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 갇혀 고인물-668화 (668/740)

668화 왕초

눈물이 난다.

나를 따라오며 갖가지 재주를 부리는 놈들을 보니 눈물이 난다.

‘돈이 아까워.’

거지 두 놈이 온몸 비비기로 내가 걸어갈 길을 닦고.

“하찮은 재주지만 즐겨 봐 주십쇼!”

어디서 먹다 버린 사과를 가져온 놈이 저글링을 한다.

유연한 녀석은 다리 끝을 잡고 인간 굴렁쇠가 되어 굴렀고.

“오라! 바람의 종속들이여!”

“구구구구!”

“구구!”

자칭 비스트 마스터란 거지는 비둘기를 부려 곡예비행을 시키고 있다.

저건 어떻게 한 거야.

“귀인의 행차시다!”

“길을 비켜라!”

-펄럭.

“악! 더러워!”

팔을 휘두르며 길을 뚫는 놈도 있다.

거적때기인지 담요인지 모를 것을 털 때마다 행인들이 기겁하며 멀어진다.

냄새도 냄샌데 담요에서 나오는 무수한 찌꺼기를 피하고 싶은 모양.

한 대 쥐어박고 싶은데 떡진 머리를 때릴 용기가 안 생긴다.

‘이건 뭐, 거진지 서커스단인지.’

부촌 거지 허들 엄청 높네.

이렇게라도 안 하면 구걸을 못 하는 건가.

“후우.”

“그에에.”

처음에는 신기하긴 했다만 지금은 그저 피곤할 뿐이다.

비록 파히루를 꼬드기기 위해 이 짓거리를 하고 있지만 그 금액이 늘어날수록 마음이 아픈 건 사실이었다.

그나마 위안이 있다면 지금 뿌리는 것 대부분이 드렉프리의 지갑에서 나왔다는 것?

공금이랍시고 녀석의 금고 하나를 털기는 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더 가져올 걸 그랬네.”

현재 시각 2시 반.

30분 있으면 세금 납부가 완료된다.

틈틈이 돈을 뿌리며 돌아다닌 지도 1시간이 넘었다는 뜻.

거지들끼리도 나름의 규칙이 있는지, 어느 정도 받아먹었다 싶으면 다른 거지와 체인지 한다.

가끔 욕심 부리며 계속 붙어 있는 놈도 있었지만.

“꺼져! 꺼지라고!”

“이런 상도덕도 없는 녀석 같으니!”

“그러고도 네가 거지냐!”

“악! 악악! 거지니까 이런 건데!”

다른 놈들에게 구타당하고 쫓겨났다.

나로서는 반길 만한 일이다.

그래야 다른 거지들이 찾아오고 파히루가 모습을 드러낼 가능성도 있으니까.

떨어져 나간 놈들이 여기저기 소문도 낼 거고.

“쯧쯧. 나 참. 살다 살다 별걸 다 보겠군.”

“자선사업이라도 하나 보죠. 전 보기 좋은걸요?”

“마음이 여리다고 해야 할지, 참으로 감수성이 푸근하군요. 허허.”

“끌끌끌. 쓰레기통에 있으면 꽃도 쓰레기 냄새가 나지요. 저래서야 원.”

저마다 평가를 내리며 동물원 짐승 보듯 구경하는 행인들.

아예 돗자리를 깔고 샌드위치를 먹는 놈도 있다.

신기함, 혐오, 가식, 비난, 동정 등등.

다양한 감정과 태도로 날 바라보니 문득 부끄러워지긴 했으나.

“그래! 가자! 앞으로!”

“오오오오!”

이미 난 수치를 모르는 사나이.

아니, 커뮤니티의 폐해로 뻔뻔함을 얻은 사람이다.

이 정도쯤은 웃으며 넘길 수 있다.

그런 내 반응에 거지들이 환호했고.

“저건 뭐 거지들의 왕이구려.”

그 모습을 본 나이 지긋한 노인이 작게 읊조렸다.

혼잣말 같았지만 내 귀에는 충분히 들릴 정도.

“엇. 왕은 따로 있으시다!”

“이분은 귀인이시지!”

“명예 왕은 되지 않을까?”

“왕이랑 다른 거면. 어, 괜찮지 않나!”

“거지 둘째 왕!”

“거지의 왕 비슷한 왕!”

그건 다른 거지들도 마찬가지인지 괴상한 호칭을 부르짖었다.

거지의 왕 따위는 되고 싶지 않은데.

것보다 얘네 귀 좋네.

‘하는 짓이 개판이라 그렇지 몸놀림도 좋고.’

단순 능력으로 보면 어지간한 조직원들보다 잘 싸울지도 모르겠다.

그건 그건데.

“거지들의 왕?”

“왕초가 있습죠!”

이 부분을 확인해야 한다.

“녀석은 지금 어디에 있지?”

“한탕 크게 벌어 온다고 안쪽으로 가셨는데요?”

“왕초가 갔으니 오늘은 고기를 먹을지도 모르겠네.”

“저번 때가 대박이긴 했지.”

오케이. 방향을 정했다.

방금 말한 녀석을 앞장세웠다.

“어떤 놈인지 궁금하구나. 그쪽으로 안내해라.”

“어려운 일은 아닌데, 혹여 무슨 일이신지?”

“아닐 것 같기는 합니다만 나쁜 의도로 가는 건 아니시죠?”

슬쩍 몸을 수그리며 내 눈치를 보는 놈들.

얼씨구. 거지 주제에 은근 의리 있네.

거지끼리 똘똘 뭉쳐 있다는 건가.

“안쪽에 볼일이 있거든. 겸사겸사 한번 보게.”

거짓말은 안 했다.

안쪽으로 들어가야 냥펀을 만날 수 있으니까.

이번에 요정 클럽의 살롱에 들어갔다는 말을 들었다.

나도 이번 기회에 요정 클럽과 안면을 틀 생각.

그런 나를 거지 한 명이 물끄러미 바라본다.

[S급 권능, 거짓말 탐지기가 발휘됩니다.]

[SSS급 권능, 별을 주시하는 눈이 슬쩍 눈을 감습니다.]

거짓말 파악 능력도 있었네.

자동으로 발동하는 권능을 멈췄다.

그에 녀석의 표정이 밝아졌으니.

“예히! 제가 모시겠습니다!”

방긋 웃으며 길을 따라 이동한다.

촐랑거리는 것이 의심은 모두 지운 모습.

다른 거지들도 표정이 밝다.

이유야 별거 있겠는가.

‘내 덕에 세금을 낼 수 있으니 그런 거지.’

세상에, 세금을 내는 거지라니.

강제로 징수해서 그런 거기는 하겠다만 새삼 신기해하며 안쪽으로 이동했다.

가는 길에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부촌이 어떤 곳인지, 삶은 어떤지.

그중 가장 흥미로웠던 건 왕초에 대한 이야기.

다른 거지들보다 훨씬 옛날부터 부촌에 있었다고.

거지들을 끌어모아 하나로 만들고 우두머리를 자초했다.

이유는 하나.

-거지도 사람이다, 사람!

-우리가 돈이 없지 인권이 없냐!

거지들을 대신해 세금 폭탄을 맞고 피의 제단으로 팔려 가기 위해.

덕분에 녀석에 대한 충성심이 하늘을 찌른다.

‘머리 하나는 잘 썼단 말이지.’

본인이야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거겠지.

거지 특성상 어느 순간 안 보여도 이상하게 볼 사람도 없다.

피의 제단을 관리하기에 최적의 위치라는 말.

생각을 이으며 얼마나 걸었을까.

“여기부터는 조심해야 합니다.”

“경비대에 걸리면 두들겨 맞아요.”

부촌에서 머무는 이들답게 거지들은 이쪽 지리를 잘 알았다.

트랄로우도 부촌에 진입한 적이 있기는 했지만 내부까지 잘 알지는 못했는데.

‘이건 쓸모가 있겠군.’

거지들만 이용하는 길목은 상당히 유용해 보였다.

부촌 중에서도 일정 수준이 되어야 들어갈 수 있다는 곳.

경비대가 수시로 돌아다녔지만 개구멍을 넘어가니 문제는 없었다.

경비도 외부에 있던 거지가 들어오는 건 막지만 이미 들어온 놈들은 신경 안 쓰는지 인상만 찌푸릴 뿐 별말 없고.

“제게는 먹여 살려야 할 자식이 28명 있습니다요!”

“어디서 개소리냐!”

“나으리이이이!”

저 멀리 딱 봐도 부자로 보이는 사람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지는 녀석이 보였다

씩씩거리던 이가 놈을 몇 번 밟더니 지갑에서 지폐 몇 장을 꺼내 던진다.

냉큼 지폐를 줍는다.

그러면서 시계탑을 살피니.

“히히. 얼른 돌아가야지. 이거면 이번 세금은 걱정 없겠어.”

히죽거리며 보따리를 품에 안고 이쪽으로 달려온다.

그 모습을 본 거지들이 양팔을 흔든다.

“왕초!”

“그게 다 뭡니까!”

“너, 너희들!”

“헤헤헤. 왕초 보러 왔습지요.”

눈을 부릅뜨는 녀석과 머쓱하게 코를 훔치는 거지들.

감동받았는지 왕초가 이쪽으로 걸어왔고.

-빠악! 빠바박!

“내가! 여기! 오지! 말랬지!”

“악! 아아악!”

“거지 살려! 개같은 놈아, 살살 때려!”

“미친 왕초 새꺄!”

바로 몽둥이를 꺼내 거지들을 구타하기 시작했다.

한두 번 때려 본 솜씨가 아닌지 막는 곳을 교묘하게 피해 때린다.

타격음 찰지고.

“여긴 잘못 걸리면 뒈지게 맞는다니까 말을 안 들어.”

흐트러진 머리를 쓸어 넘긴 녀석이 보따리를 푼다.

“아무튼 잘 왔다. 이것들이면 이번 세금은 걱정 없을 거다.”

“왕초……!”

“오오오! 먹을 것도 있다.”

“시간 얼마 안 남았어. 다른 놈들한테 전해 줘야 돼.”

뭐 하러 혼자 여기까지 왔나 했더니만 다른 거지들 세금 벌어 오려고 그랬던 건가.

그것참 눈물겨운 일이 아닐 수 없다만.

“왕초, 근데 저희 이미 세금 벌었습니다.”

“뭐?”

“여기 귀인께서 돈다발을 뿌렸습죠.”

“아이고. 이런 감사할 일, 이?”

눈물은 무슨.

난 가볍게 손을 풀었다.

“오랜만이네.”

“아, 아하하. 아이고. 이게. 하하하.”

왕초.

들을 때부터 혹시나 하긴 했다만.

‘진짜 파히루 이 녀석이 왕초였네.’

이렇게 바로 마주칠 줄은 몰랐다.

거지도 일종의 위장 신분은 아닐까 했었는데.

검집으로 손을 옮기는 타이밍.

“그때는 죄송했습니다아아아아!”

-쿵!

녀석이 넙죽 엎드리며 머리를 박는다.

뭐야, 이건 또.

이런 반응은 예상한 적 없다.

일단은 숭배자 중 3명밖에 없다는 플래티넘 등급이었으니까.

어느 정도 뻗댈 줄 알았는데.

‘뭐, 상관없나.’

어차피 이 녀석은 처리해야 한다.

숭배자는 있어 봐야 좋을 것도 없고.

다 떠나서 날 공격했던 놈이다.

-차캉.

망설임 없이 검을 뽑았다.

순식간에 바뀌는 분위기.

실실거리던 거지들도 거리를 벌리더니 눈을 부라린다.

“이게 뭡니까!”

“아니, 어찌 거지를 핍박하고 그래요!”

“우리 세금까지 내 주려고 팔려 가기까지 한 사람이오! 이건 너무한 것 아니오!”

바로 파히루 쪽에 붙는 놈들.

그래. 이럴 것 같았다.

어쩔 수 없다면 전투도 피하지 않겠다는 것이 눈에 보였다.

동시에.

“사람 살려! 거지 잡는다!”

“거지도 사람이다! 인권이 있다!”

발광을 해 대며 시선을 끌어모은다.

경비대 또한 소란이 벌어지면 움직일 수밖에 없는 법.

개인이 무력으로 덤비는 거면 몰라도, 시스템의 비호를 받는 게 경비대인 만큼 나도 함부로 건들 수 없다.

그래서 이번에는 녀석의 위치만 파악하려 한 거고.

소정의 목표는 달성한 만큼 이쯤에서 빠지면 그만인데.

‘얼굴 보니까 그러기가 싫단 말이지.’

그래, 꼬장.

꼬장 부리는 거라 생각하면 된다.

어떻게든 엿을 먹여야겠거든.

경비대를 비롯해 사람들이 몰려든 걸 확인한 후 검을 도로 넣었다.

이 정도면 사람은 많이 모았고.

“제안 하나 하지.”

“무, 무엇입니까?”

저자세를 유지하며 오들오들 떠는 녀석.

저게 거짓이라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언제 뒤통수를 칠지 알 수 없는 놈이니까.

“일자리를 주마. 앞으로 세금 걱정할 필요 없도록.”

난 녀석을 포함한 거지들에게 선언했다.

일자리를 준다.

더 이상 거지로 살 필요 없도록 말이지.

놈의 제안에 파히루의 눈이 흔들렸다.

머릿속이 복잡할 거다.

왜 이런 제안을 하는 건지, 의도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어려울 테니까.

‘어느 쪽이든 좋아.’

받아들이든 거절하든.

일자리를 받겠다고 한다면 내 감시하에 둘 수 있다.

기회를 만들어 놈을 공격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는 뜻.

만약 거절한다면?

‘그때는 가뜩이나 안 좋은 이미지가 더 박살 난다.’

일자리를 줘도 벌어먹을 의지가 없는 이들.

더 이상 거지에게 돈을 주는 이가 있을까?

있어도 상관없다.

여론 몰이를 해서 거지 반대 운동이라도 하면 되니까.

부촌에 냥펀과 요정 클럽이 있으니 분위기를 만드는 건 어렵지 않다.

그렇게 될 경우 녀석에게 남은 선택지는?

‘거지들 대신 피의 제단으로 갈 거야.’

지금까지 그래 왔으니까.

내게 필요한 건 확정적으로 놈이 피의 제단으로 들어가는 타이밍.

그때를 맞춰 피의 제단으로 가는 모든 상품을 봉쇄할 거다.

피의 제단에 들어오는 상품이 없다?

그런데 여전히 미납된 세금은 많다?

그럼 어떻게 될까.

어떻게 되기는.

‘피의 제단에 들어온 놈들은 다 강제 처분 되는 거지.’

아무리 놈이라도 NPC는 NPC.

시스템 앞에 NPC는 평등하다.

함정은 파 두었다.

자, 그럼.

“답해라, 어떻게 할 건지.”

봐 볼까.

녀석이 함정에 빠지는지.

아니면 내 밑으로 들어올지.

-대앵. 대앵. 대앵.

[세금 납부 시간이 되었습니다.]

녀석의 답을 재촉하듯 시계탑의 종이 울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