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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687화 (687/740)

687화 의견

소문이라는 건 막기 힘든 것이다. 입은 누구든 열 수 있었고 귀는 언제나 열려 있으니까.

등반가가 습격받았다는 것 역시 빠르게 퍼져 나갔다.

아는 사람은 소수.

우리 중 누군가가 소문을 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필시 이번 일을 저지른 자가 소문을 냈겠지.

이미 퍼진 소문을 주워 담을 수는 없다.

‘주워 담을 생각도 없고.’

범인을 잡기 위해서는 피스 랜드에 모인 이들의 협조가 필요하니까.

난 아직 범인이 안에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소문이 난 것도 그렇지만.

“녀석은 나로 위장했어.”

“여차하면 너한테 뒤집어씌우겠다는 거지.”

“못해도 무법지대로 내보내려고 할 거 가튼뎅.”

“진짜? 왜? 왜 그렇게 되는데?”

탈모맨이 물었지만 자연스럽게 무시했다.

위장하려 했다면 선택지는 많았다.

오히려 내가 아닌 다른 등반가나 NPC로 변신했다면 더 눈에 띄지 않았을 거다.

즉, 나로 위장해 피해를 주겠다는 의도가 숨어 있다는 뜻이다.

그 결과 내가 무법지대로 퇴출당해도 좋고 다시 등반가와 NPC 사이에 불화가 생겨도 좋다.

어찌 됐든 등반가 절반이 쁘찡연합이고 구심점에 있는 인물 중 하나가 나니까.

어느 쪽이든 범인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은 선택지였고.

‘이만큼 공을 들인 이상 결과를 볼 때까지는 안전지대에 있겠지.’

이 안에 범인은 남아 있다.

한 명인지 여러 명인지는 모르겠지만.

거기에 한 가지 더.

‘내 권능으로 정보를 못 읽을 가능성이 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간단했다.

그동안 나와 숭배자 집단이랑 마찰 생긴 게 한두 번이어야지.

이 정도 당했으면 내 능력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거다.

당연히 상대의 정보를 읽을 수 있다는 것 또한 파악했을 터.

놈들에게는 당연히 해야 하는 안전장치다.

‘나한테는 후보자를 좁힐 수 있는 근거가 돼.’

정보를 못 읽거나 수상한 놈들 위주로 찾아보면 되니까.

대략적인 방향은 정했다.

범인이 숭배자인 건 심증.

아닐 가능성은 열어 두되 숭배자임을 가정해서 움직인다.

“냥펀이랑 테이준이 NPC 쪽을 맡아 줘.”

“귀찮지만 어쩔 수 없지.”

“나만 믿어랑!”

아무래도 같은 NPC인 테이준이 떠보는 게 NPC들도 부담이 덜할 거다.

냥펀이야 나만큼이나 NPC들이랑 잘 어울리는 녀석이고.

“핥짝이와 탈모맨은 등반가.”

“그러지 뭐. 96층에 들어온 등반가는 대충 다 외웠으니까.”

“오우! 나의 친화력을 뽐낼 시간인가!”

리더십이 있고 사람들을 잘 이끄는 핥짝이.

특유의 거리감 없는 캐릭터로 무리에 잘 섞이는 탈모맨.

둘은 등반가 사이에서 사람들의 목격담과 알리바이를 확인한다.

“노블 나이트가 당한 만큼 저희도 움직이도록 하죠.”

“빅스타 길드도 지원하지. 레인보우.”

이번 사건의 당사자인 오필리아와 노블 나이트와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빅스타는 말할 것도 없다.

특히 오필리아는 수많은 NPC의 계승자인 만큼 NPC들과의 접점도 많다.

이 외에도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루키 그룹과 요정 클럽에도 도움을 요청한 상태.

두 그룹 모두 근본 있는 상위 그룹으로서 인지도가 있다.

‘우리가 잘 모르는 상위 헌터들과도 교류가 있는 것 같고.’

아무래도 나랑 멤버들은 연합 사람들 위주로 인연이 있어서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

쁘찡연합에 크게 관심이 없거나 질색하는 이들도, 이들이라면 이야기가 통할 거다.

이걸로 준비는 끝.

“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어. 주변 탐사는 부탁할게.”

마음 같아서는 나도 같이 움직이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어찌 됐든 나 또한 용의자 중 하나니까.

그렇기에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가 없다.

나를 믿는 사람이 많다 하더라도 NPC들은 아닐 테니까.

그러니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납득 가능한 선에서 행동해야 한다.

동시에 이건 견제이기도 하다.

‘내가 공식적으로 움직이면 나를 사칭해서 움직일 수는 없을 테니까.’

물론 다른 사람으로 변장해서 움직일 가능성도 있기는 한데.

‘그래도 이 틈에 다른 사람을 공격하지는 못할 거야.’

이미 습격으로 인해 경계심이 올라가기도 했고.

모두가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 수상한 짓을 하면 본인도 손해니까.

그 정도면 충분하다.

멤버들을 비롯해 도움을 주는 녀석들의 실력도 확실하거니와.

“나도 나름 생각이 있거든.”

가만히 앉아서 당해 주는 건 내 성격에 맞지 않는다.

난 테키드와 함께 움직인다.

그 첫 번째는.

“현장 분석이지.”

뭐든 일이 터지면 흔적이 남기 마련이니까.

“이준석, 같이 가자.”

“물론입니다.”

파비오를 제외하면 범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을 본 유일한 목격자가 이준석이다.

교차 검증을 위해서라도 이번 탐색에 필요한 인물.

범인을 찾을 시간이다.

* * *

현장답사는 어렵지 않았다.

이미 탐색이나 기록을 찾을 수 있는 능력자들이 대거 투입되었으니까.

뒤져 볼 건 다 뒤져 봤다는 뜻이다.

먼저 노블 나이트 일원이 당한 곳.

“깔끔하군.”

그 말이 절로 나왔다.

완벽한 기습이었다.

상대방이 제대로 반응하기도 힘들 정도로.

‘노블 나이트는 오필리아가 메인이야.’

그녀의 등반법은 NPC의 협력을 통해 빠르게 위로 올라가는 것이고.

계승자가 된 오필리아야 상관없겠지만 노블 나이트들은 다르다.

그들 또한 누군가의 계승자이기는 했지만 나나 멤버들처럼 직접 부딪치고 깨지는 과정은 비교적 적었으니까.

오로지 오필리아가 위로 올라갈 수 있도록 보좌하는 것.

그게 그들의 역할이다.

서포터, 탱커.

오필리아를 지키고 그녀가 온전히 힘을 쓸 수 있도록 환경을 구축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전투 능력은 비교적 떨어지니 기습을 허용한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일격. 많아 봤자 공방을 2번 나누고 쓰러졌어.”

방어력으로 따지면 노블 나이트는 상당한 수준이다.

이렇게 빠르게 당했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파비오 때와는 달라.’

기량 자체가 차이 나는 것도 있겠지만 뭐랄까.

‘범인도 숨겨 둔 수가 있다는 거겠지.’

파비오를 습격했을 때는 쓰지 않았던 능력을 썼을 거다.

왜냐.

이번 습격으로 죽은 노블 나이트의 시체는 남아 있지 않으니까.

안타깝게도 희생자는 남은 코인이 없었고 탑 밖으로 퇴출당했다.

어떤 공격을 맞아 죽었는지 알 수 없다는 거다.

여기서 나오는 단서 하나.

‘놈은 그 사람에게 코인이 하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과한 추측일 수도 있겠지만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다.

여기서 더 볼 건 없다.

다른 정보를 알아내기에는 흔적이 마땅치 않았으니.

다음으로 파비오가 당했던 곳.

-스윽.

벽과 바닥에 생긴 검흔을 손으로 훑었다.

날카롭고 좁다.

파비오가 사용하는 검은 무게가 있는 중검.

이런 식으로 흔적이 남지 않는다.

본인이 직접 말한 것이니 확실하겠지.

‘이 정도면 내가 사용하는 검보다 얇아. 애초에 검이 맞기는 한가?’

분명 범인은 단검으로 기습했다고 했다.

거짓말은 아닐 거다.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파비오의 자작극이 아니라면 말이지.

그건 그거고 이 흔적.

‘오징혁이랑 비슷한데?’

그 녀석의 주무기는 튼튼한 두 다리지만 보조로 단검을 사용했다.

그냥 단검만 휘두르는 게 아니라 마력으로 이루어진 실을 이용해 온갖 변칙적인 공격을 했었지.

이곳에 있는 흔적도 그렇다.

단단한 실로 파헤쳐진 흔적과 닮았다.

흔하지 않은 무기였고 동시에 처음 당하면 대응하기 힘들다.

워낙 얇아서 밤, 특히나 기습당했을 때 알아차리기 어렵고.

파비오는 첫 타 명중 관련 스킬이 아닐까 추측했지만.

‘처음부터 실로 연결되어 있던 거야.’

보이지 않는 얇고 특수한 실을 파비오에게 연결해 둔 채 단검을 꽂아 넣은 거다.

상처를 치료하기 전, 파비오의 몸에는 수많은 자상이 있었다고 했다.

검에 베인 게 아니라 실이 파고든 흔적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

가볍게 손가락을 두드렸다.

이런 건 전문가한테 맡겨야지.

안 그래도 조언을 듣기 위해 요정 클럽의 송곳 요정을 따로 불러왔다.

주변에 암살자 계열이 얘밖에 없어서.

“이거 실 같은 걸 이용했을 수도 있지?”

“가능은 해. 관련된 스킬이 있다면. 나도 비슷한 걸 할 수 있고.”

즉석으로 시범을 보여 준다.

바늘처럼 생긴 송곳.

그 홈에 실을 연결한 후 실을 벽에 고정한다.

그리고 팍!

강하게 송곳을 치자 실을 따라 날아간 송곳이 벽에 박힌다.

“이런 식으로 응용할 수도 있지.”

“단검도 가능할 거고 말이야.”

“못 할 건 없지. 숙련도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오케이.

이거면 충분하다.

범인을 찾는다는 건 수많은 가능성을 열어 두고 서서히 좁혀 가는 거니까.

이준석과 함께 골목을 따라 이동했다.

나를 사칭한 범인을 목격한 곳에서 습격이 이루어졌던 곳까지.

거리는 대략 50m가량.

그리 멀지는 않다.

만약 일이 벌어졌다면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

파티를 하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초인의 영역에 들어선 사람이 못 들을 거리는 아니다.

“시간 차가 크지는 않잖아. 수상한 건 없었어?”

“딱히 없었습니다. 검이 부딪치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으니까요. 소리를 차단하는 스킬이나 아티팩트를 사용한 건 아닐까요?”

그럴 수 있지.

사일런스나 기타 비슷한 기능을 가진 스킬은 많으니까.

다른 흔적을 확인하며 말을 이었다.

“녀석이 나를 사칭했잖아. 뭔가 다르거나 특이한 점이 있던가?”

“아뇨. 저도 이블아이 님을 실제로 본 건 그때가 처음이라 확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다.

워낙 커뮤니티에서 떠들다 보니 심리적인 거리감은 가까웠지만 직접 본 적은 없으니까.

보자마자 이상한 점을 느낀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이후에도 몇 가지 질문을 했다.

파비오를 제외한다면 범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을 본 건 이준석이 유일했으니.

습격 현장을 더 봐 봤자 더 이상 얻을 소득은 없다.

중간중간 얻은 정보를 정리하자면 대충 이렇다.

‘범인은 변장 능력이 있고 강력한 탱커를 없앨 만한 전투력을 가지고 있다.’

노블 나이트가 가지고 있는 코인 개수를 알고 있는 건 덤.

실을 이용할 수 있으며 자신의 정보를 감출 수단이 있다.

내가 숙소로 들어갔을 때 일을 저지른 것으로 봤을 때, 내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드륵.

현장 검증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갔다.

내가 밖으로 나갈 것을 대비해 경계를 서는 NPC와 등반가들.

건물 안에는 나와 이준석, 테키드와 몇 명의 NPC만 있다.

프라이버시를 존중해 주는 건지 지금은 나와 이준석만이 있는 상황.

“일이 이렇게 돼서 좀 그렇긴 하지만 너랑은 대화를 해 보고 싶었어.”

소파에 몸을 눕히며 입을 열었다.

거짓말이 아니다.

녀석에게는 많은 도움을 받았다.

연합이 지금까지 멀쩡히 돌아간 것도 이준석의 공로가 크다.

“형의 복수는 지금도 할 생각이지?”

“그렇습니다. 대형 길드의 패악질은 용서받을 수 없는 거니까요.”

이준석이 미간을 찌푸린다.

무례한 질문이기는 하다.

녀석의 복수에 대해 직접적으로 건드는 거니.

“그럼 가장 먼저 칠 곳은 역시 거긴가?”

“예. 청룡입니다.”

“복수심이라는 게 쉽게 사라질 건 아니니까.”

잠깐의 정적.

이준석이 다시 미소 지었다.

“물론 지금은 공듀님과 다른 분들의 활약을 보는 즐거움으로 등반을 하고 있지만요.”

“이번 일만 아니었으면 다 같이 모여서 즐기는 건데. 아쉽게 됐어.”

“옆에서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제게는 영광입니다.”

“그렇게 말하니 부끄럽네. 사실 우리가 별로 대단한 사람은 아니잖아.”

“아뇨! 그럴 리가 있습니까! 이블아이 님과 다른 분들이 해낸 업적만 해도 대단한데요.”

마치 준비라도 한 것처럼 이런저런 찬양을 내뱉는 이준석.

커뮤니티에서 듣던 이야기를 직접 들으니 닭살이 돋을 지경이다.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잘도 이런 이야기를.

나라면 절대 못 할 행동이다.

내심 뿌듯하긴 하다만, 어째서 부끄러움은 내 몫인가.

“나도 고맙기도 하고 본 건 처음이지만 믿을 수 있는 사람인 건 맞잖아. 좀 더 상황을 지켜봐야겠지만 대충 범인이 짐작은 가.”

단서가 많이 모였다.

이제 멤버들과 다른 녀석들이 가지고 온 알리바이와 의심 대상을 비교하면 된다.

그럼 용의자 수는 더 줄어들겠지.

“범인은 노블 나이트에 있다고 생각해.”

“그렇습니까? 그곳은 오필리아 님에게 충성을 다하는 곳일 텐데요.”

“그래서 시야가 더 어둡지. 내부보다는 외부에 있는 배신자를 먼저 생각할 테니까.”

“이블아이 님은 NPC가 아니라 등반가 중에 범인이 있다고 생각하시는군요.”

“맞아. 적어도 정황상으로는 그래.”

이준석을 바라봤다.

“너도 배신자를 쫓고 있던 거잖아.”

“맞습니다.”

“상대는 죽은 노블 나이트에게 코인이 하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

그러니 흔적이 남지 않을 것을 알고 확실히 끝을 본 거겠지.

“노블 나이트는 개인으로 움직이지 않아. 오필리아를 보호하는 게 우선이니까.”

거기에 더불어.

“숭배자는 우리 말고도 오필리아를 노리고 있지.”

내가 숭배자들과 많이 싸운 건 맞지만 오필리아 또한 눈엣가시인 건 틀림없다.

목표 자체가 탑을 정복하는 것이고 숭배자들은 그것을 원하지 않으니까.

“그런 상황에서 노블 나이트가 혼자 골목에 있다가 당했다? 말이 안 되거든.”

“누군가 불러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군요.”

“맞아. 같은 노블 나이트가 불러냈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지.”

그냥 부른 게 아닐 거다.

나름의 떡밥도 있었겠지.

“이블아이가 따로 할 이야기가 있으니 와 달라고 요청했을 수도 있어.”

그렇기에 범인은 나로 위장해서 골목으로 들어간 것일 테고.

나와 오필리아가 나름 가깝게 지낸다는 건 다 알고 있다.

당장 94층에서도 마주쳤으니까.

적어도 다른 사람을 만날 때보다 경계심이 덜하겠지.

“네 생각은 어때?”

뭐든 의견은 들어 봐야 한다.

나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고 내 생각이 다 맞는 건 아니니까.

“확실히 타당한 생각입니다. 파비오라면 모를까, 노블 나이트는 단독 행동을 하지 않으니까요. 마음 아픈 이야기지만 노블 나이트를 조사해 봐야 합니다.”

이준석이 답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의견을 들어 보는 건 중요하다.

특히.

“나도 그래.”

범인의 의견이라면.

이준석 너.

‘형 죽인 길드 청룡 아니잖아.’

넌 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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