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 갇혀 고인물-664화 (664/740)

664화 야망은 크게

검은 갈고리에 들어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본부장인 드렉프리는 신의를 저버리지 않는 자였으니까.

‘적어도 상대방이 가치가 있을 때는 말이지.’

처음 내가 모습을 드러냈을 때 놀라는 모습이 볼만했는데.

대두상은 아직 못 봐서 모르겠지만 비슷한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아무튼.

“이렇게 보니 반갑군, 폴, 빅튼.”

“정말 살아 돌아오다니. 보통 인물이 아니라고는 생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저는 형님을 믿고 있었습니다!”

드렉프리가 관리하는 사채업과 유통업.

그곳에 속하자마자 이 두 녀석을 찾았다.

피의 제단에 갔다가 취한 약간의 휴식 시간, 앞으로의 계획을 짜고 준비하느라 시간이 제법 흘렀다.

몰랐었는데 피의 제단에 들어갔다 나오면 여기서는 최소 보름이 지나는 모양이었다.

대충 시간을 정리하면.

‘내가 피의 제단으로 가고 약 3주가 흘렀다는 거지.’

그리 긴 시간이 아닐지도 모른다.

다만, 이제 막 들어온 놈들이 대략적인 분위기를 읽을 수는 있는 시간이지.

다른 곳도 아니고 쓰레기촌에서 브로커 짓을 했던 폴 아닌가.

부하로 부릴 수 있는 빅튼도 있었으니 허용된 범위 내에서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녔을 거다.

“특별한 건 없었네. 평범한 사채업이야.”

이자율이 살인적인 것을 제외하면 크게 문제 될 부분이 없었다.

어디 칼 들고 돈 빌리라고 협박하는 것도 아니고.

다들 필요해서 찾아왔다가 빚에 묶일 뿐이었다.

내가 관심 있는 부분은 여기.

‘전에 드렉프리는 빚진 녀석들을 보디가드처럼 사용했지.’

녀석에게는 조직원 외에 부릴 수 있는 무력 집단이 있다.

빚쟁이들로 이루어진 무리가.

내가 직접 봐서 안다.

모르긴 몰라도 어지간한 조직원들보다 훨씬 강했다.

“빚쟁이 놈들에 대해 알고 싶은데. 명단이 있나?”

“내가 관리하는 업장이라면.”

폴이 별다른 말 없이 명단을 넘긴다.

불평할 이유는 없겠지.

중간에 나오기는 했지만 난 녀석보다 먼저 조직에 들어왔다.

내가 어떤 놈인지도 알고.

무엇보다.

“다른 업장을 찾아가면 명단 확보는 쉬울 게다. 넌 부본부장이니까.”

통 크게도 드렉프리가 내게 부본부장 자리를 줬다.

간부급 인원들의 반발이 있었으나 지들이 어쩔 건가.

본부장이 그렇게 한다면 하는 거지.

거기에 더불어.

“이블아이, 요거 먹어도 되냐?”

“이미 먹고 있으면서 묻지 마라.”

“이자는 폴이군. 쓰레기촌에서 제법 이름 있다고 들었는데 여기로 왔을 줄이야.”

초코쪼코와 트랄로우도 내 팀으로 들어왔다.

처음에는 나를 견제하기 위함인지 뿔뿔이 흩어 버리려 했지만.

‘내가 데리고 온 애들인데 어떻게 흩어 놓을 건데?’

오히려 흩어져도 좋았다.

여기저기 내 사람을 꽂아 둘 수 있으니까.

드렉프리 또한 그것을 알기에 수긍했고.

정확히는 녀석의 심복으로 보이는 이와 상의한 끝에 내린 결론이었지만.

봤을 때 꽤나 신뢰하고 있는 자였는데.

이름이 아마.

‘맥달튼이었지?’

이 녀석을 어떻게 회유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최측근인 만큼 나중에 드렉프리를 다루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이건 나중에 생각해 보자.

꼭 필요한 부분은 아니니까.

-차르르륵.

명단을 살폈다.

얼굴과 간단한 설명, 빌린 금액과 놈이 가진 능력 등등.

“빚을 탕감하는 방법은 여러 개가 있더군. 돈을 갚아도 되고 자기 능력으로 봉사해도 되지.”

“능력 있는 놈들은 후자를 선택하고.”

“맞네. 그쪽이 대우가 좋거든.”

그래.

이 부분이 이상했다.

놈은 사채업을 하지만 오로지 돈만 좇지는 않는다.

오히려 빚을 이용해 쓸 만한 인재를 찾는 것에 가깝지.

당장 나만 봐도 그렇지 않나.

실력만 되면 파트너가 될 수 있다.

능력이 있다는 말에 쓰레기촌까지 찾아왔다.

여기서 드는 의문.

‘왜 그렇게 자기 사람을 모으려 하는 걸까.’

전부터 있었던 의구심이었고.

“이것 봐라?”

명단을 살핀 난 한 가지 가능성을 보았다.

일단은 여기까지.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았다.

드렉프리가 따로 시킨 게 있으니까.

겸사겸사 다른 사업장에 가 명단도 살펴보고.

난 빠르게 움직였다.

그렇게 하루가 지난 무렵.

“으읏차. 움직여 보실까.

난 초코쪼코와 트랄로우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부본부장이라는 녀석이 이렇게 막 돌아다녀도 되냐?”

“드렉프리도 동의한 일이니까.”

부본부장.

그냥 보기에는 본부장을 돕거나 그의 업무 일부를 부담하는 것이다.

계보상으로는 녀석의 직속으로 있기도 하고.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난 사업장 같은 곳에 매여 있지 않다는 거지.’

사찰단.

그게 대외적으로 내걸어진 내 임무다.

실제로는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거지만.

아직 자리가 없으니 그동안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전반적인 분위기와 업무를 살피라는 것이었지만.

-해결해 줄 일이 있네.

녀석은 따로 나를 찾아와 비밀스러운 요구를 해 왔다.

처음에는 어떤 대단한 일을 시키려고 하나 했지만.

-콰아앙!

“다들 튀어나와라!”

“제, 젠장! 경비대인가!”

“도망쳐! 망보던 새끼는 어디 간 거야!”

의외로 하는 일은 간단했다.

놈이 원하는 곳에 찾아가서 적당한 빚쟁이를 만드는 것.

“저, 저놈들 경비대 아닌데?”

“검은 갈고리다!”

“우리 영역에서 허가 없이 도박이라. 겁도 없군.”

은밀하게 운영되고 있던 도박장을 쳐들어가 깽판을 놓는다.

“사, 사채업장에서 왔군! 도박은 그쪽 관할이 아닐 텐데!”

-콰직!

뭐라 떠드는 녀석의 주둥이를 납작하게 만들어 줬다.

도박장이라.

그래. 도박장은 드렉프리의 영역이 아니지.

그쪽은 다른 본부장이 관리하니까.

조금 억지기는 하지만 명분은 있다.

일단 이곳은 검은 갈고리가 관리하는 영역이라는 것.

그리고.

“도박 자금을 푸는 행위는 우리 역할이거든.”

도박장에는 온갖 놈이 모인다.

패가망신도 모자라 있는 것 없는 것 싹 긁어모아 돈을 빌리는 이도 부지기수다.

당연히 도박장에는 담보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지갑 사장이 있는 법이었고.

“돈을 빌려주는 건 우리만 할 수 있지.”

드렉프리는 음지에서 유통되는 돈을 관리하는 사채업자다.

명백히 우리 쪽 사업을 침범하는 행위라는 거다.

“이 정도는 용인되는 범위일 텐데!”

“그럼 운이 나빴다고 생각하든가.”

도박장 주인이 억울한 듯 소리쳤지만 뭐 어떤가.

그러게 누가 불법 도박 하래?

놈이 뭐라 하든 우리는 빠르게 도박장을 철거했고 안에 있는 돈과 물품을 압수했다.

말 안 듣는 놈들은 좀 패 주고.

“너, 너희 때문에 다 망했다! 이번에는 이길 수 있었는데!”

이번 일의 타깃을 살폈다.

덩치가 커다란 남자.

근육질 몸만 봐도 위압적인데 인상을 쓰며 부르르 떠니 흡사 몬스터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뭐랄까.

도시보다는 어디 야생의 전사에 더 가까운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슬쩍, 바닥에 떨어진 녀석의 패를 봐 봤다.

“…그냥 했어도 졌을 것 같은데.”

내가 포커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원 페어가 낮은 족보라는 건 안다.

“4판 만에 나온 원 페어였다!”

그래. 말을 말자.

운이 얼마나 나빠야 원 페어가 4판 만에 나와.

이 정도면 그냥 타짜들한테 작업당한 거라고 보면 됐다.

그러고 보니.

‘타짜도 드렉프리가 찔러 넣었겠군.’

원하는 건 어떻게든 가지려 하는 놈이니 충분히 가능성 있다.

내게 했던 부탁 중에 저항하지 않는 이들은 도망가게 놔두라고 한 것도 그 때문일 거고.

한마디로.

‘저 녀석을 영입하기 위해 공들여 작업했다는 뜻이지.’

놈에 대한 신상 정보는 이미 확인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SSS급 권능, 별을 주시하는 눈이 발휘됩니다!]

-츠즈즈즈즈.

[울레 빅토르]

-95층의 NPC.

-푸른 갈기의 부족장입니다!

-승부욕이 강한데, 지능이 좀…….

-그래도 끈기 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만 그런 게 아니라 진짜 부족장이었나.

어째 도박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싶었다.

그거야 그렇다 치고.

“넌 우리와 함께 간다. 빚을 지고도 입을 닫지는 않겠지.”

“내가 왜 너희한테 갚아야 하지?”

“그야 여기로 들어온 돈이 우리 쪽 돈이니까.”

거짓말은 아니다.

뒤로 도는 자금은 대부분 드렉프리에게서 나온 거니까.

놈도 그걸 아는지 눈썹을 찡그린다.

“방금 땄으면 갚을 수 있었다!”

“땄으면 얼마나 벌었는데?”

“무려 2,000리안이다!”

“…네놈이 빌린 게 21,000리안. 후, 됐다. 따라와라.”

더 이야기를 나눠 봤자 나만 손해일 것 같다.

대화도 통하는 사람이랑 해야지.

나도 딱히 위해를 가할 생각이 없고 놈도 싸우는 건 자신 있는지 우리를 보고서도 묵묵히 따라온다.

그, 손에 쥐고 있는 카드는 좀 내려놓으면 좋겠는데.

아니다. 그냥 가져가게 두자.

“어디로 가는 거지?”

“빚을 갚을 때까지 일할 곳으로.”

“난 어려운 건 못 한다.”

“괜찮아. 네가 잘하는 걸 시킬 거니까.”

예를 들자면.

“때려 부수는 건 잘할 거 같은데. 맞나?”

내 물음에 녀석이 입꼬리를 올린다.

“물론이다!”

거, 대답 시원해서 좋네.

이걸로 드렉프리가 요구한 요청 중 하나는 처리했다.

이 녀석 말고도 3명을 더 데리고 와야 한다.

하나같이 무력이 강력한 놈들.

공통점이 있다면 뒷배경이 없다는 거다.

폴을 비롯해 다른 사채업장의 명단을 살폈을 때도 마찬가지.

녀석은 전력을 모으고 있었다.

그뿐일까.

‘대장장이나 상인, 기타 인물도 다 섞여 있어.’

중간에 사업이 고꾸라진 사람이라든가.

모종의 계략에 빠져 담보로 맡긴 건물이나 물건을 빼앗긴 사람이라든가.

따로 식량과 물품을 사들이는 것까지 확인하고 나서 확신이 들었다.

드렉프리, 이 녀석.

“전쟁을 준비하는군.”

그 대상이 누구인지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검은 갈고리.

그곳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건 나뿐만이 아니다.

어쩌면 더 많은 것을 얻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대두상을 비롯해 지하상가와도 인연을 만든 걸 봤을 때.

‘3대 조직을 모두 흡수하고 싶은 거야.’

내가 보기에는 그렇다.

부촌을 공격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쪽에는 경비대가 있거든.

경비대 쪽과 좋은 관계를 쌓아 둔 이유도 설명된다.

뒷세계에서 어떤 일이 벌어져도 신경 쓰지 말자고.

이것 참.

“아주 마음에 들어.”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목적이 같다.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거다.

내가 검은 갈고리를 먹으려 했던 이유는 간단했으니까.

부촌에 갈 수 있는 재력과 힘.

파히루를 찾을 수 있는 정보력.

피의 제단으로 향할 수 있는 루트.

이 3가지를 얻기 위함이었으니까.

즉, 이것들만 가질 수 있다면 그 외의 건 아무래도 좋다.

각자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관계.

그거야말로 파트너 아니겠는가.

때마침 내게는 명분이 있다.

‘피의 제단에서 나오고 공격을 했던 곳이 어디라 했더라.’

작은 손가락이라고 했지, 아마?

자고로 공격당했으면 보복을 하는 게 뒷세계의 법칙이다.

한번 맞았음에도 가만히 있으면 얕보이니까.

그리고 난 검은 갈고리의 부본부장.

“내가 어디 가서 맞고 다니면 조직의 명성이 깎이겠지?”

“…네가 어디서 맞고 다닐 것 같지는 않은데?”

초코쪼코가 뭐라 했지만 무시했다.

내가 무슨 의도로 말했는지 눈치챈 트랄로우만 눈을 번뜩였다.

“물론이다. 간부급 인원이 맞고 다니면 사람들에게 비웃음거리가 되니까.”

맞네.

얘도 같이 공격당했었지.

보니까 그걸 떠나서 작은 손가락이라는 조직을 싫어하는 것 같다만.

“초코쪼코, 이 녀석이랑 남은 녀석들 좀 부탁할게.”

“그거야 하면 되는데, 너는?”

“잠깐 때린 놈들 복수해 주려고.”

“누군지는 모르지만 불쌍한 놈들이네. 갔다 와.”

쿨하게 자리를 뜨는 초코쪼코를 뒤로하고 트랄로우와 함께 길거리를 나섰다.

“작은 손가락의 위치는 알지?”

“물론. 나도 한때 그곳 소속이었거든.”

그랬냐? 몰랐던 사실이네.

“날 배신한 놈들이기도 하지.”

“잘됐네.”

악감정은 지우는 게 답이니까.

겸사겸사 드렉프리의 3대 조직 통합을 위한 선물도 주고.

조직 하나 박살 내면 좋아하겠지.

순간 내가 과대 해석 한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렉프리가 원하는 건 검은 갈고리를 먹는 것 정도일 수도 있다고.

그런데 뭐 어떤가.

‘싫어도 이제부터는 그렇게 해야 할 텐데.’

자고로 야망은 크게 가져야 하는 법이었다.

야망 주입기 이블아이가 움직일 때가 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