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0화 원샷!
우리에게, 정확히는 테이준에게 볼일이 있어 보이는 삼인방.
좋은 인연이 아니라고는 했지만 바로 다가올 줄은 몰랐는데.
그도 그럴 것이.
‘보는 눈이 꽤 있잖아.’
이곳에 있는 건 우리만이 아니다.
다른 방랑자들도 여럿 모여 있다.
그중에는 이들로는 어쩔 수 없는 강자들도 섞여 있을 거고.
그저 하루다.
하룻밤을 보내려고 모인 이들이 싸우는 것을 방조할까?
‘제정신이라면 안 하지.’
난리 쳐도 괜찮은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다른 이들도 그럴지 모르니까.
그게 아니어도 꼴 보기 싫은 건 마찬가지고.
어쩌면 몬스터들이 소란을 듣고 올지도 몰랐다.
밤에는 작은 소리도 멀리 퍼지니까.
“왜? 저번처럼 등에 칼이라도 꽂히고 싶어서? 엉엉 잘 울던데.”
뭐, 테이준이 하는 걸 보아하니 좋게 끝날 것 같지는 않다.
피식 웃으며 조롱하는 녀석.
얕보이면 끝이라는 거겠지.
역시나.
“하하하! 자는 동안 칼 찌르고 도망친 새끼가 할 소린가!”
상대방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자는 동안 칼을 찔렀다?
그것만으로도 테이준에 대한 평가는 바닥으로 떨어진다.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 되니까.
아니나 다를까, 흥미롭게 이쪽을 구경하던 이들의 표정이 싸늘해진다.
“그쪽도 밤이라고 아무나 같이 있지 말라고.”
툭툭. 내 어깨를 두드리며 조언까지 해 준다.
“뭐, 정 없으면 우리랑 같이 자든가. 저 녀석보다는 나을걸?”
오. 배려까지.
“그쯤 하지? 내 물건 털어 가려다 찔린 녀석들이?”
“그게 왜 네 물건이지?”
“내가 잡은 녀석한테서 얻은 건데 내 거지. 네 거냐?”
“하! 분배하기도 전에 냅다 튀다 걸렸으면서 뻔뻔하구나!”
“응. 너희 정산 안 하고 물건 챙긴 것 다 봤어.”
“이 새끼가!”
처음에는 살벌했던 대화가 지금은 고함 섞인 다툼으로 되어 있다.
구경꾼들의 표정에서 흥미가 사라진다.
“난 또 뭐라고.”
“그냥 흔한 정산 문제였구만.”
“쯧쯧. 저 싸가지 없는 것들. 아주 전세 냈어.”
“야! 거기 자식들아! 밤인데 입 안 다무냐!”
“그럴 거면 딴 데 가서 지랄하든가!”
이 정도 분쟁은 흔하다 이건가.
아예 욕을 하며 닥치라고 외치는 이들도 있다.
적극적인 사람은 아예 우리 쪽으로 왔는데.
“하하하하! 다들 뭐가 그리 화가 났나! 그쯤 하고 쉬지.”
덩치 큰 털복숭이었다.
수염은 정리도 안 했지만 입고 있는 옷은 잘 관리했다.
가죽에 철판을 덧대 만든 옷.
흘깃 보니 양치기 무리다.
“살다 보면 이런저런 악연도 있는 법이지만 결국 또 볼 사이 아닌가.”
“네가 뭔데 이래라저래라……!”
삼인방 중 대장으로 보이는 놈이 인상을 구겼지만.
“흠흠.”
옆에 있던 동료가 녀석의 팔을 잡는다.
흘깃 옆을 가리키니 양치기 무리가 각자의 무기를 들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이쯤 하라는 무언의 압박이 느껴진다.
“쯧. 밤에 소란을 피웠군. 가자.”
“하하하! 그래. 고맙군.”
삼인방이 떠나고 호탕하게 웃은 털북숭이가 우리를 내려다본다.
덩치가 상당히 크다.
“그쪽들도 이만 쉬게나. 이런 일이 한두 번도 아니지 않나.”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어.”
테이준 역시 주변의 압박을 무시할 수는 없는지 자리에 앉았다.
“좋은 밤 보내게나.”
그 말을 끝으로 털북숭이가 무리로 돌아간다.
분이 안 풀렸는지 씩씩거리던 테이준이 돌멩이를 찬다.
“털북숭이 새끼. 지가 뭐라고 끼어들어서는.”
삼인방도 그렇지만 무리의 대표라도 되는 것처럼 중재를 나선 녀석이 마음에 안 드는 모양.
좋게 끝났으면 괜찮은 것 아닌가.
그건 그거고.
“테이준.”
“뭐.”
“너도 안전지대 사람들을 습격했었나?”
내 물음에 잠시 입을 다문다.
그것도 잠시 눈썹을 찡그리더니 톡 쏘아 말한다.
“왜? 하면 안 돼?”
“뭐라 할 생각은 없고.”
내 가치관이나 도덕관념을 강요할 생각은 없다.
애초에 내가 도덕적으로 완벽한 사람도 아니거니와.
‘이쪽은 이쪽 나름대로의 기준이 있을 테니까.’
막말로 나도 숭배자든 경쟁자든 여럿 죽였다.
거기다 현대적인 도덕과 법을 들이밀 건가?
아무리 그래도 폭력은 안 되고, 상대가 칼을 들었어도 때려눕히면 정당방위가 안 되는 그거?
개소리지.
“해야 하면 하는 거지. 네가 뭘 하든 상관은 없어.”
결국에는 이제 하루 본 사이 아닌가.
난 그렇게 오지랖이 넓지 않다.
사실 녀석이 삼인방을 가리키길래 잠깐 같이 행동했겠구나 싶기도 했고.
“안전지대에 대해서나 더 말해 봐.”
일단 안전지대에 있는 NPC를 죽여서 자리를 차지할 생각은 버렸다.
윤리적인 문제를 떠나서.
‘그게 어떤 식으로 후폭풍을 부를지 모르거든.’
내가 한 짓이 알려지면 퍽이나 안전지대에서 발 뻗고 자겠다.
당장 97층에 올라가려면 이런저런 준비를 해야 할 텐데.
그곳에 있는 이들이 제대로 협조해 줄까?
게다가.
‘그 과정이 쉬울 리가 없어.’
쉬웠다면 방랑자가 이렇게 많을 이유가 없지.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을 거다.
“안전지대. 안전지대! 왜 다들 거길 못 가서 난리인 거지?”
살짝 짜증을 내던 녀석이 머리를 긁적인다.
사춘기인가.
감정 기복이 심하네.
안전지대에 들어가면 좋지.
안전지대가 괜히 안전지대인가.
“그곳이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아주 작게.
녀석의 중얼거림이 들렸다.
“몰라. 잔다. 2시간 있다가 깨워. 2시간마다 교대하자고.”
타고 다니는 도마뱀에게 먹이를 준 녀석이 텐트 안으로 들어간다.
상의 없이 먼저 잔다는 뜻이었지만 터치하지는 않았다.
여기까지 온 것도 그렇고 텐트도 그렇고 놈이 다 했으니까.
“잘 자라.”
대답은 없었다.
* * *
별다른 사고 없이 아침이 밝았다.
선택할 시간이 왔다.
테이준은 안전지대에 관심이 없다.
얼핏 보기에는 적개심까지 있어 보인다.
난 냥펀을 만나러 가야 하고 말이지.
그렇다면 선택지는 2개.
‘양치기, 삼인방.’
두 무리는 안전지대 근처로 갈 가능성이 크다.
놈들을 따라가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긴 한데.
“애매하단 말이지.”
전자를 고른다면 놈들의 일정에 맞춰야 한다.
그들을 양과 염소를 몰며 다니고 안전지대뿐만 아니라 다른 마을에서도 거래하니까.
언제 안전지대로 갈지 모른다는 말.
후자를 고른다면 가는 길이야 빠르겠다만.
‘가는 길에 누군가를 공격할 수가 있고.’
안전지대가 보이는 시점에서 헤어지면 그만이다만.
“그건 못 할걸? 동행한 시점에서 이미 한패야. 놈들도 그냥 안 놔 줄 거고.”
테이준의 말에 따르면 그렇게 간편하지는 않아 보였다.
그런고로.
“가자, 안전지대로.”
“…내가 왜?”
그냥 테이준과 함께 움직이기로 했다.
어이가 없는지 짐을 싸다 말고 날 바라본다.
“택시비 줄게.”
“택시비가 뭔, 아니. 난 갈 생각 없다니까!”
“어차피 너 갈 데도 없잖아. 보상은 할게. 자자, 일단 한잔하고.”
자연스럽게 녀석에게 포션을 찔러 넣었다.
어젯밤 동안 텐트촌에서 느낀 게 있다.
‘방랑자들은 대부분 물물교환이야.’
게다가 은근히 기본적인 물품이 비싸게 거래된다.
아무래도 기반 시설 없이 돌아다니는 특성 탓이 아닐까 싶은데.
그 결과 기본적인 삶의 질이 낮은 편이었다.
“가는 길에 이것도 좀 먹고.”
“도시락?”
이건 또 뭐 하는 건가 싶은 표정으로 뚜껑을 연 녀석이 입을 벌린다.
이 몸이 공들여 만든 도시락이다.
모닥불도 있겠다, 불침번을 설 때 솜씨 좀 발휘했지.
불 옆에 놔둬서 아직 따뜻한 상태.
보니까 여기에 있는 놈들 제대로 못 먹고 살더라고.
‘요리 스킬이 없으면 당연한 거지만.’
괜히 헬다잉 키친이 출장 뷔페로 유명한 게 아니다.
일원 전체가 도축부터 요리까지 다 할 수 있는 능력자라 대단한 거지.
다르게 말하면.
‘여기서는 내가 요리사!’
값진 가치를 가진다는 거다.
군침을 흘리는 녀석에게 어깨동무하며 속삭였다.
“하루 세끼, 꼬박꼬박. 디저트도 종종 해 줄게.”
“머, 먹을 것으로 날 매수하려는 거냐!”
“그래서. 싫어?”
“…난 수플레 케이크가 좋더라.”
오케이.
이걸로 합의 끝.
녀석과 손을 맞잡았다.
“일단 움직이면서 이야기하자.”
텐트를 비롯해 물품을 챙긴 녀석이 도마뱀 위에 오른다.
나 역시 뒤에 따라 탔고.
“쉬이익!”
도마뱀이 빠른 속도로 황야를 달려 나갔다.
가는 동안 테이준은 말이 없었다.
살짝 긴장하는 모습.
자세를 낮추며 속도를 높이면서도 주변을 계속해서 살핀다.
“왜 그러지?”
“아침이잖아. 추격자가 있을 수도 있어.”
추격자가 왜 있어.
삼인방과 사소한 다툼이 있었지만 피를 보지는 않았다.
일을 벌이려면 밤에 벌였겠지.
“밤에 사고 치면 다른 사람들 눈 밖에 나. 아침은 다르지.”
-삐이이이익.
멀리서 피리 소리가 났다.
호루라기인가.
아무튼 좋은 신호는 아니었다.
“밤에 털어먹을 놈을 고르고 날 밝으면 쫓아가는 거야.”
“그것참, 희망찬 이야기군.”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는 거나 다를 바 없다.
밤을 보냈으니 본색을 드러내는 건가.
-삐이이이이.
이번에는 다른 쪽에서 호각 소리가 들린다.
아까와 같은 데시벨의 소리.
그것이 양쪽에서 번갈아 들린다.
동시에 느껴지는 미세한 진동.
“아무래도 우리가 타깃이 된 것 같아.”
“어지간히 우습게 보였나 보네. 몇 놈 쥐어 팰 걸 그랬나.”
허리를 세우며 누가 쫓아오는지 확인했다.
아직 거리가 있어 제대로 확인하기 쉽지 않았지만.
“털북숭이?”
“아이 씨. 양치기 놈들! 밤부터 느낌이 쎄하더라니!”
앞에 보이는 놈이 워낙 커서 정체를 파악하는 건 빨랐다.
아니, 저놈들이 뭐가 아쉬워서?
애초에 악감정을 가질 일이 없지 않나?
어젯밤에는 사람 좋은 척하더니만.
“이유가 뭐가 있겠어! 그냥 만만해 보이는 놈 고른 거지! 뭐, 양도 있고 물자도 있으면 그냥 자기 갈 길 갈 줄 알았어?”
“그것도 그렇군.”
오히려 사람도 많고 장비도 있으니 더 편하게 다른 이들을 털어먹고 살았을 거다.
이렇게 되고 보니 밤에 중재를 나선 것도 이 때문이 아니었을까.
우리의 장비나 상태가 어떤지 확인하려고.
혹여나 숨어 있는 동료가 있는지도 파악하고.
“개판이네.”
“그에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덕분에 잘 알았다.
96층 무법지대가 어떤 느낌인지.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
“또 뭔 소리야! 자세나 낮춰. 속도 느려지니까!”
테이준이 짜증 섞인 소리를 질렀지만 이미 늦었다.
저놈들, 양은 지키는 사람을 따로 놔두고 가볍게 장비한 놈들만 따라오고 있거든.
이미 속도에서 밀린다.
머리 숫자는 더 밀리고.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양쪽으로 각각 4명의 인원이 따라붙었다.
“하하하! 이거 또 보는군!”
“봤으면 꺼져! 말 걸지 말고!”
“까칠한 건 밤이랑 똑같구만그래.”
사람 좋게 웃던 털북숭이가 가늘게 눈을 떴다.
이미 살기로 번들거리는 눈.
녀석의 입가에서 웃음이 사라지고.
“잡아.”
“알겠습니다!”
“쏴!”
“물건 상하지 않게 조심해!”
놈들이 석궁을 꺼내 겨눴다.
장력이 상당한지 시위가 당겨져 있는 것만 봐도 긴장감이 느껴질 정도.
노리는 거야 뭐.
-팅!
-피이이잉!
우리지.
망설임 없이 쏜 석궁.
당하고 있지만은 않겠다는 건지 테이준이 권총을 뽑았지만 내가 더 빨랐다.
“음?”
“어어?”
놈들이 쏜 화살.
그걸 붙잡았다.
“그헤에에.”
덕춘이도 마찬가지.
재주라도 부리듯 혀와 손바닥으로 화살을 낚아채고는.
-뿌드드득.
부러트렸다.
뭐, 이 정도 한다고 놈들이 물러서지는 않겠지만.
애초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물품과 도마뱀이 다치지 않게 하려고 석궁을 쓴 걸 테니까.
“에이씨. 곱게 가지. 그냥 쳐!”
“죽여!”
이제부터가 본격적이다.
놈들이 각자만의 무기를 꺼냈고 나 또한 혼돈검을 뽑았다.
서로를 향해 무기를 겨누는 타이밍.
-타앙!
테이준의 권총이 불을 뿜었다.
특별한 것 없는 리볼버.
-콰당탕탕!
말을 몰고 있던 털복숭이가 낙마하며 굴러떨어진다.
결코 총에 맞았다고 나올 수 없는 결과.
예상치 못한 상황 속에서 모두가 뇌 정지가 왔지만 난 알 수 있었다.
[당신의 심장 속에 원샷! (SSS) Lv.MAX]
-심장이 짜릿하신가요?
-보통 뭐가 들어가면 그렇습니다!
놈의 총알.
털북숭이의 심장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