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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672화 (672/740)

672화 시스템 퀘스트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

[업무 방해를 가하는 NPC의 처벌이 논의됩니다.]

[대상자: 쁘띠공듀]

업무를 방해하는 NPC.

당연히 파히루를 뜻하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 대상자가 나?

순간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등 뒤로 흐르는 식은땀.

잊고 있었다.

아니. 당연한 이야기지만 지금까지 등반가의 위치에서 움직였기에 크게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른 곳과 달리 95층은.

‘등반가도 NPC 취급을 받는다.’

내 권능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였다.

같은 NPC끼리는 정보를 파악하기 힘들었으니까.

‘이거 일이 제대로 꼬인 거 같은데?’

그동안은 파히루를 잡으며 생산 활동을 했기에 내가 하는 일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야 당연하지.

내가 조직과 지하상가를 장악하면서 생산량이 올라갔으니까.

경제활동에 있어서는 하자가 없었다.

다만.

피의 제단을 기준으로 생각한다면?

‘그게 시스템에 있어 다른 생산품보다 훨씬 큰 가치를 가지고 있다면?’

그때는 말이 달라진다.

파히루를 방해한다는 건 따지고 봤을 때.

“시스템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도록 방해했다는 것.”

“그에에.”

덕춘이 또한 같은 결론에 다다랐는지 낮게 울었다.

예전이라면 문제없었을 거다.

난 등반가고, 시스템의 영향력을 받을지언정 시스템적인 제약을 받을 일이 거의 없었으니까.

그나마 있었다면 90층으로 넘어올 때 비정상적으로 성장했을 때 정도.

그때도 잠시 스킬 성장이 멈췄을 뿐, 나 자체에 대한 처벌은 없었다.

나도 그걸 아니까 그동안 시스템의 의도는 죄다 무시하고 행동했던 거고.

내가 가진 유형 중 하나는 정의할 수 없는 혼돈.

시스템 엿 먹으라고 온갖 짓을 한 결과, 버그 메시지도 수없이 받았다.

어디까지나 내가 등반가였기에 할 수 있었던 일들.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시스템의 판단에 따라서는 직접적인 처벌도 가능할 테니까.

“생각해 보면 킬더레스도 시스템적 제약은 조심했었지.”

99층까지 올랐던 킬더레스조차 시스템의 처벌을 받는 건 꺼렸다.

10층에서 처음 봤을 때 실수로 날 때렸다가 이런저런 편의를 봐준 것도 그 때문이고.

뭐, 결과적으로 그게 인연이 되었지만.

중요한 건 이거다.

“망했군.”

시스템의 입장에서 난 눈엣가시라는 것.

이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었다.

다행이라면 시스템은 말 그대로 시스템인지라 사적인 감정은 없다는 것 정도?

이곳에 온 것도 파히루를 방해해 피의 제단을 멈춘 것에 대한 대응이라 보는 것이 타당했다.

그 증거로.

[95층, 임시 NPC의 로그를 분석]

[피의 제단 관리자, 파히루의 항의의 정당성을 파악 중입니다.]

그동안 내가 해 왔던 것이 아니라 95층에 대한 것만 분석하고 있다.

“그동안 모습이 안 보여서 뭐 하나 했는데 이런 꼼수를 노리고 있었군.”

솔직히 감탄했다.

왜 기습도 안 하고 일을 빙빙 돌리나 했네.

설마 시스템에 항의할 줄이야.

오케이.

일이 터진 건 맞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서 손가락이나 빨 수는 없는 일.

나도 나름대로 대비해야 한다.

“일단 여기서 빠져나가는 건 안 되는 거 같고.”

혹시 몰라 타락 천사의 검을 사용해 봤지만 공간이 찢어지지는 않았다.

아마 처벌 대상을 잠시 가두기 위해 생성된 곳이라 그런 거겠지.

힘으로 부술 수 있는 곳이었다면 NPC들도 빠져나갔을 거다.

그럼 남은 건.

‘처벌받았을 때의 대응. 그리고 여기서 나갔을 때 할 일들.’

이 정도가 있다.

상황은 좋지 않았지만 마음은 평온했다.

당장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긴 것도 아니고.

“혼자 있어서 다행이야.”

다른 사람이 있었으면 내 닉네임이 공개됐을 텐데.

만약 다른 녀석들이 함께 이곳으로 왔다면.

“어으으.”

나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그건 안 되지.

상황은 나쁘지만 인권은 지켰다.

[임시 NPC, 쁘띠공듀의 현황을 확인.]

[피의 제단이 중요도와 역할에 대한 인식 부족을 인지합니다.]

[피의 제단의 특수성을 인정합니다.]

[공개적 사용이 불가능한 장치입니다.]

[탑 유지에 필요한 장치입니다.]

[해당 장치 관리자의 자질이 의심됩니다.]

.

.

.

끊임없이 올라가는 메시지.

일단 이것에 집중했다.

혹시라도 일방적으로 내게 불리하게 돌아가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시스템은 빡빡하기는 해도 공정하다.

이번 일이 벌어진 데 있어 파히루의 몫도 있으니 책임이 있다면 공동 책임이지.

과연 결과는 어떻게 나올 것인가.

그 부분에 집중했다.

[피의 제단은 제거할 수 없습니다.]

[피의 제단으로 인한 등반 제약이 확인되었습니다.]

[운영 방식 개편이 필요함을 인정합니다.]

생각보다 자기 객관화를 잘하는 시스템.

이내 주르륵 올라오던 메시지가 멈췄으니.

[새로운 방식으로 피의 제단을 유지하기로 결정.]

[아이디어를 수집합니다.]

[그때까지 임시 NPC 쁘띠공듀에 대한 처벌이 보류됩니다.]

[그때까지 반쪽짜리 혼돈의 파편, 파히루에 대한 처분이 보류됩니다.]

“반쪽짜리 혼돈의 파편?”

마지막 메시지에 집중했다.

녀석이 괴상한 건 알고 있었지만 혼돈의 파편과 비슷한 존재일 줄은 몰랐다.

어쩐지 혼돈 수치가 피부로 느껴질 만큼 높다 했더니만.

몰랐던 정보를 얻은 건 좋긴 한데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처벌이 보류됐다.

당장은 괜찮을지언정 나중에 어떤 식으로 될지 알 수 없다.

물론 그 전에 95층을 벗어나면 상관없겠지만.

“잠깐. 아이디어라는 거 나도 제시할 수 있나?”

슬쩍 메시지창을 향해 말을 걸었고.

[해당 문제 당사자의 의견도 받습니다.]

시스템은 쿨하게 오케이 했다.

이런 오픈 마인드 시스템 같으니.

툭툭. 손가락을 두드렸다.

“잠깐만.”

피의 제단을 멈추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다르게 이용할 수는 있다.

어차피 비공식적으로 피의 제단을 가동해야 한다면.

“역으로 내가 이용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만약 내가 생각하는 대로 진행할 수 있다면 오히려 놈에게.

아니, 숭배자 전체에 타격을 입힐 수 있을지도 모른다.

메시지창을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숭배자들을 피의 제단으로 보내고 싶다.”

나를 함정에 빠트렸으니.

이번에는 내가 함정을 팔 차례다.

* * *

[기존 위치로 전송합니다.]

-파아아앗!

빛과 함께 시야가 돌아온다.

이미 전투가 끝났는지 상황 수습 중인 도심.

예상대로 별다른 피해는 없었다.

“야아아아! 어디 갔던 거냥!”

“으억!”

등짝에서 느껴지는 충격.

등을 문지르며 돌아보니 냥펀이 보였다.

녀석 입장에서는 전투 중 갑자기 내가 사라진 거로 보였겠지.

“잠깐 시스템에 불려 갔었어.”

“시스템?”

“어. 시스템.”

간단하게 녀석에게 이야기를 전달했다.

파히루의 노림수.

그리고 내가 한 것까지.

간단히 요약하면 피의 제단의 재료로 숭배자를 보내 버리겠다는 거였다.

“미, 미쳤냥?”

“그래도 성공만 하면 대박이지 않아?”

“애초에 그게 가능한 거냐 이거징.”

가능한가라.

사실 나도 확답은 어렵다.

그도 그럴 것이.

“95층에도 숭배자가 있긴 해. 충분한지는 모르겠지만.”

“찾아내기도 힘들걸? 여긴 다 섞여 있자낭.”

그렇다.

지금까지 봤을 때 95층에는 숭배자가 거의 없다.

있더라도 권능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아 파악하기 힘들고.

그 말인즉슨.

“다른 층에서 데리고 와야 한다는 거지.”

이 부분.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불가능하다.

다른 층으로 이동할 수 있는 건 밑에서 올라오는 방법뿐이니까.

당연히 NPC는 등반할 수 없다.

몇몇 예외가 있기는 하다만.

‘얼마 되지도 않고 그 NPC들이 숭배자인 데다가 이곳까지 찾아올 확률은 없다고 봐야지.’

나도 그 정도는 안다.

그럼에도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았으니.

“95층의 지배자가 되면 돼.”

95층의 지배자는 피의 제단을 관리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내가 잡은 숭배자를 제단으로 보내는 것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다는 뜻.

그뿐만일까.

쁘찡연합도 숭배자를 잡는 데 열심이다.

적어도 숭배자가 부족할 일은 없다는 것.

“그렇다 해도 연합 사람들은 관리자가 아니잖앙.”

맞는 말이다.

설사 내가 95층의 지배자가 되더라도 내가 잡은 녀석만 제단으로 보낼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말이야.

“가능해.”

내겐 방법이 있다.

“부활 사업.”

연합 사람들에게 영혼석을 뿌린다.

그걸로 숭배자들의 영혼을 담아 가져와 호문쿨루스로 만들면 된다.

호문쿨루스는 NPC 취급을 받으니 제물로 바치는 데에도 문제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지배자가 된 후 현자, 존 트레일러를 이곳의 대표자로 세우면 돼.”

나와 인연이 있는 NPC를 대표자로 세울 수 있다는 건 이미 91층에서 증명됐다.

알리오스를 그곳의 대리자로 두었으니까.

심지어 대표자의 권한으로 다른 NPC도 몇 명 데리고 올 수 있다.

알리오스도 연인인 페니를 데리고 오지 않았던가.

‘존 트레일러 역시 등반가 시절 92층까지 올라간 강자야.’

95층의 관리자를 맡기에 부족함이 없다.

심지어 현자가 파괴의 요정인 헤이다와 오델토, 호문쿨루스인 제네타까지 데리고 온다면?

사실상 95층에서 그들을 건드릴 사람은 없다.

드렉프리와 트랄로우도 옆에서 도움을 줄 거고 말이지.

물론 존 트레일러가 동의해 줘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지만.

‘설득은 내 몫이지.’

그래도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보단 낫지.

NPC들과 좋은 인연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시도조차 불가능했다.

이걸 떠나서 파히루는 잡아야 한다.

“95층을 클리어할 거면 결국 놈과 담판을 지어야 해.”

피의 제단을 운영하는 방법을 바꾼 것 역시 충분한 업적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지배권을 확보하면 위로 올라갈 방법이 생길지 모른다.

당장 94층에 있던 에이션트 드래곤도 지배자의 힘을 이용해 오필리아를 위로 올려 보내지 않았나.

물론 나도 그럴 수 있을 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가능성은 충분하다.

거기에 더불어.

“어차피 놈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고.”

내가 시스템에 아이디어를 낸 것처럼 놈 또한 뭔가를 할 게 분명했다.

봐라.

[외로움의 파히루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합니다.]

녀석 또한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내가 멀뚱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어서 그런가.

냥펀이 쿡쿡 옆구리를 찌른다.

“거기 뭐라도 있냥?”

“메시지가 떠서. 놈도 움직였어.”

녀석이 제시한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뭔가 했더니만.

[파히루가 투기장을 제시합니다.]

[투기장의 사망자를 제물로 바칠 것을 약속합니다.]

“이 녀석, 꽤나 고전적인 방법을 쓰네.”

또 얼마나 대단한 걸 가지고 올까 했는데.

그만큼 효율적인 선택이라는 건 부정하지 못하겠다만.

약아빠지지 않았는가.

저 말대로라면 본인은 투기장을 관리하겠다는 건데.

즉, 본인은 싸우지 않으면서도 제물을 확보하겠다는 거다.

그렇게 놔둘 생각은 없지만.

[시스템이 아이디어의 실행 가능성을 확인하려 합니다.]

[처벌 대상자들은 아이디어를 증명하시오.]

-띠링.

메시지와 함께 퀘스트창이 뜬다.

[증명-시스템 퀘스트]

-피의 제단을 유지할 새로운 방법을 찾아 증명하시오.

-보상: 처벌 취소.

-실패 시 처벌당합니다.

보상이랄 것도 없는 퀘스트였지만 달게 받았다.

이걸로 놈 또한 직접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을 테니까.

적어도 모습을 숨기지는 못한다.

놈을 잡고 지배자 자리를 빼앗아야 하는 내 입장에서는 반길 만한 이야기.

대충 모양이 잡혔다.

놈은 분명 피의 제단을 투기장으로 꾸며 싸울 거다.

투기장 룰도 자기 입맛에 맞춰 만들겠지.

그러니.

“선빵 필승.”

내가 먼저 간다.

드렉프리를 호출했다.

“대두상 불러. 피의 제단으로 향하는 전송 마법진을 만든다.”

피의 제단은 한 달에 한 번만 가동된다.

즉, 세금을 납부하는 날이 아니면 거기서 죽는다고 진짜 NPC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

그냥 코인 한 번 까이고 말겠지.

한번 끝까지 달려 보자.

세금 납부의 날까지 남은 건 15일.

그때까지 녀석과 내가 할 종목은 하나다.

“데스 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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