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 갇혀 고인물-665화 (665/740)

665화 통합

95층 도시에는 3대 조직이 존재한다.

음지에 속해 있으며 불법과 합법을 오가는 다양한 사업을 하는 이들.

노동자와 서민들 사이에 깊숙이 연관되어 있었으나.

“따지고 보면 3대 조직이라고 하기에는 좀 부족하지.”

“아무래도 부촌에서 활동하는 건 아니니까.”

정작 도시의 핵심들이 모여 있는 부촌에는 영향력을 끼치지 못한다.

애초에 들어가지도 않는다.

뭐 먹을 게 있다고 거기까지 욕심 부리겠는가.

지금 여기서도 잘 먹고 잘사는데.

“부촌에는 규모 자체는 이곳보다 작지만 실력 있는 해결사 팀들이 있지.”

“초콜릿 무스도 그중 하나였고.”

둘은 부촌에서 활동한 전력이 있다.

나보다는 많은 것을 알고 있을 터.

각자 다루고 있는 사업과 활동 영역 등이 달라 부촌과 이곳은 분리되어 있다.

다르게 말하자면.

“부촌에 있는 자들이 끼어들 일은 없다는 거지. 3대 조직쯤 되면 부촌과 라인이 연결되어 있기는 하겠지만.”

“그렇다 한들 놈들은 이득이 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아.”

이게 중요했다.

혹시라도 다른 쪽에서 간섭해 오면 곤란해지니까.

“부촌 걱정은 덜었군.”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초코쪼코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걸 신경 쓸 거였으면 진작 써야 하지 않았냐?”

“지금이라도 조심하자는 거지.”

“크흠. 흠! 자고로 행동 먼저 하는 것이 나을 때도 있는 법.”

난 시선을 돌리고 트랄로우는 헛기침했다.

그것도 그런 것이.

“어쨌든 작은 손가락은 박살 났잖아?”

정확히는 수뇌부들이 모여 있던 회담 장소가 박살 났다.

처음에는 사업장이나 몇 군데 부술까 했는데.

‘트랄로우 이 친구가 원한이 생각보다 크더라고.’

더불어 이전에 그곳에 속해 있던 만큼 아는 게 많았다.

놈들이 모여 있던 장소를 찾아갈 수 있던 것도 그래서였고.

아쉽게도 전멸시키지는 못했다.

놈들도 나름 거물이라는 건지 방어 대책이 없지는 않았다.

갑작스러운 폭발에 보디가드들이 몸을 던져 막고 방어형 아티팩트가 터지고.

‘개개인의 무력도 나쁘지 않았어.’

모여 있던 6명의 간부 중 3명이 죽는 걸로 끝났다.

우두머리는 경상.

다른 두 명은 상처가 깊어 어딘가로 수송됐다.

아마 금방 정신 차릴 거다.

포션이든 스킬이든 몸을 회복시킬 수단은 많으니.

다만.

“작업장도 난장판으로 만들어 뒀으니 톱니뿔 용병단에서도 움직일 거야.”

3대 조직 중 하나.

톱니뿔 용병단.

도시에 용병단이 웬 말인가 싶기는 하지만.

‘여기도 몬스터가 없는 건 아니란 말이지.’

오히려 일반적인 필드보다 종류가 다양하다.

도시야 경비대가 지키고 있어서 오지 않지만 조금만 넘어가면 몬스터가 나온다.

우리가 피의 제단에서 나와 떨어진 곳도 그런 곳이었고.

도시로 돌아오는 과정에 몇 마리 마주쳤었다.

좋은 소식이다.

‘나중에 써 먹어야지.’

당장 중요한 건 아니니 기억만 해 두고.

슬슬 올 시간이 됐는데.

-콰앙!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떠올리기가 무섭게 문이 열린다.

얼굴이 시뻘게져서 안으로 들어온 건 드렉프리.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오우. 오자마자 사자후네.

목청도 좋아라.

살짝 찡한 귀를 후비며 맞은편 소파를 가리켰다.

여전히 씩씩거리며 나를 노려보는 녀석.

사람 무안하게.

앉기 싫으면 마라.

“너의 야망을 돕기 위한 행동이었지.”

“야망? 그게 무슨 개소리…….”

“어허! 우리한테까지 숨길 필요 없다. 우린 이미 한배를 탄 사이 아닌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의 녀석에게 엄지를 세웠다.

“검은 갈고리를 차지하는 걸 시작으로 3대 조직을 통합하려던 건 알고 있지.”

“아니, 뭔. 어?”

정곡을 찔렀기 때문인지 녀석이 말을 더듬는다.

그래. 그럴 줄 알았다.

야망이 넘쳐흐르는 남자 같으니.

흡족한 표정으로 빠르게 말을 이었다.

“사채업을 토대로 독자적인 세력을 만들고 군자금과 식량을 모은 것. 나를 통해 각기 다른 분야의 인재를 영입한 것 모두 세력 전쟁을 위함 아니었나?”

“그, 그래. 조직 내에서의 내 입지를 확실시하기 위함이었던 건 맞지.”

잠시 호흡을 고르던 드렉프리가 빼액 소리를 지른다.

“하지만 3대 조직의 통합이니 그런 건 아니었네!”

또 또. 부끄러워하기는.

겸손만이 미덕이 아니다.

때로는 당당하게 나설 줄도 알아야지.

“너무 겸양 떠는 것도 좋지 않지. 그래서 내가 대신 나섰다.”

“대신 나섰, 다?”

녀석의 눈알이 불안하게 흔들린다.

그것도 잠시.

“…설마?”

“선전포고를 하고 왔다.”

“누구, 한테?”

“물론 다른 3대 조직이다!”

드렉프리가 눈을 질끈 감는다.

아마 지금쯤이면 검은 갈고리 내부에서도 이야기가 돌 거다.

이 정도 일을 저질렀는데 안 들어갈 리가 없지.

그나마 내가 녀석의 이름을 팔고 다녔기에 빠르게 정보를 입수했을 거다.

놈의 고객 중에는 일반 시민도 많았고 그들은 빚 일부를 탕감하는 대가로 정보를 전달했을 테니까.

‘내가 일부러 정보를 넣어 준 것도 있고.’

피의 제단에서 만난 이들을 통해 드렉프리가 작은 손가락 조직을 공격했다는 말을 퍼트렸다.

보아하니 선전포고를 했다는 것까지는 모르는 눈치였지만.

아무렴 어떤가.

지금이라도 알면 된 거지.

“…동시에 상대할 적을 더 늘렸군. 이젠 검은 갈고리도 날 노릴 거다.”

충격을 받은 것도 잠시.

머리가 좋은 만큼 상황 파악 먼저 한다.

녀석의 말대로다.

검은 갈고리라고 다른 조직과 싸우는 건 부담스럽겠지.

작은 손가락이 완전히 분해됐으면 모를까 아직 보스는 살아 있으니까.

가장 편하게 가는 건.

“이 모든 일은 내가 돌발적으로 한 행동이라 하겠지.”

“너를 넘기면서 상황을 수습하려 할 테고.”

“그걸 아는 놈이!”

왜 화를 내고 그러냐.

다 잘되라고 하는 건데.

단순히 얘만 넘기고 끝날 문제는 아니다.

사업장 일부를 넘기는 건 물론 일정 부분 배상도 해야겠지.

그게 그나마 이쪽이 손해를 덜 보는 방향이니까.

물론 이렇게 진행된다면.

“나는 반드시 죽는다는 뜻이다.”

“어허. 무슨 소리! 결국 다 집어삼키면 아무런 문제 없는 것을!”

내 말에 드렉프리가 노려봤지만 못 본 척했다.

이러나저러나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다.

“맥달튼.”

녀석의 부름에 문가에서 대기 중이던 녀석이 다가온다.

“비상 전력을 모두 소집하라. 식량과 무기, 방어구 모두 지원하고.”

“알겠습니다.”

“6시간 주겠다.”

말도 안 되게 촉박한 시간이었지만 불평은 없었다.

그야 빠르게 움직이지 않으면 답이 없거든.

다른 조직들도 갑작스러운 일에 대응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 전에 쳐야 한다.

모든 준비가 된 다음 싸우면 우리 쪽 인원이 훨씬 적다.

훨씬 불리한 입장에서 싸워야 한다는 뜻.

그나마 다행인 게 있다면 굳이 적의 모든 전력을 깎을 필요가 없다는 것?

‘결국에는 우두머리만 자르면 끝이야.’

특히나 이렇게 규모 있는 조직이라면 더 그렇다.

흡수된 이들 중에서 흡수를 거부하며 난리를 피울 이가 나올 가능성도 있으나.

‘그거야 간부들을 싹 다 갈아 버리면 그만이고.’

말 안 듣는 놈들은 쳐 내면 된다.

내부적으로 말이 많겠지만 뭐 어떤가.

위에서 까라면 까야 하는 게 조직원들인데.

윗사람이 바뀌든 말든 자기 돈주머니만 두둑하면 별말 안 할 거고.

중요한 건 따로 있지.

“어느 쪽 먼저 칠 생각이지?”

바로 이거.

드렉프리의 물음에 턱을 괴었다.

가장 먼저 이곳으로 찾아올 검은 갈고리?

아니면 반파된 작은 손가락?

지금쯤 소식을 듣고 얼쩡거리고 있을 톱니뿔 용병단?

“먹을 수만 있다면 작은 손가락을 먼저 먹어 버리는 편이 좋다.”

“완전히 흡수해 버리면 검은 갈고리에서도 널 팔아넘길 이유가 사라지니까.”

“그렇지.”

먼저 가장 많은 것을 얻는 선택지.

대신 실패하면 망한다.

그럼 다음 선택지.

“톱니뿔 용병단에 붙는 방법도 있다네. 이후의 일은 그때 생각하고.”

일종의 도피.

우리를 받아들인다면 놈들도 이득이다.

드렉프리의 세력을 흡수한다면 3대 조직 중 가장 큰 힘을 가지게 될 테니까.

가장 안전한 방법이기는 하다.

다만 이럴 경우, 3대 조직을 통합해 봤자 우리의 입지는 크게 줄겠지.

“검은 갈고리를 먼저 접수하는 것도 방법이기는 하네만.”

“그건 넘어가지. 어차피 뭘 하든 방해할 테니 중간에 엮어서 처리하는 게 낫다.”

“틀린 말은 아니군.”

드렉프리 또한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다면 여기서 문제.

여러 상황이 꼬인 지금, 우리는 가장 적게 손해를 보는 쪽을 골라야 할까.

아니면 가장 큰 이득을 보는 쪽으로 골라야 할까?

“굳이 우리를 기준으로 생각할 필요 있나?”

정답은 간단했다.

“놈들이 가장 크게 손해 보는 쪽으로 가면 되지.”

똑같이 망하는 길이라면 우리가 유리하다.

놈들은 다수고 우리는 소수니까.

사람이 많다는 건 손해 볼 사람이 많다는 뜻이고 그 말은 곧.

“내부에 잡음이 생긴다는 거야.”

통제를 잃은 집단은 덩치 큰 샌드백이나 다를 바 없다.

여기서 또다시 문제.

그럼 어떻게 해야 모두가 피해를 볼 수 있을까?

동시에 어디서 싸우는 게 가장 좋을까?

적어도 장소는 정해져 있다.

“…자네 지하상가를 전쟁터로 쓸 생각이군.”

“빙고.”

음지에 속해 있으면서도 모든 조직과 연결점이 있는 곳.

지하상가 말고는 없다.

“이왕 하는 것 스케일을 키우자고.”

3대 통합을 하는 김에 중립 지대나 다를 바 없던 지하상가도 흡수한다.

이건 원래 좀 천천히 하려 했지만 어쩔 수 없지.

부촌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력뿐만 아니라 금전적인 부분도 필요하다.

지하상가는 그 부분을 메꿔 주기 충분한 곳이고.

‘겸사겸사 대두상한테 엿 좀 먹이고 말이지.’

가만 생각해 보니 열받더라고.

공장에서 일 시킬 때도 그렇고 피의 제단에 들어갈 때도 그렇고.

매를 버는 타입이라고 해야 하나?

전송 마법진을 부순 것만으로는 화가 안 풀린다.

그런 의미에서.

“다들 모여 봐. 각자 임무를 알려 줄 테니까.”

모두를 한곳에 모았다.

머리 아픈 건 질색인지 한 발 떨어져 있던 초코쪼코와 가만히 이야기를 들으며 팔짱을 끼고 있던 트랄로우.

이 녀석들이 동시에 움직여야 일이 풀린다.

내 말이 이어질수록 녀석들의 얼굴이 굳는다.

왜들 그러지?

“안 해 봤어? 테러?”

난 고개를 갸웃거렸고.

다른 이들은 ‘뭐 하는 새끼지?’ 하는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 * *

-대앵! 대앵! 대앵!

어둑한 밤, 종이 울린다.

어딘가에 몬스터가 나타나거나 한 건 아니다.

그저 우리가 본격적으로 날뛰면서 경비대들이 시민들이 엮이지 않도록 경고를 하는 것일 뿐.

3대 조직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사업을 한다.

그럼에도 결코 선을 넘지 않는 부분이 있었으니.

‘따로 빚을 지거나 한 게 아니라면 죽이지 않지. 특히 대놓고는.’

몰래 뒤에서 쓱싹하는 거야 있을 수 있지만 적어도 대외적으로는 그러지 않는다.

왜냐.

경비대가 적으로 판단하는 순간부터 양지에서 하는 모든 일이 막히니까.

그냥 방해한다는 게 아니다.

시스템적으로 불이익을 주는 거지.

한마디로 경비대란 시스템 공인 경찰.

그렇기에 조직 간의 다툼이 벌어져도 민가에서 난리를 피우지는 않는다.

나 또한 그걸 알기에 민간 피해는 어지간하면 만들 생각이 없었는데.

“아! 터트리고 싶다!”

-콰아아아앙!

“저, 저 미친 새끼가!”

“막아! 그쪽으로 못 가게 막아!”

“그냥 또라이 아냐!”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엄밀히 말하면 사람을 공격하지는 않았다.

하는 것처럼 할 뿐이지.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한다고 해야 하나.

덕분에 분수대나 기타 건물이 무너지는 등의 소동이 있기는 했으나.

‘이건 어떻게든 수습할 수 있어.’

오히려 금전적으로 해결이 가능한 문제라면 쉬운 문제에 해당됐다.

뭐, 저 녀석들이 보기에는 아니었지만.

왜냐.

“아니다! 저건 우리 용병단이 아니다!”

“빌어먹을! 작은 손가락 놈들이냐!”

“뭔 개소리야! 우리가 왜 이딴 짓을 벌여!”

내 지시에 따라 초코쪼코와 트랄로우, 드렉프리가 움직였으니까.

작은 손가락 소속이었던 트랄로우는 그쪽 사람인 것처럼.

부촌에서 해결사 노릇을 했던 초코쪼코는 톱니뿔 용병단의 옷을 구해 내게 전달했다.

폴과 빅튼에게도 일을 시켰다.

놈들이야 애초에 검은 갈고리 소속이니 위장할 필요도 없지.

한마디로, 모르는 사람이 봤을 때는 3대 조직 전체가 깽판을 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거였다.

그 결과가 이거.

“이쪽으로 유도해라!”

“차라리 지하상가로 움직여!”

“젠장. 어떤 후폭풍이 일지 예상도 안 되는군.”

민간 지역에서 난동을 부릴 바에는 우리를 지하상가로 끌어들였다.

옳은 선택이다.

그곳은 반쯤은 무법 지대니까.

비밀리에 사람을 상품이랍시고 거래하는 곳인데 오죽할까.

자연스럽게 놈들의 유도대로 따라 지하상가로 이동했다.

잠복 중이던 드렉프리의 부하들이 모여 있는 곳.

“다들 제때 도착했군.”

“이블아이, 이건 정신 나간 짓이야.”

“형님, 저 진짜, 진짜 형님만 믿습니다?”

비교적 담담한 트랄로우와 달리 폴과 빅튼은 반쯤 우는 표정이다.

조금 억울하기는 할 거다.

녀석들의 죄라고는 나로 인해 드렉프리 밑으로 들어간 것뿐이니까.

별수 있나.

사람 인생이란 그런 것을.

“그럼 여기는 얼추 모양 잡혔고.”

-차앙.

검을 뽑았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시간을 버는 거다.

이 자리에 없는 초코쪼코와 드렉프리는.

‘빈 조직을 친다.’

한마디로 빈집 털이.

빚쟁이 군단을 이끄는 드렉프리와 피의 제단에서 몇 번이나 살아 돌아온 초코쪼코라면 믿고 맡길 수 있다.

전투가 시작될 곳은 바로 이곳.

대두상의 메인 공장.

“왜, 왜 하필 내 공장 앞에서! 멈춰! 멈추라고!”

대두상이 양팔을 휘두르며 달려온다.

사색이 된 채 거품 무는 꼴이 볼 만하다.

그런 의미에서.

“도, 돈이 필요한가! 자리만 옮겨 주, 꿰에에엑!”

-빠아아악!

놈의 턱주가리를 날리는 것으로 포문을 열었다.

“다 쓸어버려라!”

“우아아아아아!”

“적들을 처치하라!”

오늘 밤.

3대 조직을 통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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