래. 내가 죽였다!”
그 안에는 단검과 금속으로 만든 실이 있었다.
현장에 있던 흔적과 파비오의 증언과 일치하는 물건들이다.
“그런데 이상하군.”
부욱!
놈의 상의를 뜯었다.
흉터가 제법 많은 몸이었으나.
“파비오가 말한 문신이 없지 않나.”
영어 레터링 문신은 존재하지 않았다.
애초에 이 녀석은 미끼다.
정확히 말하면 죽어도 되는 숭배자.
일이 꼬였을 때 잘라 낼 버림 패.
“아무리 봐도 네가 노블 나이트를 죽이고 파비오를 쓰러트릴 능력자는 아닌 거 같은데.”
지그시 녀석을 발로 밀었다.
“범인은 나로 위장하고 있었다고 했지. 한번 나로 모습을 바꿔 보겠나?”
당연히 변신은 불가능했다.
눈알을 돌리며 머리를 굴리던 녀석이 입을 연다.
“…난 너로 변장한 적이 없다.”
자신이 범인이라고 말하던 녀석이다.
숭배자 집단으로부터 그렇게 하라고 지시받았겠지.
변신도 못 하고 전투 능력도 별거 없다는 게 밝혀지면 진짜 범인이 아니라고 선언하는 것과 같다.
그러니 저딴 변명을 하는 것이었고.
또한 내가 원하는 것이었다.
“나를 사칭한 범인을 본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저기, 습격 현장에 있던 이준석도 봤고.”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가짜 이준석을 바라봤다.
“그쪽 말이 사실이라면 이준석은 거짓말을 한 거겠네?”
사람들의 시선이 이준석에게 몰린다.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놈을 몰아붙인다.
“이준석, 거짓말을 했나?”
대답 잘해야 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