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 갇혀 고인물-663화 (663/740)

663화 조직 먹으러 가자

피의 제단에서 나오자마자 주변을 살폈다.

각기 다른 장소에서 상품으로 팔아넘겨진 이들.

그들은 살아남으면 어디로 돌아가는가.

“도시 외곽이군.”

맨 처음 보내진 공간으로 떨어지는 건 아닐까 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공터.

이런 곳이 있었는지도 몰랐는데 꽤 큰 규모였고.

“으으으.”

“살아남았다!”

“빌어먹을. 다음에는 도박 같은 거 안 해야지.”

생존자들이 모여 있었다.

숫자로 봤을 때 모든 인원이 한곳에 떨어진 건 아니고.

-타다닷!

혹시 몰라 주변을 달리며 파히루가 있는지 살폈으나.

“없군.”

녀석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은신 스킬을 쓴 건 아닐까 권능까지 써 가며 수색했지만 없다.

누군가가 빠져나간 흔적조차 없었으니 이쪽으로 떨어지지는 않은 모양.

그나마 다행인 점이 있다면.

“드디어 자유다!”

저기, 같은 팀으로 싸웠던 트랄로우가 같이 왔다는 것.

아쉽게도 초코쪼코는 보이지 않았다.

문제 될 건 아니다.

피의 제단에서 싸우면서 이후에 합류할 장소와 시간을 잡았으니까.

일단 트랄로우에게 다가가 어깨에 팔을 올렸다.

“어떤 놈이! 밖으로 나왔으니 너희 같은 버러지……!”

인상을 쓰며 고개를 돌리던 녀석이 움찔한다.

어쭈. 살기까지 내뿜네?

“…버려진 줄 알았는데 만나서 반갑군.”

“응. 나도 반가워.”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이 녀석은 꼭 데리고 가야 했다.

다른 곳도 아니고 부촌을 갔다 온 녀석이니까.

실력이야 이미 검증되었고.

“앞으로도 잘 부탁해.”

“그, 그게 무슨 소리지?”

“무슨 소리기는. 우리가 남이냐! 목숨 걸고 등을 맞댄 전우 아니야! 전우!”

“등을 맞댄 적은 한 번도 없, 지 않은 것도 같군.”

치사하게 팩트를 말하려고 하길래 팔에 힘을 주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인다.

전부터 느꼈지만 태세 전환이 참 빠른 친구다.

그러니까 현상 수배가 걸렸음에도 지금까지 살아 있겠지.

“너한테도 나쁜 일은 아닐 거야. 너도 갈 데 없잖아?”

“그렇긴 하지.”

“나도 없어.”

“어?”

없다고.

뭘 자꾸 물어봐. 들은 게 맞는데.

“아직까지는 없다는 거지.”

아예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피의 제단으로 팔려 가기 전에 검은 갈고리의 본부장, 드렉프리와 한 이야기가 있다.

살아 돌아오면 그때는 동등한 위치에서 거래하자고.

이번 일로 어느 정도 방향성을 잡았다.

‘놈은 다시 이곳으로 온다.’

권능을 통해 확인하지 않았던가.

피의 제단 단골이라고.

가르티가 준 정보에도 있었다.

거렁뱅이 파히루.

빌어먹는 파히루.

‘몇 가지 키워드는 어떤 건지 잘 모르겠지만.’

거지라는 건 알겠는데 나머지는 뭘 뜻하는지 확실치 않다.

소탐대실의 아이콘.

작은 정을 가진 큰 병신.

‘아무래도 성향을 말하는 것 같은데.’

하긴 그러니까 플래티넘 등급이면서도 피의 제단에 팔려 왔겠지.

뭐, 능력을 보면 팔려 온 게 아니라 직접 온 걸 수도 있겠지만.

단서도 생겼겠다 찾아보면 되겠지.

거지는 아무 데나 있지 않는다.

“여기에 있을 거야.”

동냥을 할 만한 곳에 있지.

베풀 여유가 없는 곳에 거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 주머니 사정이 넉넉한 동네에 있지.

도시 어딘가에 있다는 뜻.

내가 있던 달동네도 아니다.

공장 노동자들은 돈이 없거든.

만약 내 예상이 맞다면.

‘부촌.’

거기에 있다.

이러나저러나 그곳에 한 번은 가야 한다는 뜻.

뭐, 거기서 못 찾아도 피의 제단을 몇 번 들락거리면 언젠간 보겠지.

위험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그건 그거고.

“저놈들은 뭘까.”

“보니까 작은 손가락 조직에서 온 것 같군.”

작은 손가락이면 3대 조직 중 하나다.

하나같이 무장을 한 걸 보니 좋은 의도로 온 것 같지는 않고.

“허. 진짜 생존자들이 있을 줄이야.”

“심지어 한두 명이 아닌데?”

“지원 불러라. 강한 놈이 있다는 뜻이니까.”

빠르게 움직이는 이들.

저건 통신 구슬인가.

대충 짐작은 간다.

“입막음이네.”

“그렇겠지. 전에 들은 적이 있거든.”

트랄로우도 아는 게 있는지 바로 무기를 든다.

“일단 처리하지.”

-파아앗!

-쾅!

동시에 놈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놈들 또한 무기를 빼 들며 저항했지만.

“뭐, 뭐 이런!”

“크아아아악!”

제단 안에서 빌빌거리던 트랄로우도 여기서는 탑급 범죄자다.

암흑가 조직이든 뭐든 일반 조직원으로는 막을 수 없다는 것.

6명 정도는 쉽게 잡을 수 있다.

-서걱.

칼질 몇 번 만에 정리되는 놈들.

클린으로 피를 닦아 낸 후 디그로 시체를 매장했다.

뭐든 흔적은 없는 편이 좋아서.

“다들 움직여라! 이곳에 있으면 제명에 못 살 테니까!”

“가, 감사합니다!”

“아, 가기 전에 이거 하나씩 받고.”

우리와 함께 떨어진 녀석들에게 쪽지와 함께 약간의 돈을 쥐여 줬다.

대단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나름 쓸모가 있거든.’

도시 각지에 뿌려질 놈들이다.

노동자에서 도박꾼, 따로 작은 사업을 하는 놈까지.

다양한 직군에 속한 녀석들이었고.

“나중에 도움이 필요하면 부르지. 너희도 모르는 척하지 말고 서로 도와라. 여기선 힘이 없는 자는 상품이 될 뿐이니까.”

달리 말하면 주변에 도는 다양한 소문과 정보를 들을 수 있다는 거다.

“암요! 그럼 가 보겠습니다!”

“이것도 인연인데 술이나 한잔하지!”

빠르게 멀어지는 놈들.

“왜 그런 자비를 베푸는 거지?”

“그야 도움이 되니까.”

트랄로우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지만 어깨를 으쓱이고는 입을 닫았다.

내가 등반을 하며 낯선 세계에 떨어지면 항상 하는 게 있었다.

뒷골목 조직이나 정보상을 찾아가는 것.

그들이 하는 건 간단했다.

사방에 뿌려져 있는 조직원과 사람들을 대상으로 온갖 정보를 뽑아 오는 것.

대부분 쓸모없는 거겠지만 적당히 걸러 내고 교차 검증을 하다 보면 많은 정보를 모을 수 있다.

“우리도 가지.”

“생각해 둔 곳이 있나 보군.”

아공간 아이템에서 적당한 로브를 꺼내 던졌다.

일단 현상 수배범인지라 얼굴을 가릴 필요가 있거든.

가장 먼저 갈 곳은.

“여관으로 가지.”

그곳에서 초코쪼코와 만나기로 했거든.

더불어.

‘냥펀도 따로 만나야 해.’

-띠링. 띠링.

지금도 커뮤니티 알림이 울리고 있다.

* * *

빈민촌 달동네.

그중에서도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꼭대기 방에 3명이 모였다.

나랑 초코쪼코, 트랄로우.

전력만 보면 최상에 가까운 조합.

아쉽게도 냥펀은 오지 못했다.

[냥냥펀치]: 나 부촌 입성!

[냥냥펀치]: 여기 나가면 또 입장료 내야 해서 이곳에 한동안 있을 거임

[냥냥펀치]: 요정 클럽이랑은 아직 접선 못 했엉

[냥냥펀치]: 이게 침대지!

부촌에 입성하기는 했는데 나까지 안으로 데리고 가려면 입장료를 2번 더 내야 한다.

아니지. 정확히 따지면 더 내야 한다.

“미친놈들. 설마 퇴장료도 있을 줄이야.”

부촌에서 나가는 데도 비용이 든다.

오히려 입장료보다 더 비싸다.

안에서 일을 마치고 돈을 벌었으면 일정 부분 내놓아야 하는 구조.

확실한 사업 아이템이 있는 게 아니라면 들어가서 손해만 본다.

만약 별다른 성과를 못 냈다?

‘그럼 거기서 일하거나 거지가 되는 거지.’

어디 저택에 들어가서 하수인으로 일을 하든 잡다한 일을 하든가 해야 한다.

부촌이라면 그곳에서 서비스를 제공할 사람들도 필요할 테니까.

정석적인 방법으로는 못 들어간다.

그러니 편법을 쓸 예정.

“안으로 입장하는 방법이 있다는 거지?”

“전에 쓰던 루트는 막혔을 거다. 다만 하수도를 이용하면 다른 길이 있지.”

“와. 이건 나도 몰랐는데.”

부촌에 잠입한 적이 있는 트랄로우를 통해 부촌으로 갈 생각이다.

물론 무작정 갈 생각은 없다.

확실한 목적이 있어야 하는 거지.

파히루를 잡는 거?

‘하긴 해야지. 그런데 꼭 부촌에 가야만 할 수 있는 건 아니거든.’

녀석과 접촉할 방법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피의 제단을 이용하면 되니까.

물론 5차 징수까지 가면 강제 처분 당할 수도 있으니 가능한 안 하는 게 좋지만.

“한동안 세금 걱정을 안 해도 된다지만 그렇다고 아예 일을 안 하는 건 불가능해.”

이 부분도 해결해야 한다.

세금?

막말로 이것도 피의 제단을 한 번 더 가서 피할 수 있다.

그거랑 관계없이 먹고살려면 식비가 필요하다.

이미 부촌은 냥펀에게 맡긴 상황.

“검은 갈고리로 들어간다.”

이게 내 해결책이다.

범죄자인 트랄로우는 공개적으로 일을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조직에 속하는 게 가장 좋다.

문제는 이쪽인데.

“초코쪼코, 너는 원래 움직이던 곳이 있는 건가?”

나보다 먼저 95층에 들어온 녀석.

얘도 나름대로 이곳을 클리어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을 터.

당장은 피의 제단에서 인연이 생겨 함께하고 있지만 언제 자기 활동을 하러 떠날지 몰랐다.

“반쯤 혼자 움직이고는 있었는데. 뭐라고 해야 할까.”

볼을 긁적이던 녀석이 눈을 깜빡였다.

“지금은 아니야. 하다가 망했거든! 요정 클럽 애들이 생각보다 빡세더라고.”

요정 클럽이 경계하던 이유가 있었군.

자세한 건 모르지만 요정 클럽과 엮여 있는 문제가 있다.

“그쪽에서 하는 거랑 내가 하던 사업이랑 마찰이 있었거든.”

간단히 설명하면 이거다.

요정 클럽은 부촌에 자리 잡으며 연결망을 구축했다.

원래 잘사는 사람들끼리는 서로 뭉치는 법.

혈연, 지연, 학연 등등.

자기들만의 카르텔을 만드는 것이었고 요정 클럽은 그들이 뭉칠 수 있는 연결망이 되었다.

당연히 그들과 접촉이 많아지면서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 것도 가능.

도시 내에서 꽤나 영향력 있는 위치를 잡았다.

반대로 초코쪼코는.

“원래 천장이 단단하면 올라가는 사람이 힘든 법이잖아?”

신흥 강자와 부자들이 위로 솟을 수 있도록 해결사 노릇을 했다.

온갖 서비스를 제공하는 집단을 설립.

경쟁 업체를 방해하거나 주요 인물을 처리한다든가.

굳이 새롭게 부촌에 자리 잡은 이들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기존 카르텔에 있는 자들도 뒷수작을 부릴 사람은 필요했으니.

얼핏 보면 검은 갈고리와도 비슷했지만.

‘활동하던 구역이 부촌이었다는 게 다르지.’

요정 클럽이 경계할 만했다.

뭘 할 때마다 방해가 들어왔을 테니까.

지금까지는 서로 힘이 비슷했다.

아니, 오히려 초코쪼코 쪽이 더 우세했다.

공개적으로 활동하는 요정 클럽과 달리 뒤에서 활동했으니까.

더불어 여러 일을 처리하며 여러 세력의 약점도 잡고 있었고.

그런 녀석이 밀리고 밀려 피의 제단까지 온 이유는 하나.

“아, 큰 건 하나 하려 했는데 요정 클럽 인원이 더 들어올 줄은 몰랐지.”

“마그마 요정 아니면 송곳 요정이겠군.”

“아나 보네?”

“나름 친하지.”

“맞아. 송곳 요정이야.”

그럴 것 같았다.

마그마 요정도 강하긴 하다.

다만 그 특성상 은밀하게 움직이는 건 불가능.

한번 싸울 때마다 용암이 철철 넘치니까.

반면 송곳 요정은 암살 계열이었으니.

‘초코쪼코에게 맞대응할 수 있었겠지.’

요정 클럽 쪽에서도 은밀히 사용할 칼을 얻었다는 거다.

애초에 초코쪼코가 암살 특화도 아니고.

전투 망치 쓰는 애가 조용히 쓱싹하고 오겠나.

어디 용역 깡패처럼 사업장이나 토지를 점거하고 버티는 식의 일을 했단다.

암살 같은 건 조직원이 하고.

대충 상황은 알겠고.

“같이 움직이는 데 문제는 없다는 거군.”

“그렇지. 동향 사람 만난 것도 우연인데 잘해 보자고!”

녀석이 내민 손을 맞잡았다.

이걸로 합류 확정.

생각보다 거물들의 이름이 나왔는지 트랄로우는 눈치를 살폈다.

“요정 클럽이면 부촌 최고 살롱 조직이고 신흥 세력 심부름꾼이면 초콜릿 무스, 거기일 텐데. 설마 그곳 수장이었다니.”

닉네임부터 초코쪼코더만 조직 이름도 초콜릿 무스로 했을 줄이야.

현상 수배범도 쭈그러드는 걸 보니 유명하긴 했던 모양.

오히려 좋다.

어쨌든 결은 비슷하다는 거니까.

이 정도면 검은 갈고리에서도 환영하겠지.

“할 일은 정해졌군.”

이미 검은 갈고리에는 사람 두 명을 넣어 놨다.

쓰레기촌에서 만났던 폴과 빅튼.

자, 할 일이 정해졌다.

“가자, 조직 먹으러.”

일단 검은 갈고리 먼저 흡수해야겠다.

그리고.

정석적인 방법과 편법을 이용해서.

‘부촌으로 영향력을 넓힌다.’

파히루, 딱 기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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