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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674화 (674/740)

674화 징벌 대상

예전 생각이 난다.

언제였더라. 무한 코인을 얻고 위로 올라가고 릴카의 퀘스트를 받고.

알리오스에게 가기 위해 몇 번이나 죽었었다.

탑에 들어오고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았던 시점이었다.

이후에도 몇 번 죽기는 했지만 한동안은 죽을 일이 없었는데.

“왜! 왜 자꾸 살아나는 거냐! 왜애애애!”

“아, 시끄러워. 자꾸 소리를 지르냐. 사람 무안하게.”

이번에는 좀 달랐다.

다시 찾아온 피의 제단.

이걸로 몇 번째더라.

대충 10번은 된 것 같다.

달리 말하면 놈에게 그만큼 많이 죽었다는 뜻인데.

빠르면 하루에 2번도 올라왔으니.

‘벌써 일주일이 지났군.’

세금 납부의 날까지 일주일가량 남았다.

뭐, 상관은 없다.

이전 계획이라면 위협적인 세금 납부의 날이 오기 전에 놈을 처리하고 끝내려 했는데.

“오? 못 본 사이에 많이 지었다? 밤새웠냐?”

“아, 안 돼!”

“돼!”

- 콰아아아앙!

지금은 마음이 바뀌었다.

놈이 하도 내게 더럽게 굴어서 나도 꼬장을 부릴 생각.

세금 내는 날?

위험하지.

근데 그날 하루 안 가고 다음 날 가면 되잖아?

위험한 날이 한 달에 하루면 개꿀 아닌가.

고로 나는 천천히, 하지만 꾸준하게 놈을 괴롭혔다.

저기, 관중석을 만들기 위해 기초공사 해 둔 곳을 부숴 버리니.

“끼에에에엑!”

사람 말을 포기한 파히루가 비명을 지른다.

목책을 세우고 흙을 쌓아 다지고 있던 모양이다만.

“야야, 저거 부실 공사야. 다시 지어.”

“미친놈아!”

“아니. 잘 봐. 생각해 보자고. 95층에 있는 사람들이 싸우는데 저렇게 지으면 관중석 다 무너지지.”

그치 않나?

“토대를 만든 후에 마법진과 아티팩트로 보강하는 거다! 망할 놈아!”

아님 말고.

내가 포션이랑 장비는 만드는데 건축 쪽은 잘 모르거든.

미리 말을 하지.

귓등으로도 안 들었을 거지만.

적당히 귀를 후비며 앞으로 걸었다.

어둠 속 놈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걸어갈 때마다 시한폭탄을 심을 뿐.

붉은 마법진이 땅에 스며들 때마다 놈의 비명이 들린다.

“이, 이래 봤자 서로 손해다! 날 방해해 봤자 너 또한 이곳에 묶여 있어야 한단 말이다!”

“에이, 괜찮아. 더 머물지, 뭐.”

“그아악! 이런 찢어 죽일 놈이!”

“꼬우면 죽이든가.”

“개, 개같은! 이런 개──!”

이제 말도 더듬네.

말은 이렇게 했지만 녀석이 한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요 며칠 괴롭혔더니만 사고방식이 정상화된 건가.

나름 날카로운 통찰력이었지만 하나 틀린 점이 있었다.

“그거 실패하면 처벌당하잖아. 그럼 이게 맞지.”

묶여 있더라도 퀘스트를 클리어해야 살아남는 거다.

녀석이 먼저 증명을 완료한다?

‘그럼 내가 당하는 거거든.’

시스템은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처벌할 생각이다.

만약 처벌이라는 게 그냥 죽고 끝나는 거면 괜찮았을 거다.

운 나쁘게 실패하더라도 코인 하나 까면 되니까.

시스템이 그걸 모를까?

알고 있으니까 페널티로 사망이 아니라 처벌이라고 써 둔 거겠지.

내 예상대로라면 내가 실패할 경우.

‘진짜 NPC로 만들어 버릴 거 같단 말이야.’

아무런 근거 없는 생각은 아니다.

시스템은 새롭게 사용할 NPC와 장비를 원하니까.

피의 제단이라는 장치가 그런 역할이고.

저번에도 대놓고 나를 원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번 퀘스트 무슨 수를 써서든 놈보다 빠르게 클리어해야 한다.

이미 밑 작업은 진행해 뒀다.

커뮤니티를 통해 영혼석을 뿌리고 숭배자의 영혼을 담아 달라고 했으니까.

갈매기를 통해 현자 존 트레일러에게도 상황을 전달했다.

아무튼.

“오늘은 이만 갈게! 이따 또 봐!”

“오지 마라! 오지 마!”

오늘은 이만하고 돌아갈 생각이다.

방금 터트린 것 말고는 무너트릴 게 딱히 없는 것 같아서.

전보다 움직이는 게 편하다.

망할 어둠은 여전했지만 장애물은 많이 사라졌다.

내가 주기적으로 폭발시킨 것도 있기는 하지만.

‘놈도 일단 투기장을 만들려면 주변을 정리해야 하거든.’

폭탄 심어 두고 그 위에다가 건물을 세울 수는 없지 않은가.

아공간 팔찌에서 수정구를 꺼내 마력을 불어 넣었다.

들어갈 때는 마법진을 통해 들어갔는데 나올 방법이 마땅치 않아 구한 물건.

대충 지정 위치로 돌아가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우우우우웅.

[95층-파우저 시티로 이동합니다.]

급변하는 시야와 함께 떠올랐던 발에 단단한 지면이 닿는 느낌이 든다.

안에서 제법 많은 시간을 보냈는지 해가 저물고 있다.

[클린(S) Lv.MAX]

[샤워(S) Lv.MAX]

-사아아아.

“좀 살 것 같네.”

“그에에.”

전투 후에는 씻는 게 최고지.

펠라인 세트에 쾌적화 옵션이 달려 있기는 하지만 싸우다 보면 땀이든 뭐든 묻기 마련이라서.

“왔냥?”

“일은 좀 괜찮고?”

“그럼! 내가 하는 일인뎅. 이젠 안정적이얌.”

내가 놈과 뒹구는 동안 냥펀을 비롯한 나머지 일행들은 도심을 안정화했다.

꽤 급진적인 행보기는 했지만 결과는 좋았다.

빈부 격차?

그거야 어쩔 수 없는 거니까 상관없다만.

“기회만 공정하게 주어지면 나머지는 알아서 하는 거지.”

예전과 달리 본인이 노력하면 어느 정도 부를 쌓을 수 있게 사회 시스템을 손봤다.

누구든 일할 수 있고 상식적인 보상을 받는다.

반쯤 협박하고 회유를 통해 이룬 거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전보다 살 만해졌으니 나머지는 알아서 해야지.

아직 자잘한 문제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문제다.

“그래서. 알아봤어?”

“엉. 지하상가도 우리가 먹었잖앙. 보니까 다른 암시장에서 물건 구하는 거 같던뎅.”

이들에게 주어진 또 다른 미션.

파히루의 움직임을 추적하는 것이다.

시장 생태계에 깊게 관여한 이유?

공략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놈을 확인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시스템에 내건 아이디어.

나 같은 경우에는 숭배자를 바치는 거였고.

‘놈은 투기장을 만드는 거였지.’

입 밖으로 뱉어 버린 이상 주워 담을 수 없다.

놈은 어떻게든 시스템에게 투기장이라 불릴 만한 것을 만들어 내야 한다.

대충 허허벌판에 철창 몇 개 달아 두고 투기장이라고 우길 수는 없다는 것.

인증받을 수준의 시설과 구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내가 파히루를 직접적으로 공격하기보다 건축물을 우선 타격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고.

‘그거 말고도 보험을 하나 더 들어 두기는 했지만.’

그거야 최후의 수단이다.

당장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중요한 건 이거.

“장비나 재료 사는 것도 슬슬 한계일 거얌. 셀프로 구하기 시작할걸?”

“가뜩이나 인력도 없는 놈이니 작업이 더 늦어지겠군.”

놈은 혼자다.

그나마 있던 무리라고 해 봤자 거지 무리였는데 지금은 없다.

다들 어딘가에 속해서 일하고 있으니.

그렇다면 재료 수급부터 공사, 투기장 룰 설립 및 운영 등등.

이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해야 한다는 거다.

절대 쉬울 리가 없지.

심지어 나도 하루가 멀다 하고 가서 방해하는데.

도심 시장권도 우리가 차지해서 물건을 사는 것도 힘들다.

자체적으로 재료를 모으고 가공해야 한다는 뜻인데.

‘말이 안 되지. 현실적으로.’

심지어 얘는 돈도 없다.

거지가 돈이 어딨을까.

그나마 녀석에게 남은 방법이 있다면.

“숭배자 쪽에서 움직인 건 없고?”

“일단은? 파악한 애들 중에는 없엉.”

플래티넘 등급인 녀석이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는 것인데.

내가 보기에는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애초에 95층은 시스템에 납부할 전용 화폐가 존재한다.

당연히 다른 층에는 없는 재화다.

고로 다른 환급성 좋은 보물이나 장물을 가져와 돈으로 바꿔야 한다.

“지하상가 쪽에도 수상한 장물은 없다 했궁.”

이것도 거의 막혀 있는 상황이다.

궁지에 몰린 건 녀석이다.

“곧 놈이 밖으로 나서겠군.”

“그칭. 안에 있어 봐야 뭐 없잖아.”

지킬 것도 안 남은 피의 제단에 있어 봐야 뭘 할 수 있겠나.

밖에 나가서 뭐라도 하는 거지.

이때가 중요하다.

피의 제단에서는 놈을 상대하기가 쉽지 않다.

망할 아티팩트 때문에 시야가 제한되니까.

놈이 가지고 있는 무력 자체도 약하지 않고.

하지만 놈이 밖으로 나온다면?

‘그때는 말이 달라지지.’

가볍게 손가락을 두드렸다.

슬슬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도 될 것 같다.

잠시 쉬고 싶었지만 그럴 시간은 없다.

바로 밖으로 나가자 냥펀이 고개만 빼꼼 내민다.

“어디 가냣!”

“밖에, 찌리리 요정 만나러. 슬슬 준비해야지.”

“아앙. 그거. 잘해 보라구!”

수정된 95층 공략법.

1단계. 부실 공사 완료.

2단계. 천벌을 시작할 때다.

* * *

사람에게는 염치라는 게 있고 체면이라는 게 있다.

나 또한 이런 짓 저런 짓 많이 하고 살았다.

세상이 무너지고 나서는 비굴하게 살았던 적도 있다.

그때는 힘이 진리인 시기였으니까.

적어도 사회가 어느 정도 정상화되기 전까지는.

간단히 말해서 상황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적에게 굽히고 들어갈 멘탈이 있다는 것인데.

‘이 새끼는 진짜다.’

눈앞에 있는 녀석은 보통이 아니었다.

철면피?

아니다.

그냥 이 녀석에게 자존심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헤헤. 제가 또 일 하나는 기똥차게 합니다요. 봐서 알잖아요.”

“…냐앙. 공블아이, 얘 맞냥? 진짜루?”

허름한 꼴로 머리를 긁적이며 굽신거리는 녀석.

그렇다.

파히루다.

그런 놈을 보며 냥펀이 나를 힐끗거린다.

여러 감정이 뒤섞인 표정이었는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

“그니까, 일자리를 달라고?”

“힘쓰는 것도 잘하고! 그 호객 행위라도 필요하면 제가 춤이라도 추겠습니다!”

춤은 필요 없다.

진짜 춰야 할 상황이 온다면 내가 출 거고.

일단은 댄싱 마스터의 왕관도 받아 온 몸이니…….

아니, 이건 필요 없고.

상식 밖이 일이 일어나니 나도 잠깐 뇌 정지가 온다.

우리가 찾을 필요 없이 직접 나온 건 좋은 일이다.

‘혹시나 기습하지는 않을까 신경 쓰였는데.’

나야 무한 코인을 가지고 있어서 상관없지만 다른 이들은 아니다.

당장 옆에 있는 냥펀도 그렇고.

나도 녀석에게 몇 번 죽었다.

놈에게 유리한 환경에서 싸우긴 했지만 그걸 떠나도 강한 적인 건 분명했다.

지금도 내색은 안 하지만 냥펀에게 허튼짓을 벌일까 싶어 주시하는 중이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에이, 뭘 또 그렇게 까칠하게. 제가 안에 뭐 하기 전에는 서로 좋지 않습니까. 예? 굳이 거기까지 안 와도 되고. 서로 좋자 이거지요. 헤헤.”

얍삽한 표정을 지으며 손바닥을 비비는 녀석.

세상 정직한 녀석을 봤나.

어디 도둑질이라도 하진 않을까 했더니만 직접 돈을 벌러 왔다.

그러고 보니 이 자식, 구걸은 할지언정 도둑질은 안 했었지.

“이게 보니까, 어. 우승 상품도 따로 마련해야 하는데 마땅치가 않더라고요.”

쭈글거리던 녀석이 슬쩍 내 눈치를 봤다.

나도 모르게 이마를 쳤다.

와. 이게 있었네.

설마 그래도 그렇지.

“우승 상품도 없이 투기장 만든다 했었다고?”

“그때는 따로 생각나는 게 없었어서. 헤헤헤.”

진짜 그냥 아무 아이디어나 그냥 뱉은 거였구나.

눈앞에 있는 것만 생각하는 놈이라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쿡.

냥펀이 옆구리를 누른다.

“어쩔 거냥?”

“어쩌긴 뭘 어째. 우리가 내세운 게 뭐냐.”

“일하고 싶은 사람에겐 일자리를 준다?”

“그럼 약속은 지켜야지.”

눈을 동그랗게 뜬 냥펀이 내 발을 밟는다.

‘제정신이냐?’ 하는 눈빛인데 제정신이 맞다.

“보수 좋은 곳으로 보내 주지. 일은 힘들 거다.”

“아이고! 얼마든지요!”

90도로 인사를 박은 녀석이 실실 웃으며 직원의 안내에 따라 이동한다.

저 멀리 떨어지는 걸 확인한 냥펀이 나를 잡고 흔든다.

“그냥 지금 잡으면 되잖앙! 뭐 하는 건데!”

“악! 야야야! 야!”

아오, 쪼그만 게 왜 이렇게 힘이 세.

살짝 정신없었지만 이게 최선이다.

놈은 제정신이 아니다.

저 녀석에게 끌려다니는 순간 어떤 변수가 생길지 알 수 없다.

그러니 나도 조심할 수 있는 부분은 조심하고 싶다.

꾸욱. 내게 달려드는 냥펀의 머리를 밀어냈다.

“지금은 하고 싶은 거 하게 놔둬. 그게 안전해.”

내가 아니라 너희가.

탑에서 무한 코인을 가진 건 나뿐이니까.

“녀석이랑 싸우는 건 내 몫이거든.”

물론 진짜로 혼자서만 들이박을 생각은 없다.

뒤로 시선을 돌렸다.

“찌리리 요정, 됐어?”

“네. 이번에는 제대로 됐네요.”

녀석이 찾아왔다는 말을 듣자마자 찌리리 요정을 불렀다.

우리가 대화하는 동안 그녀가 한 것이 있었으니.

[SSS급 권능, 징벌자의 눈이 지정한 적을 주시합니다.]

[징벌 대상: 외로움의 파히루]

놈을 징벌 대상자로 삼는 것.

찌리리 요정이 입꼬리를 올린다.

“이제 어디에 있든 벼락을 꽂을 수 있어요.”

이걸로 계획 2단계, 천벌 준비 완료.

다음 단계로 간다.

“냥펀, 물자 준비해 둔 거 있지? 바로 시작하자.”

“으으으. 알았엉! 좀만 있으라구.”

작전 제3단계.

너네 집 좋더라를 시작할 때다.

피의 제단을 강탈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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