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7화 피리 부는 사나이
속전속결은 많은 장점과 단점을 가진다.
한 번에 몰아치기에 상대가 대응하기 힘들고 후폭풍이 비교적 적다.
다른 사람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하루아침에 조직이 하나로 합쳐진 것으로 보이니까.
말단 조직원들도 어버버 하는 사이에 윗대가리만 바뀐 거니 그런갑다 하고 넘어가고.
멀쩡한 조직이었다면 다를지 모르겠지만.
‘여긴 뭐, 충성심 같은 게 있을 리 없으니까.’
정상적인 삶을 살 녀석들이었다면 애초에 뒷골목 조직에 안 들어왔겠지.
주급만 따박따박 들어온다면 윗선이 바뀌는 건 관심 없는 놈들이 태반이다.
다만 윗급들은 좀 다르다.
“3대 조직을 통합하기는 했지만 완전히 장악했다고는 볼 수 없네.”
“기존에 있던 놈들 다 찢어서 흩어 놓으면 좀 나을걸?”
“그건 이미 작업 중이지. 기반 세력을 뽑아 버리는 건 기본이니까.”
“지금이야 숨죽이고 있지만 안정되면 딴생각하는 이들이 생길 거다.”
놈들 입장에서는 우리가 달갑지 않을 거다.
한자리 차지했던 이들은 자기 자리를 지키고 싶을 거고.
다만 우리의 무력을 봤기에 대놓고 날뛰지 않을 뿐.
그렇다고 뒤에서 수작을 부리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었다.
당장은 놈들의 능력이 필요하다.
사업체 관리나 각종 업체와의 유기적인 관계 등등.
단순 계약으로 이루어진 곳도 있지만 인맥을 통한 거래도 상당하니까.
‘인맥이라는 건 하루아침에 생기는 게 아니고 말이지.’
각 조직의 우두머리야 어쩔 수 없이 처리했지만 모든 이들을 그럴 수는 없었다.
즉, 이래저래 뒷돈 챙겨 가며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할 수 있을 터.
그걸로 뻗대는 수도 있고.
어쩌면 아예 독립해서 나갈지도 모른다.
아예 새로운 조직을 만드는 거면 강제로 병합할 수도 있지만.
“놈들이 완전히 양지로 나가면 우리도 손을 쓰기 어려워.”
“그때부터는 경비대가 개입할 테니까.”
원체 더러운 일을 하던 놈들이라 그럴까 싶기는 하지만 세상일은 모르는 거거든.
어중간하게 눈치 보고 사느니 세금 낼 거 다 내고 떳떳하게 살겠다!
이러면 누가 말려.
따지고 보면 그게 맞는 건데.
다만 우리 입장에서 안 좋을 뿐.
3대 조직을 통합하고 시간이 흘렀다.
통합을 한 것치고는 별다른 일 없이 얌전히 지내고 있다.
도시 시민들은 물론, 경비대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몸을 사리는 것도 있었고.
“곧 있으면 세금을 내야 돼.”
“그게 문제다.”
주어진 시간 내에 무엇을 했든지 간에 세금 납부의 날은 다가온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적어도 이번 세금은 낼 수 있다는 것 정도?
“현금 자금이 많아서 잠깐은 버틸 수 있지만 계속은 불가능하네.”
드렉프리라고 돈이 무한한 건 아니다.
놈의 현금은 자본금이기도 하다.
이후 부촌으로 진출하기 위한.
아낄 수 있는 부분은 아껴야 한다는 말.
“부촌은 정말 생각하지도 않았었는데. 쯧. 세상일 어찌 될지 모르는군.”
녀석이 작게 혀를 찼다.
조직이 통합되면서 부촌 진출은 필수가 됐다.
다른 이유는 아니고.
“알고는 있었지만 식구가 늘어나니 세금이 미쳐 날뛰어. 왜 다들 탈세를 해 대는지 알 것 같군.”
자신이 부리는 이가 많을수록 세금이 늘어난다.
당장 나도 그걸로 당할 뻔하지 않았나.
그때는 내가 드렉프리한테 당했었는데 지금은 반대가 됐다.
주먹을 쥐며 녀석을 응원해 줬다.
“어허, 약한 소리! 큰 갈고리의 두목 아니냐!”
“네놈, 설마 이것 때문에 나를 이 자리에?”
혹시나 싶었던 녀석의 표정이 점차 경악과 배신감으로 바뀐다.
의심이 확신이 되는 과정.
슬쩍 시선을 돌렸다.
물론 그런 것도 있기는 한데.
“꼭 그런 건 아니야. 다른 이유도 좀 있고.”
“…지껄여 보게.”
“아무래도 우두머리가 되면 신경 쓸 게 많잖아? 난 좀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할 일도 있고. 으음.”
팡팡, 녀석의 등을 쳤다.
“그래, 그런 거야! 하하하!”
“그냥 나한테 다 떠넘기겠다는 거지 않나!”
100점짜리 정답이라 할 말은 없었다.
별수 있나.
“하하하하!”
이럴 때는 그냥 웃으며 넘기는 거지.
개똥도 약에 쓸데가 있다고 평소 탈모맨이 쓰던 방법은 꽤나 유용했다.
“으그그극! 크학!”
상대방을 빡치게 만드는데.
뒷목을 잡고 쓰러지는 드렉프리의 건강을 응원하며 마저 웃었다.
* * *
드렉프리에게 대부분의 일을 떠넘기기는 했지만 나라고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일단 조직 내부적인 일은 녀석에게 맡겼다.
검은 갈고리의 본부장이었던 만큼 놈을 따르는 세력도 제법 있다.
조직을 개편하거나 정치질을 하는 건 충분히 할 수 있다는 뜻.
거기에 쓰레기촌 브로커 출신인 폴까지 합세하니 지금은 어느 정도 모양이 잡혔다.
남은 건 이쪽.
“대두상, 공장은 잘 굴러가고?”
“누구 덕분에 생산 시설 12%가 망가졌지.”
으득.
이를 간 녀석이 나를 노려본다.
그게 끝.
욕을 할지언정 직접적으로 내게 까불지는 않는다.
왜냐.
그럴 만한 힘도 없기도 하고.
‘이제 지하상가를 장악한 건 우리니까.’
전쟁터가 된 지하상가에서 한 발 뺀 순간부터 놈들은 권리를 잃은 거다.
놈들이야 억울하겠지.
그런데 어쩔 건가.
그게 억울했으면 지킬 힘이 있든가 아니면 완전히 양지로 올라가든가.
둘 중 하나는 선택해야 한다.
‘사실 공식적으로 인정받고 양지로 가는 것도 기대했는데.’
아쉽게도 그러지는 않았다.
본인들도 아는 거다.
불법적으로 지은 공장과 토지 문제, 후려친 노동 임금과 복지 등등.
문제는 많았고 정상적으로 인정받는 재산은 많아 봐야 1/5 수준일 거라는 걸.
만약 놈들이 양지로 떠나면 빈 공장을 차지하려 했는데 아쉽게 됐다.
“너무 인상 쓰지 말자고. 이제 여기서만 장사할 거 아니잖아.”
“틀린 말은, 아니지.”
놈들에게 그나마 위안거리가 있다면 이거.
부촌으로 사업망을 넓히면 놈들에게도 기회가 생겼다.
그만큼 부촌에 입성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이블아이, 기초 생산품들이 대부분이기는 하지만 몇 가지 품목은 독점이나 마찬가지더군. 주력 상품으로 쓸지도 몰라.”
“오! 이거 자주 사 먹던 건데. 지하상가에서 만들고 있던 거구나? 제과 쪽으로 사업 넓혀도 좋을 듯?”
물론 거기서도 통할 만큼의 사업성이 있어야 한다.
나와 함께 지하상가로 온 트랄로우와 초코쪼코가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초코쪼코는 반쯤 자기 사심을 채우고 있는 것도 같다만 가끔 쓸 만한 사업 아이템을 물어 오곤 했다.
“차별성 있는 아이템도 아이템인데, 기존 물품도 질 좋은 곳이 어딘지 살펴 둬.”
“오케이!”
“따로 목록을 정리하도록 하지.”
대답하며 각자 흩어지는 녀석들.
기존 물품의 품질을 올리는 것도 중요하다.
그걸 위해 공장주의 의견을 묵살하고 공장을 품목별로 묶어 가동했다.
지하상가를 거대한 산업단지로 만들었다는 뜻.
기껏해야 천, 유리컵, 숟가락, 휴지 등등 단순한 물건을 만드는 게 전부였지만 결코 소홀할 수 없다.
물건 자체는 특별하지 않을지 몰라도.
‘이걸 사 가는 고객은 특별하거든.’
-우우우우웅.
[거래 완료]
[시스템이 합당한 대가를 치릅니다.]
거래 대상이 시스템이다.
예전부터 있던 의문이 풀렸다.
‘여기서 생산되는 물건은 어디로 가는가.’
정답은 간단했다.
탑 전역으로 간다.
상점창에서 살 수 있는 온갖 물건.
안전지대와 필드 곳곳에 있는 NPC가 입는 옷, 생필품, 하다못해 부엌에 있는 국자까지.
‘여기서 생산된 거였어.’
프램버그가 기술력이 들어간 물건을 담당했다면 95층은 단순하지만 필요한 물건들을 납품하는 공간이었다.
여기뿐만이 아니겠지.
도시 밖으로 나가면 있는 농경지나 바다에서 잡히는 해산물 등등도 마찬가지일 거다.
한마디로 95층은.
“탑의 생산 공장.”
어쩐지 95층이 지나치게 크다 했다.
시스템이 개입했기에, 탑에 필요한 곳이기에 이만한 규모를 지닌 거다.
그런 곳의 지배자이자 숭배자인 게 파히루라는 녀석이고.
따지고 보면 지배자보다는 관리자에 가까운 느낌이겠지만.
아무튼.
‘곧 놈을 추적할 수 있어.’
토대는 마련했으니 남은 건 밀고 나가는 것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 이번에는 세금 제대로 내라? 걸리면 죽어?”
“무슨 그런 다, 당연한 말을! 정직함 하나로 사업을 해 왔네.”
헛소리하는 대두상을 흘겨보고 지하상가를 나왔다.
이번 세금 납부의 날에는 피의 제단으로 향하지 않는다.
따로 해야 할 일이 있다.
-대앵-댕.
거리로 나와 시계탑을 살폈다.
오후 1시.
“역시나 사람이 좀 적네.”
오늘은 세금 납부의 날.
앞으로 2시간 후면 세금을 내야만 한다.
나야 드렉프리에게 빼앗은, 아니 정당하게 지급받은 주급이 있어 문제없지만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
“쌉니다! 대박 할인! 빵 30개를 한 묶음으로!”
“거기 아저씨! 구두 닦아 드릴게요!”
“혹시 자전거도 담보로 받습니까? 금방 찾으러 올 테니 팔지 말고 있으시오.”
“자네, 돈이 필요해 보이는군? 여기 괜찮은 상품이 있네만.”
세금을 확보하지 못한 이들도 있다.
혹은 아슬아슬하여 어떻게든 돈을 벌려는 이들이라든가.
달리 말하면.
“한 달에 한 번 찾아오는 바겐세일의 날.”
그렇게도 볼 수 있었다.
굳이 이곳만 그런 건 아니다.
평소에는 콧대 높은 부촌도 마찬가지.
정말 잘사는 이들도 있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라서.
그곳에도 평범하게 일하고 먹고사는 이가 많다.
예로 들어 저기 부촌 입구를 지키는 직원이라든가.
말 같지도 않은 금액을 자랑하는 부촌 입장비도 오늘만큼은 절반 가격이다.
“부촌에 입장할까 하는데.”
“용무가 무엇이오?”
“그냥, 구경.”
내 답에 녀석의 얼굴이 구겨진다.
평소라면 내쫓았겠지만 오늘은 아니다.
“무슨 문제 있나?”
“크흠. 아닙니다.”
문지기의 손에 입장료를 냈다.
-끼이이.
두꺼운 철문이 열린다.
옆을 지나가면서 보니 두께가 거의 20cm는 될 것 같다.
그래. 부촌이면 보안도 좋아야지.
“확실히 다르긴 하네.”
산업 구역도 도로는 잘 깔려 있는데 여긴 산뜻하기까지 하다.
가스등이 아닌 마법 아이템이 박힌 가로등과 주기적으로 관리하는 가로수.
공기 정화 장치라도 있는지 공장 특유의 먼지와 매캐한 냄새도 나지 않았다.
세금 납부 날에도 비교적 돌아다니는 이가 많았으며.
“호오. 이건 꽤 귀하군요.”
“역시 보는 안목이 있으십니다. 73층에서 구한 물건이죠. 이쪽을 봐 보시겠습니까?”
생활에 필요하지 않은 호사품을 파는 곳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노동자들이 입는 넝마와 달리 옷도 제대로고.
나도 이번에는 멀쩡하게 입고 왔는데도 저들과 비교하면 남루하다.
뭐, 그거야 아무런 상관 없지만.
“의외로 초코쪼코 말이 맞을 수도 있겠네.”
제과 쪽도 알아보자더니 여긴 진짜 간식거리를 많이 판다.
그냥 사심 채우느라 하는 말인가 했는데.
혹시나 해서 살펴봤지만 골목도 정말 깊숙이 가는 게 아니면 음산하지는 않다.
쭉 늘어진 주택과 상가.
드문드문 보이는 노점상.
그곳을 면밀히 살폈다.
내가 이곳에 찾아온 목적 첫 번째.
상권 분석.
어떤 가게가 많은지, 수요는 어떤지.
단순 유행성 상품인지 아니면 주기적으로 손님이 찾는 상품인지.
나도 나름 상인 자격을 가지고 있는 만큼 어느 정도 안목은 있었다.
-띠링.
커뮤니티 알람이 뜬다.
[냥냥펀치]: 나 준비하는 데 시간 좀 걸림!
[냥냥펀치]: 약속 시간에는 맞출 수 있으니까 어디 가서 사고 치지 마!
이곳에 온 두 번째 이유.
냥펀과 접선하기 위함이다.
커뮤니티를 이용해서 대화해도 좋지만 아쉬운 부분도 있어서.
예로 들어 이곳에 있을 요정 클럽을 살핀다든가 하는 거.
냥펀이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지 눈으로 보고 싶기도 했고.
“약속 시간까지는 여유 있네.”
뭐, 아직 시간이 남아서 급하진 않다.
그럼 마지막 목적.
눈을 빛내며 공원 벤치에 모인 놈들을 바라봤다.
“나으리, 한 푼만 줍쇼! 이대로 죽고 싶지 않습니다! 나으리!”
“은혜는 반드시 갚을 테니, 부디!”
“저리 안 꺼져?”
“에이잉. 그냥 주고 갑시다. 이거 원, 더러워서.”
빈민가에서는 볼 수 없었던 거지들.
바닥에 떨어지는 동전을 허겁지겁 주우며 꼭 끌어안은 놈들의 얼굴을 살폈다.
“여긴 없군.”
파히루를 찾기 위함이었다.
분명 권능을 통해 확인했다.
녀석은 거렁뱅이라고.
세금 납부의 날은 거지들이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는 날이기도 하다.
이쪽으로는 가장 취약한 계층이니까.
다른 곳도 그렇지만 95층은 자기 몫을 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유독 가혹하다.
‘그런 것치고는 거지가 많은 것 같지만.’
일단 목적에 충실하자.
자, 그럼.
“돈 좀 뿌려 보실까.”
난 부채처럼 지폐를 양손에 쥔 채 걸어 나갔다.
지나가는 행인들은 ‘저 졸부 놈은 뭐 하는 거지?’라는 표정을 지었고.
“고, 공자님! 도련님! 한 푼 주십쇼!”
“이놈! 무엄하다! 제가 길을 닦겠습니다요, 헤헤.”
“실수로 한 장만 떨어트려 주시면 안 될까요?”
거지들은 홀린 것처럼 내 옆에 모여들었다.
일명, 피리 부는 사나이(거지 버전).
노골적이지만 아무렴 어떤가.
나와라, 파히루.
거지의 자긍심이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