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 갇혀 고인물-679화 (679/740)

679화 삼인방

96층 중립지대.

이곳은 좀 특별한 구간이다.

마치 탑에 들어오고 튜토리얼 구간을 끝마친 뒤 가장 먼저 도달하는 6층 안전지대와 같은 곳이라고 할까.

10층 단위로 있는 안전지대와 달리 중간에 끼어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달리 말하면 100층으로 향하는 자들이 유일하게 휴식할 수 있는 곳이라고도 볼 수 있었는데.

“이게 뭐냐.”

눈앞에 펼쳐진 곳은 느낌이 좀 달랐다.

포탈이 열린 곳 바로 앞, 초대형 몬스터의 사체가 널브러져 있다.

뭐에 당했는지도 모르겠다.

상위 포식자?

아니면 등반가?

어쩌면 NPC일 수도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아예 몬스터를 갈아 버렸네. 내장은 왜 다 빼 간 거야?”

요리에 쓰려고 했나?

손질 상태가 개판인 걸로 봐서는 그냥 다른 몬스터가 먹은 것 같기도 하고.

몬스터도 내장 좋아한다.

살짝 찜찜하기는 하다만.

‘이 정도는 허용 범위 내야.’

96층까지 올 정도면 일반적인 몬스터 정도는 별다른 위협이 되지 않으니까.

다만.

-스스스스.

죽은 사체에서 느껴지는 혼돈은 다른 이야기였다.

에이션트 몬스터나 퍼스트 몬스터와 같은 특이 객체를 제외한다면 혼돈을 가지고 있는 몬스터는 없으니까.

뭐, 굳이 따지자면 재앙이 있기는 한데.

‘그것들은 몬스터라고 부르기가 좀 그렇지.’

응축된 혼돈에 의해 탄생한 특이한 현상 혹은 영물에 가까웠으니.

-꾸욱.

커다란 몬스터의 발을 옆으로 밀어 버리고 시선을 돌렸다.

황량하다.

그걸로 끝났으면 좋으련만.

“덕춘아, 저거 해골 같지?”

“그에에.”

십자가 형태로 박힌 말뚝에는 두개골을 엮어 만든 화환이 매달려 있다.

진짜 꽃까지 눈구멍이랑 콧구멍에 넣어 놔서 그로테스크한 느낌마저 든다.

누군가의 심볼인가.

아니면 악취미를 가진 놈의 장식?

“시스템도 안전지대가 아닌 중립지대라 하긴 했다만. 이건 좀.”

어디 꽃동산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

에휴. 됐다.

당장 근처에 적이 없다는 것에 만족하자.

[96층-중립지대]

-PK 가능.

-상처가 재생됩니다.

-안전지대가 일부 존재합니다.

-사망자는 90층과 96층을 체크 포인트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자세히 메시지를 살폈다.

살인 가능.

그나마 회복 옵션은 달려 있고.

“안전지대가 있긴 하네.”

아마 저게 메인이 아닐까 싶다.

체크 포인트야 뭐, 다시 등반할 때 바로 이동할 수 있다는 뜻일 거고.

사실 내게 크게 의미 있는 건 아니다.

이미 91층부터 시작해서 대부분의 곳을 프리패스할 수 있어서.

“사람을 찾아야겠군.”

언제나 그렇듯 모든 인프라는 사람이 모이는 곳에 존재한다.

다른 사람들이 어디에 있는지 살피는 게 우선.

그곳에 모인 이들이 어떤 사람인지 확인하는 건 두 번째 문제다.

그리고 다행히 난.

-띠링.

[냥냥펀치]: 공듀듀! 어디냥?

나와 같이 96층으로 올라온 녀석이 있다.

[쁘띠공듀]: 공듀는… 요기가 어딘지 모르게써용

[냥냥펀치]: 으에? 광장 아냥?

“광장?”

눈을 깜빡이다 주변을 살폈다.

아, 설마.

“또 나만이냐!”

“그에에.”

나만 이상한 데 떨어진 거야?

행운 스탯 이 자식아, 말 좀 해 봐.

네가 하는 일이 뭐냐고.

급 스트레스가 쌓였지만 고개를 저었다.

그냥 냥펀이 운이 좋은 거로 치자.

[냥냥펀치]: 여기 안전한 곳도 있는데 무법지대도 있댕

[쁘띠공듀]: 무☆법☆지☆대?

[쁘띠공듀]: 연약한 공듀는 그런 거 무서운 거에오……

[냥냥펀치]: ?? 너가 아니라 널 만난 사람이……

커뮤니티를 껐다.

그나마 사진 스킬로 냥펀이 주변 광경을 찍어 보내 주었기에 비교할 수 있었다.

결과론적으로 말하자면.

“조졌군.”

냥펀이 보내 준 사진과 단 한 군데도 겹치는 부분이 없었다.

예상 하나 한다면 역시 그거지.

무법지대.

아무래도 그쪽으로 떨어진 모양.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그래도 95층에서 충분히 쉬고 들어와서 체력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그리고 하나 더.

-사아아아악!

저 멀리, 사막인지 돌산인지 모를 곳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포착됐다.

해진 천 쪼가리로 목과 입을 가린 채 고글을 낀 녀석.

놈이 도마뱀 같은 것을 타고 이동하고 있었다.

불현듯 드는 생각 하나.

“생각해 보니 어릴 때 읽었던 책에 이런 것도 있던 것 같은데.”

[파이어 밤(SSS) Lv.9]

-콰아아아아앙!

연달아 폭발을 일으켜 그곳으로 날아갔다.

갑작스러운 굉음에 놀란 듯 도마뱀이 파다다닥 다리를 움직였지만 늦었다.

-투웅.

나름 푹신한 도마뱀.

그 위에 올려진 안장에 착지했다.

“너, 너 뭐야!”

“지나가던 행인인데. 아. 맞다.”

척. 엄지를 세웠다.

“히치하이킹.”

분명 책에서 봤다.

이렇게 하면 공짜로 차를 탈 수 있다고.

* * *

성공적으로 히치하이킹을 한 후 도착한 곳.

그곳은 마을이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토대를 쌓아 만든 건물이 없었으니까.

천막.

십여 개의 천막으로 이루어진 유목민의 터전에 가까웠다.

그냥 느낌만 그런 게 아니다.

“메에에에.”

“메에에.”

염소와 양 같은 동물도 같이 키우고 있다.

지구에 있는 것과 모양이 좀 다르기는 했지만 느낌은 비슷했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유목민들이 말 대신 도마뱀을 탄다는 것 정도.

‘드래곤 산맥 같네.’

94층에 있던 드래곤 나이트가 타고 다니던 용종 몬스터도 따지고 보면 드래곤이니까.

거기 있던 놈들은 잘 살고 있으려나.

피식, 그때의 생각이 나 웃는데 옆에 있던 녀석이 삐죽 입술을 내민다.

“뭐가 그렇게 웃겨?”

“그냥, 전에 있던 일이 떠올라서. 그때도 막 와이번 타고 그랬거든.”

“와이번을 어떻게 타.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진짠데?”

“10살짜리도 안 믿는 거짓말이구만. 이상한 아저씨야.”

“아니, 진짜. 아저, 뭐?”

내가 아저씨 소릴 들을 정도는 아니지 않나?

따지고 보면 NPC인 본인이 제곱으로 나이가 더 많을 텐데.

사람이 너무 어이가 없으면 말문이 막힌다는데 이걸 보고 하는 말인 것 같다.

스윽.

나도 모르게 녀석의 머리통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졌지만 참았다.

일단은 나를 데리고 여기까지 와 준 녀석 아닌가.

이름이 그러니까.

“테이준.”

“왜?”

“여기 모인 이들은 다 같은 무리가 아닌가?”

일단 궁금한 걸 물었다.

유목민이란 기본적으로 가족 중심으로 돌아다닌다고 들었다.

물론 이곳은 탑이니까 조금 다를 수도 있겠지만.

지금 분위기는 거의 모르는 사람들을 모아 둔 것 같다.

살짝이지만 경계심까지 느껴질 정도.

“이쪽은 처음인가 보구만.”

날 위아래로 훑던 녀석이 고개를 끄덕인다.

“반은 모르는 사람. 몇몇은 오다 가다 마주친 애들. 나머지는 뭐, 좋은 인연은 아니고.”

툭툭.

손바닥을 턴 녀석이 모닥불에 장작을 던진다.

어느덧 해가 져 어두컴컴한 하늘.

제법 날씨가 쌀쌀했다.

“그냥 어쩔 수 없이 모여 있는 거야. 밤에 돌아다니는 건 위험하니까. 특히 사람은.”

“사람이 위험하다? 난 왜 데리고 온 거지. 처음 본 사이라 신뢰도 없을 텐데.”

“…진짜 또라이야? 내가 데리고 온 게 아니라 멋대로 탄 거잖아.”

아하.

자의적으로 태워 줬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군.

그런 나를 보며 한숨을 내쉰 녀석이 말을 이었다.

“내가 코가 좋은데. 넌 미친놈 같긴 하지만 쓰레기 냄새는 안 나.”

절그럭.

놈이 품에 꽂아 놓은 권총을 만지작거린다.

“여차해도 별문제 없을 거고.”

은은한 협박.

자신에게 해를 가할 것 같으면 지체 없이 쏴 버리겠다는 뜻이다.

그런데.

‘총에 맞으면 아픈가?’

볼을 긁적였다.

솔직히 이제는 전차포 맞아도 그러려니 할 것 같은데.

끽해야 아파트도 못 무너트릴 거잖아, 그거.

내가 속으로 무슨 생각하는지 모를 녀석이 조잘거린다.

“그리고 일행이 있으면 다른 녀석들도 잘 안 건들거든. 혼자가 제일 위험해.”

“그렇군.”

어쩐지 저기 일행 없어 보이는 몇몇이 떠들고 있다.

같이 밤을 보낼 거냐 어쩔 거냐.

행동력 있는 놈은 천막 주변으로 함정 깔고 있고.

그들을 바라보다 곁눈질로 테이준을 살폈다.

외형만 보면 이제 막 성인이 됐을까 싶었지만 글쎄.

외모로 판단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

[테이준]

-96층 NPC.

-황야의 무법 청년.

-무려 현상금이……!

-아직은 없네요!

현상금이 안 붙어 있기는 하지만 무법자.

아니, 무법 청년이라고 불릴 정도면 자기 한 몸 지킬 능력은 있다고 봐야 했다.

힘없는 자가 무법지대에서 살아남았을 리가 없으니까.

다르게 말하자면.

‘이런 녀석도 밤에 혼자 있는 건 위험하다는 거지.’

이 무법지대에 있는 놈들도 보통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눈을 가늘게 떴다.

놈이 좋지 않은 인연이었다는 무리 3명이 노골적으로 이쪽을 노려보고 있다.

단도로 감자를 깎아 냄비에 넣는 중.

시퍼런 칼날이 제법 예리하다.

일단 얼굴만 기억해 두자.

“마을은 어디에 있지? 이곳은 중립지대인 걸로 아는데. 안전지대도 몇 개 있고.”

“진짜 올라온 지 얼마 안 됐나 보구나?”

“그래. 아는 게 있나?”

어찌 됐든 냥펀도 96층에 있으니 합류해야 한다.

냥펀뿐만이 아니다.

다른 멤버와 인연이 있는 녀석들도 이곳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초코쪼코와 찌리리 요정은 머물고 있겠지.

97층부터는 최상층에서도 최상층이니까.

준비할 수 있는 건 이곳에서 최대한 준비해야 했다.

“거긴 인원 제한 있어서 못 들어가.”

이어 녀석이 말한 걸 요약하자면 이거였다.

안전지대는 제한적이다.

자리가 비기 전까지는 철저하게 바깥에 있는 인원을 배척한다.

운이 좋다면 96층에 올라오자마자 빈자리가 있는 안전지대에 가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나처럼 외부로 튕겨 나가는 것.

덕분에 하나는 알았다.

‘냥펀이 나보다 먼저 포탈을 넘어가서 빈자리를 차지했군.’

차라리 잘됐다.

녀석한테 도움도 받았는데 내가 고생하는 게 낫지.

아쉽지만 안전지대에 들어가는 건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았다.

“흐아아암. 안전지대에 들어갈 생각이면 저쪽 놈들이랑 이야기해 봐.”

길게 하품을 하던 녀석이 한쪽 무리를 가리켰다.

덩치 크고 우락부락한 놈들이 몰려 있는 곳.

“저기 양 키우는 애들 보이지? 종종 안전지대나 다른 마을에 들러서 장사를 해.”

양털이나 염소젖, 기타 고기나 유제품 등을 만들어 팔거나 물물교환 한다나.

“안전지대에 거주하는 건 못 하겠지만 잠깐 들러서 볼일 볼 수는 있을 거야.”

“잠깐 들르는 것으로는 부족한데.”

“욕심도 많아라. 안전지대는 아니지만 괜찮은 마을도 몇 있는데. 그럼 저기.”

어깨를 으쓱인 녀석이 아까 본 놈들을 턱으로 가리킨다.

좋지 않은 인연이라 했던 놈들.

노골적으로 적의를 보내던 삼인방이었다.

“졔네는 적극적으로 안전지대에 들어가려는 놈들이야.”

“적극적?”

“엉. 말했잖아. 안전지대는 인원 제한 있다고.”

쓱싹.

테이준이 손가락으로 목을 긋는다.

“자리는 없으면 만들면 되잖아?”

참으로 목적이 분명한 녀석들이었다.

살짝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치는 타이밍.

“어이, 뭘 자꾸 꼬나보지?”

“테이준, 내가 분명 아는 척하지 말라 했을 텐데.”

“눈깔 깔아, 이 자식아!”

인상을 쓰던 삼인방이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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