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 갇혀 고인물-671화 (671/740)

671화 방해자

세력이 전부 모였다.

나와 냥펀, 큰 갈고리는 물론이고.

“잘 지냈나 보네? 캬. 얼굴이 반짝반짝!”

“진짜 반짝반짝하게 만들어 드려요?”

“나한테만 너무 엄격하다니까. 그게 매력이긴 하지만!”

라이벌 관계인 찌리리 요정과 초코쪼코도 모였다.

평소라면 이 정도 인원이 모일 일은 없었겠지만.

“이블아이, 이 짓을 얼마나 할 생각이지?”

“겉으로는 다들 행복해하는 것 같다만 불만도 적잖이 쌓이고 있네.”

이번에는 모여야 했다.

부촌을 비롯해 지하상가의 생산 공장을 이용해 가격은 그대로 유지.

그 외 단가를 자체적으로 올렸다.

한마디로 노동 임금, 자재, 설비 등등의 금액이 올랐다는 뜻.

덕분에 노동자와 자재를 납품하는 곳, 기타 사업장은 기뻐했지만.

“기업가 입장에서 봤을 때 이건 손해다.”

정작 기업가는 이윤이 줄었다.

단순히 돈 많이 버는 사람이 적게 받아 가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할 게 아니다.

“내야 할 세금은 많은데 이윤이 적으니 하는 일에 비해 대우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네.”

“마냥 틀린 말은 아니야. 모르는 사람이 보면 펜이나 굴린다고 하겠지만 모든 결정을 내리고 책임지는 자리 아닌가.”

드렉프리와 폴의 말대로다.

지금까지야 적당한 협박과 보상으로 컨트롤하고 있지만 언제 불만이 터질지 알 수 없다.

우리가 일을 벌이기 전까지는 남부럽지 않게 살던 이들이다.

그들 입장에서는 자기 재산을 풀어 남들 배를 불리는 것으로 느껴진다는 것.

나도 딱히 부정하지는 않는다.

정당한 대우는 어느 정도인가.

이건 굉장히 주관적이거든.

만약 여기서 못 해 먹겠다고 자리에서 나오면 어떻게 될까.

‘대체할 사람이 많지 않아.’

욕은 욕대로 처먹고 대가는 대단하지 않다?

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심지어 지금은 안정을 위해 일부 손해를 감수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고 체계가 다듬어지면 적당한 합의점을 찾을 수 있지만 그게 언제일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탑 특성상 언제 어떻게 판도가 바뀔지 모르는 만큼, 다들 인내심이 많은 편도 아니고.

그나마 다행이라면.

“부촌 쪽에서도 부담을 줄여 주니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힘들었어.”

“설득하느라 힘이 좀 들기는 했죠.”

“걔네도 살짝 고인물이라 새로운 게 필요하긴 했을 거양.”

찌리리 요정과 냥펀의 활약으로 부촌도 경제를 풀었다.

쉽지 않은 결정이긴 했겠으나.

“그쪽도 까 보면 구멍이 숭숭 비어 있는 곳이 있거든.”

“95층은 기본적으로 기초 생산품이 메인인데 부촌은 좀 다르지.”

본인들이 잘나간다 이건지 나름 고급화 전략을 사용했다.

문제가 있다면 탑 전체로 봤을 때 그 품질이 엄청나게 좋지는 않다는 것.

그냥 자기 과시.

혹은 95층 내부에서만 통하는 고급 물자를 사용했다.

뭐랄까.

본인들이 만들고 본인끼리 사용하는 거라 해야 하나.

다른 95층 노동자와 차별점을 두는 용도에 가까웠다.

그것도 적당히 하면 상관없는데 지금은 그 정도가 심해진 상태.

결국 놈들도 기본 산업에 뛰어들어야 했다.

메인 거래자는 시스템이고 시스템이 원하는 건 양산품이니까.

우리에게 협조하는 것도 지하상가의 거대한 사업 시설에 한 숟가락 올리려고 하는 거고.

‘부촌의 자본과 지하상가의 생산 능력.’

이 두 개가 맞물려 아직까지는 굴러가고 있었다.

뭐, 크고 작은 문제가 계속 발생하고는 있는데.

“관리 자체는 걱정하지 마라.”

그건 드렉프리가 잘 관리해 주고 있다.

도심에서 가장 큰 조직이니까.

보안을 하든, 분위기를 조장하든.

이전에도 본부장으로 활동해 그런가 다양한 마찰을 실력 좋게 중재하고 있었다.

정기 보고는 이 정도면 됐고.

“초코쪼코, 트랄로우.”

“녀석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행동 반경이 바뀌었어. 지금은 추적이 힘들어.”

다른 이들이 고생하는 사이 둘이라고 놀지는 않았다.

둘에게 맡긴 임무는 하나.

95층 클리어의 핵심이 될 파히루를 감시하는 것.

“마지막으로 봤을 때는 진짜 화난 것 같던데.”

“무슨 일을 터트려도 터트릴 모양새였다.”

경제 구조를 바꾼 이유는 간단했다.

기존과 다른 형태의 산업 구조를 만드는 것.

그리고 그로 인해 거지들을 없애는 것.

‘파히루는 이상할 정도로 거지들에게 집착한단 말이지.’

일반적인 상식으로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왜 그런 걸까.

처음에는 그럴 수 있다며 대충 넘어갔지만 의구심은 끊이질 않았다.

녀석이 말했던가.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 자가 가질 수 있는 건 몇 개 없다고.

무슨 뜬금없는 소린가 했지만.

‘이거, 일종의 규칙 같았단 말이지.’

90층대를 오르다 보면 그곳만의 규칙이 존재하는 경우가 있다.

91층, 혼돈의 파편은 마피아 게임과 같은 룰을.

92층, 반트성의 뱀파이어들은 낮과 밤의 경계가 분명했다.

93층, 판타데미아? 이건 말할 필요도 없이 게임 룰을 가져왔고.

94층도 비슷하다. 따지고 보면 점령전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층 전체를 관통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상관없다.

개인에게 주어지는 규칙도 있었으니까.

91층에 있었을 때도 살인자는 낮에 누군가를 죽일 수 없었다.

반트성의 내성에 있는 NPC는 모두 장식용 NPC였고.

내가 마왕성의 마왕이 되었을 때는 함부로 침공하지 못하도록 제약이 걸렸으며.

강력한 힘을 가진 드래곤에게는 용의 밤이라는 페널티가 존재했다.

찾아보면 층마다 그런 요소가 있었다.

대놓고 있느냐 숨겨져 있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변화와 혼돈.”

결국에는 그 진실과 규칙을 보고 바꾸는 것.

그거야말로 90층대를 클리어하는 핵심이다.

이곳이라고 다를까?

파히루를 생각해 보자.

혼돈의 파편 수준까지는 아니더라 자신만의 규칙이 존재할 수는 있는 것 아닌가.

심지어 이곳에 있는 녀석은 시스템과도 거래하는 놈인데 아무런 제약이 없을 리가.

난 그것에 집중했고.

‘거지들이 사라졌을 때의 반응을 살피려고 했지.’

이걸 노렸다.

참된 거지로 활발하게 활동하던 녀석이 급격히 위축되었다.

표정 변화는 물론이고 구걸 행위나 음식을 먹는 횟수 또한 줄었다.

모든 의욕을 잃은 것처럼.

거지가 그만큼 커다란 의미였을까.

그것까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놈은 현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깽판을 칠 수도 없다.

놈의 역할은 시스템에 물품을 납품하는 것이었으니까.

기반 시설을 부순다면 제약이 들어올 게 분명했다.

경비대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고.

그렇다면 놈에게 남은 선택지는 무엇인가.

“우릴 공격해 올지도 모르겠군.”

“우리가 아니더라도 마찬가지야. 공장 몇 개 부수는 것 정도는 금방 할걸?”

뭐긴 뭐야.

테러하는 거지.

다시 거지가 생기도록 만들려 하지 않을까?

그게 아니더라도 이렇게 만든 우리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 방식이 어떤 것일지는 알 수 없지만.

놈으로서는 우리를 피의 제단으로 끌어들인 후 싸우는 게 가장 마음 편하겠다만.

“피의 제단 관리는 제대로 하고 있겠지?”

“상품은 이제 없다. 몰래 상품을 구해 오는 몇몇 놈도 있었지만 이제는 없지.”

드렉프리가 주먹을 쥔다.

몰래 상품을 가져온 이들이 어떻게 됐는지는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상품 근절.

그걸 가장 먼저 했으니까.

고로 피의 제단으로 가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더더욱 갈 일이 없고.

“한동안 놈의 위치가 파악될 때까지는 최소 2인 1조로 움직인다.”

특히 드렉프리와 폴은 무조건 다른 녀석들이랑 같이 다니게 했다.

그나마 드렉프리는 빚쟁이 보디가드들이 많아서 조금은 안심인데 폴은 개인 무력도 별것 없어서.

지금은 상황을 지켜볼 타이밍이다.

동시에 이게 해답이 될 수도 있다.

“피의 제단이 가동을 멈춘 지도 두 달이 지났어요.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나요?”

“시스템이 책임자의 자질에 의구심을 가질 수 있다는 거지.”

“시스템은 절대 관대하지 않아요. 특히 이런 쪽이라면.”

찌리리 요정의 말대로다.

양산품이야 계속해서 거래하고 있지만 NPC를 만들고 고급 재료를 회수하는 건 피의 제단에서만 가능하다.

달리 말하면 95층의 역할 자체는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파히루에게 주어진 역할은 제대로 수행되고 있지 않다는 뜻이죠.”

“시스템이라면 관리자를 바꾸는 것도 가능할 거다.”

“시간이 지날수록 유리한 건 우리라는 거징!”

파히루가 95층의 지배자 자격을 박탈당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

피의 제단이 작동하지 않도록 봉인하는 것.

이게 공략 플랜 A다.

겉으로 보기에는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내부적으로 보면 많은 것이 바뀌게 될 테니까.

결과가 빠르게 나오지는 않지만 안전하다.

그게 장점인 거고.

다만.

“뭔가 찝찝해.”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느껴졌고.

그 불안함의 원인이 밝혀지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 * *

-왜애애애애앵!

문제가 발생할 때 울리는 기존의 종소리와는 확연히 다른 사이렌 소리.

귀에 파고드는 경고음이 뜻하는 바는 하나였다.

“습격이다!”

“다들 대피소로 피해!”

“경비대는 뭐 한 거야! 저번 달에도 정리하고 왔다면서!”

“닥치고 뛰어! 일단 뛰고 떠들어!”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뛰쳐나온 이들이 경비대를 따라 대피소로 이동한다.

상가 문이 닫히고 셔터가 내려간다.

집에 있던 이들은 창문을 걸어 잠갔으며 지하실로 내려갔다.

이날 하루 장사가 망하고 긴급 정지한 공장의 손해가 막심할 테지만 목숨값과 비교할 건 아니었다.

“저쪽에서도 온다!”

“공중 몬스터 발견!”

발 빠르게 움직이는 경비대.

큰 갈고리와 지하상가 또한 가만히 있지 않았다.

경비대 선에서 끝날 거라면 뒤로 빠져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싸워야 했다.

이럴 때 나선다고 상가 주민들에게 자릿세를 거둔 거기도 하고.

“여기서 몬스터 떼를 다 보네.”

“성벽 같은 것도 없어서 나름 안전하다고 생각했는뎅.”

“틀린 말은 아니야. 외곽이면 모를까, 도시까지 몬스터들이 쳐들어오는 일은 거의 없거든.”

나와 냥펀의 물음에 초코쪼코가 답해 준다.

도시 근처에도 몬스터가 있다는 건 알았다.

피의 제단에서 나왔을 때 있던 공터에서도 조금만 멀리 나아가면 몬스터를 볼 수 있었다고 했으니까.

사실 이걸 이용해 대장간을 차릴까도 했었다.

몬스터들을 끌어오면 전투를 할 것이고 전투는 많은 장비를 필요로 하니까.

살짝 쓰레기 같다고도 볼 수 있는 방법이긴 했지만.

‘생각만 하고 말았으니까.’

안 했으니 뭐 양심에 찔릴 이유는 없겠지.

“그에에.”

“맞잖아. 생각만 했었다니까?”

반면에 놈은 진짜 일을 저질렀고.

갑작스러운 몬스터의 습격.

절대 정상적이지 않다.

그것도 이런 일이 주기적으로 반복되고 있다면.

잘 봐라.

“저건 산맥을 넘어야 나오는 몬스터다.”

“아무래도 그자가 끌고 온 게 맞는 거 같군요.”

도시까지 공격해 온 몬스터의 종류가 심상치가 않다.

근방에 사는 놈들은 물론이고 서식지가 멀리 떨어진 놈들도 섞여 있다.

여기까지 올 이유가 없는 놈들.

누군가 강제로 몰아온 게 아니라면 이해할 수 없는 상황.

“파히루, 이렇게 나올 줄이야.”

“직접적으로 공격할 생각은 아닐 거예요. 우리가 하는 일을 방해하는 거지.”

그게 맞을 거다.

이런 식으로 피해가 누적되면 공장도 정상적으로 가동할 수 없으니까.

다만.

‘놈한테도 부담이 클 텐데?’

피의 제단도 관리하지 않는데 공장까지 방해한다?

그래 봤자 놈에게 남는 게 뭐가 있다고.

놈에게는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시스템이 특정 NPC의 자질을 의심합니다.]

[작업 수행을 방해하는 NPC의 처벌을 논의합니다.]

누구라고 콕 집어서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파히루, 그 녀석을 두고 하는 말일 테니까.

자기 할 일을 하는 건 고사하고 방해를 한다?

그냥 스스로 구렁텅이로 빠지는 짓.

알아서 무너진다면 나야 좋지.

“전방 막고. 후방에서는 안전 확보되는 즉시 일 다시 시작해.”

“경비대 쪽이랑 이야기해서 토벌 한번 진행하자고.”

“오히려 이렇게 오면 부산물도 얻고 좋지.”

“저기 고급종이다! 따로 챙겨서 헬다잉 키친에 넘기면 될 거 같아.”

이제는 습격에도 익숙해진 상황.

95층에 있는 몬스터들이라고 특별히 강하지는 않다.

강해 봤자 어디 에이션트급인 것도 아니고.

일반 등급의 몬스터는 몰려와 봤자 위협적이진 않았다.

“놈도 멍청하군. 이럴 바에 차라리 기습 공격을 하는 게 나았을 텐데.”

트랄로우의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비효율적이다.

아니, 그냥 이건 의미 없는 발버둥에 불과하다.

이래저래 방해가 들어온 건 맞지만.

‘시스템이 노골적으로 메시지를 내뱉는 걸 봐서는 이 짓도 곧이겠군.’

길어 봤자 한 달이 지나면 놈도 시스템이 제약을 걸 거다.

그걸로 끝.

95층도 마무리될 터.

고개를 끄덕이는 타이밍.

-우우우우웅.

시야가 바뀌었다.

갑작스럽게 터지는 광채.

반사적으로 검을 빼 들며 기습에 대비했으나 내 앞에 떠오르는 건 다른 것이었다.

[업무 방해를 가하는 NPC의 처벌이 논의됩니다.]

[대상자: 쁘띠공듀]

“…나?”

거대한 시스템의 시선.

그 시선은 결코 호의적인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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