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8화 갈 필요 있나, 보내지면 되지
대두상의 공장에서 하는 일은 간단했다.
생산 라인에 앉아서 각 부품을 연결하는 작업이었는데.
‘지루해 미치겠네.’
단순 반복 작업이 그러하듯 굉장히 지루한 일이었다.
달리 말하면 작업을 하는 동안에 딴생각을 할 수 있기도 했다.
손은 바쁘게 움직이면서도 머리는 끝없이 굴러갔다.
초인의 경지를 넘어선 게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될 줄은 몰랐는데.
‘오늘 일이 끝나자마자 바로 지하상가로 향하는 거야. 어제 야간조까지 하면서 작업량을 쳐냈으니 문제 될 건 없다.’
빠르게 할 일을 정리했다.
대두상과 인연이 있기 때문인지 나름 편의도 제공해 줬다.
무려 업무 중에 화장실을 두 번이나 갈 수 있었다!
‘개새끼.’
뭐 이딴 걸 복지라고.
주변에서 나는 지린내를 생각해 보면 진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인권이고 뭐고 열악한 환경에서 기계처럼 부려 먹는다.
‘대두상 녀석, 머리만 큰 줄 알았더니만 욕심도 한가득하군.’
뇌물도 먹여 놨더니만 이딴 대우라니.
가성비가 썩 좋지 않은 인간이다.
“아이고, 우리 에이스. 열심히 일하게나. 아주 마음에 든다니까. 차기 공장장! 유망주!”
공장 시찰을 나온 대두상이 껄껄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린다.
얼굴에 흐르는 기름기를 보니 주먹으로 닦아 주고 싶었다.
조만간 공장장을 시킬 거라며 떠드는 것도 한두 번이지.
저 정도면 그냥 놀리는 거다.
아니면 셀프 암살 의뢰를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거거나.
‘공장장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작게 혀를 찼다.
살짝 기대한 적은 있었다.
제법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거니와 검은 갈고리 내에서도 여러 업무를 맡았으니.
사람을 볼 줄 아는 녀석이면 단순노동이 아니라 다른 걸 시킬 줄 알았다.
딱 한 가지.
녀석과 검은 갈고리의 관계가 생각보다 깊었다는 게 문제였지.
“그냥 그때 같이 쓸어버릴 걸 그랬나. 쯧.”
녀석은 검은 갈고리의 눈치를 보고 있다.
지하상가의 거물이자 수많은 공장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상대는 도시 암흑가를 대표하는 조직 중 하나다.
별다른 보복 없이 조직에서 나왔다고는 하지만 놈 입장에서는 껄끄러운 존재다.
나 하나 얻자고 비즈니스 관계에 문제점을 만들고 싶지 않다는 거겠지.
슬슬 선택할 때가 됐다.
어떻게 움직일지를 고를 때가.
‘대두상을 거점으로 움직이는 것과 냥펀과 함께 움직이는 방법이 있지.’
둘 다 장단점이 있다.
일단 이곳에서 챙겨야 할 게 있다.
피의 무게를 어디서 어떻게 재는지 알아내는 것.
피의 무게를 재는 이는 적다.
적어도 탈세할 정도의 사업 규모를 가지고 있는 곳에서만 할 수 있으니까.
내가 아는 곳은 대두상의 공장과 검은 갈고리 조직 두 개 정도.
조직에 다시 들어갈 게 아니라면 선택지는 여기밖에 없다.
더불어 이곳에 있는 동안에는 세금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당장 때려치우기에는 세금이 부담스럽다는 것.
차근차근 돈을 모으며 일하는 것도 방법이다.
다만.
‘공략 진행이 늦어질 거야.’
90층대를 클리어하기 위해서는 나의 영향력을 증명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공장에서 일하는 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차라리 도심에 있는 공장을 다 부숴 버려?
악명을 떨치는 것도 어떻게 보면 영향력을 끼치는 거니까.
물론 생각으로 그쳤다.
“어떤 후폭풍이 올지 몰라.”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
사회적인 혼란을 줄지 모르겠지만 그게 의미가 있울까?
근본적인 건 바뀌지 않고 원상태로 복구하는 데 시간이 걸릴 뿐이다.
무엇보다 그런 짓을 했다가는 이곳에서 활동하기 힘들어진다.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날 노리게 될 테니.
‘이곳에 온 이유랑도 맞지 않아.’
내가 굳이 이곳으로 온 이유.
등반을 가로막는 숭배자, 그중 3명만 존재한다는 플래티넘 등급을 없애기 위함이다.
망할 숭배자들은 없앨 수 있으면 없애야 한다.
90층대를 오르면서 여러 안전장치를 만들어 두기는 했다.
지배자 대리인을 세우기도 하고 다른 지배자와 우호적인 관계를 만들었으니.
문제는 그러지 못한 곳들도 있다는 것.
90층대 아래도 문제다.
상위층을 오르면서 탈락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아무리 공략을 올리고 연합 사람들끼리 협력한다 하더라도 생존율 100%를 만들 수는 없다.
-으득.
이를 갈았다.
이준석이 빅스타 길드에서 온 연락을 전달해 줬다.
탑은.
‘더 이상 새로운 사람을 초대하지 않는다.’
신규 등반자는 이제 없다.
지금 탑에 있는 이들이 전부다.
탑 안에 있는 이들을 최대한 위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뜻.
새내기 등반가들이 오지 않으면서 더 이상 바깥 소식을 알 방법이 없다.
그저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토대로 예상할 뿐.
오필리아가 이끄는 노블 나이트 중에 예측 능력을 갖춘 이가 있다고 들었다.
미래를 보는 수준은 아니지만 꽤나 가능성 있는 상황을 예측한다고.
쁘찡연합과도 긴밀하게 엮인 만큼 종종 미래 예측 보고서가 올라왔는데.
‘5년 내로 탑에 있는 모든 괴물이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지.’
에이션트 몬스터나, 미발견 몬스터.
여러 특수 게이트가 등장할 거다.
혼돈의 파편도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겠지.
어쩌면 이종족이 등장할 수도 있다고 들었다.
어디까지나 그럴 수 있다는 수준에 불과했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막말로 거인이나 드래곤이 등장했는데 몬스터인 줄 알고 싸우면 개판 되는 거거든.’
쌍방향 소통은 불가능하지만 탑 밖으로 나가는 이들을 통해 일방적인 정보 전달은 가능하다.
오필리아도 그걸로 바깥 상황을 도우려는 것 같고.
아무튼 대두상과 함께하는 것엔 장단점이 있다.
반대로 냥펀의 경우에는.
‘솔직히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
도시로 들어온 지 얼마 안 돼서 어떤 식으로 일을 풀어 나갈지 알 수 없다.
그저 상인 일을 하며 부를 축적하지 않을까 싶을 뿐.
망하지만 않으면 창업하는 쪽이 더 낫기는 하다.
덤으로 믿을 수 있는 녀석이니 같이 움직이기도 좋겠지.
여러모로 장점이 가득하긴 하다만.
“분산되는 쪽이 활동 범위가 넓단 말이지.”
이 부분이 살짝 걸린다.
대부분 다른 멤버들과 움직였을 때 각자의 포지션이 있다.
냥펀과 핥짝이가 주로 양지에서 움직인다면, 나와 탈모맨은 음지나 외부에서 움직이는 성향이 강했다.
덕분에 양쪽에서 움직여 덕을 본 경우도 꽤 있고.
부촌과 빈민촌으로 양분된 도심.
그렇다면 양쪽에서 활동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댕. 댕. 댕.
“휴식 시간이다! 다들 쉬도록!”
“1시간 후 다시 시작이니까 늦지 않게 오라고! 주급 깎이기 싫으면!”
어느덧 휴식 시간.
손가락이 아픈지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는 폴과 배고픈지 벌써부터 주먹밥을 꺼내 먹는 빅튼을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써먹을 수 있는 놈들이 있었지.
상품이 되어 도망쳤음에도 이곳에 남아 있는 녀석들.
보복이 들어올 걱정은 없다 했다.
세금 대신 쓰이는 이들은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깔끔하게 죽었으면 모를까 어떻게든 살아 도망쳤다면 무시하는 것이 불문율.
물론 함부로 자신이 겪은 것들을 떠들고 다니면 보복이 들어오지만.
‘목숨 소중한 줄 알면 그런 일은 없지.’
다시 상품이 되고 싶은 녀석은 없을 테니까.
어떻게 보면 폴이 상품이 된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아는 건 많은데 일 처리를 제대로 못했으니 입막음 할 겸 잡아 온 거겠지.
아무튼.
“형님. 오늘 오전 작업만 한다지 않았습니까?”
“안 그래도 바로 나갈 생각이다.”
“부러운 체력이야. 나도 왕년에는 며칠씩 굴러도 멀쩡했는데. 이놈의 나이가 문제지.”
궁시렁거리는 폴을 무시하고 움직였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12시가 되면 건물 자체를 봉쇄하니 그 전에 확인할 건 다 확인해야 한다.
빠르게 골목으로 들어간 후 복장을 바꾸었다.
검은 후드가 달린 로브.
거기에 두건까지 두르니 날 알아보는 사람은 없을 거다.
“멀쩡한 옷을 입으니 좋군.”
내가 괜히 허름한 옷을 입은 게 아니다.
노동자들과 섞이기 위함이지.
사람이 특이한 게, 옷차림만 바꿔도 분위기가 달라진다.
-타앗.
은신 스킬을 사용해 이전에 봤던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분명 이곳에서 일을 치렀을 거다.
물품을 옮기는 이가 한가득.
난 그 사이에 스며들었다.
‘조직원들을 넘기고 얼마 되지 않아 일을 처리했지. 비밀 통로가 있다는 뜻이야.’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물류 창고.
하지만 내부 어딘가에는 수상한 일이 벌어지는 공간이 있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입구를 찾는 데만 며칠이 걸렸겠지만 난 아니다.
[SSS급 권능, 별을 주시하는 눈이 발휘됩니다!]
-츠즈즈즈.
희미하게 떠오르는 빛무리.
중간에 기둥이 있어 생긴 사각지대.
그곳에 보이는 나무 상자 뒤편에 벽처럼 서 있는 비밀 통로가 있다.
마감을 얼마나 깔끔하게 했는지 틈새조차 보이지 않는다.
슬쩍 다가가 꾹 누르며 마력을 넣자 파동과 함께 손이 안으로 들어간다.
착시 마법이나 그런 걸로 만들어 둔 모양.
얼핏 허술해 보였지만 누가 벽을 더듬으며 마력을 흩뿌리고 다니겠는가.
자고로 비밀 통로는 지키는 사람이 있으면 더 수상해 보일 뿐이었다.
‘어둡군.’
지하로 내려가는 통로.
환기는 제대로 되는지 공기가 탁하지 않았으나 조명이 아예 없다.
야간 시야 덕분에 보는 건 문제가 없었지만.
“덕춘이, 망구.”
“그에에.”
“끼에, 엡.”
비명을 지르려는 망구의 입을 막았다.
이 녀석이 그동안 나한테 당했다고 이렇게 복수하려 하다니.
찌릿, 한번 노려보자 녀석이 잠잠해진다.
“오늘 일 마치고 바로 무기 만들어 줄게. 재료 다 모아 놨어.”
진작에 만들어 주려고 했는데 일이 많아서 하질 못했다.
이참에 대장간을 차리든가 해야지.
대장간이라.
생각해 보니 그것도 괜찮겠군.
무기를 쓸 일이 없긴 하지만 그거야 쓸 일이 있게 만들어 버리면 그만이니까.
일단은 아이디어로만 남겨 두고.
“안에 수상한 게 있으면 알려 줘.”
나도 움직이기는 할 거지만 아무래도 덩치가 작은 덕춘이와 망령인 망구가 더 깊숙이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지하 공간에는 복도가 여러 개였으니 흩어져서 확인하는 게 더 빨랐다.
-타앗.
-스르르륵.
각자 방향을 정하고 움직인다.
나 또한 정면을 향해 움직였다.
권능을 사용하며 피의 흔적이라든가 그런 걸 살폈다.
굳이 피의 무게를 잰다고 말한 걸 보면 뭔가 장치가 있을 거다.
생각과 달리 안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물품을 받느라 다들 밖으로 나간 건가.
그것도 아니면 따로 뭔가가 있는 건가.
미간을 찌푸리며 살피는 타이밍.
“끼에에.”
작게 운 망구가 날 찾아왔다.
배기관을 통해 넘어온 모양.
고개를 까딱이고 녀석을 따라갔다.
내가 갔던 곳이 아닌 반대편 길.
그리 깊은 곳은 아니었다.
잡동사니가 굴러다니는 곳과 전혀 다른 곳.
-우우우웅.
검붉은 마법진이 방을 채우고 있었다.
벽과 천장에는 사악한 문장이 가득하다.
악마의 형상과 지나치게 정돈된 문자와 기하학적 무늬가 이질적인 곳.
[피의 제단 전송 마법진]
-피의 제단으로 향하는 전송 마법진입니다.
-허락된 자가 아니면 진입할 수 없습니다.
‘찾았다.’
어쩐지 일 처리가 빠른 거치고는 깔끔하다 했더니만.
이 공간 안에서 뭔가를 하는 게 아니라 따로 보내는 곳이 있는 모양.
강제로 진입할 방법이 없나 고민해 봤지만 떠오르는 건 없었다.
마법 쪽으로는 그렇기 지식이 많지 않아서.
살짝 아쉽다.
‘이어져 있는 곳이 어딘지 알아낼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이대로 별다른 성과 없이 일을 끝마쳐야 할까? 잠시 고민했다.
방법이 없으면 만들면 그만.
약 3주 후면 세금을 내야 한다.
달리 말하면.
“굳이 전송될 방법을 찾을 필요 있나. 내가 보내지면 되지.”
그 전에.
엿 먹일 건 엿 먹여야지.
마법진이 그려진 바닥에 손을 댔다.
[시한폭탄(S) Lv.MAX]
[시한폭탄(S) Lv.MAX]
[시한폭탄(S) Lv.MAX]
.
.
.
이걸로 사전 준비는 끝.
앞으로 할 일이 명확해졌다.
* * *
다시 돌아온 세금 날.
크게 바뀐 건 없었다.
여전히 일할 사람들은 일하고 놀 사람은 놀고.
달라진 게 있다면 내 입장.
“검은 갈고리에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폴과 빅튼이 검은 갈고리의 본부장, 드렉프리에게 고개를 숙인다.
난 모든 무기를 빼앗기고 구속된 채 마차에 있었다.
저 멀리, 드렉프리와 눈이 마주친다.
“똑똑한 친구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멍청했군.”
경멸 어린 표정이 볼만하다.
나중에는 어떤 표정을 지으려나.
가벼운 마음으로 마차에 몸을 눕혔다.
이제 가면 제대로 쉴 수 없을 테니 조금이라도 편하게 있을 생각.
내가 한 일은 간단했다.
공장에서 일하는 데 지친 폴과 빅튼과 거래를 했다.
나를 제끼는 것으로 검은 갈고리 조직으로 들어가라고.
내가 피의 무게에 대해 퍼트리고 다녔고 그런 나를 폴과 빅튼이 잡아 온 것으로 이야기를 마쳤다.
그 대가로 놈들은 드렉프리가 있는 사채업장에 진입.
난 상품이 되어 마차에 실렸다.
“내가 직접 운송한다. 저 녀석은 조심할 필요가 있으니.”
황송하게도 드렉프리가 직접 운송을 맡았다.
날카롭게 쏘아보는 것이 허튼짓하면 바로 칼부터 내밀 기세다.
내가 요주의 인물이기는 하지.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가 보실까.
‘피의 제단인지 뭔지 하는 곳으로.’